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리뷰특강(2): 소설집 리뷰

 


리뷰 특강의 폭발적인 인기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난 사람들이 얼마나 리뷰 때문에 고통받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리뷰를 못쓴다고 생각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대로 된 리뷰특강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원래는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하나’에 관해 쓰려고 했는데, 제보가 하나 날라왔다.

연보라빛우주
마태우스님! 저, 여러 개의 소설이 담긴 소설집 리뷰가 영 자신이 없어요. 소설이 여러 편인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요?  - 2005-03-08 12:51 삭제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아니 많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는 능력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안되니 이거 얘기하고 저거 얘기하다 보면 벌써 글자수 제한에 걸렸다 (옛날에 알라딘에서는 글자수가 2천자 이하였다). 그래서 오늘 특강은 소설집 리뷰에 관해 하기로 했다. 소설집 리뷰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리뷰만 올렸다면 두자리숫자의 추천을 받는 플레져님, 그분이 쓴 <정혜> 리뷰를 보자.


 

 

 

 

 

[한 권의 책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히고, 꾹꾹 눌러 밑줄 치고 옮겨 적는다. 나는 한 권의 책이 갖고 있는 무게만큼 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한밤중에 갈 곳이란 아파트앞 마트. 떨이 물건 파는 아저씨도, 야채 비싸기로 소문났다며 마트의 상인과 실갱이를 하는 사나운 주부도...나를 그냥 지나친다......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종교 의식처럼 한 권의 책을 읽은 뒤엔 남아있는 그 마음이 오래오래 간직되어 틈틈이 찾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플레져님은 책을 읽고 난 뒤의 풍경을 스케치하며 멋드러진 리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나서는 마트에 가는 게 좋다. 왜? 한권의 책을 읽고난 뒤의 마트 풍경은, 평소 보던 것과는 달라 보이니까. 이런 말을 하면 꼭 “선생님, 저희 집 근처에는 마트가 없어요!”라고 하는 분이 있다. 그런 분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이사 가세요! 좋은 리뷰를 쓰기 위해서 그 정도도 못합니까?”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이라고 하기에 나는 정말 그렇네 하며 피식 웃었다. 사랑의 다른 말은 뭐게? 내가 내게 묻고 내가 대답한다. 사랑의 다른 말은 배신. 사랑의 유의어는 배신. 사랑의 기원은 배신과 질투....]

<정혜>의 주제는 ‘사랑과 배신’이다. 그러니 사랑이란 단어에 대해 이렇게 한번 짚어준다면, 리뷰에 더 몰입될 수 있다. 반대말, 다른 말, 비슷한 말.... 이런 걸 쓰려면 평소 우리말에 대한 지식을 익혀 놓아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사랑과 배신과 상처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자처해서 슬퍼지고 싶다면 읽어보기를. 든든한 남편과 알토랑 같은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이 빠져나간 집안에 홀로 남아 뭔가 서글퍼지는 마음이긴 한데 정체를 모르겠다면 한번 읽어보기를...]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한 뒤, 언제 읽는 것이 좋은지 말해준다. 물론 웬만한 대가가 아니고서는 언제 읽으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대충 둘러치면 다 속는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세계란 그런 거니까.


[사랑에 대해 말하는 다섯 여자의 이야기 <가구>는 이 소설집에서 단연코 밑줄을 많이 친 소설이다. 공감해서다. 어지러져 있던 불투명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다.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의 허상은 자기 만족이다. 나를 만족하게 했으면 사랑하게 되는 뻔한 진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일까. 속으면서 또 그립게 되는 사랑의 정체는 치사량의 수면제보다 더 독하다...]

플레져님은 이번 리뷰에서 가장 공감한 소설 둘만 가지고 리뷰를 전개한다(<가구> 다음에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에 대해서 몇줄 언급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의 주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소설을 바탕으로 자신의 느낌을 쓰는 거다. 특히 마지막에 쓴 ‘수면제’라는 단어는 이 리뷰의 백미다. 수면제라는 단어에 우리는 들떴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편안히 댓글을 달 수 있다. 여기서 ‘치사량의 비듬’이라든지 ‘치사량의 입냄새’라고 했으면 얼마나 속이 이상했겠는가.


[흠이라면, 등장인물의 직업군이 의사 혹은 의대와 관련이 많아 연작소설인가 싶은 의혹을 산다. 특정한 종교가 자주 거론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열 두 편의 단편은 치마는 같은 것을 입고 저고리만 갈아입는 것 같아 아쉬웠다]

소설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는 건, 잘 쓴 리뷰에서는 언제나 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소설이라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며, 그걸 비집고 들어가서 비판하는 게 독자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어떤 분은 장점을 파고들어가 비판하던데, 그래서는 안된다. 허와 실을 잘 보는 것, 그것도 내공이 필요한 법이다. 내공을 단기간에 기르려면 역시 국선도가 좋단다. 


리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맺음이다. 우아하기로 이름난 플레져님의 마무리를 감상해 보자.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랑하는 게 인생의 비밀을 쉽게 알게 되는거다.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자, 어떤가. 숨이 막혀오는 그런 리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제 여러분도 부러워하는 단계를 지나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김영하가 쓴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의 리뷰를 써 보겠다.


먼저 마트에 가야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마트에 갔다. 보름째 빨지 않은 바바리코트 차림으로. 외로워 죽겠건만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 청바지를 줄여입은 미녀, 화사한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자가 모두 나를 지나쳐 간다. 그 여자 곁에서 팔짱을 끼고 가는 남자의 머리를 손에 든 책으로 내리치면 좋겠건만]


다음으로 주제에 대한 사전적 점검.

[오빠의 반대말은? 누나가 아니라 아빠,라고 하기에 나는 정말 그렇네 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오빠 오빠 하다가 아빠 되는 게 우리네 인생사 아닌가. ‘돌아왔다’의 다른 말은 ‘거짓말’. 왜? 여자와 버스는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집을 나간 오빠가 다시 돌아오는 슬픈 얘기다. 가출한 오빠를 둔 사람이라면 읽어보기를. 아니면 가출을 꿈꾸며 돈을 삥땅치는 청소년들도 읽어보기를. 집을 나가봤자 갈 곳이 없음을, 그래도 집이 제일이라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소설 하나를 찍어서 썰 풀기.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장 공감이 가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어찌나 그어댔는지, 책이 찢어졌다. 볼펜이 잘 안나와서다. 우리나라 볼펜은 심에 잉크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안나와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좋은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픈 소박한 희망이 번번히 좌절되는 것은 볼펜회사들의 탐욕 때문일까.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걸까]


흠 잡기.

[흠이라면, 오빠가 너무 불결하게 그려진 것이었다. 아무리 가출을 했다지만 목욕은 할텐데, 여기서는 목욕은커녕 이 한번 닦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특정한 상표의 옷이 너무 많이 언급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조다쉬’ 청바지가 품절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조다쉬 타령이란 말인가.


끝맺음은 최대한 우아하게.

[집구석에만 있지 말고 지금 당장 거리로 나가보라. 가출해봤자 별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쉽게 알 수 있으니까. 오빠가 결국 돌아왔듯이, 당신도 오늘밤 안으로 집에 온다. 한가지 더. 아버지가 벼르고 있다. 들어오면 넌 이제 죽었다!]


어떤가. 소설집 리뷰를 마구 쓰고싶지 않은가? 강의만 들으면 자기 것이 안되는 법, 오늘 배운 양식에 맞춰서 리뷰를 한편 써보자.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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