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서운하기도 하고, 발도 시렵고, 잠은 안 오고. 논문의 향방은 여전히 첩첩산중.

 머리는 안 돌아가고, 배도 고프고, 띰띰한데 훈훈한 페이퍼나 하나 써보자궁.


 누에고치가 아니라 호빵이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적시면~ 생각나는. 간혹 급하게 먹으려다 종이까지 먹어버리거나, 뜨거운 단팥에 입천장을 데이기도 하는. 나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터미널 매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이 투명한 보온 유리통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호빵의 지존은 역시나 단팥호빵. 진한 단맛 때문에 요즘은 단맛이 덜한 안흥찐빵이 각광을 받기도 하지만, 삼립 크림빵과 함께 면면히 세대를 이어오고 있는 제빵계의 지존. 그 진득하고도 촌스러운 단맛은 따듯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마트에 가면 묶음 할인으로 팔 정도로 지금은 너무 흔해져버렸지만, 그러나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는 말랑말랑 호빵.  

 



 학교에 가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따뜻하게 데워진 캔커피를 사는 일. 차가워진 손을 녹이며 한 모금 마시면 온몸에서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위의 사진은 요즘 반응 괜찮은, 골라 마시는 원두커피. 머잖아 나오리라 기대했었고 그 기대가 현실화된 제품. 언젠가 코트 주머니 안에 캔커피를 쏘옥 넣어주고 사라졌던 귀여운 그 남자는, 알래스카에서 자판기 사업이라도 하고 있으려나 원.-_-

 



 추억의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의 번개머리 이의정에게 딱 어울릴 법한 딸기목도리. 사람이 가장 추위를 많이 느끼는 곳은 목이라고 한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폴로티가 유행하는 건지도.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다양한 머플러로 멋을 낸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단발머리에 어벙벙하게 생긴 나는 자칫 머플러를 잘못 두르면 성냥팔이 소녀가 따로 없다는.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땐 잽싸게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며, 마음에 둔 남자가 있을 경우 매주는 척 하다가 묶어서 끌고 오는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 단, 반드시 입부터 막아야 하며 힘도 더 세야 함.-_-

 


 역시 우리의 마음을 금방 따숩게 하는 동시에, 가장 보시기에 좋은 것 또한 훈남 아니겠는가. 쌀쌀한 겨울에 어울리는 타입은 고전 훈남, 그레고리 팩. 이름도 팩이네.-_- 온화한 미소와 중후한 매너를 겸비한 그를 방한용 훈남으로 강추하는 바. (화끈한 여름에는 말론 브란도 사진을 올려야지.) 그나저나 왜 나는 주로 클래식 꽃미남들에게 팍팍 꽂히는 건지. 잘 자란 그레고리 팩 하나, 열 브래드 피트 안 부럽다는.

 


 별명이 또자인 잠꾸러기 친구와 함께. 겨울엔 왠지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친구보다는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 눌러앉아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조금은 느긋하고 게으르다 싶은 친구를 만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사계절 내내 할 일만 생겼다 하면 넘치는 에너지로 주체할 수 없는 나는, 양분이 모자라 시름시름 움츠러드는 그네들에게 묵묵히 이 한몸 다 바쳐 거름을 친다. 항상 조용하고 의젓하게 나의 수선스러움을 받아주는 친구. (눈이 부었다고 주장하며 무서븐 뿔테 안경까지 쓰고 찍은 그녀를 배려해, 대충 소프트 처리했음)

 



 결재용 카드 말고. 크리스마스 카드. 그러고보니 카드 써본지도 오래 되었다. 요즘은 빠르고 편한 e-카드를 많이 사용해서 다른 사람이 디자인한 그림에, 다른 사람의 필체로 보내곤 하지만, 학창시절 미술 시간엔 색지와 한지, 골판지 등을 이용해서 손수 카드도 만들곤 했는데. 지우개에 이름을 파서 멋지게 낙관도 찍고 말이다. 이번 연말과 새해에는 내 글씨를 꾹꾹 눌러쓴 카드를 보내봐야겠다.



 사랑? 포옹? 불꽃놀이? 이슬람 여행? 노우노우노우. 바로 '알라딘'이다. 헤아려보니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처음으로 글을 올린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와 아옹다옹하던 아이들이 졸업을 해서 벌써 고3이 된다 하고, 나는 아이들 몰래 연애도 하고 공부도 했다지 아마. 돈맛은 알아가는데 밥맛은 예전같지 않아 살이 조금 빠졌고, 그 때나 지금이나 귀찮은 건 딱 질색인 걸 보면 여전히 철이 덜 든 건 분명하다는. 리뷰의 몇 배에 해당하는 페이퍼 수에 식겁하는 중인데,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할 말만 많아지는 건 아닌가에 대해 고민 중이라는 풍문. 알라딘은 내게 있어 책 한권 끼고 쉬러 들어가는 편안한 사랑방 같은 곳이다. 이미 나를 알아온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나만의 서재인 동시에, 내가 좀 뜸하더라도 늘 거기 있어주는 변덕스럽지 않은 공간. 또 서재 3.0으로 바뀌지만 말아다오.-_- 

 

  잠이 안 와 시작한 페이퍼인데 쓰다보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이런 걸 가리켜 자뻑이라 한다지. 몸을 뉘여 잠을 청해야겠다. 아후, 발 시려워라. 그치만 내일은 덩치 크고 식성 좋은 손님들 덕분에 무수리 발바닥에 불날텐데 모.

 따숩은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2-02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2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03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12-0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줘야합니다. (지난 주 내내 칼출근 아아...)

깐따삐야 2007-12-02 16:12   좋아요 0 | URL
12월은 학교는 물론이고 어느 직장이나 참 바쁘죠. 저는 일단 방학하면 사흘 정도는 암껏도 안 하고 내리 잤던 것 같아요.^^

hnine 2007-12-0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페이퍼네요 ^^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적시면~' ㅋㅋ 오랜만에 들어보는 cm송이네요. 김 도향 목소리였던가요?

깐따삐야 2007-12-02 17:16   좋아요 0 | URL
김도향 아저씨 목소리 맞아요. 전 어릴 때 들었던 입에 밴 CM송이 많아서요. 가끔 심심할 때 부르곤 합니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베베 꼬였네~ 둘쭉날쭉해~ 뭔지 아시겠죠? ㅋㅋ


Mephistopheles 2007-12-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고리펙.....이라니..
하긴 남자배우나 여자배우나 저때 배우들이 활씬 더 잘생기고 이쁘고 멋졌어요..

깐따삐야 2007-12-03 13: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레고리 팩을 닮은 포근한 핫팩인형을 갖고 시포요.ㅋ

비로그인 2007-12-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보다는 저때 배우들이 더 좋아요. 고전적인 미인, 해서 요즘 스칼렛 요한슨을 꼽는다던데, 천만의 말씀! 고전 흉내만 슬쩍 내려다 만 격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알 파치노를 추천합니다. dog day afternoon의 그 미모는 지금 보아도 절대적이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호빵과 만두를 사서 집에다 쟁여놓았는데, 이런 호빵스러운(칭찬임) 페이퍼라니, 깐따삐야 님 글 참 좋아요. 후후훗

깐따삐야 2007-12-03 13:23   좋아요 0 | URL
칼있쑤마의 절대강자, 고전 꽃미남계의 대부, 알 파치노. 넘흐넘흐 잘생기셨죠! 또 흥분.-_-

Jude님, 맛난 거 많이 드시고 지금처럼 후후훗, 하고 웃으시면서 건강하게 지내셨음 좋겠어요. 호빵스러운 기분이 태교엔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프레이야 2007-12-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저도 붕어빵 꼭 사먹을거에요^^
조근조근 따뜻해졌어요, 깐따삐야님..

깐따삐야 2007-12-04 18:58   좋아요 0 | URL
오늘은 붕어빵의 아삭바삭한 꼬리가 생각나는 날씨였어요. 따듯해지셨다니 다행이에요.^^

라로 2007-12-04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는 자주 써주셔야 함`. 자뻑이든 아니든,,,
붕어빵과 더불어 호떡두 사먹구
오뎅에 오뎅국물 후루룩 마시기도 할께용~.
넘 귀여운 깐따삐아님~~~.ㅎㅎ

깐따삐야 2007-12-04 19:01   좋아요 0 | URL
nabi님 댓글을 보니 오뎅을 넣고 끓인 얼큰한 김치국이 먹고 싶어요. 아, 이 음식에의 파생력.-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