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문학 단평 모음 김현 문학전집 15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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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거닐다 누가 소리 지르는 걸 듣는다. 소리난 데로 서둘러 가본다. 거기 김현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행복한 책읽기/문학 단평 모음>은 김현 전집 중 15번째 것으로 죽기 직전에 쓴 그의 유고 (독서)일기와 문학 단평들의 집합이다. 급히 말하자면, <행복한 책읽기> 덕분에 이 책은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문학 단평들은 김현이 생전에 원했던 바대로 책으로 묶여지지 않았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김현을 사숙하는 문학도나 그를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이 역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지만.

<행복한 책읽기>는 독서 일기 특유의 재미가 있다. 커다란 독서가가 숨겨 놓은 정신의 속살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 일기 특유의 관음의 매력과 짤막한 독서평 특유의 신랄한 맛, 그리고 독특한 사유들…. 거기에 더해서 쓰러져 가는 거인의 지친 숨소리가 여기에 짙게 깔린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아, 살아있다.

마지막 일기의 다급한 비명은 거친 단문의 속도감 때문에도 절박하게 느껴지지만, 그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기록해 나가는 장면들을 앞에서 몇 번씩이나 읽었기에 더욱 쓰라리게 다가온다.

또 한 가지. 김현을 포함한 평론가들의 신경질적인 독설이나 씨니컬은 비판을 수행하는 그들의 프로페셔널리즘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직업적 책읽기의 압박에서도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월평 행위를 두고 김현은 '병아리 감별사' 노릇이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병아리의 노란 날개와 작은 부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과 양계장의 일꾼이 바라다보는 짜증 섞인 눈빛. 아이는 사실 그가 병아리와 함께 있는지 독수리 새끼와 함께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행복하다. 양계장 일꾼은 병아리를 누구보다도 잘 구별해내지만, 종종 지치게 마련. 진정으로 사랑하는 문학과 기꺼이 결혼한 김현. 그러나 그런 결혼은 때때로 피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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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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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먹을, 라면을 끓이는 동안,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소리내어 읽던 기괴하고 게으른 독자가 다시 한 번 그를 욕보였다. 아, 나는 이번에는 볶은 번데기들을 씹어 먹으면서 그의 전집을 읽게 되었다. 내가 먹은 라면과 번데기 사이에 그의 시가 놓인다는 건, 그에게 어떤 느낌일까. 그가 쓰러진 극장에서는 '뽕2'의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루머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실로 믿고 있으며, 그런 이상한 신앙에 대해 스스로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는 황당한 독자를, 그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런 나를,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生을 온통 슬픔으로 살았고 슬픔으로 시를 쓰던 시인이 더 이상 슬퍼해서 뭐하랴. 요절 시인은 요절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청년 시기로 고정시킬 수 있었다. <기형도 전집>은 그렇게, 미라가 된 어느 청년 시인의 문학세계와 삶을 담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시, 소설, 산문, 자료로 이루어진 이 박물관에는 역시나, 청년들이 웅성대고 있다. 그 관객들처럼 나도 그 미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에 질식할 것만 같다. 그 안개는 벌써 내 '입 속의 검은 잎'을 사막처럼 마르게 하고, 다시 그 갈증은 폐부 깊숙한 곳까지 고통을 전달한다. '아아, 목구멍 가득히 안개가 들어찬 느낌이다.'(환상일지, 247쪽)

…일부러 장난스레 글을 시작하려 했으나, 마지막까지 그렇게 버틸 힘이 도저히 없다. 이 모두가 기형도가 부린 안개의 흑마술 때문이리라. 아, 이제는, 그만 사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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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이론과 사상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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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대중매체 개론서. 강의용 교재를 목표로 낸 책이지만, 여전히 '강준만스럽다'. 대중매체 교양 개론으로서의 욕심도 부리고 있고, 그가 평소하고 싶던 말도 여전히 양보하고 있지 않으며, 그가 존경하는 선배 '지식인'들을 간단히 소개하는 일도 멈추고 있지 않다. 내가 점수 매긴 성적표에 따르면, 그의 욕심들은 성공적인 듯 싶다.

1) 언론학 수업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이론과 개념들을 충실히 다루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새내기 시절의 어느 교양 강좌의 수업 시간에 언론학 교수로부터 추천 받은 이 책을 기억해서 읽은 것이다. 강준만은 얄밉게도 성공해버렸다.)

2) 강준만표 안티조선일보의 교리 전도에도 성실하다. 강준만은, 다른 학자들 얘기를 하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성실한 (독서 및) 인용과 그 인용에 대한 의견 피력이라는 강준만식 글쓰기는, 언론학 저술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3) 그리고 강준만의 중요 관심사인 지식인론. 리영희와 촘스키는 강준만의 스승으로 보인다. 내게 강준만이 스승이었던 것처럼. …리영희는 스스로 '60% 저널리스트, 40% 아카데미션'이라고 하는데 그건 실상, 강준만의 고백으로 들린다. 리영희가 노신을 인용하며 말한 바, 진실을 아는 것은 괴로운 일인데(아, 식자우환이여!), 독자와 후학들에게 그 괴로움(진실)을 준 자신은 다시 한번 괴롭다는 것. …그런데 강 선생은 알까,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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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양태석 지음 / 해토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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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苦鳥. 전설의 새. 히말라야 산에 산다지만, 게을러서 둥지를 틀지 않는다, 그래서 늘 춥고 괴롭다. 「길」의 어느 작중인물이 한고조라는 새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히말라야산에 산다고 알려진 전설상의 새인데요. 이 새는 둥지를 틀지 않아 밤마다 추위에 떨면서 내일은 꼭 둥지를 지어야지, 하고 다짐한다고 해요. 그런데 다시 낮이 되어 따뜻해지면 여전히 둥지 지을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게으름만 피우는 거예요. 다시 밤이 오면 아이 추워, 아이 추워, 하면서도 또 추위에 떨고……. 낮이 되면 다시 게으름을 피우고……. 말하자면, 늘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워낙 게을러 깨달음의 길로 나서지 못하는 인간들을 이 새에 비유하는 거랍니다.'(137쪽)

아, 그래, 어떤 인위적인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삶은 늘 그런 식이지. 차라리 등 위에 버거운 집을 얹고 아주 무겁게 무겁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자기 길을 더듬는 달팽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나 우리는 결코 등허리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짓지 못한다. 신의 얼굴을 한 예수조차도 등 위에 따스한 천국의 집을 짓는 대신 차가운 패배의 상징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았던가.

한고조의 안타까운 날갯짓이 인간 모두의 일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단한 날갯짓을 깨닫는 일은, 그 자신의 이름을 한고조라고 낮게 부르짖는 일은,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닐 터. 이때의 한고조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타.

양태석의 소설집 <다락방>에는 숱한 한고조들의 등장한다. 물론 새로운 정의의 한고조들이. 그들은 바로 소설가 나부랭이다. 그들의 궁핍한 일상이, 우울한 심정이, 때로 주절주절 잡담들이, 그들을 한고조라고 커밍아웃하게 만든다. 다른 누구보다도 너절한 생활 속에서 그 자신을, 세계를, 타인의 얼굴을 꿰뚫어보려 한다. 안쓰러운 날갯짓이다. 결코 둥지를 틀 수 없는 날갯짓을, 그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한 둥지를 틀고서 그 안에서 움츠린 가운데 거짓 행복을 누리는 새가 이미 한고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괴롭다. 날갯짓을 포기한 새는 그 출발이 땅의 끝, 산의 정상에서였더라 하더라도 하늘에 이를 수는 없다. 한고조의 꿈은, 하늘의 끝에 다다르자는 게 아니다. 둥지를 틀지 않고 떠돌며, 한껏 괴로워하며,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누리자는 거다. 하늘의 끝을 바라보며 하늘을 누리자는 거다. 칼 같은 추위에 맞서자는 거다. 그러므로 한고조들은, 히말라야 산의 정상에서 집을 짓지 않고 정처 없이 오늘도 떠돈다. 산 아래의 아득한 세계를 내려다보고 높이의 끝을 동경한다.

한고조는 유년기를 새장에서 보냈다. 그래, 「다락방」이다. 음습한 곰팡내와 바퀴벌레들이 이 괴로운 새의 벗이었다. 남몰래 행한, 음울한 사유의 예배가 이 수줍은 새가 감추고 있는 정신의 알몸이었다. 다락방이란 새장에서의 추억은 외려 지금을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가 「관객」이 되어버린, 제 삶을 버리고 안락한 둥지만을 틀고 있는 지금을. 한고조는 멸종하고 있는가. 당신은, 세계라는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길 거부하고 끝없이 알에서 부화하기 위해 세계를 깨뜨릴 수 있는가. 그러면, 당신은 한고조라고 스스로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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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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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은 '쉬운 것 가지고 쉽게 울궈 먹을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 가지고 쉬운데로 나아가는 헌신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성인 자신은 끊임없이 어려운 것을 극복해나가는 작업을 중단해서는 아니됩니다.'(152-153쪽)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시각이 그의 저술과 강연의 핵심철학일 것이다. TV 강연에서의 과장된 포즈와 특이한 목소리,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줄 아는 지식인. 그러나/그래서 때로 위태로운 발언들로 독자와 시청자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 분노하게 만들기도 하는 철학자. 이것 또한 도올 김용옥의 이미지들의 집합이다.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는 '인간적인 철학개론서'이다. 내용도 평이하면서, 구성도 TV 앞에서 도올 특유의 강연을 듣는 것처럼 친숙하다. 대학 교재로나 쓸 철학개론서나 대중문화의 해설을 통해서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철학개론서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용옥답게, '삼천포와 구라' 들이 난무하고 개그맨 이상의 입담들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는 않다. '나'라는 주어를 감춘 책들에서 볼 수 없는 살아있는 경험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인간적인 철학개론서로 자리매김 하게 한다. 도올의 어린 시절,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철학 하는 방법에 대해서, 철학이란 놈의 성격에 대해서, 실제로 철학 공부하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독자는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철학을 '무전제의 사고'라고 정의하고 나서, 무전제의 사고는 곧 그 실제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다전제의 사고'를 의미한다고 설명하면서 온갖 도그마들의 폐단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철학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논하는 식이다. 특별한 주제가 가지런히 모아지거나 철학사의 순서대로 이야기하는 철학서와는 다른데, 그 때문에 어수선한 게 없지는 않지만 부담감이 덜하고 흡인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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