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 범우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원인>은 먼저 읽었던 <지하실, 하나의 탈출>의 전편이라고 보면 되겠다.

작가의 자전소설 5부작 중 하나인 이 책도 여전히 분위기는 어둡고, 주인공은 우울하며, 특별한 스토리로 진행되기 보다는 불만과 불신에 찬 어조의 독백으로 그득하다.

실제로 책 속에서 만난 작가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지는 않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일찍이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의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어릴적부터 외조부의 엄격한 교육 아래 성장했다.

물론 외조부는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어린 베른하르트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그를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보내고 개인 교습으로 영어와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등, 외손자를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예술가란 타고난 영혼을 기반으로 해서 스스로 창의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간이지, 타인의 요구나 특별한 교육에 의해 제조되거나 길러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던가.

베른하르트는 자신을 거두어 준 외할아버지에 대해 늘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네 할아버지가 피아노 교습비를 대주는 것은 창밖으로 돈을 던져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피아노 강사의 독설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실제로 자유로운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곧잘 놀라운 연주 솜씨를 발휘하곤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악보대로는 그 어떤 곡도 온전히 연주해내지 못하는 기이한 천재였던 것이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진탕 마셔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영화 <술고래>의 미키 루크처럼.

나치즘에 이어 카톨릭이 장악해버린 오스트리아의 파시즘적 교육 아래서 베른하르트는 끝없이 자살에의 충동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정신을 파멸시키는 중고등교육 단계를 없애고 대중을 위한 초등학교와 개별 인간들을 위한 대학교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나 자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 즉 상식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그 기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맞게끔 진로를 결정하는 탐색의 기간, 유예의 기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는 청소년기는 자아탐색과 진로결정의 시기라고 버젓이 나와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심사숙고하는 시간보다는 부모님의 뜨거운 기대와 가차없이 등수를 매겨대는 시험성적에 목을 매며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정말로 배짱이 두둑하거나 본래 독하게 타고난 인간이 아닌 한, 사회와 학교와 부모가 강요하는 이러한 룰에서 비껴나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걷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란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방학 때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다보면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 순간에 책을 펴면 그것이 소설책이었든 새학기 교과서였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술 읽히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까지 가만히 놔두고 지켜볼 수 있는 부모란 결코 흔치 않다.

베른하르트는 계몽이 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또 다시 계몽이 안된 채로 자식을 낳고, 결국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사이클 안에서는 사회가 결코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똑똑한 목소리들은 자꾸만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은 갈수록 더 힘이 든다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과 의식 수준이 항상 상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와 교사와 사회와 국가는 베른하르트라는 예민하고 내향적인 천재가 힘들게 맞서야 했던 지독한 적(敵)들이었다.

거대하고 굳건한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도, 그것을 하루 아침에 전복시킬 수도 없는 어린 영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에 찬 독백밖에 더 있겠는가.

그가 그 현실 자체로 만족했거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대해 비판의 눈을 뜨지 않았다면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세상에 대해 절망한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의 독백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어두운 분노로 차 있지만 글을 써서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이미 대사회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세상을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기에 쉽거나 즐거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를 만난다는 것은 깨끗하게 닦아놓은 거울로 더러운 세상을 비춰보며 나 자신까지 돌아볼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 진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의 또 다른 책을 어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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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매며

  - 장 석 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뜨겁고 끈적한 여름. 어디선가 서걱이는 눈 냄새가 나는 듯 했던, 충분한 여백마다 쓸쓸함이 배어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고싶었다. 잎이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정원(한석규 분)과 다림(심은하 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 서로의 어깨가 비에 다 젖는 줄도 모르고 가까이 몸을 붙이지 못한 채 쑥스러운 폼으로 우산을 나눠쓰고 걷던 모습, 놀이공원에서 다림이 내미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양손에 받아들고는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짓던 정원, 불이 켜지지 않는 초원사진관에 돌을 던지며 정원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던 다림. 활자로 된 기록물과는 달리 영화는 그렇듯 띄엄띄엄, 대사도 없는 몇 장의 이미지들로 기억 속에 남곤 한다.

혼자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은 곧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한부 인생이다. 첫사랑을 떠나보낸 후 결혼도 하지 않고 삶의 많은 부분을 체념한 채 보내고 있는 정원의 일상은 그다지 새로울 일도 없고 즐거울 일도 없다. 그런 정원 앞에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인 다림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점점 사진사와 손님이라는 밋밋한 관계를 벗어나 서로에게 친절을 넘어선 호감을 갖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다림은 자신을 바라보며 사람 좋은 웃음을 한가득 웃어주고 어떤 말을 해도 담담히 받아주는 정원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정원 또한 솔직과 내숭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종 깜찍한 말을 건네오며 자신의 잔잔한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다림이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정원이 입원한 사이, 다림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고 다림은 문이 열리지 않는 사진관을 바라보며 정원에 대한 호감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원망으로, 원망이 다시 그리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된다. 마지막 정리를 위해 사진관에 들른 정원은 다림의 편지를 보게 되고 다림이 새롭게 일하게 된 구역의 커피숍에서 다림을 바라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이제 갓 피어오르듯 싱싱하고 건강한 그녀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 계절은 바뀌어 겨울이 오고 다시 사진관을 찾은 다림, 사진관 진열대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하곤 정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활짝 미소 짓는다.

처음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제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의 멜로 영화는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만큼 좋았더랬다.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지만 이후 <봄날은 간다>에서도 이만큼의 진한 여운을 느끼진 못했고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외출>은 배용준과 손예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너무나 주관적이고도 편협한 이유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기대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미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최고 정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는 내려오는 것 뿐인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게 최고였다. 세심하고도 강한 내면을 수수한 듯 편안한 웃음으로 감추고 있는 정원과 새카만 생머리를 쓸어올리며 귀엽고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다림 또한 내가 만난 멜로의 주인공들 중에는 단연 최고였다. 정원이 한석규가 아닌 다른 남자배우였다면, 다림이 심은하가 아닌 다른 여배우였다면, 을 상상할 수 없을만큼 적재적소의 캐스팅이었다고 밖에는, 혹은 배우가 가진 이미지를 제대로 끌어내어 활용할 줄 아는 감독의 타고난 감각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이제 심은하는 결혼과 동시에 배우 생활을 접었고 한석규는 근래 들어 새롭게 연기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향방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가장 아름다웠던 청춘은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 속에서가 아닌가 싶다. 

날씨 탓인지, 세월 탓인지는 몰라도 요즘은 '삼가는 사랑'에 대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게 사랑의 정의이며 방식인데다 특정한 하나를 두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 또한 무용한 일이겠지만 역시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진짜야말로 진짜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산을 끝까지 오르든, 바로 하산을 준비해야 하든, 나는 저 산을 좋아해, 라고 외쳐야만 다인 줄 알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으면 입 밖으로 사랑의 언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자존심이라든가,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윈 안중에 없었다. 가슴이 시켜서 그랬다, 는 말처럼 솔직한 듯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처럼 무모하고도 이기적인 과정을 겪어내며 엇비슷한 상처와 후회를 반복하고 나야만 비로서 성숙해지는 게 인간이라지만. 너를 정말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 라는 불가능한 소유욕에서 파생하는 줄다리기가 아니라 너를 위한 끊임없는 배려로서의 조심성,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의 속성은 아닐까. 내가 완력과 재치로 사랑을 쟁취하고는 막상 스칼렛이 곁에 있어달라고 할 때 냉정하게 등을 보이는 레트 버틀러보다 스칼렛을 사랑했음에도 그 마음을 숨긴 채 끝까지 부인과의 의리를 지켜낸 에슐리 윌크스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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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1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림이 정원의 사진관 유리창을 돌로 박살내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극중 인물들이 눈물 질질 짜고 슬퍼하는 것보다 더 절절한 이별이 아니였나
생각되어집니다..^^

깐따삐야 2006-08-1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허진호 감독은 절제의 미학에 능통하지요. 스스로 오버하지 않는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오버 해석을 이끌어내게 하는. 어서 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겠어요. ^^

비연 2006-08-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환,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 중 하나라는 생각.

깐따삐야 2006-08-11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반갑습니다. 참 좋은 영화죠. ^^
 

 

휴 그랜트는 바람둥이일 수는 있어도 결코 악인은 될 수 없는,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때는 있어도 절대로 미워할 수는 없는, 고의라면 상당히 단수 높은, 고의가 아니라면 그저 어떤 면에서 행운이랄 수밖에 없는, 그만의 고유한 이미지로 성공한 케이스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휴 그랜트를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널널한 삶을 구가하는 백수, 정착하기 두려워하는 연애술사,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음에도 곤란한 문제가 닥칠 때마다 멍한 표정으로 갸웃거리기만 하는 미성숙한 이기주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노, 라고 말하지 못할 것만 같은, 노, 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결국 찜찜한 마음을 못 이기고 다시 돌아와 줄것만 같은 주인공 '윌'이 바로 휴 그랜트가 열연하고 있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은 채 솔로 생활을 즐기고 있는 윌은 사랑하다가도 귀찮지 않은 결말로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상대를 찾던 중,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이 적임자라 생각하고 미혼모 클럽에 가입한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상대와 데이트 약속을 하게 된 윌은 상대가 데이트에 데리고 나온 '마커스(니콜라스 호울트 분)'라는 아이와 만나게 되고 공교롭게도 마커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커스의 엄마가 자살 시도를 한 현장과 맞닥뜨린다. 그 후로 마커스는 학교가 끝날 때마다 윌의 집을 방문해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고, 윌은 학교에서는 왕따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자신의 속내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로부터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마커스를 내치지 못한 채 점점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익숙해진다. 윌은 마커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최신 나이키 신발을 사주고, 랩 음악을 들려주는 등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새로 만난 연인, 레이첼(레이첼 웨이즈 분)과 이별하고 상처를 입은 윌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되어주고, 상대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주는 과정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윌은 결국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엄마를 도와달라는 마커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다시 예전처럼 고독하지만 안정된 섬으로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마커스와 함께 보냈던 시간임을 깨닫고 마커스와 그 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내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보았던 것은, 휴 그랜트의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느끼함이나 '미이라'에서부터 '콘스탄트 가드너'까지 어느 영화에서건 빛을 발하는 레이첼 웨이즈의 스마트함, 마커스로 출연하는 아역배우, 니콜라스 호울트의 발칙함보다도, 영화의 흐름 내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 다양한 삶의 방식, 가족의 형태였다. 결국 이 영화가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적당히 이기적인 삶을 즐기는 솔로들을 질타하고 가족이란 연대에 동참하는 삶을 부추긴다 하더라도, 영화에서 지향하는 가족의 형태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 마치 그 이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 곧 노멀함의 범주를 비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을 끊임없이 지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커스의 엄마는 크리스마스에 헤어진 남편과 남편의 애인, 애인의 어머니까지 초대해서 파티를 열고, 마커스는 친구인 윌을 초대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따듯하고 즐거운 식사를 즐긴다. 레이첼은 마커스를 윌의 아들로 오해했고 윌은 나중에 마커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은 윌의 아빠라고 말한다. 그 애매모호하고 똑 떨어지지 않는 설명에 대해 레이첼은 결국 한 쪽의 오해와 한 쪽의 거짓말이었다,는 그 이상의 해석을 하지 못하고 윌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학교에서 락 축제가 열리던 날, 조롱과 망신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를 위해 준비한 곡, Killing me softly를 부르는 마커스를 위해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윌을 보고 활짝 웃음을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사랑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피가 아니라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야말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곧 그 사회의 반영이라는 말이 있다. 유전자 감식, 친자 확인에 열을 올리며 위기감을 조성시키곤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가족의 범위에 대해 닫혀 있고 보수적인지 실감하곤 한다. 마커스를 낳지도 않았고 마커스의 엄마와 연인 사이도 아니지만 자신이 마커스의 아빠라고 말하는 윌의 입장은 옳다. 언제나 쿨한 인생을 지향하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윌이었지만, 친아들이 아니어도 기꺼이 아빠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선택이야말로 진정으로 쿨한 인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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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7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캐릭터를 보면 얄밉긴 하지만, 미워할수만은 없는 모습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네번의 결혼식.한번의 장례식이 제일 좋았습니다..^^

깐따삐야 2006-08-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저는 휴 그랜트가 노년이 되면 과연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곤 합니다. ^^

Mephistopheles 2006-08-0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숀코너리 와는 다른 모습이겠죠..^^

비로그인 2006-08-0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휴 그랜트의 캐릭터가 얄밉지도 않고 사랑스럽고 부럽기만 했으니 이를 어쩝니까..

깐따삐야 2006-08-0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남자 입장에선 모르겠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어쩐지 휴 그랜트와 그의 케릭터를 미워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는 결국 연대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있었지만, 저 또한 Jude님처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로 자유를 구가하는 윌의 생활방식이 부러웠답니다. 그의 거짓됨은 싫었지만 그의 고독은 좋았어요.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바쁜 일상을 꾸려가다 보면 불현듯 이게 아닌데,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간헐적으로 피어오르는 무료함이나 우울함과는 다른, 좀더 근본적인 낙담 내지 환멸같은 것.

이후 한동안은 온 심신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무거운 상태로 지속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며 실컷 마음의 호사를 누린다 해도, 그것들로 인해 잠시잠깐 까슬까슬하고 말랑말랑한 심신 상태를 되찾는다 해도, 언젠가 또 다시 엄습해 올 그 느낌에 대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곤 한다.

<키리쿠, 키리쿠>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갓 열살을 넘긴 외사촌 동생은 우리도 저렇게 살면 참 좋겠지? 라고 물어왔다.

주인공 키리쿠는 아프리카 소수 부족의 어린이다.

키리쿠네 마을 사람들은 손수 파종을 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흙을 빚어 만든 그릇을 읍내에 내다팔아 돈을 버는 등, 육체노동을 통한 단순하고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집에는 문이 없으며 한 집의 아기를 이 사람이 돌보아 주기도 하고 저 사람이 돌보아 주기도 한다.

그들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나면 기쁨과 감사의 의미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며 축제를 연다.

<월든>을 다시 읽으며 마치 고갱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것처럼 화면 가득히 열기와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던 <키리쿠, 키리쿠>를 떠올렸고 어쩌면 내가 원하고 있는 삶도 이런 것이 아니었느냐, 고 조심스럽게 반문해 보는 것이다.

학부시절에 강독했던 <월든>은 <더블린 사람들>이나 <폭풍의 언덕>등 그 시절 청춘의 낮밤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다른 책들과 더불어 졸업과 동시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 버렸다.

시험은 코앞인데 굳이 캠퍼스 근처의 산을 오르게 하셨던 어떤 교수님은, 늘상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다보니 급격한 체력저하를 겪으며 헥헥거리고 있던 우리에게 던킨도너츠를 쥐어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아... 여러분, 산에 오르면서 무얼 보았나요?"

나야 물론 입가에 허연 설탕가루를 묻힌 채 교수님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고 눈만 껌뻑이며 묵묵부답이긴 다른 학우들도 매한가지였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교수님은 허둥거리며 내려가는 우리를 멈춰서게 하신 다음 다양한 나무 이름을 알려주셨고 산을 오르는 목적 그 자체보다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교수님다운 말씀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는 나무 이름은 물론이고 올랐던 산 이름조차 가물가물하고 기억나는 것은 오로지 유인물, 이라는 교수님 별명과 교수님이 우리에게 던졌던 저 질문 뿐이지만, 대놓고 지루해하던 수강생들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월든>의 문장에 심취해서 창 밖으로 아련한 눈빛을 보내시던 교수님은 분명 이 책을 사랑하셨고 우리를 지도하느라 참 외로우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졸업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만난 <월든>은 나로 하여금 Simplicity, simplicity, simplicity! 라는 책 속의 외침을 상기시키며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자연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는 삶을 몸소 보여준 소로우는 누구든 한 번쯤 꿈꾸게 되는 무소유의 삶을 직접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기록을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는 점에서, 두 번 훌륭하다.

당대의 엘리트였다는 조건이 그가 선택한 소박한 삶을 더욱 미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점이 없지 않지만, 혹자는 언제고 다시 사회로 편입하면 어떤 좋은 자리든 주어질만한 상황이 아니었냐며 비판할 때도 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코앞에 주어진 부와 명예, 세속적 성공을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에 비하면 어떤 것을 직접 사는 일은 훨씬 더 어렵고도 모험을 요하는 일이다.

물질과 자본으로 움직이는 현대에도 <월든>이나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과 같은 책이 주목받는 것을 보면, 대개 사람들의 진심 속에는 이 갑갑하고 기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맨손과 맨발이 허용되는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욕구가 내재해 있는가 보다.

나 역시 내 뿌리가 농촌에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란 게 본래 그런 것인지, 밭이랑에 한가득 캐서 모으던 감자라든가, 고추 모종에 주전자로 물을 주던 풍경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 될까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일 없이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먹거리를 얻고 흘린 땀에 비해 수확량이 적더라도 쓰임새를 줄이면 그만이라고 일갈하며 다음해를 기약하는, 정직하고 엄격한 삶 속에 나를 내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실상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만큼의 가진 것도 버리기가 아깝고도 두려워서 늘 공상만으로 그치는 일이 허다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른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발 벗고 동조해주고 이해해준다면 정말 일을 저질러 버릴지도.

논리나 이성보다는 여전히 직관과 감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나이기에 전혀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어쩌면 나란 인간은 그때부터 비로소 신나게 살지도 모른다.

<월든>. 오로지 축적하는 데에만 몰두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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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8-0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깐따삐야님 제가 그 동조자해드리면 안되겠니(요)? 꾸벅~ 초면에 넘 쌨죠? ㅎㅎ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저너머 행복을 쟁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먹은대로 실행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그만큼 얻고자 하는 것이 절박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죠...좋은 글 잘 봤어요.^^

Mephistopheles 2006-08-0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응원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

깐따삐야 2006-08-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반갑습니다. 절박하지 않아서, 용기가 없어서, 그냥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흐흐.

메피스토님, 고맙습니다. ^^

개츠비 2006-08-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든, 다시 읽으셨군요. 반갑네요.. 깐따삐야님 글로 만나보는 월든...실은 지루한면이 없잖지만, 대게 고전은 그러면서도 가장 기억속에 오래남는 책이니까요..^^

깐따삐야 2006-08-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retre7님, 고전에 대한 느낌, 진심으로 동감해요. 읽을 땐 지루한 면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중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고전 뿐인 것 같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지요? 건강 조심하세요. ^^

비로그인 2006-09-0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버드대 총장이 졸업생들에게 권하는 책이라고 하던데, 이 책을 다 읽어내지 못한 게 아주 민망합니다만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리뷰.

깐따삐야 2006-10-3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좋은 책이긴 한데 다시 읽어봐도 역시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생활이 너무 뻑뻑하게 돌아간다 싶을때 펼쳐보면 찰랑찰랑 파문이 일기도 하더라구요.
 

방학 시작 즈음해서 공교롭게도 경상남도 쪽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한 번은 교사 동호회에서 남해군 일대를 여행했고 그 다음은 교직원 공동연수로 진주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짭조름한 바닷내음을 맡으며 아나고와 회를 실컷 먹고 온 넉넉한 나들이였다. 고교 시절에 한국지리를 배울 때는 당최 물리적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은 채 그 땅에서 나는 광물이나 특산작물을 기억하고 지형에 따른 기후와 토질의 차이까지 비교 암기해야 하는 곤욕이 따랐기에, 지리라면 된통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실제로 움직이며 보고 듣고 걷고 먹으니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한반도의 지형과 특색이 눈앞에 환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경상도는 나에겐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잠시 훑고 오긴 했지만 그야말로 훑었을 뿐, 멋쩍은 표정의 단체사진 배경에서나 내가 이런 곳에도 가긴 갔었구나,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대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 시절의 기억은 추억으로 저장되기 마련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수학여행은 빈 괄호처럼 허하고 막막하다. 어쨌든 방학이 다 가기 전에 한 차례 더 국내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장마가 지나고 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지만 여름은 원래가 더운 법. 떠날 것이다.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에 있는 헬스장에 찾아가 일단 등록부터 해놓고 보니 안 나갈 수가 없다. 돈이 아까워서라기 보다는 이제 하루 한 시간 유산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고 조마조마하다. 고작 며칠 했다고 운동에 중독이 되었을까마는, 땀을 쫘악 흘리고 난 후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난 다음의 상쾌함에 도취되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만 무리하면 늘상 찌뿌드드했던 몸도 살짝 가벼워진 느낌이다. 물론 아직까지 몸무게의 변화는 거의 없는데다 가끔 헬스장 아래로 내다뵈는 낭창낭창한 내 또래 아가씨들을 보면 런닝머신 위에서 육수를 흘리며 쿵쾅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참 아니올시다, 라는 느낌도 들지만 뭐, 나는 나인 것이고 내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면 되는 것이다. 시작이 어려웠지, 일단 시작하고 보니 진작에 왜 운동을 안했을까 싶다. 앞으로 꾸준히 해야겠다. 

이 동네에서 약 2년 반을 살았는데 조만간 이사를 갈 것 같다. 근처에 명산과 국립공원이 있는 청정마을이었는데 이제 좀더 사람들로 북적이는 근방의 도시로 가서 살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발령을 받고나서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희비가 엇갈리고 별에별 시행착오를 겪었던 곳인만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느긋한 인간성과 아이들의 순진하고 솔직한 눈매 또한 그럴 것이다. 사는 곳은 조금 멀어지지만 아직은 이 곳의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닐진데, 그래도 왠일인지 마음이 헛헛하고 쓸쓸해오는 것은 감정의 오버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언제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도시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다른 좋은 것을 선사할 것이다. 아마도 좀더 긴장되고 역동적인 그런 삶.

얼마전 학교로 배달되어 온 백송이 장미를 받으신 동료 여선생님 한 분이 결혼 날짜를 잡으셨다. 만난지 백일째, 지켜보는 사람들 편에선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것도 너무 늦은 거라구, 라는 말이 나올성 싶은 깨소금 쏟아지는 인연. 이제 새학기가 시작되면 머잖아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란다. 쌍춘년이라 그런가, 올해 상반기엔 결혼식을 참 여러 군데 다녔더랬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 학교 여인네들은 어찌 된 것인지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두 분이나 결혼을 했고, 하게 되었다. 요즘 세태로 보면 이르다 싶은 나이인데도 만났다던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결혼한다는 게 오늘이 되버리곤 한다. 서로 얼마나 좋았으면! 그리고는 당사자를 마구 띄워주고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뜬금없이 화살이 나에게 꽂힌다. 그런데 김샘은? 김샘도 결혼해야지. 남자 없어? 슬슬 찾아봐야지 않겠어. 요즘 애들 말로 대략난감이다. 난 어떤 상대를 좋아할 때도 결혼, 이라는 말 앞에선 확 쪼그라들곤 했었다. 진짜 인연을 못 만나서 그렇다고, 진짜 인연을 만나면 작은 키도 커 보이고 작은 눈도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과 실제로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 사랑할 준비는 되어 있어도 결혼할 준비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율배반일까. 행여나 내게 어떤 희망 내지 기대감을 품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까. 물론 나는 연애지상주의자나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아예 어떤 ~주의라는 것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저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 막연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 사는 것을 보면 참 좋아 보일 때도 많은데, 좋아 보여도 두려운 건 두렵다.

방학이라서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 주문했다. 장르별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역시 책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 재미 이외의 매력으로 독자의 시선과 집중력을 모으는 책은 정말이지 드물다. 두툼한 성경이나 국어사전조차 호기심과 흥미를 끄는 부분은 빠르게 찾고 술술 읽게 마련이다. 언젠가 파워인터뷰란 프로그램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이 류승완, 류승범 형제를 가리켜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지닌 보기드문 청년들이라고 극찬한 바가 있는데, 좋은 책을 대하는 내 느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좋은 책은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아우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가 한 권의 책 속에 보이지 않게 녹아들어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교합과 길항을 함께 하는 책. 이를테면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이왕주의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라는 책과 같은. 지루한 여름,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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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운동은 고달프지만 숨이 턱에 달릴만큼 운동을 한 후
그 나른하고 요상한 기분이 좋긴 좋지요..^^
(이미 중독 되신 듯 합니다만....=3=3=3=3)

개츠비 2006-08-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멋진 여름이네요. 장마로 여름의 반을 보내버리니 이제 반의 반밖에 남지 않은 무더위가 남았습니다. 입춘넘어 좀 지나면 아침저녁 찬바람 나잖아요..^^

2006-08-0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8-0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진심으로 중독이 되버리고 싶습니다만 문득 귀찮으면 그만둬버릴까봐 이젠 그게 걱정입니다.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

sretre7님, 무더위를 지나 곧 가을이 오리라 생각하니 왠지 설레입니다. 늘 바다를 보며 지낼 수 있어서 참 좋으시겠어요. ^^

속삭이신 님, 그렇군요!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네요. 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여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