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과 새러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1년 여름, 비행기 안에서였다. 밤이 깊은 하늘에서 졸다가 다시 깨어났다가를 반복하면서 영화를 보았던 것 같다. 그 때 기내방송을 통해 상영되었던 영화들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Heartbreakers'와 '스위트 노벰버' 뿐인데, 하트 브레이커스를 훨씬 더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스위트 노벰버에서 새러(샤를리즈 테론 분)가 해변가에서 덤블링을 하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결국 그 장면 하나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고 샤를리즈 테론은 내가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의 목록에 올랐다. 하나의 얼굴 속에 열정과 우수를 함께 지닌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광고회사 간부 넬슨(키아누 리브스 분), 일종의 워커홀릭에 빠져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생활하며 성공만을 위해 내달리는 그 앞에 어느날 엉뚱한 말괄량이 아가씨, 새러(샤를리즈 테론 분)가 나타난다. 한 달에 한 번씩 남자를 바뀌어가며 사귀던 그녀는 넬슨에게 11월 한 달 동안 같이 살 것을 제안하고, 넬슨은 매력적인 새러에 대한 호기심과 일탈에의 욕구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와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새롭게 펼쳐지는 삶의 환희와 생명력을 느끼며 넬슨은 항상 철저하게 준비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새러와의 동거를 통해 삶의 기쁨을 알게 된 넬슨. 결국 그와 그녀 사이에는 서서히 사랑의 감정이 싹트지만 새러에겐 오래전부터 앓아 온 불치병이 있었고 그녀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헤어질 것을 부탁한다. 새러의 바람대로 꿈같은 여운만을 남기며 헤어지는 두 사람, 새러는 넬슨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아름답고 편안하게 이별할 수 있었고 넬슨은 새러와의 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삶,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넬슨과 새러의 한바탕 꿈같은 사랑은 Enya의 Only time이 흐르며 더욱 여운의 빛을 발한다.

Sweet는 달콤하지만 November는 달콤하지 않다. (나는 11월만 되면 늘 감상에 빠졌고 불안했다. 건즈 앤 로지즈의 'November rain'을 듣고 있으면 그 음악처럼 마음 속에도 쏴아- 하면서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넬슨은 참 좋은 남자고 새러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들의 사랑은 사탕을 녹여 먹으며 덤블링을 하는 것처럼 달콤하고 신이 난다. 반면에 가을과 겨울의 경계인 11월에 이별하는 것처럼 두렵고 쓸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고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고 했던가. 그리고 아마 추억은 내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추억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남겼을 것이다. 사랑이 쓸고간 자리는 폐허라지만 그 폐허의 땅을 뚫고 새롭게 돋아나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했던 기억이 단지 아픔만을 남겼다면 첫사랑 이후 나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였어야 했다. 그 사람이 싫어져서,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그런데 넬슨은 새러를 사랑함에도 그녀를 보내야했고 가장 고통스러울 법한 이별 뒤에 그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이별은 쓰지만 이별 후에 오는 것들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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