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국일이 잡혔다고 했더니, 친구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매섭다.
동생L : (말이 별로 없다) 부러워요. (그러면서도 왠지 시무룩한 것 같다)
친구B : 진짜로 가니? 난 니가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어. (약간 비꼬는 듯하고 시큰둥한 목소리로) 너희 어머님이 아시면 좋아하시겠다(난리치시겠다의 반어법). 정말 동생 혼자 두고 갈거냐. 도둑놈은 어쩌고(이때 도둑놈은 진짜 도둑놈이 아니라 내 동생의 남친을 뜻한단다) 가서 청첩장이나 보내라. 우리도 곗돈 깨서 외국 구경 좀 하게.
친구 C : 뭐? 어디 간다고? 필리핀? (필리핀은 무슨... ㅡㅡ;;) 언제 올건대? (6개월 후에) 가시나. 팔공산에서 한참 기분내고 있었는데 니땜에 기분 다 잡쳤다. 두번이나 배신을 당하다니(첫번째 배신은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이 미국어학연수 갔다가 두달만에 결혼하고 눌러앉은 사건을 말한다) 몰라. 나 삐졌다. 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 지금 니 전화 받을 기분 아니다. (뚝)
웅... 뭐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더 강경한 반응에 우울해진다. 아마도 부모님 반응은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을 게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간다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나도 내가 지금 미친 짓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질 정도니까. 갔다와서의 일을 생각한다면 내가 무슨 바보같은 짓을 저지른 건가 싶다. 하지만, 몇 번을 내 마음 속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다. 지금 이대로 살겠냐고 묻는다면 아니,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몇일을 살다 죽더라도, 비록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라도, 지금은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그 열망만이 날 가득채우고 있으므로. 지금 이대로 살아간다면 나태의 독이 언제 나를 집어 삼킬지 모른다. 죽음보다 더 고약한 무기력이 날 제물삼을지 모른다.
자네는 바보야. 이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새로운 모험에 한번도 도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라고 했던가. 남들이 보기엔 정말 미친 짓같고 바보같은 짓이라도, 지금 이순간 내게 그 일은 더없이 소중한 산소와도 같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내 친구들도 이해해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동안 난 그 어떤 것도 결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만큼의 절박함과 또 그만큼 매여있지 않은 자유로움으로 길을 떠날 것이다. 친구의 말대로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둘 것이다. 그리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