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서민이란 본명 보다 마태우스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서민 교수가 새 책을 냈다. 이름하여 <서민 독서>.
건방진 얘기 같지만 우리나라 평균적인 수준 보다 내가 그리 책을 덜 읽는 편도 아닌 것 같아서 평소 책읽기의 좋은 점에 대해 지루하게 열거하고 독서를 권하는 이런 류의 책들에 대해서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알라딘 이웃으로서 ‘예의상’ 책을 사긴 했지만 당장 읽을 책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책 서문만 읽어 봐야지, 하고 몇 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책이 심해의 빨판상어 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나를 끌어 당겨서 거의 논스톱으로 완독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난 지금 몹시 반성을 하는 중이다.
기억 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 알라딘 서재계는 마치 중세의 르네상스시대처럼 재미있고 멋진 글들이 쏟아지던 서재부흥 시기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많은 알라디너들이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면 서재에 올라오는 새 글 읽으려고 업무메일 보다 알라딘 홈페이지에 먼저 들어온다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정도였으니까.
글 하나 올리면 실시간 댓글은 기본이었고 서재 방문자들 수도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알라딘엔 글에 관한 한 초절정 고수분들이 많이 포진해 계시지만 그때만큼 재미난 글들이 많이 올라 오는 것 같지는 않다. 하여간 그 시기에 알라딘서재를 주름잡던 쟁쟁한 고수 중의 한 명이 마태우스 교수였다. 하여간 글 하나 올리면 댓글 수십 개는 기본이었고 종종 백 개도 넘기는 자타공인 최고의 인기 서재 주인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야 고백하지만 그 당시 마교수의 글솜씨에 대해 난 그리 넘사벽 수준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었다. “ 뭐야 이렇게 썰렁하고 유치한 아저씨 유머라니…. 재벌이라더니 아마 이벤트를 자주 해서 인기가 많을거야……이 정도 수준이면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하는 비딱한 평가를 속으로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 마교수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수 글쟁이로 거듭났구나, 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 흐르듯이 읽혀지는 매끄러운 문장력, 적절한 인용과 재미난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한 글의 설득력.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글을 쓰면 마교수보다는 더 재미있고 근사하고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한때나마 (속으로) 건방을 떨었던 내가 부끄러워 진다. 나는 여전히 동네 조기축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그는 이미 K리그를 넘어 프리미어 리그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여 년 간 마교수의 글솜씨나 사회를 바라는 보는 시야의 폭은 장족의 발전을 한 것 같은데 나는 글과 사고의 수준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발전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민망한 수준의 글들이라 감히 알라딘 서재에도 못 올리고 동창회 밴드에서만 만날 허접한 잡글을 끼적거리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하고 생각해보니 결국 이유는 독서량의 부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의 책에서 인용되는 참고서적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이나 종종 올리는 그의 서평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편협하고 부족한 나의 독서량이 지금의 그와 나와의 독서력 격차를 만든 것 같다.
마교수는 방송도 하고 학교강의도 하고 논문도 쓰고 강연도 하고 책도 쓰고 칼럼도 쓰고 어부인에게도 잘 하는 것 같은데, 게다가 그 와중에 책도 많이 읽나 본데 나는 띵까띵까 노는 데만 신경을 썼구나 하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며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이고 밀도 있는 독서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물론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내가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도서정가제 같은 부분), 그리고 인용된 사례가 전부 다 완벽하고 적절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책을 읽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 측면에서는 굉장히 잘 씌어진 책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책의 1순위 덕목인 ‘재미’라는 측면에서 최고점을 주고 싶다.
요즘 들어 마교수의 책 출간되는 간격이 매우 짧아졌다. 그만큼 다작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책의 띠지나 책 곳곳에 실려있는 여러 장의 그의 사진들( 무슨 조화인지 그는 별로 늙지도 않고 심지어는 미모가 한창 피어나는 것 같다만)을 보며 행여나 다음엔 화보집을 내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를 잠시 해본다. 물론 나야 또 사보겠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