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잘랐다. 산뜻하고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 치렁치렁 구불구불한 머리 꼬라지가 몹시 맘에 안 들고 머리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몸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우리 회사 빌딩 1층 약국 옆엔 '우리' 미용실이 있다. 주인장이 남자인데 역시나 좀 여성스럽다. 나랑 동갑내기라는데 사실 그가 수다를 떠는 것이 귀찮았지만(정말 아주 귀찮으면 난 네, 아니오 이 말만 한다. 특히 이것저것 사라고 하고 비싼 머리를 하라고 자꾸 귀찮게 할 때는 인상까지 한번 지어주면 그만이다), 오늘 머리에 대한 내 요구가 꽤 까다로운 편이었으므로 관대히(?) 그의 수다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를 따라 미용실에 온 동생도 가만히 있으려니 심심했던지 덩달아 요리사의 칼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무나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는, 손대면 몹시 싫어한다는 미용사의 가위가 수십만원에 다다른다는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평소 궁금해했던 미용에 관한 질문들을 이것저것 퍼붓기 시작했다.
드디어 완성된 내 머리, 상당히 맘에 든다. 까다로운 내 주문을 잘 소화해낸 듯 하여 기분좋다. 다음에 여름되기 전에 한번 '매직' 퍼머 하러 오세요,란 그의 말에도 기꺼이 네,라고 대답하며 싱긋 웃어줬다. 물론 거기서 할지 안할지는 내 자유이다. 거기 퍼머값이 상당히 비싸서(단발이 5만원, 어깨머리가 7만원이란다. 옛날 우리집 앞의 미용실은 최고 3만원이었다) 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