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학에 가면 수학을 안 배워도 되기 때문이었다. 소심한 탓에 늘상 수학책을 붙들고는 있었지만 내게 있어 수학책이란 그저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교과목에 비해 확연히 처지는 점수 때문에 늘 고민스러웠고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나의 수학 성적에 대해 함께 염려해 주기도 했다. 아예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더 몰두하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포기가 안 된다는 것이 또 문제였다. 오로지 욕심 때문이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나와주던 다른 교과목에 더 집중해봤자 그다지 전체적인 점수 상승이 있을리 없으니, 역시나 부족한 수학에 좀더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이 떨어졌다. 결국 나는 굉장히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하는 것 같긴 한데, 모의고사만 보면 늘상 반타작 언저리를 웃도는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는 학생이었다. 종종 수학 선생님들을 까닭도 없이 미워하고 수학 교과서 귀퉁이에 상스런 욕을 써놓았던 것은 모두 수학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영어가 효자였다면 수학은 발목 잡는 귀신 같았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니. 사랑할 게 그렇게도 없었더냐, 싶었지만 너무나도 따듯하고 서정적인 영화라서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십 년 전에 이 영화가 나왔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 바뀌었을까. 수리에 약한 천성이야 쉽게 변할 리 없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수학 교과서 귀퉁이에 끄적였던 욕 만큼은 슬쩍 지웠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 때 그 시절 수학 선생님들은 첫 시간마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라며 잘난 척만 하셨을까. 루트 선생님처럼 수학과의 엄청난 인연을 풀어놓진 못하더라도 오일러의 공식 정도만 차분차분 읊어주셨다면 3.14 원주율과 허수 i와 네피어 수, e가 無로 합일되는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수학의 신비한 매력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 선생 욕한다지만,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루트 선생님의 수업은 내 일생 가장 재미있는 수학 수업이었다.

  사고로 인해 1시간 20분의 기억력 밖에 갖지 못한 박사(테아로 아키라 분)는 그러한 특수한 상황과 독특한 성품 때문에 무려 9명의 가정부를 갈아치운 상태다. 새 가정부로 일하게 된 싱글맘, 쿄코(후카츠 에리 분)는 박사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아까 말했던 거잖아요, 라는 말을 금칙어로 정한다. 쿄코의 신발사이즈를 묻는 것으로부터 반복되는 일상은 우애수, 완전수 등 다양한 수의 성질을 발견하고 깨달아 가는 흥미로운 수학 수업과도 같다. 엄마 없이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쿄코의 아들을 걱정한 박사는 쿄코의 아들이 방과 후에 자신의 집에 오게 하도록 하고, 아이에게 모든 수를 감싸 안아주는 '루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박사와 루트는 야구와 숫자를 매개로 친밀한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한때 박사가 앓아 눕는 사건을 계기로 세 사람은 헤어질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교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수식처럼 맺어진 인연은 이후로도 따스하게 지속되고 루트는 수학 교사가 되어 수업 첫 시간,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소개한다.


박사가 사랑한 오일러의 공식 : 모순되는 것들이 통일이 되면 zero가 된다.

  박사에게 루트는 매일 새롭게 만나는 아이다. 박사는 납작한 루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현명한 마음이 가득 차 있을 것 같군, 이라고 말한다. 아마 날마다 이런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고는 못 배길런지도 모르겠다. 루트가 머리를 다친 날, 쿄코는 야구 코치에게 왜 아이를 박사님한테 맡겼냐고 화를 내고 박사의 우울한 표정을 눈치챈 루트는, 엄마가 씌워주려는 모자를 내팽개친다. 어느새 현명한 마음으로 가득 찬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이 옳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현명한 마음이란, 의리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쿄코는 그녀가 항상 신고 다니는 하얀 운동화처럼 깨끗하고 상큼하다. 오물조물 바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향긋한 냉이를 코끝에 갖다대며 활짝 웃음 짓는 그녀는 천성이 고운 여자, 의 모습을 발랄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박사처럼 수리에 능하지는 못하지만 순수한 직감 만큼은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배려할 줄 안다. 루트에게 박사님한테는 절대로 전에 말했던 거잖아요, 라는 말을 해선 안된다고 이르는 쿄코는 착하고 사려깊다. 어쩌면 그동안의 가정부들은 그거 아까 말했던 거잖아요, 라고 신경질을 부리다 스스로 좌절했는지도 모를 일. 매일 매일 현관에서 신발 사이즈를 묻고 답하며 시작되는 똑같은 일상에 대해 그녀는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는다. 쿄코는 이상적인 여자다.

  박사에게 그냥 지나쳐도 좋을 숫자란 없다. 그는 쿄코의 신발 사이즈에서, 그녀의 생일날짜에서, 야구선수의 등번호에서, 루트의 열한번째 생일에서, 자신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넘버에서, 갖가지 의미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하기도 한다. 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는 수학과 사랑에 빠진 천재였다. 1시간 20분의 기억력밖에 갖지 못한 건 신이 그에게 내려준 소박한 축복인지도. 일상의 자잘한 내용물들을 모두 기억하고 그것들에 반응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수와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기쁨이 다소 줄어들었을지도 모르니까.

  특별한 소재를 다룬 특별한 영화였다. 멀어진 지금, 이제는 좋고 싫고 할 것도 없지만 수학에 대한 나의 오랜 반감을 반감시켜주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영화의 힘은 막강하다. 루트의 든든한 포용력과 소수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에 대해 미리 좀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가시질 않았다. 수학을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박사의 말처럼 밤하늘의 별의 아름다움이나 들판에 피어난 꽃과 같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직감과 감성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수식의 아름다움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내가 수와 친해지지 못했던 것은 천성이 아니라, 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쿄코와 루트처럼 사심 없이 다가섰다면 나는 수학과 우애와 의리를 돈독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블레이크의 시로 끝을 맺는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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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3-0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맙소사! 영화도 있군요!!
전, 책으로 읽었어요.
마음이.. 가슴이 .. 어찌나 따뜻해지던지..
감동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 느낌이였어요!!

이 책을 읽고, 버스번호도 예사롭지 않았다는...^^


깐따삐야 2007-03-0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아..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엊그제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다. 부장 선생님이 김치찜을 준비해 오신다길래 나도 계란말이와 더덕구이 같은 밑반찬을 좀 해가지고 가서 출근하신 선생님들과 나눠 먹었다. 보조 아가씨는 밥을 해오랬더니 아예 압력밥솥을 들고 와서 한바탕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금방 해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밥이라 맛있기도 했고 선생님, 따듯한 밥을 드셔야지요...하는 말에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그 마음씀이 고마워서 모처럼 과식을 했다. 식구처럼 지내던 사람들과 이제 헤어져야 하지만 교직이라는 것은 사람들끼리 돌고 돌게 마련인지라 이별이 아주 슬프거나 하지는 않다.

  2월, 6월, 11월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기다. 완전 비호감까지는 아니지만 이 시기가 엄습해 오면 나는 간혹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모하곤 한다. 2월은 강박의 달이다. 뭔가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 한 편, 뭔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쉽사리 벗어나질 못한다. 6월은 짜증의 달이다. 더위가 스멀스멀 밀려오면서 금방이라도 발화를 할 듯한 짙푸른 녹음과 여름 초엽의 알싸한 향기가 곧 나를 질식시킬 것만 같다. 11월은 불안의 달이다. 거리는 연갈색과 무채색으로 뒤덮이고, 그 스산함은 함부로 내 옷깃을 파고들며 심신을 춥춥하게 만든다.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고 어깨를 빌려달라 하게 될까봐 모든 문을 꼭꼭 걸어잠근 채, 건샌로지스의 November rain이나 들으며 온종일 나를 감금시킨다. 내곁에 누가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물리적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나는 늘상 저런 모양새로 지겨운 계절을 버티었다.

  요즘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읽고 있다. 다른 책을 훑어보러 갔다가 충동구매를 했다. 유명한 책이니 만큼 익히 들어온 제목이었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언젠간 읽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저런 식으로 무턱대고 사들일 줄은 몰랐다. 이게 다 지금이 2월이기 때문이다. 3월 1일에만 갔어도 훨씬 계획성 있는 구매를 했을텐데. 책의 내용마저 부실했다면 2월과 완전 등질 뻔 했지만 다행히 큼큼거리는 호기심을 갖고 즐겁게 읽고 있다. 콜린 윌슨은 이 책을 스물넷에 써서 하룻밤 사이 유명해졌다는데 그 나이답잖은 방대한 독서량과 지식 수준에 한 번 놀라고, 그 모든 사상과 인물들을 아웃사이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통합해내는 통찰력에 두 번 놀라고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적확한 단어가 과연 이것 뿐이랴, 하고 의구심을 자아내는 아리송한 번역인데 역자는 소심하거나 혹은 친절하게도, 어려운 부분은 한 번 더 읽어보면 명확해질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노파심에 풋, 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이해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정규교육 제대로 받은 작가들의 체계적인 글에 비하면 이처럼 한 구절, 한 구절이 쓴 사람만 알거나, 혹은 쓰면서도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라고 머리를 긁적였을 법한, 번뜩이는 아포리즘 천지인 글을 번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매끈한 독서가 되고 있진 못하지만 이 책의 가치를 못 알아볼 만큼은 아니다.

  아웃사이더, 라기에 생각났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너무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랬나. 내가 아는 아웃사이더들은 대개 평범한 생활인이 되었다. 아니면 그들은 애초에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대학 동기 J는 오로지 드럼을 배우고 싶어 교회에 다닌 케이스였다. 강의 빼먹고 드럼을 치러 가는 일이야 다반사였고 칸막이가 있는 어학실 구석 자리에 앉아서 양손에 볼펜을 들고 투닥거리는 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다들 외국어나 컴퓨터 과목을 교양으로 선택할 때 그와 나는 수강생이 채 열 명도 안되는 철학 강의를 들으러 인문대로 건너가곤 했는데 '이지 라이더'라는 영화를 보던 어느 날엔,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여자친구를 강의실로 데려와 우리를 경악시킨 적도 있었다. 강의가 슬슬 지겨워지는 오후에는 언제나 그렇듯, 자아도취에 빠진 교수님에게 J가 빨리 딴지를 걸어서 이 지루한 수업 시간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우리는 그를 군대에 보내면서도 다들 불안해 했지만 J는 능글맞고 얄짤없는 군바리가 되어 군생활을 너무나 잘 즐겨주는 바람에 다들 약간씩 실망했다. 졸업을 한 후로는 그를 잊고 지냈는데 얼마전 K가 텝스시험장에서 그를 봤다며 소식을 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열심히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시험장에 양복을 입고 온 그는 삼십대처럼 보였단다. 왠지 배신당한 듯한 기분이 잠시 스쳤지만 그의 궤도가 현실로 돌아왔음에 안도했다.

  동아리 선배 M은 순수한 괴짜였다. 겉과 속이 자로 잰 듯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H와 그 선배가 싸우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른 선배와 이야기를 하느라 신경 쓰지 않던 사이, 소주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선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몇 마디 거친 욕이 들렸고 H는 발악발악 대들며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옹 대접을 받았던 몇몇 나이 많은 선배들이 서둘러 싸움을 말렸고 아쉽게도 나는 기숙사 점오시간 때문에 마무리 씬을 못 보고 돌아와야 했다. 물론 그 후에도 그들은 아주 잘 지냈다. 아니, 외관상으로만 보기엔 전보다 더 잘 지냈다. 아무튼 M 선배는 그처럼 못 말리는 다혈질이었다. 직선적으로 말했고 노골적으로 행동했다. 낄낄거리며 담배를 피워 물 때는 영락없는 폐인인데 그가 쓴 글은 아름답고 솔직했다. 선배는 졸업 후 고향의 군청 공무원이 되었고 얼마 전 결혼을 했다. 신혼인데 매일 야근이라며 툴툴거리더니 자기 동생을 소개시켜주겠다며 한 번 생각해 보란다. 손사래를 치며 선배 같은 시아주버니는 사양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감정의 촉수가 옛날 같지는 않지만 뭔가를 받아들이거나 해석하는 이해력 만큼은 옛날보다 나아졌는지 모른다.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지만 더 이상 막무가내도 아니다. 2월이 그냥 싫어, 라고 말해버리면 모든 것이 암막으로 가리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왜 2월을 싫어하냐면, 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 된다. 변명을 위한 망설임이 아니다. 내치지 않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계절이든. 2월 때문이다, 라고 하기에 사실 나는 내 강박과 짜증과 불안의 원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달력을 한 장 찢거나 넘겼고 오늘 하늘은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들쭉날쭉한 감정의 파고와는 상관 없이 2월은 소리소문 없이 가고 있고 수선을 맡긴 봄옷들을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겨울을 나면서 3kg이 빠졌다. 올 겨울 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고 고백해야 할까.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내 궤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웃사이더가 예술가일 수는 있지만, 예술가가 반드시 아웃사이더인 것은 아니다, 라는 콜린 윌슨의 말은 옳다. 정기적으로 영어시험장을 찾는 양복 차림의 삼십대. 그들도 한 때는 아웃사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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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2-2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3월이 코앞이에요. 여행을 좀 다녀왔는데 갔다 오니 그 뿐, 또 그 자리네요. 오히려 여행이 헛헛해질 만큼. 저는 3월이면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지 않으면서도 3월에 해야할 일을 2월에 미리 차곡차곡 정리하기도 해요. 3월 1일이 되면 짠, 하고 일을 시작할 것 처럼요.

깐따삐야 2007-02-2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달력의 숫자들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사는 방법은 없을까요? 열심히 살다보면 달력의 숫자들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걸까요? 계획하고 구상했던대로 짠, 하고 시작해서 짠, 하고 마무리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7-02-28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7-02-2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하핫, 그쵸. 한 가족이 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 말예요.^^

이잘코군 2007-02-2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기억에서 제 동기와 선배와 제 모습들을 찾게 되는군요.

BRINY 2007-02-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시는군요! 지난 가을 모 경시대회때 학생 데리고 찾았던 교원대 모습이 새롭습니다.

깐따삐야 2007-03-0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음.. 님도 분명 괴짜 기질이 있으세요. 좀더 어릴 때는 더하셨죠? ^^

BRINY님, 그동안 오랫동안 공부를 놔서, 학생 노릇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님도 힘차게 새학기 출발하시길!
 



  아름다운 비욘세 말고도 볼 것이 많은 영화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에 견줄 만한 스케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갖출 것을 제대로 갖췄다 싶을 만큼 웰메이드 뮤지컬 영화였다. 무엇보다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절절하고도 감미로운 흑인 음악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평소에 리듬 앤 블루스나 재즈 등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 취향과는 별도로, 음악과 체육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검은 피부의 활약상은 역시나 놀라운 것이다. 대개 그냥 말할 수 있는 것도 노래로 말하면 쿡, 하고 웃음이 삐져 나올 때가 있는데 드림걸즈의 주인공들이 대사를 노래로 대신할 때, 관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 누가 웃으면 어떡하나, 속으로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더랬다. 상대방이 무슨 일인가로 흥분하거나 실망해서 진지한 대사를 읊고 있는데 그 면전에다 대고 워우워우워, 한다는 건 자칫하다간 비극적인 상황도 희극적으로 보이게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짓을 벌이다가 본의 아니게 망신당한 적도 있고. 하지만 드림걸즈의 출연진들은 죄다 사람이 노래인지, 노래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심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매력적인 소리통이 되어 가슴을 파고들고 머리를 관통했다. 감정의 오버라고 해도 좋다. 나는 그녀들의 노래를 듣던 도중에 잠깐 울 뻔 했다.

  그들만의 음반을 내기 위해 뭉친 트리오, 디나(비욘세 놀즈 분), 에피(제니퍼 허드슨 분), 로렐(에니카 노니 로즈 분)은 어느 오디션 현장에서 쇼 비즈니스계의 매니저 커티스(제이미 폭스 분)로부터 가수 제임스 얼리(에디 머피 분)의 코러스로 활동해 줄 것을 제안받는다. 처음엔 다른 가수의 코러스나 하고 있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에피의 반대로 무산될 조짐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세 사람은 믿고 따라온다면 머잖아 음반을 내주겠다는 커티스의 약속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후 그녀들은 제임스 얼리의 공연을 따라다니며 쇼 무대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고, 커티스는 리드보컬 자리를 에피에서 디나로 바꿈으로서 드림걸즈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 한다. 음악적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에피는 크게 반발하게 되고, 연인이었던 커티스의 애정마저 디나에게로 쏠리자 팀을 탈퇴하고 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점점 더 화려한 상품으로 변모되어 가던 디나는 매니저인 커티스와 결혼함으로서 음악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성 댄스 가수로 색깔을 굳혀가게 된다. 성공에 눈이 먼 커티스는 재기를 위해 준비했던 에피의 노래마저 가로채기하고 이에 반발한 에피와, 점점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 환멸을 느끼던 디나는 서로 화해의 계기를 맞게 된다. 조종당하는 인형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색깔을 찾기로 결정한 그녀들은 드림걸즈의 마지막 공연에서 화려하게 재회한다.

  머라이어 캐리를 무척 좋아하던 아이가 전에 '글리터'란 영화 시디를 주었고, 가수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대개 그렇듯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몹시 실망하며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는 간데온데없이 영화 속의 그녀는 딱 김빠진 사이다 같았다. 김빠진 사이다는 밍밍하긴 해도 미약하게나마 단맛이라도 남으니, 그 흔한 비유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한 가지 발견이라면, 그녀의 상대역이었던 '맥스 비슬리'라는 배우였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아둔한 연기력 때문에 멋진 남자배우 하나 애먹였다, 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가수로서의 그녀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듯 한 시절을 풍미했던 휘트니 휴스턴, 타고난 음폭으로 자유자재로 노래를 부르는 셀린 디옹과 더불어 팝계의 3대 디바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가수로서 무대를 꽉 채우던 그녀는 영화 속 어느 장면에서도 나는 머라이어 캐리다, 라고 말하지 못했다. 드림걸즈에는 비욘세가 나온다길래 나는 사실 비슷한 지레짐작을 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싶었던 건 에디 머피를 보면서 실컷 웃고 싶었고,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에 구미가 당겼고, 스토리와 메시지가 있는 영화보다는 그런 건 다소 뻔해도 좋으니 편히 앉아서 화려한 쇼와 흥겨운 노래를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쉽게 가자, 였다. 대충 예고편과 홍보기사만 훑어도 감이 왔다. 드림걸즈가 지닌 상업성과 음악성, 그 점에 이끌렸다.

  변덕스런 흥 이면에 감춰진 무기력한 절망을 연기했던 에디 머피나, 온몸을 울리는 듯한 파워풀하고 개성 넘치는 가창력을 선보였던 제니퍼 허드슨,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자연과 본성 그대로의 검은 피부인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고혹적인 이집트 여인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비욘세와, 궁리가 많은 눈빛을 한 채 영리하고 계산적인 매니저 역할을 선보인 제이미 폭스는 오히려 제조된 케릭터처럼 평범했다. 고의적인 구도이자 설정일테지만, 나는 에디 머피나 제니퍼 허드슨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온 것 같았다. 비욘세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예쁘고, 영화의 흐름이 진행될수록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연기도 글리터의 머라이어 캐리에 비하면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56%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이 팔리는 맛. 그래도 길들여졌기에 가장 먹을만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실제로 제니퍼 허드슨의 절창이 이어질 때조차, 예쁜 비욘세는 언제 나오나, 하고 잠깐씩 생각하기도 했다. 바비인형 같은 백인 여가수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고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그녀는 참 예뻤다.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장면에서 혼자 웃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느슨한 마음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픈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본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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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2-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뭔가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귀가 솔깃하는데, 이 영화도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왜 56%를 보니 드림카카오가 먼저 생각이 날까요? ^^

마태우스 2007-02-2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욘세의 미모에는 동의하는데요...전 이 영화가 내내 혼란스러웠어요 뭐가 선이고 악인지가 헷갈렸고, 또 주인공이 일정하지가 않아서 집중이 잘 안됐어요 다만... 음악은 좋았고, 싸우는 것도 노래로 하는 게 신선하더이다.

깐따삐야 2007-02-2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파시오나리아님, 반갑습니다. 드림카카오 맛을 연상하며 쓴 것 맞아요. ^^

마태우스님, 아무래도 유명 가수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들은 대개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노래 나올 때만 좋다는 거. ㅋㅋ

Mephistopheles 2007-02-2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철수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서 이 영화의 실존그룹 "슈프림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더군요..결국 리더자리를 빼았긴 후 그룹 해체 후 에피는 페렴으로 새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프로듀서와 메니저 격인 커티스는 상당히 잔인한 면모를 지닌 냉정한 사람이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써의 인정을 받진 못하지만 슈프림스도 비틀즈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넘버 원 싱글 힛트는 비틀즈보다 많다고 하네요..^^

레와 2007-02-2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은 영화가 속속 개봉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가 또 하나!

행복한 날들입니다.^^*

깐따삐야 2007-02-2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흑인 뮤지션에 대한 천대라든가, 쇼비즈니스계의 어두운 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어요. 역시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냉정했겠죠.

레와님, 레와님은 참 밝은 성품이신 것 같아요. 즐거운 봄 맞으시길.
 
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없다. 그런데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건 농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글줄이나 써가며 편안하게 살아왔으면서 웬 엄살인가 싶고, 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꿈도 망상도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 때문일 듯 싶다. ...... 여자들은 요새 여자들 핸드백처럼 늘 호미가 든 종댕이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김매고, 밭머리건 논두렁이건 빈 땅만 보면 후비적후비적 심고 거두던 핏줄의 내력은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꽤 집요한 것 같다. (p. 51)

  여러가지 사정 상, 당장 그러기는 어렵겠지만 가족들에게 종종 시골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을 비칠 때가 있다. 나중에 아이들을 낳고 기를 때에도 그 곳이 산도 있고 들도 있는 시골이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위의 대목처럼 이건 꿈도 망상도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 때문일 듯 싶다. 어릴 적, 추운 겨울마다 앞마당의 샘에 나와 머리를 감을 때에는 내가 하루빨리 이 곳을 뜨던지 해야지, 라고 투덜거리곤 했고 그건 순전히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스컴에서 귀농이란 말이 들려오거나 기회가 닿아 산과 들을 둘러보고 올 때면 마음이 공연히 뒤숭숭해지곤 했다. 촉촉한 흙의 촉감과 달큰한 딸기향을 오감으로 느끼며 맨발로 딸기밭을 매던 아이,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즈음 된장찌개에 넣을 풋고추를 따기 위해 고추밭으로 달려가던 시골 아이가 바로 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집요하다. 그 기억은, 아마 요즘의 아스팔트 킨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촌스러운 유전자를 내 몸 어딘가에 집요하게 새겨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을 닮아간다 했던가. 박완서님의 신간을 읽으면서 이 분도 자연히 자연을 닮아가는구나,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이제는 눈이 아파서 글도 제대로 못 읽겠구나, 하시던 엄마를 떠올리며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 한 권을 묶어내기 위해 때로 깔깔한 눈도 비비고, 저려오는 손도 주무르고, 뻐근해오는 어깨도 두드리고 했을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니 잠시 송구스럽기도 했다. 값싼 재주만 부리다 쉬이 잊혀져가는 작가들에 비하면 알토란 같은 얘깃거리를 들고 뒤늦게 등단해 지금껏 모범적 삶을 일궈오고 있는 박완서님은 문단의 원로이자 우리시대의 어머니, 라고 해도 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히 요술을 부린다 싶을만치 비루하고 남루하기 그지없는 인간사를 천의무봉의 글솜씨로 요리해내는 것을 보면서 타고난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감탄했더랬다. 그러나 읽기 쉬운 글은 그만큼 쓰기는 어려운 법.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동네 사랑방 수다 같기도 한, 쉽고도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락을 읊기 위해서는 점점 더 노쇠해지는 심신과 싸우는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31년생의 작가가 두툼한 수필집을 묶어 내놓고는 책머리에 '하지만 이 나이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지는 한 편, 어쩐지 빙글빙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새 책에서 작가는 꽃을 키우고 풀을 매고 계절을 보내며 나이 들어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과, 음식과, 시대와,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를 나로 있게 하고 작가를 작가로 있게 한 것, 결국 팔할의 바람이란 것은 그 사람과 음식과 시대와 엄마가 아니겠는가. 소싯적의 옴팡진 촌철살인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지만, 기억들을 보듬어 감싸 안는 작가의 품이 훨씬 더 푸근하고도 넉넉해졌다. 글을 읽으며 문득 나도 박완서님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인형을 업고 있는 외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밥숟가락 위에 참게장을 올려주며 입맛을 잡아주는, 곰살맞고도 유머러스하고, 맛깔스런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별난 사연도 많이 아는, 세상살이와 살림살이에 빠삭한, 귀엽고도 야무진 할머니. 늙수그레하더라도 누추하지는 않게끔, 그렇게 나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

  먼저 산 세월이 한참인 원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전부 다 공감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지만 요즘의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 가는 데가 더 많았던 건 사실이다. 지나온 자의 여유와 거쳐온 자의 통찰이 행간마다 넘쳐났고 삶은 곧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은 곧 그의 글이다, 라는 말을 실감했다. 봄이면 논둑마다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쑥이며 냉이를 캐러 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다짐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너무도 한적해서 때때로 심심했지만 지금처럼 때때로 고독하지는 않았던, 그 모든 게 사실은 자연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순수한 생명력 때문이었다는 깨달음을 세월이 흐를수록 절감하고 있다. 이제는 농촌도 예전의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움직이는 단 몇 평의 땅이라도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맨흙땅이었으면,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마늘쫑을 뽑아 밥상을 차리는 소박한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택배 상자 안에는 과꽃의 씨앗 한 봉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올해도 과아꽃이 피었습니다아...하던 노래의 그 과꽃. 이미지를 찾아보곤 아, 하는 반가움과 함께 지천으로 피어나던 들국화를 떠올렸다. 나는 과꽃을 부르면서도 과꽃이 과꽃인 줄 몰랐구나. 한 때는 우리 고향집 앞뜰에도 갖가지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났었다. 까만 씨앗을 깨뜨리면 하얀 분가루가 나오던 분꽃, 물관의 흐름을 살펴본다고 자연시간에 뿌리째 뽑아가야 했던 봉선화, 외사촌 동생이 잘 그리는 꽃 모양처럼 생긴, 예쁘기도 한 이름을 가진 채송화... 고향 땅을 떠나온 지금, 봄을 맞이하여 나는 이 꽃씨를 땅이 아니라 내 마음에 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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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2-2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분이 무슨 글을 이리 구수하게. ㅋㅋ
깐따삐야 님의 소망처럼 늙어가실 거라고 예감해요.
곰살맞고도 유머러스하게.
제가 깐따삐야 님 글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거든요.

깐따삐야 2007-02-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근본은 속이지 못한다고 제 뿌리가 시골에 있기 때문인지, 때로 이렇게 시골 아줌마스러운 글을 쓰는가 봐요.

봄봄 2007-02-2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인터뷰글을 옮겨봅니다^^

-70대의 시간이 마음에 드십니까?
=뜻하지 않은 나이죠. 예정에 없었던. (웃음) 걱정도 없고 먼 계획도 없고 하루하루 편안히 가요. 예전에는 작가로서 계약도 하고 연재도 했지만 이제는 매이는 일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찌 보면 여벌의 삶이지만 내가 원했던 삶이 이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경제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내가 온전히 독립했다는 자유의 느낌이 굉장히 좋습니다.

깐따삐야 2007-02-2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70대의 시간이라... 저로썬 아직 상상하기 어렵지만 경제적, 육체적, 감정적으로 온전히 독립했다는 자유의 느낌이라니, 늙는 것도 기대가 되려 합니다. 물론 한평생 남들보다 열심히 산 원로 작가나 누릴 수 있는 복록이겠지요.^^

봄봄 2007-02-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라지요..아,,근데,,넘 부러분거 있죠..감정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요즘 이 방을 자주 오네요^^ ㅋㅋ
 

  또 한 번의 졸업식. 교사가 된 후 어제로써 두 번,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이번 아이들은 나와 인연이 깊다면 깊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맨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었고 그 때 우리는 모두 새내기였다. 1학년 신입생과 신규 교사로 만나 온갖 시행착오와 악다구니 속에서 겁나먼 일 년을 보냈다. 어리버리한 교사와 천방지축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이란 매일매일이 거침없이 하이킥, 이었다. 선배 선생님들은 처음 가르쳤거나 처음 졸업을 시킨 아이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지만 아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우리 그만 잊기로 해요, 라는 절절한 목소리만 되돌아왔다. 그런데 한 해 동안 학년이 엇갈려 떨어져 지내다가 3학년이 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서로 뭔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남자중학교라지만 어쩐지 이제는 서로를 향해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았다. 어제 Y는 편지에 그런 말을 썼더랬다.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했는데 재작년과는 달리 수업시간에 웃음도 많아지고 재미있어서 좋았노라고. S의 편지를 읽고 났을 땐 낯이 뜨거워졌다. 우리를 가르치실 때는 별로 웃지도 않고 혼내시기만 했는데 작년에 3학년 형들한테는 많이 웃고 잘 대해주시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질투도 났었다고. 하지만 왠지 1학년 때의 선생님 모습이 더 좋았다고. 나는 사실 그 동안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헤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진심을 전하는 그 마음까지도 알 것 같다. 서로 아옹다옹하면서 소진했던 일 년이었지만, 훨씬 여유로워지고 화기애애해진 현재보다 왜 그 때를 그리워하는지도.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넘어질 듯한 열정으로 오해의 벽과 이해의 문 사이를 들락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때, 아이들이 내게 바랬던 것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이해, 라는 것도 결국 타이밍의 문제다. 

  졸업식과 종례를 마치고 누나와 함께 우리 교실로 찾아온 W는 급기야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몰라보게 훌쩍 자란 녀석이 훌쩍거리니 당최 마음의 갈피가 잡히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왔지만 잘 달래서 보내야 한다, 는 생각만 계속 났다. W는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던 아이다. 반 배정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와 일단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의자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빼빼하고 예쁘장한 아이가 계속 몸을 비틀며 눈에 띄도록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곱게 자란 예민한 아이구나. W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나중에 알고보니 역시 집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귀한 아들이었다. 잘 먹지 않아서 몸이 약한 편이었고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W는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만화를 그렸고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를 때마다 W의 만화노트를 보며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이어질 내용을 함께 구상해 보기도 했다. 말수가 적고 몹시 까다로운 아이였는데도 처음부터 쉽게 말을 붙이고 폭폭 안겨오는 아이들에 비해서 왠지 더 정이 가곤 했다. 교사에게는 아이들을 향한 호오의 감정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것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서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정이 가거나 매력을 느끼는 케릭터가 존재한다는 건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다르지 않다. 

  아팠다기 보다는 무슨 일인가로 마음이 너무 상해서 학교에 나가지 못했을 때 W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찾아왔었다. 간식을 좀 내어오자 맛있게 먹는가 싶더니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손으로 꼭꼭 찍어서 다시 쟁반에 털어놓던 모습이 떠오른다. 깔끔한 녀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고싶었어요, 라고 말하는데 속으로 문득 놀랐고 굉장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아프면 그 집의 아이들이 풀이 죽는 것처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 만큼은 계속 씩씩해야겠구나, 다짐하기도 했다. 3학년이 되어서 아이들의 장난에 맥을 놓고 있던 내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풀어주려 했던 것도 W였다. 하지만 그 반 아이들이 다시 안심하고 난리를 피울까봐 나는 일부러 W를 포함한 그 반 아이들 모두를 담담하고 차갑게 대했다. 어제서야 비로소 그런 내 마음을 전했다. W는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 걸음을 잇지 못한 채 꺼억꺼억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울어본 기억이 없다. 교생실습 마지막 날, 작년의 졸업식에서도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한 분위기야 있었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나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큰 W의 등을 토닥이며 선생님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네 소식 누구한테라도 꼭 물어볼테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등등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모든 말을 해가며 W를 달랬다. 그 눈물이 무척 고맙고도 미안했다. 한 치의 티끌도 섞일 틈이 없는, 순도 백퍼센트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면 바로 어제의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W의 이야기를 하자 엄마는 W의 어머니가 예전에 보내주셨던, 깨농사를 직접 지어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기억해내셨다. 농사를 짓듯 아이들에게도 꾸준히 정성을 기울이는 부모님과 참하고 다정한 누나가 곁에 있으니 W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고 스스로를 아낄 줄도 안다.

  신규였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아이들의 폭은 딱 우리 학급 뿐이었고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에게 만큼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해주었다.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오버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의 질투를 샀고 그럴수록 내가 다른 반 수업에 들어가면 교실은 고의적인 장난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착하고 말 잘 듣는 우리 반 아이들이 더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그런 마음을 표현하면 할수록 다른 반 아이들은 더욱 더 심술궂고 교활해졌다.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제 무덤 파는 격으로 나는 참 미련하고 어리석었다. 그렇듯 악순환만 되풀이 하다가 앙금만 잔뜩 맺혀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아이들이 어제의 졸업생들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아이들이 다시 우리 반이 되기도 했고 나와 매일매일 다정하게 속닥거리던 아이들이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맨 끝 반 교실로 배정되기도 했다. 학년별 교과 담당 교사를 발표하던 조회 시간에 내 이름이 강당에 울려퍼지자 여기저기서 고함과 휘파람이 섞여 나오는 등, 우스운 진풍경이 벌어졌고 영문을 모르는 다른 선생님들은 내가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줄로만 아셨다. 하지만 그건 환영이 아니라 어이없음, 이었다. 아무튼 그 어이없는 인연의 사슬에 매여 다시 일 년을 보냈고 재작년의 끔찍한 악몽에 비하면야 그 정도만 해도 무릉도원에서 노니는 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았다. 자잘한 사건사고가 끊일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3년만 채우고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가야만 한다, 가고야 말 것이다, 라고 늘 생각했으니까. 올해 나는 여기에 없다. 발령 통지를 받았고 다른 학교로 가시는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나도 떠난다. 올해에도 여기 계실 거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노처녀 되기 전에 결혼이나 하시라는 둥, 공부라니 징글맞지도 않느냐는 둥, 선생님은 확실히 공부 좀 더 하고 오셔야 된다는 둥, 별별 녀석들이 다 있었다. 괴짜들 덕분에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도 많았고 이런 감정이 보람이라면, 보람도 느낀다. 그리워질 무렵이면 다시 돌아오겠지.

  그 눈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고, 지쳐 있을 때마다 나를 웃겨 주려 했던 너희들의 마음씨 또한 그럴거야. 고백하건데, 속으로는 킥킥대고 얼굴로는 근엄하느라 나도 힘들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마냥 순수할 수만은 없겠지만 너무 빨리 철이 들지는 말기를. 졸업과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희들이 장난 칠 때마다 선생님이 잘하던 말 있지. 그러니까 좋아? 재밌어? 행복해? 그렇듯 내내 좋고 재미있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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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2-1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07-02-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봄봄 2007-02-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이해, 라는 것..시차의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님도 재미난 새해 맞으시길..

깐따삐야 2007-02-20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때가 되면 이해하게 되곤 하죠. 님도 즐거운 한 해 보내세요.^^

레와 2007-02-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앙..

오늘, 멋찐 제자들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깐따삐야 2007-02-2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제자들이 멋지게 성장하고, 저도 제발 훌륭한 선생님이 되라고 빌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