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이 읽은 아침의 시 1
신경림 엮음 / 북갤럽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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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지나가다가 시집들이 꽂힌 곳을 발견했다. 유명한 시인의 시를 읽을 것인가, 무명(내가 모르면 무명이다.)의 시인을 접할까. '아침의 시' 멋지다. 게다가 신경림이 엮은 시집이라는.

하지만 여기 있는 시들은 내게 그다지 만족스러움을 주지는 못했다. 신경림이 말한 것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시를 위주로 해서 선정했으며, 문학적 기준이나 내 기준이나 기호보다는 독자의 수준을 더 많이 고려'한 시들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는 짧아서 좋지만, 짧기에 좋지 않은 점도 있다. 시를 음미하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암기하고자 시집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그야말로 장정일 말처럼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위해서 보는 것이 시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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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1
장정일 외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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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있다. 책 자체가 재미있는 것인지, 장정일이라는 작가가 재미있는 건지, 아니면 장정일이라는 작가가 쓴 글이 재미있는 것인지, 그 작가의 글에 대한 글이나 그 작가에 대한 글이 재미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부 다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책 읽기의 재미를 느꼈음에도,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 책을 보는 것 자체가 후회스러워졌다. 왜냐면, 장정일이라는 작가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읽다보면, 그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 그것이 정확한 것이 아닐지라도 일종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길지 모른다. 나는 장정일이 낸 시집이나 소설 한 권을 제대로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선입견과 편견이 좀더 조금일 때 그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과 모든 영화를 볼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책, 좋은 영화도 골라 보기가 쉽지 않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영화라고 찍어둔다 해도 시간이나 기회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그럼에도 좋은 책, 좋은 영화를 골라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보통 서평이나 영화평 등을 많이 찾는데, 이런 게 자칫하면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이 되어 작품 읽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 작품을 온전히 보기 전에 얼마만큼 간접적인 정보를 갖느냐는 문제는 정말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책 뒷부분부터 장정일 작품을 약간 제공하고 있다. 일종의 번들이라 할까나? 시, 소설, 시나리오가 있는데 다 볼만한 작품들이다. 게다가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들을 보면 장정일이라는 작가를 이해하게끔 하는 그런 작품들로 선정된 것 같다. (원래 장정일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작품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장정일의 작품을 읽기 전에 쓴 것입니다. 그의 시집을 읽고 난 지금, 그의 시들의 마력과 매력을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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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학의 미소 - 동시대인 총서 11
김진호 지음 / 삼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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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라는 진보적인 지식인 혹은 목회자의 저서. 상당히 끌렸다. 더욱이 그 책 이름이 <반신학의 미소>라는 도발적인 것이라면.....

실제로 이 책의 표지에서 저자 김진호 목사는 웃는 듯 찡그린 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로 봐서는 미소가 맞긴 한데 안경 뒤의 두 눈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 듯도 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반신학이란, '서양-백인-남성의 눈'에 준거하는 서구 주류 신학에 대한 해체의 꿈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서구 신학적 해석학의 거점인 교회의 해체를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와 신학이 역사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폐적인 태도를 취해 왔고, 자신의 이해 관철을 위해서는 공격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기에, 교회의 신학적·신앙적 도그마로부터의 해방된 '새로운 신학적·신앙적 실존 양식'을 찾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반신학은, '민중의 눈'을 새로운 해석학적 준거로 삼아 '대안적 신학을 모색하는' 민중 신학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표지에서)

표지에서 이렇게 민중 신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참 책 내용은 '민중스럽지'만은 않다.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각주들과 사회과학 이론들이 평범한 독자인 내 골을 쥐어짜게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과 반신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로서 민중신학에 대한 첫만남으로, 충만한 독서를 했다는 고백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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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즐기기 - 한샘미네르바신서 4
정재윤 지음 / 한샘(주)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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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았다. 그래서 좋았다. 사실 영화 [에이아이] 혹은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영화 관련 책을 봤으면 했다. 그런데 많고도 많은 도서관 책들 중에서 이 책이 눈에 띠었다. 책이 얇았기 때문.

게다가 내용도 부담스런 이론들이 마구마구 나오는 그런 책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감상을 위한 영화이론]이라는 부제처럼 감상을 위해서라면 영화이론마저도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철저히 영화 관람자의 눈에서 쓰여지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물론 영화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는 일반적인 이론마저도 어려움과 따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영화도 그 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얇은 책을 읽고 나니 영화가 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두 번 보라는 것이다. 물론 두 번이 아니라 많이 볼수록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느낌 때문인데, 그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시, 음악 등도 마찬가지일 게다. 나는 늘 같은 '나'가 아니잖은가. 저자는 우리나라 극장에서라면 쫓겨나지 않고 충분히 두 번을 즐길 수 있다며 이 방법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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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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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1. 움베르토 에코라는 거장의 책을 한 번이라도 접해보고 싶은 맘이 있었다. 그것은 거장들이 뱉어낸 책을 읽어, 그들의 지적 수준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어설픈 지적 허영심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들의 '깊이'를 만나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긍정적인 지적 호기심도 있다. 물론, 나에게도 그 두 가지 모두 해당이 된다. (에코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상당히 난해함을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결코 그렇지만도 않았다. 왜 일까? -_-;)

2. 이 책을 읽으려 했을 때의 나는 그다지 밝게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마냥, 단지, 웃고 싶었다. 그것이 가식이라고 할 지라도. 그래서 기억난 것이 이 책의 독특하고도 끌리는 제목이었다. 이 책은 내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패러디는 즐겁다. 그러나 패러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는 이 패러디라는 놈에게는 '사명'이 있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13쪽)

이렇게 에코는 본격적인 '웃으며 화내는 방법'들을 보여주기에 앞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핑계거리를 잘도 마련해뒀다. 참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뻔뻔해지자. 뻔뻔한 자만이 웃을 수 있다.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17쪽)

나는 화를 잘 낸다. 화내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과 성격은 아닐 게다. 물론,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겠지만, 본래 화내는 이유의 심각함에 따라서 차분하게(!) 화를 내는 정도를 절제하기란 아주 어려운 법이다. 따라서,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정말 매력적이다. 더욱이 때에 따라 웃음을 띤 분노란 더욱 파괴적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섭고 잔인하게 느껴지며 좀더 신랄하게, 좀더 날카롭게 보인다. 딴지일보에서의, 혹은 진중권의 글들을 보라.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능글 거리는 웃음은 무섭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할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고 웃는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노할 것에 대해 웃을 수 있는 대단한 절제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제란 것도 분노의 좀더 고차원적인 표현이라는 것이기에.

이 책은 에코의 해박함과 놀라운 지식을 제쳐두고도 재기 발랄함과 엉뚱함, 그리고 엄청난 상상력, 뻔뻔함 등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특히 '뻔뻔함'에 주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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