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낯선 번호가 떠서 궁금해 하며 받아보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K였다. 2년 전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서울의 지하철역에 있었다. 낯선 도시에 와서 7년 전에 헤어졌던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하도 반갑고도 얼떨떨해서 그 날의 통화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 메모리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그 때도 겨울이었는데 그 겨울 이후로 오늘이 처음인 셈이다.

이제 근무 중에 회사 전화를 마음대로 써도 좋고 메신저를 켜놓고 일해도 터치 하는 일이 없고 주말에는 당근 쉬어주어야 할만큼 그녀의 위치는 좋아져 있었다. 물론 이만큼 자리를 잡기까지 주말도 없이 3교대로 일을 하는 등 그녀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득한 성품답게 한 회사에 오래 성실히 머무른 덕분에 이제는 능력도 인정 받고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착한 그녀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에 진심으로 기뻤다.

구슬같은 눈에 웃을 때마다 귀엽게 보조개가 패이던 그녀는 남자 아이들 서넛은 너끈히 때려 눕힐만큼 체격 조건이 좋다는 점, 선생님이 판서하신 내용을 가장 빨리 옮겨 쓰고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비슷하다는 점, 맛있는 음식 앞에선 식구도 몰라볼 정도로 사족을 못 쓴다는 점 등에서 나와 확실히 통하는 면이 있어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운동회 때만 되면 짧은 하얀색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함께 고민했고 남자 아이와 싸움이 붙으면 서로 편을 들어주다가 놀이터같은 곳에서 급작스런 기습을 당할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본래 성품이 착하고 여리던 그녀는 전적으로 나와 어울리게 되면서 남자 아이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 뿐이었기에 솔직히 미안했다. 가끔 학교와 집이 가까웠던 그녀의 집에 놀러가면 어머니께서 강된장을 만들어 주셔서 밥을 먹곤 했는데 정말이지 K네 집 장맛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잊을만큼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그녀로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전수받아 들었고 그녀는 나로부터 읽을만한 책들을 빌려가거나 소개받곤 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예쁜 편지지 세트를 사거나 혹은 맨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부지런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금도 잘 뒤져보면 편지 몇 통 쯤은 나올법하다.

물론 우리 사이가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였더라, 아무튼 나는 내 짝궁 J를 몹시 미워했더랬다.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고 대개는 조용한 편이었던 그 애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참 이래저래 싸가지가 없던 나는 담임 선생님께 자리 교체를 요구했고 다행히 반 아이들도 찬성을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드디어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J 이후에 누구와 짝이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나는 그냥 J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연히 J와 짝이 된 K.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둘이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재수 없는 J와 단짝 K가 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싫었다. 이 세상에 둘도 없을만큼 유치했던 나는 아예 대놓고 두 사람으로부터 쌀쌀맞게 멀어져갔다. 오냐, 그래. 잘 먹고 잘 살어랏. 하지만 K는 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변함없는 친절로 대해 주었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우리 둘은 예전처럼 꽤 잘 지냈다. 변덕스럽고 예민하던 나를 그녀는 항상 귀여운 보조개 띤 웃음으로 반겨주곤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욕심꾸러기가 되어가던 나와 왠일인지 자꾸 시니컬해지던 그녀는 다소 멀어진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반겼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 다른 진로를 택한 우리는 각각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편이었다. 무엇 하나 그냥 넘길 줄을 몰랐다. 지금은 무엇 하나 똑부러지게 걸고 넘어가는 일이 없으면서 그 때는 왜 그렇게 똑똑 부러졌는지.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먼저 연락을 해오는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부터 앞선다. 마음이 좋은 친구들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상처주는 말을 했던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말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끼리 잘못을 했으면 얼마나 했을 거라고 거기다 대고 그런 심한 말을 쏟아부었는지, 상상만 해도 나 자신이 참 싫어진다. 그런데도 나의 착한 친구들은 나를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해준다.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저절로 얼굴이 빨개지는 에피소드가 숱한데 친구들은 그런 것은 다 빼고 나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의 멋진 모습들만  기억했다가 알려주곤 한다. 늘 내 이름 석자만 대면 치를 떨던 남자 녀석들조차 말이다. 참 민망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대화에 어색함이나 막힘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철없던 시절을 함께 공유한 어릴적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에 한껏 들뜬 목소리로 누군가와 신나는 대화를 해 본 것 같다. 조만간 가까운 곳에서 K를 한 번 보기로 했다. 지금 공근이라는 남동생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짝달막한 몸집에 머리카락이니 눈썹이니 숯검댕만큼 새카맣던 녀석이 이젠 신장 180에 가까운 어른 남자가 되었다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쏘냐. 연년생인 누나한테 혼나고서 참 잘도 울더니만. 울고 나서는 꼭 자기 누나를 때리고 그러다가 엄마한테 다시 혼나고. 그 귀엽던 얼라가 누나가 늦게 들어오면 마치 오빠처럼 깐깐히 구는 어른이 되었다니 우리를 지나쳐 간 세월이 새삼 놀랍다.

벌써 결혼을 한 친구들은 어째 만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아직 미혼으로 남아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머하느라 이렇게 나이만 잔뜩 먹었는지. 더 나이 먹고 아이까지 생기기 전에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친구들을 보면 내가 정말 내가 될 것 같다. 아무도 아닌 바로 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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