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7년 터울로 사춘기를 겪는 것 같다."

  엄마가 하신 말씀이다. 찬찬히 되돌아보니 과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볼수록 엄마니까 과연 저런 통찰이 나오는구나 싶을만치 소름끼치는 지적이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처럼 일곱 살 무렵의 나는 항상 엄마가 곁에 있어야만 마음을 놓는, 엄마 탐이 심한 땡깡쟁이였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제 성에 안 차는 것이 있으면 손톱으로 동네 오빠들을 할퀴어놓고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서 또래 친구의 면상을 가격하기도 하는, '우리 아이 이만큼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런 못되고 심란스런 꼬마였다고. 엄마는 사는 게 바빠서 그만큼 나에게 일관되고 따듯하게 신경을 써주지 못해 내가 그랬던 모양이라고 당신 탓을 하시지만 전혀 다른 성향으로 조용히 성장해 온 오빠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열네 살 적에는 대개 사춘기라 말하는 사춘기를 겪었다. 아침에 눈 뜨면 학교에 가기 싫었고 학교에 가면 수업 시간 내내 다른 생각만 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어떤 선생님은 걸걸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떤 선생님은 옷깃에서 묻어나는 담배 냄새가 싫었고, 어떤 선생님은 온몸에서 풍겨나는 열패감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친구들이 죄다 바보같았고 내가 사는 동네가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종종 이러한 상념에 빠지는 스스로가 미워져서 아무 죄도 없는 부모님에게 신경질을 부려대곤 했다. 그 때는 인터넷도 없어서 책과의 소통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책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책이 있어야만 행복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 때는 하지 못했다. 책은 곧 일용할 양식이었고 오직 밥만 먹는 친구들을 경멸했다. 어쩌면 마음 속으로는 아무런 잡념도, 계산도 없이 터져나오는 그네들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친밀의 대상이기 보다는 동경의 대상이고 싶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함이 정신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렇듯 예민하고 까탈스런 자식을 대함에 있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적절히 파악할 줄 아셨던 엄마의 지혜로움이 일견 오만방자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던 내면의 중심을 잡아주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 스물한 살이 되던 해는 삶에서 맞은 첫번째 권태기였다. 무조건 잠적하고 싶고 은둔하고 싶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그런 말들이 가장 무의미하게 들렸다. 몸무게가 급속도로 늘었다. 점심 때마다 고열량의 음식을 사먹었고 커피나 비스켓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가 조금이라도 염려 섞인 말을 하면 네까짓게 내 우울의 정체를 알기나 하겠느냐는 냉소로 되받아치곤 했다. 부모님의 동의만을 구한 다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돌연 휴학을 했다. 당시에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그 일로 조금 힘들어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그런 이기적인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결국 저지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뭔가에 사로잡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외곬수적인 성정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벙 뜨게 만드는 순간이 적잖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휴학을 하고 나서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사람도 사귀고, 여러가지 일을 했다. 나를 잘 아는 가족들은 언젠가는 내가 제 자리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었다. 놀다, 방황하다, 쉬다 보낸 일 년이었다. 더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턱선이 갸름해졌고 눈빛은 깊어졌고 머리는 많이 자라 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원점이었지만 필름도 없이 이 세상에 딱 한 장 남아버린 사진처럼 아련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스물여덟이 된다. 마의 스물여덟. 어쩌면 내 인생의 세번째 사춘기이자 두번째 권태기의 조짐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주위 선생님들도 원래 3년 차에 권태기 비슷한 것을 겪었다고들 하신다. 그래서 대개 이 즈음해서 결혼을 하든가, 공부를 더 하든가, 학교를 옮기든가, 변화를 주려고 하는가 보다. 어른이 되어 겪는 사춘기는 확실히 전과는 다르다. 부모님에게 마냥 투정을 부리는 것이 미안해졌고 직장은 대학처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밤새 이런저런 망상에 시달리다가도 아침이면 제 시간에 일어나 부지런히 씻고 밥을 몇 술이라도 뜨고 아이들 앞에서 기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꼭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감정이 다시 제 리듬을 찾았을 때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지고, 결국 더 힘들어지고 만다. 어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입면접을 끝내고 집에 일찍 돌아간 오후, 2층 전체가 고요하고 쓸쓸했다. 그런데 그 느낌은 평화가 아니라 무료였다. 그 느낌에 나도 내 스스로가 놀랐다. 아이들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물론 아무것도 아닐 수야 없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동안 북적대고 재잘대는 아이들의 생기 속에 길들여져 있었구나 싶었다. 오늘 다시 그 악동들을 하루 종일 마주하려니 어제의 그 감상 젖은 생각이 싹 가셔 버려서 속으로 웃음이 나긴 했지만. 혼자 있다보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다보면 혼자 있고 싶어지고 그런 게 사람인가 보다. 갈팡질팡, 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참 정감 있고 예쁜 말이다.     

  겨울이 시작되었고 달력은 두 장 남았다. 올해도 거의 다 갔고 내년에 내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그 변화가 내 인생의 향방을 너무 빨리 결정지우는 대사건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보기도 한다. 부디 천천히, 무리하지 않은 채 나의 이십대가 지나가기를. 그리고 앞으로 겪을 사춘기는 스스로의 몫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잘난척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만큼 마음의 빚을 졌다. 특히 가족들에게,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우울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책 속에 있었지만 내 우울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바로 내 곁에 있었다. 숨결과 체온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내 손을 만져주고 따끈따끈한 밥을 지어주고 나를 기다려줬다. 어쩌면 내가 교사가 된 것은 그 빚을 갚으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일매일 한 다발의 꽃 대신 한 다발의 사춘기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하지만 사춘기는 사절기처럼 반복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성숙의 마디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우울해질 것이지만 절망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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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1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다발의 사춘기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었어요.
그러네요. 사춘기도 사절기처럼 반복되는군요.
저는 몇 번의 사춘기가 있었나 세어 보며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따듯한 회색 페이퍼예요.
우울한 듯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은.

마태우스 2006-11-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물세살 이후에는 사춘기를 앓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그러니 스물한살의 사춘기가 님에겐 마지막 사춘기였을 듯.. 내년에는 사춘기 대신 황홀기가 찾아왔으면 하네요.

마태우스 2006-11-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잘쓰시는 분이 넘 띄엄띄엄 쓰시는 거 아니어요?^^

Mephistopheles 2006-11-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전 저의 사춘기는 4월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춘기가 결혼 후 유부남이 되니까 없어지더군요...^^

깐따삐야 2006-11-1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따듯한 회색 페이퍼...^^ 고맙습니다.

마태우스님, 요즘 서서히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고 있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꽤 힘들었어요.

메피스토님, 하긴 그럴 것 같네요. 결혼 후에도 저러면... 근데 전 왠지 결혼 후에도 저럴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만. ㅜ.ㅜ
 

  오랜만에 글을 쓴다. 노트 한 귀퉁이에 하릴없이 끄적이는 것이었든, 이렇듯 알라딘에 와서 쓰는 것이었든 참으로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쓴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니트를 입고 나섰는데 온종일 떨다 온 기분이다. 머리가 살짝 아프고 노곤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가을이다. 낮 동안 너무 더운 것 아니냐는 투정이 더 이상은 나오지 않는 진짜 가을.

  아이들 고입 전형이 갑자기 앞당겨져 혼을 쏙 뺐고 나도 시험을 하나 치렀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러보니 아이들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사람은 한 가지 위치에만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도 못 쓰나보다. 시험 기간 동안 너무 다그치지 말아야지, 시험 감독할 때는 좀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줘야지, 만점은 언제나 힘든 것이라는 걸 이해해 줘야지, 등등의 생각을 했다. 지나친 솔직함, 너무 긴 진솔함은 변명의 카테고리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뚱맞은 생각도 했더랬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처럼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간헐적인 나의 우울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언제나 반응은 극단적이다.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거나, 너무 오래 자거나 너무 조금 자거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을 짐작하면서도 결국 우울에 빠진다. 이것이 네가 즐기는 심리적 경향이므로 일부러 그런 상태에 빠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재차 던져봤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널 대한다고 해서 안 우울해질듯 싶으냐는 냉소만 돌아왔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너 자신을 좀더 소중히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예견할 수 있는 충고이면서도 귀를 통해 들어오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을 찡하게 자극하는 말이다. 고작해야 스스로를 막 대하는 사람으로 비쳤다니. 내 우울은 형이상학적인 우울이니 고상하고 네 우울은 형이하학적인 우울이니 저급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그 사람은 내가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그 이유가 도리어 오해의 벽 보다는 이해의 문으로 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난 너와 다르기 때문에 널 이해해. 써놓고 입으로 말해보니 아리송하지만, 느껴진다. 그 곡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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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0-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깐따삐야님...고향별로 귀환하신 줄 알았습니다..^^

비연 2006-10-2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어디 갔다가 오셨나요? 반갑습니다!^^

부리 2006-10-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넘 오래 글을 쉬셨네요... 반갑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시길! 날씨가 넘 좋자나요!

깐따삐야 2006-10-3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정말 그러도고 싶었으나... 쿡쿡. ^^

비연님, 이제야 조금 여유를 찾았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

부리님, 날짜를 헤아려보니 그렇더군요. 우울증까지는 아니었구요. 요즘 날씨도 좋고 기분도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

개츠비 2006-11-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부럽습니다. 아직 20대의 자락에서 방황하고 계시군요..^^ 그러나 기초가 든든한 방황은 그 자체로 여유있고, 아름다운거 아닙니까..? 20대의 남은 시간들을 보물처럼 잘 사용하셔요. 30대는 기성이란 냄새가 너무 강합니다. T.T

깐따삐야 2006-11-0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항상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 같아요. 그 땐 왜 몰랐을까, 그 땐 왜 그 정도 뿐이었을까, 하구요. 인생에 허영심이 많은 저같은 사람은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는 대신, 언제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고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며, 그러며 살지요. 어리석게도 말예요.
 

  예전에는 꿈도 많았더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선희 같은 가수나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수사반장>이니 <경찰청 사람들>이니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심취해 강력계 형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무렵에는 릴케와 헤세를 읽으며 시인이 되고 싶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불현듯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교생실습을 다녀와서는 막연하게나마 이 길이 맞나보다, 라고 믿었었다. 금방 기억나는 것들만 굵직굵직하게 나열해서 그렇지 사실은 어디 이것 뿐이겠는가. 테레사 수녀는 열두 살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깨닫고 열여덟의 나이에 모국을 떠나 인도로 갔다는데 그저 범인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나는 지금까지도 방황 중이다. 이 얼마나 안정적이냐, 황송하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안정적인 것이 전부였더냐. 그 얼마나 배부른 방황이냐, 송구스럽다가도 네가 언제부터 배부른 것이 전부였더냐, 로 거만과 비아냥의 색조를 띠는 의문들이 마음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은 어김없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저도 사람인걸요, 라고 함부로 주장할 수 없는 나는 교사이니까.

  내가 아이들의 머리 모양에 대해서 그다지 터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왜 그러한 머리 모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해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칙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말고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그런 머리 모양을 하면 안된다고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면 차라리 좋겠다. 그 이유가 납득이 가면 아이들을 부지런히 설득해 볼 요량도 있다. 그러나 각 학급마다 명령조의 공지사항만 게시될 뿐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결국 며칠 전 아침, 정해진 규정대로 머리를 깎지 않은 채 등교한 우리반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너 머리 안 깎을거니. 네. 안 깎고 오면 매일 운동장을 돌아야 할텐데. 그래야 한다면 매일 돌 거에요. 아침부터 땀 빼는 거 힘들다. 머리 깎는 것보단 나아요...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실은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었다. 점심시간 무렵에 학생부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우리반 아이들 몇 명을 지목하며 머리 모양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셨고 얼마전 엄마를 잃은 K에 대해서도 요주의 학생이라는 점을 언급하시며, 그 어법이 비록 완곡하긴 했지만 당신은 아이들에게 도통 관심이 없는 교사군요, 라는 엄한 딱지를 내 이마에 붙여주셨다. 무고한 나를 누군가가 모함이라도 했다는 듯 의뭉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이야기의 골자는 당신은 아이들한테 관심도 없고 노력도 안하면서 수당은 잘도 받아가네요, 였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다른 누구처럼 열심히 하는 척 밖으로 생색을 내지 않아 그렇지 저도 아이들한테 잘할 땐 잘한답니다.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시더니 머리 모양과 K에 대해 거듭 당부하며 돌아가셨다.

  발끈하여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무척 아팠고 반성을 많이 했다. 교사가 아이들한테 잘하는 게 당연하지 뭐하러 잘할 땐 잘한다고 말했니. 치사스럽다. 네가 평소에 어떻게 했으면 선배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겠니. 망신스럽다. 억울한 마음이 드는 한 편, 학교생활에 흠뻑 빠져 지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생각하니 쓸쓸해졌다. 아직 신출내기인만큼 선배 교사들의 지시에 열심히 응해주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통솔하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일찌감치 승진의 발판을 닦고 차근차근 준비라도 해나가던가. 여러모로 나란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학교부적응자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학창시절부터 선배들에게 그다지 착한 후배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지나갈 때 선배한테 인사를 안한다고 불려갔다가 반말로 들이댄 적이 있었고 대학 때는 한 여자선배의 심기를 건드려서 연거푸 권해오는 소주 때문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어리석고 치기 어린 과거지만,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강요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얻은 권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K에 대해 되도록 많은 걸 알아내라는 학생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얼마 전 K와 K의 여자친구를 불러내어 저녁을 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너희들 이 고기 다 먹고 가야한다고 말했고 K는 나중에 스무 살이 되면 선생님께 고기를 사드리겠다고 했다. 나란히 서서 커플룩을 자랑해 보이길래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고 K가 갑자기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길래 속으론 흠칫 놀랐지만 미남이 팔을 다 얹어주니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같이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아마 학생부 선생님이라면 똑같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알아내셨으리라. 노련하지도 못한데다 아직 어머니도 되어보지 못한 나는 K가 나를 누나 쯤으로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고 머리모양을 마음대로 하면서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면 그마저 다행이지 싶다. 밥은 먹었니, 라고 묻고 싶다가도 밥도 못 챙겨주면서, 란 생각이 들어서 무뚝뚝해지고 마는 나의 성품은 다소 우습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은 먹었니, 란 말을 남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 있는데 그것을 남에게 이해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선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렇듯 한동안 마음이 복잡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알 길 없는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쳤다. 5교시였고 한창 졸음이 몰려오고 지루해질만한 시간대이니 다른 때 같았으면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날은 내 마음이 그렇게 되어주질 않았다.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마음 한 켠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고 더운 날씨였음에도 몸의 온도가 한없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분위기가 얼추 정리된 후, 창 밖 한 번 바라보다 교과서 한 번 바라보다 칠판 한 번 바라보다 해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무겁고 냉랭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기가 싫었다. 아이들은 결국 담임선생님께 벌을 받아야 했고 수업 태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재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W는 죄송하다는 말을 담은 편지까지 가져왔다. 착한데 너희들은 철이 좀 없었구나. 나는 철도 없고 착하지도 못하단다. 한 시간 동안 내 눈치만 살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무뚝뚝한 나는 편지를 준 W를 향해 제대로 한 번 웃어보이지도 못한 채, 45분을 빠듯이 수동태를 설명하는 데 써버렸다. 교실을 나오는데 머리 뒤꼭지가 서늘하고 쓸쓸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냐. 내 그릇의 크기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이렇듯 변덕스런 애정보다는 일관된 권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

  교육방송 청취를 위해 컴퓨터실을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바람직하다. 게임을 위해 컴퓨터실을 애용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사이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꾸준히 선도해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이지 이상적이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내가 그러한 종류의 이상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다. 나는 못된 아이가 선한 어른보다도 더 착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못된 아이를 착하게 변화시킬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다. 변할 때가 되면 자연히 변하게 될 것이고 변하지 않으면 그 성품 그대로 어딘가 맞는 역할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사로서 할 일이라면 그나마 몇 년 더 산 인생선배로 다양한 길을 일러주고 조언해주는 것 정도. 네멋대로 하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는 정도일 뿐. 아이들은 새파란 감각으로 시대를 매순간 느끼며 산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학교에 감금시켜 둔다고 해서 알 걸 모르고 모를 걸 알게 되진 않는다. 이제는 학교보다 더 많은 걸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매력적인 매체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커간다.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자생적 권위를 심어줄 줄도 안다. 어른들이 주조해 놓은 비인간적 매트릭스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살아갈 방도를 궁리,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자꾸 권위를 지키려고 하고 학생은 자꾸 권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 머리 모양이 인터넷에서는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못된 것도 개성이 되고 선한 것이 바보가 되는 시대의 흐름을 아이들은 제대로 읽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미덕은 영원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 학교이지만 가르치고 일러주되, 곧바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깨달아야 한다. 어느 순간 혼자서. 내가 그랬고 누군가의 강요로 깨닫는 척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절절하게 와 닿았던 순간이 있었다.

  동상이몽(同狀異夢)이란 말이 척 들어맞지 않을까. 오늘 내 글에 출연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 역시 말이다. 같은 교실 안에 있는데 나는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같은 교무실 안에 있는데 나는 다른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잠꼬대를 할 것이기 때문에. 무능한데 착한 선생님이 되고싶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스르고 싶다. 무능한 건 맞으니 착해지는 일만 남았다. 어려운 일. 역시 시대는 아무나 거스르는 것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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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9-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희들은 권위 앞에선 꼼짝 못하는 주제에 나 따위는 이리저리 갖고 놀아도 상관없다 이거구나. 라고 하셨죠. 저도 동감이여요. 애들이 교사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좀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어요. 지들 아쉬운 때는 어리광부릴 만한 교사에게만 어리광과 억지 실컷 부리다가, 그거 받아주면 또 만만한 사람이라고 요구의 강도만 높아가고 말이죠. 두발 재검사를 앞두고 히스테리 한번 부렸더니, 좋은 말 할 때는 머리 안 자르다가 그제서야 자르고 오는 애들. 정말이지 그 애들도, 히스테리 부리는 저도 싫어요.

깐따삐야 2006-09-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역시 같은 교사이다보니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아이들은 권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권위에 쉽사리 복종합니다. 그리고는 권위라는 것이 아직 제대로 체화되지 못한 저같은 초짜 교사들에게 긴장을 해소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거죠. 마치 밖에서는 굽실거리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생떼를 쓰는 가엾은 샐러리맨을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듯 그러한 아이들을 탓해 보았자 누워서 침 뱉는 격이란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 앞에서 뭐 하나 똑부러지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러기도 싫어하는 저같은 소심한 회의주의자보다는 기간을 두고 아이들이 변화할 때까지 주야장천 호령을 해대는 열정적 권위주의자가 더 좋은 것인지도 몰라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나 교단에서의 만족감을 위해서나 말이죠.

치니 2006-09-0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세요 ^-^

깐따삐야 2006-09-0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감사합니다. ^^
 
어른의 학교
이윤기 지음, 북디자인 정병규, 정재규 그림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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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넥타이>란 소설집을 읽고나서부터 작가 이윤기에게 관심이 생겼다. 동창생의 우스운 사연을 담은 꽤 노숙한 소설이었는데 남자 박완서라고 해도 좋을만큼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꾸려가는 솜씨가 녹록치 않았다. 나중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나서 작가 이윤기가 사실은 번역가 이윤기로 훨씬 더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미있게 읽은 후에는 이 어르신은 참 관심분야도 다양하고 자유자재로 글을 쓰시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 <어른의 학교>를 읽고나니 에세이스트로서도 너무 멋진 사람이었다. 진짜 어른이 쓴 글이라는 느낌, 모락모락 담배연기를 뿜으며 슬렁슬렁 써내려간 듯한, 하지만 진짜 어른이 아니고서는 쓰지 못하는 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을 읽기는 하는데, 영화도 보기는 하는데 내용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겠다면서 자기 기억력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묻고는 합니다. 콩나물이, 제가 자라면서 마신 물을 기억하겠느냐고요...... 물을 기억하지 못해서 콩나물이 자라지 못하더냐고요...... 콩나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콩이라는 씨앗의 소양 위에 이루어진 물의 퇴적이 아니겠냐고요...... (p. 31)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을 말끔히 해소시켜주는 부분이었다. 산발적인 기억력 때문에 나는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는 인간인가,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었고 리뷰를 써서 정리하지 못한 채 기억 저편에서 잊혀져 가는 책이나 영화 때문에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물을 기억하지 못해서 콩나물이 자라지 못하더냐고요...... 라고 해주시니 마음이 놓인다. 나는 단순하다.

정보가 쏟아지는 폼이 홍수의 도도함을 방불케 하는 이 시대에 정보를 읽는 데 뒤떨어져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정보는 속효성 금비와 닮은 데가 있어서 그것을 흡수하는 주체를 돌보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정보가 지식이 될 뿐 지혜가 되는 일이 극히 드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나는 지금 외향성 독서를 금비, 내향성 독서를 퇴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금비 쓰지 말고 퇴비로만 농사 짓자는 주장은 이 시대에 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패륜아들에게서, 일부의 못된 신세대에게서 나는 금비에 녹아난 땅의 견본을, 효율의 허구를 보고는 합니다. (p. 35)

  나도 어른들 눈에는 요즘 젊은 것들로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요즘 어린 애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말대꾸를 잘하는 아이는 숱한데 정말로 말을 잘하는 아이는 드물다. 인터넷 검색을 빠르게 하는 아이는 많은데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 아이는 적다. 아이니까 그렇지, 하고 이해하는 부분이 있지만 요즘 아이라서 더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오래도록 앉아서 책을 읽거나 가족들과 대화하기 보다는 피시방에 몰려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임을 즐기고, 국과 나물을 먹으며 천천히 식사하기 보다는 스팸이나 라면으로 성급히 허기를 채우고 학원에 가야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그런 건 아닐까. 금비로 자꾸만 황폐해져가는 땅에서 쑥쑥 자라 좋은 열매를 맺기는 어려울 것이다.

머리 좋고 아름다운 대학교수를 아내로 둔 어느 친구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지요. 누구와 바람을 피웠는가 하면, 대학교수 아내와는 어느 모로 보나 도무지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하찮게 보이는 여자를 상대로 바람을 피웠다지요. 그 여자를 만나 머리 끄덩이 잡아 흔들고 온 대학교수 아내가 남편에게 이랬다는군요. <나는 당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만 가지고 이렇게 길길이 뛰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자의 어디가 나보다 나으냐? 나보다 나은 여자와 바람만 피웠어도 내가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학교수 헛똑똑이 아닌가요? (p. 54)

  위의 글은 일본인 친구가 조조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내가 조조를 싫어하는 이유였고, 일본인 친구가 유비 3형제를 싫어하는 이유가 내가 이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더라는 말을 하면서 인용해 놓은 에피소드이다. 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선 심정적이 되면서 남의 일에 대해선 논리적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간극이 바로 불화의 불씨가 되곤 하는 일을 종종 목격한다. 호오는 논리가 아니라 감정인데 간혹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저런 함정에 더 쉽게 빠진다는 것이 재미있다.

쓰는 사람들 중에는 삶의 가죽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살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뼈를 취하는 사람도 있고, 골수를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 그 근기에 따라 취한 것을 나름대로 연마한 언어의 그물막으로 싼 것이 글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먼길을 돌아 이 자리에 이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나그네 신분으로, 벗들이 꼭대기를 차지하고 노니는 산기슭에서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너는, 그러면, 삶에서 무엇을 취할 것이냐? 가죽이냐, 살이냐, 뼈냐, 골수냐? (p. 161)

  글에 대한 참으로 근사한 정의다. 재주 부리는 작가들은 많지만 곡진한 글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꼭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너는 삶에서 무엇을 취할 것이냐고. 어디 글을 쓰는 일에만 해당될 것인가. 두고두고 음미하며 스스로에게 똑바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너는 껍데냐, 골수냐, 하고.   

  이 밖에도 좋은 이야기가 많은데 모두 인용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밑줄긋기로 등록해놓고 종종 읽어볼까, 하다가 사실 모두 다 밑줄을 쳐도 좋을 내용이라서 그만두었다. 세상을 하나의 커다란 학교로 보고 스스로를 낮춘 채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삶에 임하는 저자의 태도가 든든하다. 세상을 탓하면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중심을 나에게 가져다 놓는다면 이 세상은 배움의 원천이 된다. 그저 아무나 보고 아무개 선생님, 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진짜 스승, 진짜 어른이 드문 요즘 마치 세월의 향취같은 담배 냄새가 옷깃에 은은히 배어있을 듯한, 속 깊고 눈 깊은 재미있는 어른을 한 분 만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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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6-09-0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라 아쉬워요.

깐따삐야 2006-09-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한 권 소장해도 좋을만한 책인데 아쉽네요. 저도 이 책 헬스장에서 빌려왔거든요. ^^

blowup 2006-09-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재미난 헬스장이닷^^
남자 박완서라는 표현에서 데구르르.(동감)
저 '골수' 이야기는 예전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주제로 삼은 적도 있었죠.
(붙었던가, 떨어졌던가--;)


깐따삐야 2006-09-0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헬스장 책장에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도 있더라구요. 쿡쿡. ^^

kleinsusun 2006-09-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스장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가 있다구요? 우와......주인의 취향이 정말 특이한데요. 그 헬스장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구요.^^ 제가 다니는 헬스장엔 온몸의 근육을 자랑하는 바디 빌더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월간 <휘트니스> 밖에 없답니다. ㅎㅎ


깐따삐야 2006-09-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insusun님, 헬스장 시설은 열악하지만 양서는 좀 있어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외되고 있긴 하지만요. 주인 부부는 제가 아는 분들인데 솔직히 그런 책들을 사모으거나 할 분들은 아니거든요. 저도 책의 출처가 궁금하답니다. 어디서 한꺼번에 기증받은 것도 같고. 엊그제엔 함정임 소설집과 토마스 만 단편선을 빌려왔어요. ^^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게으름인지, 무관심인지 그 때 그 때 나오는 신간이나 신작영화를 챙겨볼 줄 모르는 나는 뒷북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경린의 소설이 뜨고 있을 때 김승옥의 초기단편집을 읽는다든지 키아누 리브스가 콘스탄틴에서 열연 중일 때 매트릭스 시리즈를 다시 보며 혼자 감탄한다든지 하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전경린의 소설을 읽고 영화 콘스탄틴을 보며 아, 하고 뒤늦게 뭔가를 느끼곤 한다. 굳이 이렇게 하자고 룰을 정해놓은 바도 없을 뿐더러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는 작품이야말로 이 몸이 읽을만한 것이리라, 하는 고집이나 철학도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버린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유미리의 책도 그랬다. <가족시네마>는 새로 발굴한 헌책방에서 찾았고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헬스장의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이제껏 작가 유미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실은 재일교포라는 것,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것, 유부남과 사귀다가 미혼모가 되었다는 것,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한창 주목받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 정도였다. 내가 구한 책은 1997년 고려원에서 나온 <가족시네마>인데 지금은 절판된 상태였다. 1997년이면 고등학교 시절인데 그 때는 유미리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좀더 관심이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유미리의 책은 읽지 않았다. 신문에서 유미리의 책을 홍보하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도 있고 긴 머리에 눈을 내리깔고 찍은 사진을 보고 일본여자처럼 생겼군, 슬퍼 보이는군, 정도밖엔 느끼지 못했다. 책과의 인연이란 건 가끔 의아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처럼 만나게 될 책은 기어이 만나게 되는 것일까.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유미리만의 어록이자 사전이다. 유미리는 사랑이란 <피를 흘릴 만큼 타자에게 관여하는 일>이란 정의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사전을 만들고자 생각하였다. (p. 8) 고 말한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는 말에 공감했다. 인생이 있긴 있되 지극히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설명 뿐이라서 영 마뜩치가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하다는 선한 전제를 차치하고라도 유미리는 특별하다. 그녀의 태생이 그러하고 살아온 여정이 그러하다. 일본에서 그녀의 삶은 철저히 이방인이자 주변인의 삶이었다. 늘상 불화하던 부모가 일찌감치 별거하는 바람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유미리는 재일교포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외모나 분위기에서 배어나오는 독특한 무언가 때문에 어딜 가나 이지메를 당한다. 동년배 친구에게서 동성애적 감정을 느끼는가 하면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그걸 거부하지 않고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40대 이상의 남자와만 연애를 하며 저축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별난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의 화두를 제목으로 해서 이 책에 담겨 있고 <가족시네마>에도 담겨 있고 아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유미리의 다른 책들 속에도 담겨 있을 것이다. 누군가 유미리에게 너의 불행을 팔아먹는 짓은 그만두라고 했다는데 유미리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발표하는 일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한갓 동정이나 얻자고 글을 쓰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글이라면 누군가 미리부터 싸잡아 비난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될 것이다. 유미리 자신이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의 불행을 좋은 글로 승화시켜 공감을 얻고 있다면 그 선에서 그녀와 그녀의 글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짤막한 단상과 정의들을 모아놓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삶의 내공이 느껴졌다. 읽다보니 그녀가 이 책을 쓸 때 즈음이 스물여덟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나이에 생의 이면을 이만큼이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그만큼 상처와 고통이 많았다는 이야기니까. 직업의식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유미리의 부모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연극무대 위에서 갑자기 도망을 쳐버린다거나, 가정이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거나,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저축은 커녕 몽땅 써버리고 빈털털이가 되어야만 마음이 놓인다거나, 안정적인 인간관계나 경제상태에 대해서 일견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 일관되고 지속적인 애정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기본적인 신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얼마전 아이를 낳은 후 그녀가 많이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냉소 섞인 슬픔이 아이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하다. 긴장과 고독만이 좋은 글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차가운 이면 뿐만이 아니라 따듯한 이면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 다시 태어난 유미리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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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0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화라고 불리우는 영화나 명작으로 불리우는 책들을 꼭 물이 올랐을 때 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난다고 그 의미가 퇴색된다면 명화나 명작이 아니지
않을까요.^^..그런데 저 작가...이 세상 사람 아니지 않나요.?

깐따삐야 2006-09-0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처음 듣는 얘긴데요? 저만 모르는 건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