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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간혹 너무 솔직한 고백으로 듣는 이를 당황케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내 동생은 우리 아버지가 바람 피워 낳은 배다른 동생이예요,라든가, 난 지금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어요, 같은 쉽지 않은 고백들 말이다.
물론 사랑하는 애인이라든지 부모님, 둘도 없는 친구나 선후배 사이라면 못할 말이 뭐 그리 많겠냐만, 인터넷 공간이라든가 그냥그냥 만나는 사이에서 그런 은밀한 고백을 들으면 당혹스럽기도 하고 듣는 사람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저 사람은 나를 더 믿고 있었나보다' 라는 미안한 반응부터, '갑자기 얘가 왜 이런 소릴 내게?라든가 '바보처럼 그런 걸 왜 다른사람에게 공개하니... ' 같은 시니컬한 반응까지.
공지영의 이책도 굉장히 솔직한 고백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미 언론등을 통해 각기 아빠와 성씨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작가의 개인사가 공개되어 그리 당혹스럽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언뜻언뜻 공지영 개인의 내밀한 얘기들을 많이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런 고백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여자 참 솔직하구나 하는 느낌이었지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것은 평소에 스쳐가듯 나도 어렴풋이 느껴 본 기억이 있는 감정들을 시와 함께 글로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나 같은 보통사람과 공지영의 차이겠지만.
예를 들면,
'가끔 우리는 이것이 수렁인 줄 알면서도 눈 말갛게 뜬 채로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고.
가끔 머리로 안다는 것이, 또렷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고,
또 이렇게 하면 그와 끝장이 나는 줄 알면서도 우리는 마지막 말을 하고야 만다고....' -11쪽
' 늙어서 할 수 있는 일, 죽음을 선고받으면 할 수 있는 일, 그걸 지금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가끔 이 나날들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을 오히려 풍요롭게 해주는 이 역설의 아름다움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79쪽
또 작가가 굉장히 힘들어 하던 연재소설을 끝낸 한 밤중의 기쁨과 외로움을 표현한 다음 구절을 읽으며 몇달전 유달리 힘들던 이번 시즌이 끝난 날 밤의 내 모습이 떠올라 절절하게 공감했다.
' 12월 31일자까지 쓰고 난, 12월 26일 밤, 시간을 보니 2시반이 넘어 있었습니다.
밤이라고 하기에도 부정확하고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두웠던 시간.
아이는 잠들어 있고 사방은 조용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나 해냈어, 나 그래도 해냈어,라고 어리광을 부리면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그래 잘 했다, 참 잘했어, 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은 생각이
참을 수 없이 일던 그런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밤 2시 반에 전화를 걸어도 좋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외로운 시간은 없었습니다.' -86쪽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두번 연속 이 작가 공지영에게 만족하고 있다.
즐거운 책읽기였다.
혹시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같은 책을 즐겁게 읽은 분들이라면 아마도 만족하실듯 하다.
진한 감동을 받을만한 책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공감하며 읽게 될 책이다.
끝으로 책을 읽으며 빙그레 웃음짓게 만든 구절 하나만 더 옮긴다.
'책을 100권 읽으라는 벌은 내게는 전혀 벌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거의 형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00킬로 미터를 행군하라는 것이 내게는 가혹한 형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산책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