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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평점 :
"난 일찍 세상에 통달했어요. 사랑, 회한, 연민, 비겁, 비굴... 언제였더라. 서른넷이었어요. 그때 천진난만을 버렸죠. 특별한 계기? 없어요. 졸업한 느낌으로 평생 살았어요. 사람과 사람이 부딪쳐 순간순간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다 알지요. 그러나 스스로는 큰 재미가 없었어요. 사람을 만나도 흥분, 기대, 호기심, 이런 게 없었어요. 사람이라는 것의 한계를 깨우쳤달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 했어요."
권수가 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던 책들을 정리했다. 왜 샀을까 싶은 것부터 출처가 불분명한 것까지 분량이 상당했다. 난 왜 이만큼을 읽고도 이 정도일까. 지나온 날들 중에 내곁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은 것은 책들 뿐이구나. 책들을 모아 가지런히 줄을 세우면 세울수록 괜시리 마음이 산란했다. 정리 도중 학부 때 쓰던 화일에서 신문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새 드라마를 홍보하는 작가 김수현의 인터뷰가 실린 글이었다. 그 페이지를 왜 오려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긴 인터뷰 기사 중에 김수현의 저 쓸쓸한 멘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뼈가 저릴 지경까지는 아니어도 가슴이 저릴 만큼은 느껴오던 바였다. 그리고 그 삼 년 전의 신문기사를 다시 읽으며 근래에 만났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떠올렸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나는 어느 날 바닷가에 갔다가 한 남자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그와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를 선생님이라 칭하고 자주 왕래를 하며 마음을 열어보이지만 어쩐지 선생님은 인간과 세상을 향해 굳게 마음을 닫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내려간 나는 선생님의 유서를 받게 되고 그로써 선생님이 평생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알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고독한 생활을 하던 선생님은 한 친구를 얻게 되고 그의 거절에도 불구,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같은 하숙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러나 친구를 위해 베풀었던 선의는 비극의 시초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신이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던 하숙집 딸을 그 친구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친구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결국 선생님은 고민 끝에 친구를 배반한 채 하숙집 딸에게 먼저 청혼을 하게 되고 친구는 자살하고 만다. 비록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긴 했으나 그 모든 과정을 끝까지 비밀로 감춘 채 선생님은 끊임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평생을 고통과 회한 속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광수나 나도향의 근대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이지만 이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나에게 보낸 유서 부분이었다. 끝끝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 무섭도록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의 속내야 다 거기서 거기듯 차마 똑바로 응시하지 못했던 내 안의 허욕과 비겁을 맑은 거울 앞에 그대로 드러낸 듯한 기분이었다. 오로지 내것이었으면 하는 바람에 앞선 적어도 너의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술, 순간적인 욕심과 아집으로 인해 무참히 퇴색되어버리고 마는 의리, 스스로 고통을 받을지언정 가까운 이에게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성벽을 두르고 사는 외로움, 참회와 참회를 거듭하지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영원히 비밀이 지켜지길 바라는 당부와 함께 자살을 택하고 마는 무거운 자존심... 얼굴 들고 뻔뻔하게 살만한 용기가 없음에도 때로는 인간이기 때문에 돌이키지 못할 수치스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실수에 남몰래 괴로워하기도 한다. 몇몇의 영리한 사람들은 의도적으로라도 망각하기 위해 애쓰고 다시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테지만 대개의 평범한 사람들은 시시각각 쳐들어오는 회한과 자괴감으로 끊임없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용기가 없어서,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약해서, 그저 순간적으로, 원래 비겁해서, 이유야 얼마나 많겠는가. <마음>의 선생님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행위의 이유들과 그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 선택에서 파생되었던 고통을 두려울 만큼 진실한 목소리로 털어내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신하거나 배신당하고 자기 자신조차 배신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 크나큰 고통이다. 하지만 한 번 쯤 누구나 신뢰가 무너지고 의리가 바닥을 치는 고통을 겪는다. 상처 받지 않으려면 아예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일테니까. 나중의 삶 속에서 꿋꿋이 자존심을 지킨다 해도 슬픈 일 다음의 자존심이라봤자 인생을 달통한 듯한 자의 고독한 포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면 나는 누군가보다는 천진난만할 것이고 누군가보다는 영악하겠지. 타고난 천성이나 지나온 경험의 질량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시기를 지나 인생을 졸업한 듯한 느낌으로 산다는 것은 편안하지만 쓸쓸한 일이다. 인생 별 거 있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거지, 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만나면 그 담담한 포즈가 부러우면서도 나 역시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것, 삶은 끝없는 방황이요, 열광이라고 믿었던 치기어린 시기를 이제는 지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저만치 정신의 안식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간에게 실망하고 슬픈 일을 많이 겪었을까, 하는 두려움 등 마음이 몹시 어지러워지곤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을 벼랑 끝 절망으로 내모는 것은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수레바퀴일 때가 더 많다. 죽을 힘으로 살아라, 목숨 중한 걸 알아야지, 하는 말들은 그야말로 속편한 여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망의 고비를 넘긴 후 고즈넉하게 찾아드는 안식의 시간이 지나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온다. 범사에 충실하고 감사하라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얻기 위해 그렇듯 타인과 스스로를 미워하고 괴롭히며 슬픔에 겨워 몸부림치고 하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