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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의 독설 - 홀로 독 불사를 설, 가장 나답게 뜨겁게 화려하게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참으로 힐링(healing)의 전성시대다. 주위에 온통 힘들어 하고 위로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로 채워진 책들이 넘쳐나고 방송도 힐링캠프를 비롯하여 아픔을 보듬어 주는 상담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어찌보면 이 책 '독설'은 책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 이러한 '힐링' 시류에 역행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한 젊은이가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다. 요즘은 ' 비를 맞으니까 청춘이다, 천 번의 비를 맞아야 어른이 된다, 우산없이 멈춰 서서 비를 맞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처럼 자기 우산의 한 켠을 내어주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아예 같이 비를 맞아주는 류의 책들이 유행이다. 물론 다음번엔 꼭 우산을 챙기라는 '부드러운'당부의 말도 하지만.
하지만 이 책은 엄청 쌀쌀맞다. 비가 오는데 비를 피해 열심히 뛰지도 않고 머뭇거리는 게으름과 무대책을 질타하고 미리 우산을 못챙긴 준비부족을 심하게 나무란다. 게다가 우산도 안 빌려준다. 이를테면 장마철에 미리 우산도 안챙기고 비를 피하기 위해 뛰지도 않으면서 왜 빗속에서 춥다고 징징거리냐는 말이다.
위로가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그때뿐이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끝없는 비교들 속에서 상처받을 때마다 위로로 연명해 갈 수는 없다. 위로는 마약과 같다. 약발이 떨어지면 현실은 더 가혹하다. 위로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단 움직이는 행동력이다. - p 45
과연 어떤 유형의 위로 혹은 질타가 이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일반화는 어려울 것이다. 칭찬해야 잘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야단을 쳐야 잘하는 아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예전에 어떤 시험에 해마다 떨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가족이나 친구들의 따뜻한 격려가 많은 위로도 되고 힘도 되었다. '이번엔 네가 운이 없었어'라든가 심지어는 '분명 출제오류거나 채점이 잘못되었을 거야'라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위로까지도 그때는 달콤하고 고맙기만 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다시 일어설 힘을 내고, 주저 앉고 싶을 때 마다 쓰러지지 않았던 것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내모습을 통한 절치부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Failure is not the only punishment for laziness ; there is also the success of others. - p 110
게으르면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벌로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까지 지켜봐야 한다.
그 힘들던 시절이 생각나서인지 책을 잡자마자 두 시간만에 다 읽었다. 읽고나니 별로 이룬 것도 없으면서 타성에 젖고 나태해진 지금의 내모습이 보여 정신이 번쩍든다.
방송에서 박진영이 이런 말을 했다.
"숙제 먼저 하고 놀아요. 그래야 자유로워요."
"안 하는 게 더 자유로운 거 아닌가요?"
"숙제 안 하고 놀면 다음 단계의 자유가 없어져요. "
맞다. 오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의 자유가 없어진다. - p 20
저자는 유명한 영어 강사로서 예전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전 모 케이블 TV에서 방송된 '스타특강쇼'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연봉 10억 원의 스타강사 겸 까칠한 골드미스 CEO. 책을 읽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은 불편함과 더불어 속된 말로 '재수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따뜻한 위로와 진심어린 토닥거림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무한 경쟁에 내몰기만 하는 미친 사회도 문제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만 욕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로는 졸릴 때의 찬물 세례처럼 모진 극약처방도 필요하다. 이 책은 분명 읽는 이에게 강력하고도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청년백수도 아니고 진로를 몰라 방황하는 청춘도 아닌 내가 이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 아무리 짜게 채점해도 자기계발서로서 그리 엉망인 책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쥐뿔도 없으면서 경영서나 자기계발서라면 일단 아래로 깔고 보는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물론 절대로 안읽겠지만.
경제력도 없고 현실엔 한없이 무능하면서 가방끈은 길어 아는 건 많고, 그러면서 하는 일 없이 늘 사회에 대한 불만만 입에 달고 다니는 후배부터 먼저 이 책을 한 권 사줘야겠다. 그 어렵고 고상한 인문학서적도 좋고 비판의식 키우는 사회과학책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책도 한번은 '가족들을 위해' 읽어 보라고. 그리고 제발 빨리 정신 좀 차리라고.
" 배고픈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 Adlai Stevenson
You don't have to be great to start, but you have to start now to be great. - p 228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해 지금 위대할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위대해지려면 지금 '시작'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