오늘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낯선 번호가 떠서 궁금해 하며 받아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K였다. 2년 전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서울의 지하철역에 있었다. 낯선 도시에 와서 7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하도 반갑고도 얼떨떨해서 그 날의 통화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 메모리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그 때도 겨울이었는데 그 겨울 이후로 오늘이 처음인 셈이다.

이제 근무 중에 회사 전화를 마음대로 써도 좋고 메신저를 켜놓고 일해도 터치 하는 일이 없고 주말에는 당근 쉬어주어야 할만큼 그녀의 위치는 좋아져 있었다. 물론 이만큼 자리를 잡기까지 주말도 없이 3교대로 일을 하는 등 그녀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득한 성품답게 한 회사에 오래 성실히 머무른 덕분에 이제는 능력도 인정 받고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착한 그녀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에 진심으로 기뻤다.

구슬같은 눈에 웃을 때마다 귀엽게 보조개가 패이던 그녀는 남자 아이들 서넛은 너끈히 때려 눕힐만큼 체격 조건이 좋다는 점, 선생님이 판서하신 내용을 가장 빨리 옮겨 쓰고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점, 맛있는 음식 앞에선 식구도 몰라볼 정도로 사족을 못 쓴다는 점 등에서 나와 확실히 통하는 면이 있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운동회 때만 되면 짧은 하얀색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함께 고민했고 남자 아이와 싸움이 붙으면 서로 편을 들어주다가 놀이터같은 곳에서 급작스런 기습을 당할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본래 성품이 착하고 여리던 그녀는 전적으로 나와 어울리게 되면서 남자 아이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 뿐이었기에 솔직히 미안했다. 가끔 학교와 집이 가까웠던 그녀의 집에 놀러가면 어머니께서 강된장을 만들어 주셔서 밥을 먹곤 했는데 정말이지 K네 집 장맛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잊을만큼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그녀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전수받아 들었고 그녀는 나로부터 읽을만한 책들을 빌려가거나 소개받곤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예쁜 편지지 세트를 사거나 혹은 맨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부지런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도 잘 뒤져보면 편지 몇 통 쯤은 나올법하다.

물론 우리 사이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였더라, 아무튼 나는 내 짝궁 J를 몹시 미워했더랬다.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고 대개는 조용한 편이었던 그 애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참 이래저래 싸가지가 없던 나는 담임 선생님께 자리 교체를 요구했고 다행히 반 아이들도 찬성을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드디어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J 이후에 누구와 짝이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는 그냥 J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연히 J와 짝이 된 K.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둘이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재수 없는 J와 단짝 K가 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싫었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만큼 유치했던 나는 아예 대놓고 두 사람으로부터 쌀쌀맞게 멀어져갔다. 오냐, 그래. 잘 먹고 잘 살어랏. 하지만 K는 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변함없는 친절로 대해 주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우리 둘은 예전처럼 꽤 잘 지냈다. 변덕스럽고 예민하던 나를 그녀는 항상 귀여운 보조개 띤 웃음으로 반겨주곤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욕심꾸러기가 되어가던 나와 왠일인지 자꾸 시니컬해지던 그녀는 다소 멀어진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반겼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 다른 진로를 택한 우리는 각각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편이었다. 무엇 하나 그냥 넘길 줄을 몰랐다. 지금은 무엇 하나 똑부러지게 걸고 넘어가는 일이 없으면서 그 때는 왜 그렇게 똑똑 부러졌는지.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먼저 연락을 해오는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부터 앞선다. 마음이 좋은 친구들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상처주는 말을 했던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말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끼리 잘못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 거라고 거기다 대고 그런 심한 말을 쏟아부었는지, 상상만 해도 나 자신이 참 싫어진다. 그런데도 나의 착한 친구들은 나를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해준다.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저절로 얼굴이 빨개지는 에피소드가 숱한데 친구들은 그런 것은 다 빼고 나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의 멋진 모습들만  기억했다가 알려주곤 한다. 늘 내 이름 석자만 대면 치를 떨던 남자 녀석들조차 말이다. 참 민망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대화에 어색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철없던 시절을 함께 공유한 어릴적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누군가와 신나는 대화를 해 본 것 같다. 조만간 가까운 곳에서 K를 한 번 보기로 했다. 지금 공근이라는 남동생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짝달막한 몸집에 머리카락이니 눈썹이니 숯검댕만큼 새카맣던 녀석이 이젠 신장 180에 가까운 어른 남자가 되었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쏘냐. 연년생인 누나한테 혼나고서 참 잘도 울더니만. 울고 나서는 꼭 자기 누나를 때리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다시 혼나고. 그 귀엽던 얼라가 누나가 늦게 들어오면 마치 오빠처럼 깐깐히 구는 어른이 되었다니 우리를 지나쳐 간 세월이 새삼 놀랍다.

벌써 결혼을 한 친구들은 어째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아직 미혼으로 남아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머하느라 이렇게 나이만 잔뜩 먹었는지. 더 나이 먹고 아이까지 생기기 전에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친구들을 보면 내가 정말 내가 될 것 같다. 아무도 아닌 바로 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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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안방 구석 자리에 박스 채 모셔둔 책들이 있었다. 이번에 동네 과일가게 주인 부부에게 텔레비전을 주면서 텔레비전이 짓누르고 있었던 박스 두 개가 몸체를 드러냈다. 2년 전에 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온 뒤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박스였다. 몇 개 안되는 책꽂이와 책장들은 포화 상태인데다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책들의 종류도 대개는 다시 꺼내보기 싫은 전공책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그 박스를 개봉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갑자기 열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박스 두 개에는 역시 대학 때 보던 전공 도서와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둔 바인더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내가 이런 어려운 책들을 봤단 말야. 깨알같은 영문으로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마다 내가 공부한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바인더에는 시험에 관한 자료부터 전공과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까지 꼼꼼하고도 착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성실했단 말야.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좀 심각해 보이는 책을 한 권 골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문제를 한 번 풀어봤다. 맞힌 걸로 표시되어 있는데 나는 내가 왜 그 문제를 맞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 단어가 알듯말듯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멍청해졌단 말야...

사회에 나온 후로는 공부와는 꾸준히 담을 쌓아온 것 같다. 그래도 하던 장단은 있어서 가끔 신문 쪼가리도 좀 읽어주고 원서로 나온 어린이용 도서도 찾아보곤 했지만 무언가 절실함이 부족해서일까. 예전에는 단어 하나의 뜻이라도 모르고 지나치면 영 찝찝해서 자다가 일어나서도 사전을 찾아보곤 했는데 요즘은 모르는 단어는 술렁술렁 패스, 한 다음 대충 글의 요지만 파악하고 만다. 혹시 입이 굳을까봐 거울을 보고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던 현상도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귀찮은데 다른 나라 말로 내 의견을 얘기하라니 귀찮아. 된장.

내 인생에 언젠가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숱한 분량의 번역과 레포트 과제를 하느라 항상 머리와 눈과 손가락이 피로에 절어 있던 당시에는 늘상 피로가 몸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러한 빠듯함 속에는 오묘한 행복같은 것이 있었다. 학교 생활에 지치다 보면 한 며칠만 먹고 자고 뒹굴고 해가면서 푹 쉬어봤음 좋겠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하루 정도 놀고 나면 다시금 빡빡한 일상이 그리워지곤 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는 앎의 즐거움과 반드시 어느 경지에 오르고야 말겠다는 성취욕이 심신을 충만하게 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립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곤 했다. 꿈 앞에 서면 왠지 두려웠고 언제나 나보다 백 배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 앞에서 기가 죽었지만 나름대로 긴장의 끊을 놓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참 열심히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이다.

요 근래에 친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시험에서 낙방했다. 내가 사회에 먼저 나오게 된 이후로는 연락을 자주 못하며 지냈지만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던 친구다. 다소 건조하다 싶은 성품에 우아하고 도도한 매력이 있던 그녀는 전혀 상반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뭔가 아찔하게 통하는 면이 있었다. 학교 벤치에서, 도서관 계단에서, 카페테리아에서, 팥빙수 집에서, 우리의 수다는 언제나 Never-ending story였다. 김영하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자줏빛 띄는 붉은색을 잘 소화해내던 그녀. 나란히 서면 나의 아름다운 누나 같았던 그녀가 앞으로 일 년을 더 고생하게 생겼다. 시험에 합격해서 겨울에 만나자는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총명하고 속이 깊은 그녀이니 언젠가는 잘 되리라 믿는다. 시험이란 그런 것 같다. 실력도 중요하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운 자체가 시험의 당락에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만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부디 그녀의 노력에 좋은 기운이 보태어지길 빈다.

방학이 되고나서 더더욱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해도 그렇고 오래된 책들을 들춰봐도 그렇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요즘 너무 퍼져 지낸다. 마치 내 인생의 목표는 여기까지인 것처럼. 물론 요즘 건강 상의 이유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제 세상의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온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려 누운 채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아저씨를 보니 나는 건강해도 너무 건강한 편이었다. 휠체어 한 번 타 보는 게 소원이라니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인생이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자들은 싹 다 고개 숙여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요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언제나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매도 결국 귀결점으로 택하는 것은 늘 그 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하루하루 내 앞에 배당받은 과제물과 시험 공부로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피곤했지만 매일매일의 성취감에 뿌듯했던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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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볼에 눈깔사탕이라도 물고 있는 것 같다.

쟁쟁거리며 돌아가던 기계음 소리는 분명 공포스러웠지만 수술 내내 간호사와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어주시던 센스 있는 의사샘 덕분에 모든 것이 예상보다 빨리 끝난 것 같았다.

어젯밤의 고통 이후 오늘은 그래도 살만해졌다.

볼따구가 좀 부었을 뿐 말도 다 하고 밥도 다 먹고, 어쨌든 뽑고 나니 후련하다.

사랑니가 회복되면 충치 치료도 해가며 평소에 치아 관리에 신경 좀 써야겠다.

병원은 모니모니해도 치과 병원이 가장 무서우니까 미리미리 신경 써서 될 수 있으면 안 가는 방향으로 노력해야한다.

생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참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생살을 뚫고 나와서 생으로 뽑아야 하는 사랑니를 비롯해서 생으로 헤어져야 하는 생이별까지.

무엇이든지 이미 썩을대로 썩어서 자리에서 이탈해 들썩거리는 것을 제거하는 것은 참 쉽다.

하지만 여전히 딴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도구와 힘을 이용해, 한 마디로 무력을 이용해 제거하는 것은 참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살면서 이런 일이 많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본다. 고통은 지나가는 거라지만. 그래도.

2월 초순에 아이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갈 것 같다.

오늘 여권을 신청했다.

사랑니 때문에 제주도도 못 가고 아쉬웠는데 방학이 끝날 무렵 아이들 덕분에 호사하게 생겼다.

붓기가 가라앉고 몸이 회복되는 대로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좀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이제 제발 여기저기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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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1-1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 사랑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네요. 흠.

깐따삐야 2006-01-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올라오면 상관 없는데 일단 이눔의 사랑니가 드러눕기 시작하면 진짜 고생인거죠. ㅜ.ㅜ
 


오지혜 - 사랑밖엔 난 몰라

그러고보니 노래를 불러본지도 참 오래다. 다리를 다치고 난 후로는 회식 자리에도 종종 불참했고 특별한 약속도 잡지 않았으며 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직접 우리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기분이 울적해 있었기 때문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일도 드물었다. 학창시절에 오락부장을 하거나 사회를 본 적이 있지만 나는 지금도 행사 MC들만 보면 마음이 뛰며 감정이입을 할만큼 노는 것을 좋아한다. 가무에 소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웃고 마시고 떠들고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다. 물론 노는 자리 전후로 따라오는 부작용 때문에 사람들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사람이 제대로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 또한 축복이자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나의 레퍼토리는 이러하다. 낭만고양이나 DOC와 춤을, 정도로 진하게 흥을 북돋워 주다가 촉촉하게 술이 오르고 다들 센치해질 무렵 즈음해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불러준다. 술이 좀 올랐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면 칼칼하던 목과 찐득하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희(오지혜 분)가 부르는 사랑밖에 난 몰라, 는 심수봉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감이 좋았다. 나는 그 장면을 자꾸 반복해서 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지혜란 배우가 평소에 참 연기를 잘하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수준급의 노래 실력까지 지닌 줄은 몰랐다. 그녀는 너무 멋있었다.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전국 각지를 돌며 연주를 하는 출장 밴드다. 팀의 리더 성우(이얼 분)의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 자신의 꿈을 이루었든, 그렇지 못했든 불행한 삶을 견디며 살고 있다. 학창 시절 함께 공연을 하며 일류 밴드의 꿈을 키우던 친구들은 약사가 되고 환경 운동가가 되어 현실에 매여 있고 성우의 첫사랑이었던 그녀, I love Rock & Roll을 부르던 록밴드의 보컬 인희(오지혜 분)도 남편과 사별한 채 채소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다. 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때와는 달리, 사는 방식에 있어선 거칠고 서툴기만한 밴드 멤버들은 이런저런 상처를 안은 채 각자의 길로 흩어지게 되고 성우는 여수로 내려와 남아있는 멤버인 키보디스트와 보컬 인희를 데리고 새롭게 밤무대 밴드 생활을 시작한다.

언젠가 내가 아는 한 친구가 그랬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황정민을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그는 실제로 학교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 중이며 말수가 적고 우직한 한편 속을 쉽사리 내비치지 않는 성격이다. 단지 드러머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떠나서 그는 정말 황정민같고 황정민스러운 사람이다. 여전히 그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가 말하면 다 진실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황정민이 대마초에 취해 멀건한 얼굴로 "그 여자, 네가 가져." 하는 장면에서 문득 그가 보고싶었다. 소주와 오뎅을 앞에 놓고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시덥잖은 얘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조만간 그를 한 번 봐야겠다.

인희는 말한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그 때였는데." 그렇듯 전성기가 지나고 나면 이제는 내려와야 할 순서일까. 사는 게 그런 것 같긴 하다. 정신적으로 무르익고 성장하는 나이에 이르는 의미에서의 전성기가 아니라 내가 가장 나다웠고 행복했던 시점에서의 전성기. 그러한 의미에서의 전성기는 누군가에게는 학창시절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백발이 되고난 시점의 어느날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한 때의 열광 뒤에는 누구나 대개 평범해지고 만다. 일류 밴드를 꿈꾸던 아이들은 삼류 밴드가 되고 음악 선생님과 연애하던 도도한 보컬 소녀는 가끔 노래방에 가서나 전성기를 떠올리는 채소 장사 아줌마가 된다. 끝까지 하고 싶은 음악을 선택한 성우나 시류에 맞게 약대를 나와 약사가 된 친구나 삶에 대해 불만족스럽고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술집에서 발가벗고 기타를 치며 눈물을 흘리는 성우의 모습은 꼭 나같고 내 주변 사람들같고 세상 사람들같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개판인데 나는 벌거벗은 채로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칠 수 밖에 없다.

삶 자체를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때때로 이 보다 조금 더 낫거나 조금 더 못할 수는 있겠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듯 사람도 한 철이다. 그 한 철을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평범하게 사는 게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른 거라도 알면 조금은 편해지련만 사랑밖엔 난 모른다면 더없이 버텨내기 버거운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노래는 참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밖엔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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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1-0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쟁이에요. ^^

깐따삐야 2006-01-0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도 드러머시구나. 평온한 외면에 감춰진 뜨거운 열정. 크아. 멋져요.^^
 


넬슨과 새러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1년 여름, 비행기 안에서였다. 밤이 깊은 하늘에서 졸다가 다시 깨어났다가를 반복하면서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그 때 기내방송을 통해 상영되었던 영화들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Heartbreakers'와 '스위트 노벰버' 뿐인데, 하트 브레이커스를 훨씬 더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스위트 노벰버에서 새러(샤를리즈 테론 분)가 해변가에서 덤블링을 하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결국 그 장면 하나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고 샤를리즈 테론은 내가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의 목록에 올랐다. 하나의 얼굴 속에 열정과 우수를 함께 지닌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광고회사 간부 넬슨(키아누 리브스 분), 일종의 워커홀릭에 빠져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생활하며 성공만을 위해 내달리는 그 앞에 어느날 엉뚱한 말괄량이 아가씨, 새러(샤를리즈 테론 분)가 나타난다. 한 달에 한 번씩 남자를 바뀌어가며 사귀던 그녀는 넬슨에게 11월 한 달 동안 같이 살 것을 제안하고, 넬슨은 매력적인 새러에 대한 호기심과 일탈에의 욕구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의 환희와 생명력을 느끼며 넬슨은 항상 철저하게 준비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새러와의 동거를 통해 삶의 기쁨을 알게 된 넬슨. 결국 그와 그녀 사이에는 서서히 사랑의 감정이 싹트지만 새러에겐 오래전부터 앓아 온 불치병이 있었고 그녀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헤어질 것을 부탁한다. 새러의 바람대로 꿈같은 여운만을 남기며 헤어지는 두 사람, 새러는 넬슨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아름답고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었고 넬슨은 새러와의 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삶,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넬슨과 새러의 한바탕 꿈같은 사랑은 Enya의 Only time이 흐르며 더욱 여운의 빛을 발한다.

Sweet는 달콤하지만 November는 달콤하지 않다. (나는 11월만 되면 늘 감상에 빠졌고 불안했다. 건즈 앤 로지즈의 'November rain'을 듣고 있으면 그 음악처럼 마음 속에도 쏴아- 하면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넬슨은 참 좋은 남자고 새러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들의 사랑은 사탕을 녹여 먹으며 덤블링을 하는 것처럼 달콤하고 신이 난다. 반면에 가을과 겨울의 경계인 11월에 이별하는 것처럼 두렵고 쓸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고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했던가. 그리고 아마 추억은 내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추억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남겼을 것이다. 사랑이 쓸고간 자리는 폐허라지만 그 폐허의 땅을 뚫고 새롭게 돋아나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했던 기억이 단지 아픔만을 남겼다면 첫사랑 이후 나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였어야 했다. 그 사람이 싫어져서,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그런데 넬슨은 새러를 사랑함에도 그녀를 보내야했고 가장 고통스러울 법한 이별 뒤에 그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이별은 쓰지만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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