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배기 외사촌으로부터 오늘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던 도중 수저까지 놓으면서 미간을 찡그린 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언니, 남자들 앞에선 제발 그렇게 웃지 말고 그렇게 말하지도 마."
그녀가 태어나서 채 눈도 뜨지 못했을 무렵 나는 중학교 최고 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작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얼짱 포즈 개발에 나선 그녀는 얼마전 매직 스트레이트로 매끈하게 펴 준 머리카락을 요리조리 매만지며 디카로 찍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표정과 각도를 연습하고 있었다.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까 그 웃지 말라던 그 웃음을 쉴 새 없이 웃던 나는 그녀의 표정이 사정 없이 일그러짐에 따라 조용히 거실 구석으로 밀려나 차분히 프로그램 내용을 이해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 새를 못 참고 다시 집안이 떠나가라 웃어제껴 버렸고 그녀는 못 참겠다는 듯이 다가와 돼지털같은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언니를 변신시켜 주겠다고 선포했다. 설마하니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도 아닐텐데 모포를 들고 와 내 목 주변에 두른 다음 그녀의 작업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놀라운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예뻐 보이는지 나 자신보다 열살배기 꼬마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니는 요기가 예쁘니까 요기를 드러내 줘야 하고 요 부분의 머리카락을 요렇게 올려주면 훨씬 여성스러워 보이지 않아?"
"오옹... 구래구래."
"언니, 올해엔 좀 다이어트도 해라. 언제까지 나는 귀엽다, 귀엽다 하면서 개길건데?"
"헉......!"
옆에 계시던 엄마는 혀를 끌끌 차시면서 주근깨만 몇 개 그리면 딱 못난이 인형일세, 라는 현실보다 살짝 과장된 비판을 하셨다. 사실 그 동안 나는 외모에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모든 것을 무난하게, 라는 기치 아래 정말 모든 것을 무난하게 사들이고 입고 달고 꾸미며 살았다. 그 흔한 귀도 안 뚫었다. 생살을 총으로 뚫어 구멍을 낸다니 느무느무 무서웠다. (이러면서 사랑니 수술은 어찌할 건지... 흐음.) 그런데 정말 큰일인 건 나는 나 자신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 눈에 반하는 미인은 아닐지언정, 보면 볼수록 정드는 타입이라고 홀로 쓸쓸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품이라도 착하냐면? 오, 절대 아니다.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까칠한 성격을 보면 오직 내면의 미를 가꾸기 위해 헌신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평소 아이들처럼 투명한 시선을 가진 존재도 드물다고 믿어왔던 나이기에 오늘의 충격적 언사는 심히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생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나의 웃음소리와 나의 말투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는 걸까. 나는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남들이 웃는 것이 재미있고 나의 말투를 듣고서 남들이 나를 우습다고 말할 때 정말 즐겁다. 내 측근 중 하나는 그것을 가리켜 변태의 징후이자 망할 징조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우아한 것보다는 우악스런 모습이 어울리고 새침한 모습보다는 까부는 모습이 어울린다. 나는 원체 타고난 게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심어주지만 않는다면야 타고난 대로 열심히 본성을 발휘해 가며 사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꼬마 숙녀의 표정에서 읽은 것은, 그것은 다름 아닌 혐. 오. 였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 이상 개길 수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