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고르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많이 노골적이다. 남편 고르기. 쇼파에 앉아 이 책을 읽던 나를 향해 빗발치던 비웃음 섞인 눈총들. 약 십 년 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와 흡사한 분위기였다. 가족들은 나를 아직도 어른으로 보지 않고 있다. 막내이긴 하지만 이제 그다지 막무가내는 아닌데 늘상 대놓고 어린애 취급이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에 대해 열변이라도 토할라치면 하여간 말은 잘해, 못박아 버리시고 아빠는 더 들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듯 귀를 닫고 계신 듯 하며 오빠는 가끔 볼 때마다 꼭 한 두번은 머리를 툭툭 쳐대곤 한다. 작가 하 진이라면 아마 이런 상황을 기막힌 반전으로 처리하겠지. 나의 상상력은 가족들이 놀랄 만큼 진짜 멋진 남자를 데리고 나타나 나 결혼할래, 라고 외치는 것에서 진부하고 유치찬란하게 끝이 난다면, 하 진은 뭔가 아주 배꼽 빠질 듯 재미있거나 가슴이 뜨끔할 만큼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반전을 선사할 것 같다.

  이 책은 좋은 남편을 고르는 백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이 아니다. 우연히 모르는 이의 블로그에 흘러들어갔다가 하 진이라는 작가에 관해 대단히 호평을 해놓았기에 일단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믿고 책을 구하게 된 것은 그 블로그 주인장이 쓴 다른 글들 때문이었다. 이 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책을 읽어봐도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선택은 옳았다. 국내에는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와 <남편 고르기> 두 권의 책이 출간되어 있는데 두 권 모두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로알드 달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군더더기 없이 상큼하게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찡하고 뜨뜻한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단편들이었다. 작가의 손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니 작가가 스무 번 이상 원고를 수정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과연 그렇구나, 끄덕여졌다.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수공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감칠맛이 나는 것이구나 싶었다.

  책에 실린 단편의 소재들은 특별하지 않다. 마오쩌둥과 개방화 사이에 엉거주춤 서 있는 중국 변방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개는 완고한 집단과 자유로워지고픈 개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일견 중립적인 톤으로 상황을 줄곧 묘사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부조리와 모순 탓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실함을 드러내고 마는 공산주의와 집단논리를 은근히 조롱하면서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과 선택에 손을 들어주는, 휴머니즘적 경향이 짙다. 과도기 속에서 빈부격차로 인해 피폐해지고 잔악해지기까지 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족족 등장하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공감할 수 있는 폭도 컸다. <남편 고르기>와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는 비슷한 소재와 형식이기 때문인지 어느 단편이 어느 책에 있었는지 두 권 모두 읽고 났을 땐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각 단편들의 수준이 고르게 훌륭하며 작가가 일관성 있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가 뚜렷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중국에 다녀온 덕분에 장면마다 등장하는 음식들이라든가 생활상들이 비교적 선연해서 그 재미 또한 쏠쏠했다.  

  고수가 차려놓은 맛깔스런 단편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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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2-0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작가로군요..
흐음.. 그러고 보니 전, 중국 작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일단, 보관함으로~!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쨍한데, 바람은 머리통 얼어버릴만큼 차갑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깐따삐야님!! ^^*

깐따삐야 2007-02-0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처럼 햇볕은 쨍하고 바람은 찡한 날씨, 무척 좋아라 합니다. 레와님도 아프지 마시고 씩씩하게 지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