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려고 했는데 잠이 안 온다. 눈도 피로하고 몸도 노곤하지만 눕기가 싫다. 오후에 낮잠을 조금 잔 탓일까. 어차피 오늘 낮잠은 설 익은 밥같았지만.

이미 목록에서 지워버린, 기억 속 어딘가에야 남아 있었겠지만 이젠 왠지 낯설어 보이는 전화번호. 곤히 자다가 울리는 벨 소리에 알람을 확인하듯 부리나케 받은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사람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노래 가사에도 있듯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한 그의 음성에 곧 침착해졌고 평범하게 안부를 물었다. 이젠 아주 가끔밖에 생각나지 않는 사람. 생각이 나다가도 다른 생각에 곧잘 묻혀버리는 사람. 그런 그가 불현듯 넉 달만에 내게 송신을 해왔다.

나도 간혹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거나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다소 심약하고 부드러운 성정의 남자이긴 해도 고집도 있고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하니 잠깐 아프더라도 금새 아무렇지도 않은듯 잘 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힘이 드는 건 오히려 내가 몇 배는 더 할 것이라고 믿었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은 왠일인지 그에게 잘 못 대해준 것만 생각이 나서 매일매일 미안해 하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당시의 나는 갖가지 질병이 겹친 환자라는 것. 어쨌든 그가 먼저 이별의 언사를 내비쳤다는 것을 상기하며 단단히 마음을 추스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만나고 그에게 집중하느라 성실하게 연락하지 못했던 다른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났고 나를 속박하던 질병들로부터도 멀어졌다. 그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주어 벌써 2006년의 입춘이 지났고 나는 올봄에는 바람난 꽃처녀마냥 희희낙락 지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단다. 우리가 데이트를 했던 도시에 매주 내려와 함께 갔던 장소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다 오곤 했으며 나의 사진이나 내가 선물했던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 땐 꼭 너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할 수 없이 놓아주었지만 가슴 아프게 후회한다고, 하지만 그 때의 헤어짐이 반드시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너도 알지 않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남자친구도 없고 아직 결혼할 마음도 없다는 내게 앞으로 우리가 다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접어두진 말기를 당부했다. 확실히 준비가 되면 다시 너를 찾고 싶다고, 너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하지만 그 사이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내가 먼저 시집 가는 걸 보고 자기도 결혼하겠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쓸쓸하게 웃고 말았다. 이제 와서 무얼 어떻게, 라는 착잡한 생각이 드는 동시에 마음 한 켠이 몹시 아파왔다. 여전히 나를 못 잊고 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 곧 근사한 남자한테 시집간다고 뻥이라도 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긴장하고 안달하는 자신에 비해 차분하고 무덤덤한 나의 어투에 짜증을 내며 이미 상처를 받은듯 했지만 내가 울고불고하며 그를 못 잊겠다고 말해도 더욱 가슴 아파할 사람이란걸 잘 안다. 나는 최대한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감을 드러내 주었고 그의 행복을 빌어주었으며 그는 다소 담담해진 분위기로 나에 대해 안심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했고 예전처럼 사랑을 표현해주길 바랬지만 그건 벌써 지나간 일이고 지나간 감정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라고만 했다. 터미널 근처에서 나에게 심한 말을 하고 나를 혼자 버려둔 채 성큼성큼 멀어져갔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는 그에게 나는 그런 건 이제 기억도 안 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추억을 붙들고 있는 건 그의 마음이지만 한 번 끊어진 실을 다시 이어봤자 못난 매듭만 도드라질 뿐. 이젠 너무 늦었다.

나는 그를 정말로 사랑했다. 나의 생활은 학교에 나가는 것과 그를 생각하고 만나는 것. 그 두 가지였다.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해주고 그에게 잘해주었던만큼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돌아보면 나도 미안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의 그런 깨달음은 어느 정도 맞는다. 나는 그에게 잘해주었다. 잘해주고 싶었고 잘해주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엄마가 혀를 끌끌 차며 속이 뒤집어진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래저래 표현 방법이 서툴렀던 그 사람도 물론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다.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있고 강아지같은 순수함으로 나에게 충성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기적인 나는 생각한다. 그를 사랑하기만 했던 게 아니라 잘해주길 정말 잘했다고. 적어도 다 지나간 후에 후회하는 시간이 그만큼 적어지지 않았냐고.    

어쩜 그 동안 한 번도 연락이 없었냐며 보고 싶지 않았냐고 말하는 그 사람 앞에서 난 또 웃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내 앞에서 떼를 쓰는 건 여전하다. 자기도 모르겠단다. 왜 내 앞에만 서면 지금도 얼라가 되는지. 이젠 내가 먼저 연락을 안하면 자기도 연락을 안하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그를 보며 '이 남자에게 모성애가 풍부하고 마음이 따숩고 헌신적인 여자를 하나 내려주소서'라고 빌면서 마지막 안부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사랑도 식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우리가 헤어진 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철없는 새끼곰같은 우리들에겐 서로 서로 더 강한 상대가 필요한 법이다. 진심으로 그에게 새로운 사람, 더 좋은 인연이 닿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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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2-1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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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네 국립공원에서 찍은 후지산

  비행기가 간사이 국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올 때까지만 해도 마치 이웃 동네에 잠시 놀러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일본은 지리상으로 우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고 첫눈에 내려다 보이는 오사카의 전경이나 기후 또한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한다는 일본 제 1의 상업도시이자 물류도시인 오사카는 비교적 활기가 넘치고 시끌벅적한 동네였다. 나중에 들르게 되는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말이다. 오사카 이후에 만나본 일본의 도시들은 대개 조용하면서도 한산했고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상당히 다소곳하고 조심스러웠다. 나중에 가이드로부터 외부 침입보다는 내부 충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고대 사무라이에서 현대의 야쿠자로 이어지는 칼의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화(和)’를 중시하다 보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듯 예절바르면서도 조심스럽게 조성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오사카 시내로 진입하여 일본식 도시락인 오벤또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 3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성했다는 ‘오사카성’으로 출발했다. 원래 외모상으로나 출신 성분 상으로나 콤플렉스가 많았다는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화려함으로 감추려는 듯 웅장한 건물 여기저기에 다소 조잡스러워 보인다 싶은 금박을 입혀 놓았고 성 둘레에는 ‘해자’라는 호수를 만들어 외부의 침입을 철저하게 막아놓았다. 일본이란 나라처럼 오사카성 또한 물로 둘러싸인 하나의 섬 같았다.

  이어서 우리가 두 번 째로 들른 곳은 교토의 가장 인기 있는 명승지 중의 하나라는 ‘청수사’였다. 아름답고 정교한 단청에 안정되고 우아한 멋이 있는 우리나라의 불국사나 법주사의 본당 건물에 비하면 다소 단조롭고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아쉬움이 들었지만 청수사에서의 재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 곳엔 ‘지주신사’라는 돌이 있었는데 눈을 감은 채로 이 쪽 편 돌에서 저 쪽 편의 돌까지 걸어가서 돌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했다. 쑥스러워하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내가 용기 있게 도전,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돌을 만지는 쾌거를 이루면서 2006년 올해 뭔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설렘을 잠시 느꼈다. 그리고 언덕의 세 군데에서 흘러 나오는 사랑의 물, 학문의 물, 건강의 물까지 마셨으니 아주 복이 넘치는 한 해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2005년 작년 한 해 동안은 개인적으로 불운한 일들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일리가 있든 단순히 미신이든 돌을 만지고 물을 마시면서 왠지 액땜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청수사에서 내려오는 길목의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이든지 조그맣고 예쁘게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도자기와 수예품들이 매우 많았다. 한편, 여행 첫날 이후 다른 사찰에도 들르게 되지만 일본 사람들 점 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해서 사찰 곳곳에 점집이 번성해 있었고 각종 부적을 파는 가게도 성업 중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800만이 넘는 귀신이 산다고 하는데 화산과 지진의 위험 속에 사는 불안한 지형학적 이유, 섬나라라는 고립된 조건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믿을만한 무엇인가를 계속 갈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종교도 다양해서 장례는 납골당에 목뼈를 보관하는 불교식으로 하고 결혼은 예배당에서 기독교식으로 하고 어려운 일이 있거나 바라는 일이 있으면 신사참배를 하는 등 일본인들은 그 때 그 때 편리하게 신토, 크리스트교, 불교를 포용하며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종교관에 있어서 상당 부분 융통성이 없고 서로 배타적인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었다.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지는 일본은 오후 여섯 시 즈음이 되어가자 그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지진 때문에 전광판에 대한 규제가 심해서 일본 시내의 저녁은 우리나라의 새벽 무렵보다도 더 어둡고 조용하게 느껴졌다. 일본 기생인 게이샤들이 남아 있다는 고급 술집을 지나치고 캄캄한 시내를 통과하여 우리는 교토의 한 식당으로 이동해 일본식 샤브샤브를 저녁으로 먹었다. 청양고추나 고춧가루로 매콤하게 육수의 간을 하는 우리나라식 샤브샤브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일본식 간장, 즉 왜간장은 짭짤하면서도 달콤했고 왜간장으로 맛을 낸 샤브샤브는 시원하고 얼큰하기보다는 간간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첫날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교토의 도큐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다른 곳을 다 생략하고도 이 곳만은 몸소 보고 갔다는 ‘금각사’였다. 연못 위에 3층으로 세워진 금각사는 일본 여행 중에 보았던 많은 건축물 중에 단연 최고였다.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황금 불상은 많이 보았어도 누각의 사방을 모두 번쩍거리는 황금을 입힌 사찰은 처음 보았다. 일본인들은 무엇보다도 금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왠만한 건축물에는 거의 다 금박을 입히거나 금칠을 해놓았거나 금장식을 해놓았다.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주택이나 좁다란 도로가 두드러지는 것에 반하여 일본의 고대 건축물들은 대개 크고 웅장하고 화려했다.

  금각사를 둘러본 후 ‘나라’로 이동해 호리병 벤또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곳곳에 사슴이 뛰노는 동대사로 향했다. 15M의 금동좌불상을 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고 알려진 동대사는 일단 규모 면에서 보는 사람을 압도했지만 뭐니뭐니해도 동대사의 구경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사슴들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도 사슴신이 등장하지만 사슴은 일본인들이 매우 신성시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동대사의 사슴들은 인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먹거리를 들고 있는 인간들 곁으로 와서 친근하게 구는 등 예상했던 것보다 붙임성이 좋았다. 학생들은 사슴의 먹이가 될만한 과자를 사서 먹여주고 던져주고 뿌려주고 하면서 다들 즐거워했다.

  동대사 관람을 마친 후 그 다음으로 들른 곳은 일본 최초의 신궁으로 알려진 ‘이세신궁’이었다. 이세신궁 주변으로는 곧고 시원하게 뻗은 삼나무들로 이뤄진 숲이 있었는데 토토로도 튀어나오고 사슴신도 나올 것 같은 시원하면서도 으스스한 숲이었다. 우리가 갔던 날은 마침 일본의 춘분이어서 일본인들이 이 곳에 와서 신사참배를 하며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정으로 피곤한 여행객들의 원기 회복과 소화를 돕기 위해 원래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앙꼬를 찰떡 겉에 입혔다는 적복떡(붉은 복떡)과 이 곳의 유명 특산품 중의 하나라는 새우과자를 먹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도바항으로 갔다. 그 곳에서 이세완페리 훼리를 탑승, 국토가 긴 나라답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메론으로 유명하다는 아쓰미 반도로 이동했다. 실제로 그 날 저녁 호텔 뷔페에서는 맛있고 싱싱한 메론과 메론빵을 먹을 수 있었고 해변에 면하고 있는 호텔의 위치 덕분에 다음날 아침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이어서 여행 사흘 째, 이 날은 이번 여행 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좋았다. 우리나라의 KTX도 같은 신간센을 탑승, 후지역에 도착한 우리 앞에 흰머리 독수리 같은 후지산이 환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후지산에 사는 여신은 질투가 심해서 미인이 오면 절대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면서 못 볼 수도 있으니 너무 아쉬워 말라고 당부했으나 같이 간 남학생들의 근사한 외모 덕분에 후지산의 여신도 결국 우리 남학생들 인물을 보느라 자태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3776M의 거대 휴화산이라는 후지산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화산답게 숭숭 구멍이 뚫린 못난 모습이라서 일본에서는 겉보기엔 근사한데 막상 사귀어보면 별로인 사람을 가리켜 ‘후지산같은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단다.

  차창 밖으로 후지산을 감상하고 다시 삼나무로 빼곡히 둘러싸인 하코네 국립공원에 들러 오와쿠다니 온천물로 찐 쿠로다마고(검은 달걀)을 먹었다. 화산지대라서 유황 냄새가 풀풀 풍기는 언덕에서 한 개 먹으면 7년을 더 장수한다는 계란을 먹으며 저 편으로 바라뵈는 후지산을 감상하고 있자니 일본에 왔다는 것이 확연히 실감이 나며 괜히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고원을 내려와 유람선을 타고 칼데라호인 아시호수를 30분 정도 유람한 다음 우리 일행은 드디어 일본의 심장 도쿄로 이동했다. 도쿄에 접어들자마자 보아의 앨범을 홍보하는 커다란 광고판이 보여 일본에서의 보아의 입지와 인기를 실감하며 반가움을 자아냈다. 동경 도청에 도착한 우리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45층으로 이동, 지상 202M의 전망대에서 도쿄 도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도쿄 전역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과는 달리 동경은 끝도 안 보일만큼 넓은 허허벌판에 크고 작은 건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전형적인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도청을 빠져나온 일행은 신주쿠 거리를 구경하며 유명 한식집에서 해물탕을 저녁으로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오면 꼭 한 번 들른다는 맛집으로 식당 내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식을 시켜먹고 있는 일본인들이었다.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담근다는 라면 스프 맛이 나는 일본식 김치와는 차원이 다른, 우리식 김치를 맛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식당 주변에는 우리나라 물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이 있었다. 가게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비와 세븐이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있었고 밖에 내어놓은 진열대에는 배용준 열쇠고리나 핸드폰줄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성업 중인 가게들을 보면서 대중매체에서 이야기하던 한류열풍의 단면을 볼 수 있어서 반갑고 뿌듯했다.

  호텔에 투숙하여 도쿄에서 하룻밤을 쉬고 여행 나흘째, ‘닛코를 보지 않고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명언이 있을만큼 아름답다는 닛코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꼬불꼬불한 S자 곡선의 좁다란 길을 버스로 이동하며 눈덮인 남체산을 구경하고 산 허리에 나와 노는 원숭이들의 모습도 구경했다. 이 곳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이자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신 신사인 ‘동조궁’과 ‘쥬젠지 호수’를 구경하고 ‘게곤폭포’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특히 99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로 이루어진 게곤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꽤 쌀쌀했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폭포가 얼지 않아서 우리 일행은 물이 떨어지는 시원한 모습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천황의 별장이 있다는 일본 최대의 별장지대 나스로 이동해서 노천 온천을 즐겼다. 우윳빛이 나는 뜨거운 유황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머리를 들어 별을 구경하며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했던 몸이 부드럽고 따듯해지면서 딴딴하게 뭉쳐 있었던 어깨와 다리의 근육도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온천을 하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족동반으로 다시 한 번 나스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일본은 예부터 혼욕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아주머니들이 사이 사이 남탕에 청소를 하려고 들낙거리는 풍경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함께 갔던 남학생들은 과연 온천을 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를 두고 제딴에는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날 한 명도 빠짐없이 노천온천을 즐겼고 점점 일본에서의 일상에 익숙해져갈 무렵이 되자 벌써 일정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우리는 며칠 안 남은 개학을 투덜거리며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센다이 공항에 도착, 4박 5일의 짧은 듯 하지만 꽉 찬 일정을 마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머릿수를 세지 않아도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에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들, 오미조밀하면서도 고급스런 물건들과 담백하고 맛깔스런 음식들, 일본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살기 좋은 나라였지만 익숙한 우리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의 고함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우리나라에 오니 일단 편했고 활기가 살아나는 듯 했고 그 동안 보고싶었다는 말이 불쑥 나올만큼 괜시리 반갑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본에 비해 이렇게 유리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왜 항상 뒤쳐질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섬나라인데다 지형마저 불안해 늘 화산과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일본인들은 척박한 환경에 대비하고 재난을 극복해가면서도 오늘날처럼 경제 대국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 동안 뭐하고 있었나 하는 안타까움. 서로 속을 내비치지 않고 조심해가면서 철저한 개인주의로 살다가도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 和를 내세우며 단결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워나가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야기하듯 소위 왕따라고 불리는 이지메라든가, 날로 변태적으로 변해가는 성문화와 엽기적인 범죄 행각들은 일본의 치부이지만 남의 치부를 욕하는 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을 배우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적극성과 부지런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함께 갔던 학생들은 우리 세대에 비하여 왜곡된 편견을 기저에 깔지 않고 훨씬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자세로 일본을 흡수하고 일본 문화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쿨한 사고방식에 길들여진 신세대는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좌우되기 보다는 지금 현재의 좋고 싫음과 유익함과 무익함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아이들의 그러한 자세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체험했던 일본은 말 그대로 선진국이었고 소형 승용차의 대중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지역별 케릭터 상품 등 곳곳에 배울 점이 많은 나라였으며 원화의 열 배 가까이 육박하는 엔화의 가치는 겉으로는 소박하고 겸손해 보이는 그들이 속으로는 얼마나 실속을 잘 챙기는 알부자인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단무지 한 개에도 추가 비용이 필요한 나라 일본을 체험하면서 참 알뜰하고 실속있다, 혹은 참 감질나고 야박하다, 둘 중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나라를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고 관광이라기보다는 견학의 차원에서 누군가에게 방문을 권해주고 싶은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오늘같이 피곤한 날, 따땃한 유황온천물에 온몸을 푹 담그고 오래오래 쉬어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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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1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6-02-11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하 너무 읽기 힘들어요. 좀 나눠주심이... ㅠ_ㅠ

깐따삐야 2006-02-1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이 나서 썼지만 읽는 분들의 입장에선 힘들고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르겠어요. ㅜ.ㅜ
 

개학 사흘째, 그새 주말이다.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눈이 좀 피로하고 어깨가 아프다. 창밖으로 삼층 까치집이 보이는 내 자리가 익숙하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 맞어?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이 났을 때 문득 튀어오르는 생각. 나 여기에 있는 거 맞어? 너무 기뻐서 실감이 잘 안 난다던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느낌이 아니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가운데 그저 무덤덤한 기분 속에서 툭, 하고 떠오르는 질문. 내가 지금 여기에 있긴 있는걸까. 주변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일상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렇듯 문득문득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씩 멍해지고, 멍해지는 시간이 없으면 못견뎌 하는 나의 고질병이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은 꽤나 슬렁슬렁 보낸 것 같아도 전혀 아무 변화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속을 썩이던 사랑니도 뽑았고 겸사겸사 입안의 충치를 모조리 치료했으며 다쳤던 발목도 거의 완쾌되었다. 개학을 하고 교무실에서 3학년 교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퐁당퐁당 뛰어내리며 괜히 설레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발목을 다쳤을 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게 바로 계단이었다. 올라가는 길이든, 내려가는 길이든, 계단만 마주하면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곤 했었다. 마음 속으로 여기서 더 다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젠 제법 체중을 싣고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해도 특별한 통증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온 것 뿐인데도 무슨 큰일을 해낸 것처럼 기쁘고 만족스럽다. 여기저기 잔병 치레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소용 없다는 교과서적인 교훈.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는 요즘 나는 행복하다.

일본일주를 다녀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해외에 나가본 것은 대학교 때 캐나다에 다녀온 이후로 두 번째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종종 떠올렸던 여행이었다. 곧 졸업을 맞는 우리 아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체험했던 여행이라서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빠듯한 일정 내에서 너무 많은 걸 보았고 순간순간 많은 걸 느꼈던 여정이어서 솔직히 정리가 잘 안된다. 기행문을 올리긴 올려야 하는데.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방문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지는 나라다.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졸업 준비에 학년말 자료 정리 및 이관 등으로 학교는 요즘 바쁘다. 순간순간 멍해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오려고 날마다 머리를 굴리거나 떼를 쓰고 있으며 한 살 더 먹었다고 어찌나 느물느물 능글맞게 구는지. 나를 쌤이 아니라 그까짓꺼 맞먹어도 괜찮은 셋째 누나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아무튼 졸업을 하고 더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던져질 앞으로를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마음에 모진 말을 못하게 된다. 일단 나이 어린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나의 습성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간혹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개 순수하고 예쁘다.

멍-한 가운데 다시 일거리가 밀려온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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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2-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셋째 누나라는 표현이 맘에 듭니다.

깐따삐야 2006-02-1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암... 카리스마 안 섭니다. 요즘. ㅋㅋ
 
 전출처 : 이잘코군 > 결혼 전 점검할 12가지 사항

 진짜 혼수준비는 예물이 아니라 '성숙도'

- 결혼전 점검할 12가지 사항


“이 사람과 정말 결혼을 해도 되는 걸까”
“결혼 후에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데 그래도 다른 건 괜찮으니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하고도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잘 하는 건지, 해서 행복할 수 있을지,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사람이 지금과 달라지면 어떻게 할지 등 결혼을 결정하기 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고려해야 하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는 채 결혼했다가 결혼 뒤 상대방에게서 생각과는 다른 ‘현실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결국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대구효성카톨릭대 제석봉 교수(사회복지학)가 소개하는 ‘결혼 전 점검해 볼 12가지 사항’은 결혼을 앞두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꼼꼼히 체크해볼 만하다. 이 점검 사항들은 가족과 부부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외국 심리학자들의 오랜 상담경험을 종합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만한 것을 뽑은 것이다.

제 교수는 “이 가운데서도 특히 결혼할 사람을 앞에 두고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상대방과 내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지, 의견차이가 있을 때 조정할 능력이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는지 등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하나. 그에게 어떤 결점이 있다면 결혼 후에도 고치지 않을 경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면 변하거나 상대방의 나쁜 점을 뜯어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 후 깨닫는 것은 ‘상대방이 변하길 기다리느니 내가 참고 말지’라는 것이다. 이십년 이상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변화하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 사랑에 빠지면 정말 눈이 멀고 콩깍지가 씌어버리는 나조차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남자친구의 특징이 하나 있었다. 그건 그의 까다로운 입맛과 결벽증세였다. 빵도 안 먹고 떡도 안 먹고 매운 음식 싫어하고 길거리 음식 못 먹고 물수건이 아니라 물티슈가 나오는 식당에만 가야 하고 식당에서 제공되는 생수가 싫어서 늘 가방에 탄산수를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 결국 정결하고 좀 비싸다 싶은 식당에만 가게 되니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매번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온 음식에 대해선 완죤 환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오로지 그가 편안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일념 아래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했다. 김밥도 안 먹었기 때문에 늘 완두콩을 넣은 고슬고슬한 밥에 제철에 나는 재료로 만든 밑반찬과 적당히 잘 익은 김치(총각김치나 깍두기같은 무 김치를 특히 좋아라 했음)를 준비해서 그를 만나러 가곤 했다. 물론 그 당시에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때때로 제 손으로 계란 후라이 하나 부칠 줄 모르는 그와 하루 세 끼를 같이 먹어야 한다는 상상을 하면 무한정 피로가 몰려오곤 했다. 그와 헤어지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늘 "나의 까다로운 입맛만은 좀 이해해 달라"고 했으나 옆의 테이블에서 너를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아무거나 참 잘도 먹어대는 다른 여자들의 남친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기나 했을까. 사람은 변하기 어렵고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분식집에서 매운 떡볶이를 사먹고 나서 남친은 오후 내내 화장실을 들낙거리며 내 속을 태웠었다. 네가 바라는데로 했더니 이 꼴 좀 봐봐, 라는 식으로. 그뿐인가. 입맛 까다로운 남자는 다른 면에서도 다 까다롭다. 사람은 의식주 면에서는 둥글둥글 무난한 취향을 가진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먹고 남들 다 입고 남들 다 사는 데 왜 자기만은 유독 다르다는 것인지. 각종 인간들이 두루두루 어울려 사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한 면만을 보며 고집을 부리는 사람과 과연 평생을 즐겁게 동고동락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까탈스런 입맛과 취향, 나는 자신 없다.     

둘. 상대방이 나를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리고 과연 위기에 처했을 때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지를 해줄 것인가.

-  이건 그래도 남보다는 가깝다는 연인이나 부부 관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 하지 않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서로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해주려고 노력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결국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결혼하기엔 좀 곤란한 사람이라는 뜻 아닐까. 자느라고 전화도 잘 안 받고 춥고 쌀쌀한 날 바람도 막아주지 못하면서 "내 마음 알지?"라고 말하면 "웅~ 알고 말고~"라고 말할 여자가 몇이나 될까. 사랑과 믿음은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백 번을 말하는 것보다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 한 두가지 정도는 자신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반드시 밀어 공세 및 물질 공세를 퍼붓지 않아도 사람은 직감으로 안다. 이 사람이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맹물인지 아니면 성실하게 나를 사랑하는 진국인지.      

 

셋. 서로에게 깊고 지속적인 우정이 가능한가.

- 요거요거 중요하다. 우정이란 매우 동등하고 공평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권력이 기울기 시작하여 마치 주종관계처럼 되어 버린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항상 공평할 수는 없어도 주고받는 것이 어느만치 공평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상대방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 비슷할 때, 오래오래 만나도 어느 한 쪽으로 꽈당하고 기울어지는 일이 없는 균형감이 있을 때, 나라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넷.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는가.

-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 사람을 한 번 안아보고 싶다는 느낌은 저 사람과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느낌보다 때론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 매력이 전부는 아니다. 신체적인 매력은 별로여도 정말 이런저런 면에서 쿵짝이 잘 맞는 상대라면 얼마든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개인적인 내 취향은 작고 다부져 뵈는 남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그 놈 참 딴딴해 뵌다."라고 하시는. 그런데 이상과 현실은 역시 다르다. 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대개 키가 크고 호리호리 하거나 낭창낭창하고 이쁘장하거나 그랬다. 어쩌면 요즘 트렌드에 들어맞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내 취향은 시대를 거슬러 딴딴한 떡두꺼비같은 남자다.      

 

다섯.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나 내 느낌이 마음에 드는가.
주눅이 들거나 남자다워야,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또는 환상을 깨기 싫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결혼은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다. 생활이다.

- 솔직히 이 항목은 나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늘 너무 자연스러웠고, 좋으면 너무 들이대는 게 탈이면 탈이었지 주눅이 들거나 여자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더 어릴 적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쳐 본 적도 있고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선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고무줄 치마라도 입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심사숙고 해 본 적도 있지만 나답지 못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감과 어색함은 나다운 것을 드러냄으로써 얻는 결과에 비해 언제나 마이너스였고 마음 상하는 후회만을 남겼다. 여자는 이래이래야 한다~ 면서 주욱 늘어놓는 남자치고 제대로 남자다운 남자를 못 봤다는 것도 한몫했다. 사람은 사람다운 게 가장 좋고 나는 나다운 게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연기는 배우가 하면 되고 사람은 한 번 뿐인 인생을 솔직하고 부담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섯. 결혼에 거는 기대와 목표를 서로 비교해보았는가. 그리고 차이가 있다면 이를 받아들이거나 서로 충분히 이야기 해 타협을 보았는가.

- 같이 있고 싶어서, 밤 늦게 헤어지기 싫어서, 등등의 로맨틱한 이유를 넘어서 왜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 왜 하필이면 결혼 상대가 바로 당신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혼자 사는 인생보다는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인생이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혼자 먹는 밥도 맛있지만 같이 먹는 밥이 더 맛있을 것 같고 혼자 보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같이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을 것 같고 혼자 잠드는 것보다는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더 따듯하고 든든할 것 같고 나에게 기쁜 소식이 있는데 옆에 누군가가 같이 기뻐해 주면 더욱 기쁠 것 같고 나에게 슬픈 일이 있을 때 누군가 함께 슬퍼해 준다면 왠지 안심이 되고 고마울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서 함께 정성껏 키우는 것도 왠지 한 번 해보고 싶은 아름다운 일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해도 좋을만큼 믿음직한 사람, 나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과 말이다.  



일곱. 상대방에게 헌신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나를 희생시킬 수 있는 조금의 여지가 있는가.

- 엄마는 늘 그러신다. 사람이 누군가가 미워지려고 할 때 잠깐 동안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갈등도 줄고 싸움도 많이 없어질 거라고.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고. 나 자신도 그렇고 나와 사귀었던 사람들도 그렇고 앞으로 만날 사람도 그렇겠지만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내가 필요할 때 나를 쓰고, 내가 상대방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결혼을 해서 함께 사는 의미가 그런 데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인 것보다는 둘인 것이 훨씬 낫기 때문에. 부족한 두 사람끼리 기대고 살면 외롭고 막막한 인생이 조금은 더 수월해질거라는 기대에서. 희생이라기보단 양보인 것 같다. 사랑해서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끼리는.



여덟.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상대방은 받아들이는 자세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 그 사람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 참 중요하다.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너무 많이 배려하다보니 늘상 예스맨인 사람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라곤 없어서 늘상 벽창호같은 사람이나 모두 아니올시다이긴 마찬가지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받고 싶은 욕구만큼 다른 사람의 그것 또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표현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또는 지나치게 논리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일단 한 번 이야기해 보자는 식으로 여유 있게 대화의 물고를 틀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 평생 조곤조곤 큰 소리 내지 않고 정직하게 대화하면서 살고 싶다.

 

아홉. 나의 주장을 나의 입장에서 들어주는 일이 있는가

- 응, 나같아도 그럴 땐 정말 속상했겠다... 무뚝뚝한 남자친구가 울먹거리며 토해내는 나의 푸념을 오랜동안 듣다가 저 말을 해주었을 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나지 않았어도 큰 위안을 받았었다. 다들 자기 입장에 서서 자기 주장만 하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온 나에게 내가 너였어도 별 수 없었을 거라고,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겠냐며 토닥여주는 모습에 이 세상에 내 편에 서서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시선으로 사물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사려깊음. 서로서로 갖춰주면 고마운 항목이다. 

 

열. 취미가 비슷한가. 달라도 비판하지 않고 서로 존중해 주는가

- 취미가 비슷하면 차암 좋다. 예전 남친은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쓰는 나에게  "고등학교 때 이후로 소설은 끊었다"고 과감히 말하는 사람이었다. 담배도 술도 아닌 소설을 끊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이 사람, 안되겠네? 라는 예감을 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이런저런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활자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특유의 순수함과 단순함을 지니고 있었기에 매력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을 수혈받으며 나는 더욱 성장했고 새로운 세계에 눈떴으나 취미의 교집합이 없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차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나는 폴 메카트니가 존 레논보다 훨씬 더 훌륭한 뮤지션이라며 열변을 토하는 그를 보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미가 달라도 비판하지 않고 존중했으나 그러다보니 영 재미가 없었다. 취미는 기왕이면 비슷한 게 정말 좋다.      


열하나. 내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그리고 결혼으로 비롯돼 맺게 되는 여러 관계에 대해서 현실적인 안목으로 살펴보았는가.

- 엄마가 늘상 말씀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은 너 혼자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둘만 달랑 떨어져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못된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든 집안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든 짐이 되든 얽혀 살게 되어 있다면서 집안에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성실하고 정직한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신다. 나도 좀더 어릴적엔 두 사람이 사랑하기만 하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리요, 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따듯하고 반듯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둘. 각자 상대방에게 무조건 의존하지 않고 자기생각과 견해를 자유로이 표현하고 있는가.

- 연애를 하면서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네가 알아서 해."였다. 나는 의논하려고 다가서는데 상대는 귀찮다는 듯이 떠밀어 버린다. 특히 자칫하다간 나만 나쁜 뇬이 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저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건 상당히 서운하고 힘빠지는 일이다. 다른 일에 있어서는 고집을 피우다가 체면이 깎일 것 같거나 불리한 상황에서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멀찌감치 빠져버리는 참을 수 없는 소심함. 고집이나 땡깡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마주했을 때 확실히 자기 견해를 표현하며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제석봉 교수는 “이 점검사항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면 결혼을 재고해봐야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결혼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과 갈등해소 능력과 방법을 배우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며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함과 서로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결혼 전 혼수준비는 예물이 아니라 ‘각자의 성숙도’”라는 게 제 교수의 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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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일주 2일째 - 이라코뷰 호텔에서 유카타를 입고 한 컷

들르는 호텔마다 일본 전통 실내복이자 잠옷이기도 한 유카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라코뷰 호텔에서 입었던 사진 속의 유카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야쿠자의 후예들처럼 보이는 우리의 든든한 남학생들과 함께 가셨던 선생님, 그리고 나. 잘 먹고 잘 쉰 덕분에 사랑니를 앓으며 살짝 갸름해졌던 턱선이 다시 빵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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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2-0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어울리세요. 잠옷 같아 보여요.

BRINY 2006-02-0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과 같이 여행 다녀오셨군요. 좋은 추억 되셨겠어요.

깐따삐야 2006-02-0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고맙습니다. 워낙에 저의 생김생김이 서구적이고 세련된 데라곤 없다보니 한복이나 유카타 같은 동양의 전통 의상이 그런데로 어울리는듯 합니다. 아, 그리고 유카타는 잠옷이기도 하답니다. ^^

BRINY님 - 학생들 덕분에 호사를 했네요. 아이들 졸업 전에 다녀온 여행이라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조만간 일본 일주 기행문을 올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