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 고은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었다

단 한번도 갓난아기 없이

동해 난바다 한복판

목쉰 늙은 갈매기 울음조차

쌓이는 파도소리에 묻혀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솟아올라

먼 바다일망정

하필 거기 솟아올라

그토록 오래 바윗덩이의 묵언인 채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누구 있어 먼 곳으로 길 떠나

함부로 돌아올 수 없을 때

그곳이야말로 고향을 넘어

어쩔 수 없는 패배로부터 일어서서

하늘가 뜨거운 낙조에 담겨 파도소리 이상이었다


일찍이 그 누구도 거기에 가지 못한 이래

바람의 세월 몇천 년 동안

오직 그곳만이 파도소리에 묻혀

그 누구도 태어나지 않은 곳

먼 곳 자지러지게 떠도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끝내 고향이었다 오오 동해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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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왼쪽으로, 좀더 왼쪽으로(고종석)

2005. 3. 17 한국일보

 

[고종석 칼럼] 왼쪽으로, 좀더 왼쪽으로
자유·국가주의 기괴한 '통정'
복지 취약한 한국엔 좌파 필요


한국의 이념 지형에서 기괴한 것은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유지상주의(근본주의적 자유주의)가 유사 파시즘적 국가주의와 만들어내고 있는 맥놀이다. 시민사회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경기를 일으키는 자유지상주의자와, 국가를 의인화해 충성스럽게 섬기는 유사파시스트가 서로에게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지상주의자는 대수롭지 않게 박정희를 찬양하고, 박정희 숭배자는 거리낌없이 최소정부론을 외친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민주주의의 두 적으로 거론한 무정부주의와 수호자주의가 통정하고 있는 꼴이다.

이 두 세력은 단지 정을 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와 국가주의는 드물지 않게 한 입에서 발설된다. 아침에는 시장의 거룩함을 주장했던 사람이 저녁에는 애국주의의 화신이 되고, 어제는 투철한 국가관의 확립을 선동했던 신문이 오늘은 경제적 자유의 신성불가침을 외친다.

이것은 자유지상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념적 친화를 뜻하는가? 그럴 리는 없다. 개인적 선택을 절대시하는 자유지상주의와 집단을 물신화하는 국가주의는 물과 기름이다. 그 둘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것은, 그 주장이 진심이 아니거나 주장자가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쩌다가 한국에서 이 둘은 한 몸뚱이를 이루게 됐는가? 그것은 이념적 간극을 가뿐히 넘어서는 인적 연속성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자들은, 제 몸에 국가주의의 흔적을 남긴 채 민주화 시대의 자유지상주의자로 변신했다. 왜? 그것이 ‘세계화’라는 대세의 공식 이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운데 완고한 일부는 아직도 국가주의에 매달려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세련된 자유지상주의자로 완전히 전향했지만, 상당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이형동질의 낭만적 파토스를 오가며 이 화해할 수 없는 두 이념을 한 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다.

한국의 국가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박정희의 친구들’이라는 동일 인구집단에 혈연적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때문에 쉬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에서 우파와 극우파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들이 함께 내세우는 것은 타락한 ‘자유’의 구호다.

이 범우파 블록 안에서 시간은 자유지상주의 편일 것이다. 세계화의 해일은 이내 국가주의자들의 기를 꺾어놓을 것이고, 분열증적 개인들의 내면에서도 자유지상주의는 국가주의를 이길 것이다. 국가 위세를 특별히 중시하는 초강대국이 아닌 나라에서, 동원된 애국심이 계속 자본에 맞먹는 결기를 유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자본 운동의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우익 진영의 폐지 반대 목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자유지상주의는 한국의 전통적 수구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경쟁자들도 꽤 개종시켰다. 지금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는 개혁의 이름으로 관철되고 있고, 여권의 주류는 총자본에 굴복한 듯하다.

이것은 물론 우리만의 사정은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의 범람은 세계화에 시큰둥한 유럽에서까지 목격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에 맞먹는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나라들이 두세 세대 전에 이룩한 복지시스템이 없는 한국에서 이것은 재앙이다. 서유럽과 달리 우리에게는 줄일 복지 자체가 없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시스템 구축과 공동체구성원 사이의 연대를 핵심 가치로 삼는 좌파적 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특히 긴요한 것은 그래서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은 한 정당의 선거구호를 넘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기술적 근본원리가 돼야 한다.

세법 손질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부자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좌파 세상이 왔다고 호들갑 떠는 야당과 우익언론이 민생을 얘기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민생은 본디 좌파적 가치다. 우리 사회에는 좀더 많은 좌파가 필요하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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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고종석)

한국일보 2005. 3.2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
[고종석 칼럼] 정치세력화한 언론
개인의 주체적 판단 위협


복고(復古)의 욕망으로 몸이 단 우익 만담가들의 엄살과 달리, 오늘날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극성기를 맞은 듯하다. 올드미디어든 뉴미디어든, 거대자본 매체든 소자본 독립매체든, 제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끌탕을 하는 언론은 없어 보인다. 이제 한국의 언론을 규제하는 것은 자본의 운동력과 언론인 개개인의 양심 또는 셈속 뿐이다.

1988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대부분이 정치권력의 직접적 통제 아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언론이 누리는 거의 무제한의 자유는 정녕 놀랍다. 언론은 그 자신 크게 기여한 바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커뮤니케이션의 공변된 매개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특정한 정파나 계급집단에 동화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일반 언로가 되고자 하는 언론을 찾기는 쉽지 않다.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표준적 선거제도가 복원되자마자, 몇몇 신문은 그 시기의 지배적 정파와 몸을 섞으며 수구 신성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당초엔 동맹 내부의 하위 파트너였던 이 신문들은 강준만이 ‘권력변환’이라고 부른 과정을 거치며 수구동맹 전체를 지휘하는 상위 파트너가 되었다. 거침없는 막말로 신문언어의 음역(音域)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한 한 신문은 87년 이후 네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그 자신이 언론기관이라기보다 정치집단이라는 것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언론의 정치세력화가 수구진영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6월항쟁 이후 창간된 국민주 신문이 특정 중도정파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류 언론 다수가 수구동맹의 일원이었던 상황에서 이 신문의 중도정파 감싸기는 균형을 위한 일종의 에누리라고도 볼 수 있었고, 그 점에서 정의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과 대항 언론의 정치적 편향은 오래지 않아 초기의 비대칭성을 치유했다.

올드미디어의 주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구동맹에 속해 있지만, 온라인매체의 주류는 개혁 담론에 휩쓸려 여권과 어깨를 겯고 있는 있는 것 같다. 모든 정파가 언론행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홍보가 곧 정책’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한편, 형식의 신구(新舊)를 가리지 않고 언론 전반이 자본에 깊이 포섭되고 있는 것도 민주화 시대의 특징적 현상이다. 오늘날 주류 매체는 대체로 총자본의 일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매체의 논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이제 정부의 의지도 시민들의 불매운동도 아닌 광고주의 평가다.

그래서 수구 매체도 특유의 냉전적 논조가 우연히 자본의 운동을 거스르게 되는 특정 국면에서는 잠시나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개혁적 매체의 리버럴리즘이나 진보주의 역시 자본의 공세 앞에서 무뎌질 수밖에 없다.

광고는 매체의 힘에 비례해 따라 붙고 매체의 힘은 그 소비자들의 (구매력) 크기에 비례하므로, 어쩌면 언론의 자본종속은 대중민주주의의 완성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때의 대중은, 독자로 불리든 시청자로 불리든 네티즌으로 불리든, 언론(이 대표하는 정파나 언론을 통제하는 자본)에 얽매인 노예이기 쉽다. 독자들은, 지난 세기에 한 독일 비평가가 우려했듯, 기자들을 장교로 삼는 언론이라는 군대의 병사에 불과하다.

여느 군대에서처럼, 언론이라는 군대 안에서도 병사는 그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개전이나 휴전의 결정, 작전의 수립이나 변경에 그가 간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독자들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판단은 기실 언론군 사령부에서 내려온 것이다. 주체적 개인의 소멸,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민주주의자가 외쳐야 할 것은 언론의 자유라기보다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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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인공화국 풍경들] <1> 金素月의 '진달래꽃'
[한국일보 2005-03-02 17:21]    
김소월 이래 한국 현대 시문학의 영토를 넓혀온 시인들의 대표 시집을 리뷰하는 ‘시인공화국 풍경들--고종석의 시집 산책’을 매주 목요일에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국어 교과서나 문학 교과서, 주류 문단 등으로 이뤄진 문학제도의 울타리 안쪽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도, 그 바깥쪽까지 넉넉한 눈길을 건네며 현대 한국어의 가장 아름다운 속살을 탐색할 것이다. 편집자 주

詩人共和國의 政府

나는 시인들의 공화국을 주유(周遊)하기 위해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지는 않았다. 산책은 그 때 그 때 내 변덕에 떠밀려 발길 닿는 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발을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진달래꽃’(1925)으로 내딛는 것은, 최소한의 질서감각에서 내가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은 한국 현대시문학의 수원지(水源地)다. 아니 그것은 수원지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것은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고, 깊다라면서도 높다랗고, 순정하면서도 풍만하다. 상투적 표현을 쓴다면, ‘진달래꽃’은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다. 공화국 창건기에 세워진 이 정부는 지금까지 장기집권하고 있다.

장기집권하는 정부는 죄다 부패하게 마련이지만, ‘진달래꽃’에선 악취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정부의 권력 행사가 근원적이되 요란스럽지는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에게 그가 좋아하는 시인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소월이라는 이름을 대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꼽는 이름들은 대체로 ‘문학과지성시인선’이나 ‘창비시선’의 리스트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백하는 취향을 결정한 것이 그들 나름의 독립적 판단인지는 확실치 않다.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취향은 미끈한 문학비평가들과 날씬한 문학저널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빚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문학적 교양의 유행에서 벗어나 시를 제 몸으로 느껴보라고 주문한다면, 그리고 시인이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점을 피조사자들에게 환기시킨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리스트는 사뭇 다르게 작성될지도 모른다.

그 때, 소월과 ‘진달래꽃’은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선호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사고실험의 결론이야말로 내 편견의 소산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산책을 ‘진달래꽃’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런 편견 때문이다.

시인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판단으로 돌아가 보자. 그럴 때 내게 대뜸 떠오르는 시인은 소월과 백석(白石)이다. 한국어문학 바깥에도 제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들은 수두룩하겠지만, 한국어가, 한국어만이 모국어인 나는 한국어 바깥 풍경을 상상할 수 없다. 소월보다 열 살 아래인 백석은 소월과 동향이고, 소월의 오산학교 후배다.

그들의 시가 한국어 화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어가 한국어 화자의 몸에 깊숙이 새겨진 기층 어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일천 수백 년 간 한국어에 침윤한 중국제 한자어를, 그리고 그들의 당대 얼마 전부터 한국어 어휘장에서 중국제 한자어와 경쟁하기 시작한 일본제 한자어를,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언어로서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동향의 이 두 시인이 사용한 한국어는 한국인들에게 꽤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지금 한국인들의 마음만이 아니라 시인과 동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의 마음에도, 백석의 시가 소월의 시만큼은 드센 떨림을 유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큰 것은 백석 시어의 강한 지방성에 있을 것이다.

백석의 서북 방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견고한 성채다. 그것은 서북 바깥의 한국인들에겐 더러 소통의 빙벽이다. 거기에 비해 소월의 서북 방언은 일종의 겨자와도 같다. 소월의 시에서 서북 방언은 뉘앙스다. 그 서북 방언은, 그의 시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한자어들처럼, 생선회에 풍미를 더해주는 와사비 같은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어가 기층 한국어라는 것은 그것이 민족적이라는 것 못지않게 민중적이라는 뜻이다. 소월의 한국어는 한글학회의 국어순화운동이나 이북의 말다듬기 운동이 만들어낸 신(新)한국어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 민중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던 진짜 한국어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소월의 시에서, 어휘의 수준만이 아니라 말 무더기의 수준까지, 곧 리듬의 수준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그의 시를 노래로, 가락에 올라탄 진짜 노래로 만든다.

‘엄마야 누나야’ ‘옛이야기’ ‘못 잊어’ ‘진달래꽃’ ‘산유화’를 비롯해 시집 ‘진달래꽃’의 많은 시들이 대중가요나 가곡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시들은, 그런 제도적 노래가 되기 이전에도, 소월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노래였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로 시작하는 ‘못 잊어’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로 시작하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한 번 소리 내어 읊어보라.

그 소리들의 연쇄가 우리의 귀에 닿기도 전에, 우리의 구개와 가슴이 먼저 반응하며 언어와 유쾌하게 통정(通情)하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소월의 시가 한국어 화자의 육체에 친밀한 것은 물론 도드라진 정형성 때문이지만, 그의 뛰어난 시들은, 위의 두 시에서도 보이듯, 그 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살짝 구부린 것이다.

그 구부러진 정형성 속에서 화자-독자의 감정은, 평평한 모래땅 위를 흐르던 물이 굽이에 이르러 휘어 감기듯, 순하고 천연스럽게 펼쳐진다. 그 때 소월의 언어는, 네모 도시락 속의 식은 밥처럼 밋밋한 자수(字數)의 구속에서 살짝 벗어나, 본원적 정서의 여분을 서럽게 쓰다듬는다. 소월은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노래했다. 그는 시인의 원형으로서 가인(歌人)이었다.

시집 ‘진달래꽃’의 많은 시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속의 많은 사랑노래들이 그렇듯, 그 시들은 결핍으로서의 사랑,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예컨대 ‘삭주(朔州) 구성(龜成)’의 화자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립”고, ‘산(山)’의 화자는 “십오년 정분을 못 잊”는다.

그러니까 ‘진달래꽃’의 연애시들이 노래하는 것은 사랑으로부터의 소외, 제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다. 그 시들은 사랑의 노래이자 이별의 노래다. 더러 그 노래는 넋두리에 그치기도 하지만, ‘개여울’이나 ‘초혼(招魂)’에서 보듯 정서의 밑동을 긁어내기도 한다. 이런 사랑, 이런 그리움을 표출하는 ‘진달래꽃’의 몇몇 시들은, 그 애절한 설움의 정서 때문에, 화자가 여성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움이나 설움은 여성의 정조라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정조다. 화자가 여성이라는 것이 문맥에서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 한, 화자를 시인과 포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예컨대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바린 설움이외다”로 끝나는 ‘님에게’는 갓스물에 이른 소월 자신의 실연시(失戀詩)가 분명하다. 비록 전통적 7.5조 리듬을 답습하고 있지만, 이 시는 실연의 심리를 정교하게 묘파한 절창이다.

‘님에게’에서 보듯 시집 ‘진달래꽃’의 그리움이 향하는 대상은 더러 ‘님’으로 호명된다. 그 ‘님’이 반드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로 끝나는 ‘님의 노래’에서, 그 ‘님’은 뮤즈나 시혼(詩魂)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7.5조 리듬에 실린 이 작품에서, 화자와 뮤즈의 로맨스는 즐겁게 졸졸졸 흐른다. 뮤즈를 사랑하게 된 앳된 청년의 행복감, 가슴 두근거림, 조바심 같은 것이 투명한 단순성 속에서 아른거린다. 시집 ‘진달래꽃’이 보이는 결핍으로서의 사랑은, 유년기로의 퇴행 속에서 어떤 이상향을 그리는 ‘엄마야 누나야’에서 보듯, 지나간 과거를 향하기도 한다.

마치 밀레의 그림 한 폭을 연상시키는 ‘밭고랑 위에서’따위의 힘찬 노동시가 한쪽에 버티고 있긴 하지만, 시집 ‘진달래꽃’의 세계는 애절하고 애달프고 애잔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한(恨)의 세계라기보다 서글픈 흥(興)의 세계다. 이 생뚱맞은 흥은 화자의 젊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순정한 젊음 속에서는 애잔함이나 수줍음이나 무력함 마저 도도하다. ‘진달래꽃’의 화자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불운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서글픈 흥의 세계에 도덕이나 계몽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더 나아가 종교가 들어설 자리도 없다. 무속을 비롯한 전통 종교든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든, 어떤 종교의 그늘도 ‘진달래꽃’에 드리워져 있지 않다는 것은 놀랍고 기쁘다. ‘진달래꽃’의 화자들은 많은 경우에 무력했지만, 그 무력을 자율적 주체로서, 단독자로서 감당했다.

그 점에서 이 화자들은, 결국 소월은 근대적 개인주의자였다. 소월은 서른 두 살에 아편을 삼키고 죽었다.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고 가는 맘”(‘잊었던 맘’)이 너무 고단했나 보다.

먼 후일(後日)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물이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물이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나물이다: ‘나무라다’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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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고영자 평론집 - 바로 잡는 국문학

“국문학계 김소월·이육사 詩 해설 문제 많다”
주장_ 고영자 평론집 『바로잡는 국문학』 탱자 刊 | 2004 | 508쪽

2005년 02월 26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일문학 전공자가 국문학계에서 정설처럼 여겨져오는 몇몇 작품론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영자 전남대 교수는 최근 낸 평론집 ‘바로잡는 국문학’에서 기존 김소월, 이육사론에 메스를 가하고 새로운 견해들을 내놓았다.


소월의 시에 대한 기존 국문학계 평가는 ‘여성적’ 또는 ‘민요적’이라는 견해에 집중돼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여진 이름이여!”로 시작되는 ‘招魂’, 이에 대해 조동일 서울대 교수는 “소월은 시세계에 안주해서 위안을 찾으려는 태도를 지니고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망각에의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김소월 연구’, 새문사 刊)라고 해석했다. 시어 중 ‘님’이란 단어에 주목해 서정적인 시로 평가했던 것. 신동욱 前 연세대 교수는 ‘소중한 임을 잃은 경험’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라며, ‘초혼’ 역시 인간 보편적인 경험 위에 짜여져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런 해석에 대해 저자는 “오독의 여지가 많다”라며 비판을 가한다. 소월이 산 시대적 배경이나 그의 민족정신이 전혀 감안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는 당대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을 요한다.


‘초혼’은 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넋을 보고 그들의 혼을 불러내는 의식이라는 것. 당시 소월은 일본에 체류해 2만여명의 조선인들이 학살되는 것을 목격했고, 서둘러 귀국한 후 ‘초혼’을 창작했다. 그러나 기존 연구자들이 역사적인 사실이나 ‘초혼’이란 단어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피네/ 갈봄 여름없이/ 꽃이피네”로 시작되는 ‘山有花’ 역시 오독됐다는게 저자의 견해다. 고 교수는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산유화를 다만 소월의 ‘자연관’을 나타내는 시로 단정짓고 있다”(‘김윤식 교수의 시 특강’, 한국문학사 刊)라고 비판한다. 조동일 교수(‘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刊)나 권영민 서울대 교수(‘평양에 핀 진달래 꽃’, 통일문학 刊)의 해석 모두 매한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산유화’는 일본 벚꽃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되고 있는 ‘산벚꽃’을 의식해 그 산벚꽃이 우리 강산에 번지는 것을 ‘탄식’한 역설적인 슬픔의 시임을 주장하고 있다.

국문학계, 일본자료 섭렵 부족해
이육사론에 대해서도 기존 연구자들과 다른 견해를 내놨다. 저자는 김재홍, 김학동, 김윤식, 조동일 교수의 연구를 살피면서, 이육사의 ‘청포도’를 과실로만 보는 건 무리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일제시기 검열을 피하기 위해 육사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고‘청포도’의 ‘靑’은 ‘청년’의 ‘청’과 어원을 같이한다고 말한다. 특히 육사는 대한임정기 중 투철한 민족정신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했던 열성적 투사였기 때문에 청년을 의식한 시어로서 ‘청포도’를 썼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시구를 “내고장 칠월은/ 청년운동이 활발해져가는 시절”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기존 비평들이 당시 잡지를 도배하다시피 한 청년 담론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해석했다. 전반적으로 국문학계 연구가 일본의 자료들을 충분히 섭렵하지 못한 채 이뤄져 잘못된 定說이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게 안타깝다”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견해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 조두섭 대구대 교수(국문학)는 “국문학계의 선행연구들이 한정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라며,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박현수 경북대 강사(국문학)도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 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소월이나 육사의 시를 기존과 너무 다르게만 보려 하면 오히려 일탈된 해석으로 나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2005 Kyosu.net
Updated: 2005-02-26 17:30

* 아직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므로 뭐라 말하는 건 이를지 모르겠으나 김소월에 대한 평가 부분만큼은 확실히 이전부터 나역시 공감하고, 문제로 느끼고 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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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15-10-25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월이나 육사의 시를 기존과 너무 다르게만 보려 하면 오히려 일탈된 해석으로 나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가 우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