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여행 날짜가 잡히고 나니 후련한 점도 있지만 사실 불안한 구석이 더 많다. 낯선 나라로의 여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은 아니다. 제대로 할줄 아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내 나름대로 충분히 파악하고 고려하여 여행 중에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님, 누구 말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질게다.
나의 불안함과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것이다. 지금 일에 대한 미련같은 건 절대 없지만 6년이란 긴 세월동안 적을 두고 있었던 회사를 하루 아침에 그만둔다는 게 쉽지는 않다. 혹자의 표현을 빌자면, '망해가는 회사'라고 하지만, 지난 달에 현재의 사무실로 이사온 후 군더더기를 잘라내는 등(필요없는 인원을 감축하여 다른 회사에 넘기는 큰 일을 단행하였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긍정적인(별로 긍정적이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만) 변화와 결과를 기대하고 모두 열심히 뛰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단계에서, 후련하게 사직서를 집어던지고 문을 쾅 걷어차고 용감하게 튀어나올 배짱같은 게 내게 있을지는 솔직히 나로서도 의문이다. 그럴 때마다 난 마음 속 내 자신에게 정말 지겹도록 묻고 또 묻는다. 지금 상황에서 이대로 계속 머물 수 있겠냐고. 아니면 대책없이 그만두고 난 후에 나중에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대로 머물 수도 없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없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내가 대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서른 살 넘는 나이가 되도록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토록이나 아무 대책도, 생각도 없을 뿐더러, 어린아이처럼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것이 남의 것도 아닌 바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 생각도 없는 몸만 어른인 꼴, 슬프지만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다.
여행에서 무슨 일을 겪고 그로 인해 내 인생이 얼만큼 변할 것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기대보다 실망할 수도있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대로 정체되어 있는 내 꼴을 더이상은 봐줄 수 없다는 나름의 절박한 이유와 어쩌면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고 그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에, 내 불안한 미래를 걸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웃긴다. 매번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대답이다. 아무리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결론은 언제나 그렇듯 하나인데 이렇게라도 내 마음을 다잡아야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 내 자신이 참 바보같다. 바보같아도 나는 나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