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안방 구석 자리에 박스 채 모셔둔 책들이 있었다. 이번에 동네 과일가게 주인 부부에게 텔레비전을 주면서 텔레비전이 짓누르고 있었던 박스 두 개가 몸체를 드러냈다. 2년 전에 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이사온 뒤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박스였다. 몇 개 안되는 책꽂이와 책장들은 포화 상태인데다가 박스 안에 들어있는 책들의 종류도 대개는 다시 꺼내보기 싫은 전공책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그 박스를 개봉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갑자기 열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박스 두 개에는 역시 대학 때 보던 전공 도서와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둔 바인더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내가 이런 어려운 책들을 봤단 말야. 깨알같은 영문으로 빼곡히 채워진 페이지마다 내가 공부한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바인더에는 시험에 관한 자료부터 전공과 관련된 신문기사 스크랩까지 꼼꼼하고도 착실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성실했단 말야.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좀 심각해 보이는 책을 한 권 골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문제를 한 번 풀어봤다. 맞힌 걸로 표시되어 있는데 나는 내가 왜 그 문제를 맞혔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 단어가 알듯말듯 영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멍청해졌단 말야...

사회에 나온 후로는 공부와는 꾸준히 담을 쌓아온 것 같다. 그래도 하던 장단은 있어서 가끔 신문 쪼가리도 좀 읽어주고 원서로 나온 어린이용 도서도 찾아보곤 했지만 무언가 절실함이 부족해서일까. 예전에는 단어 하나의 뜻이라도 모르고 지나치면 영 찝찝해서 자다가 일어나서도 사전을 찾아보곤 했는데 요즘은 모르는 단어는 술렁술렁 패스, 한 다음 대충 글의 요지만 파악하고 만다. 혹시 입이 굳을까봐 거울을 보고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던 현상도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말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도 귀찮은데 다른 나라 말로 내 의견을 얘기하라니 귀찮아. 된장.

내 인생에 언젠가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숱한 분량의 번역과 레포트 과제를 하느라 항상 머리와 눈과 손가락이 피로에 절어 있던 당시에는 늘상 피로가 몸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러한 빠듯함 속에는 오묘한 행복같은 것이 있었다. 학교 생활에 지치다 보면 한 며칠만 먹고 자고 뒹굴고 해가면서 푹 쉬어봤음 좋겠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하루 정도 놀고 나면 다시금 빡빡한 일상이 그리워지곤 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깨닫는 앎의 즐거움과 반드시 어느 경지에 오르고야 말겠다는 성취욕이 심신을 충만하게 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립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곤 했다. 꿈 앞에 서면 왠지 두려웠고 언제나 나보다 백 배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 앞에서 기가 죽었지만 나름대로 긴장의 끊을 놓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참 열심히 살았던 그 때 그 시절이다.

요 근래에 친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시험에서 낙방했다. 내가 사회에 먼저 나오게 된 이후로는 연락을 자주 못하며 지냈지만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던 친구다. 다소 건조하다 싶은 성품에 우아하고 도도한 매력이 있던 그녀는 전혀 상반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뭔가 아찔하게 통하는 면이 있었다. 학교 벤치에서, 도서관 계단에서, 카페테리아에서, 팥빙수 집에서, 우리의 수다는 언제나 Never-ending story였다. 김영하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자줏빛 띄는 붉은색을 잘 소화해내던 그녀. 나란히 서면 나의 아름다운 누나 같았던 그녀가 앞으로 일 년을 더 고생하게 생겼다. 시험에 합격해서 겨울에 만나자는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총명하고 속이 깊은 그녀이니 언젠가는 잘 되리라 믿는다. 시험이란 그런 것 같다. 실력도 중요하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운 자체가 시험의 당락에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느만치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부디 그녀의 노력에 좋은 기운이 보태어지길 빈다.

방학이 되고나서 더더욱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해도 그렇고 오래된 책들을 들춰봐도 그렇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요즘 너무 퍼져 지낸다. 마치 내 인생의 목표는 여기까지인 것처럼. 물론 요즘 건강 상의 이유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어제 세상의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온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려 누운 채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아저씨를 보니 나는 건강해도 너무 건강한 편이었다. 휠체어 한 번 타 보는 게 소원이라니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인생이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자들은 싹 다 고개 숙여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요즘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언제나 많은 것들을 찾아 헤매도 결국 귀결점으로 택하는 것은 늘 그 말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그 안에서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하루하루 내 앞에 배당받은 과제물과 시험 공부로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던, 피곤했지만 매일매일의 성취감에 뿌듯했던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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