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두꺼비집을 내려놨나 - 개정판 민음의 시 21
장경린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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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운동>

이 얼 싼 쓰
우 류 치 빠
명동 2가 83번지 화교소학교
열 살 남짓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앞으로 굽혔다가
뒤로 젖혔다가
허리운동을 합니다
뽀얀 모래먼지 이는 운동장
담장을 타고 넘는
이 얼 싼 쓰
우 류 치 빠
조국은 크고 머나먼 나라
굽혀도 굽혀도
손 끝에 발등이 닿지 않는
머나먼 나라-11쪽

<라면은 퉁퉁>

우리 관군이 육전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해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 일본 함대를 적멸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있었다. 4번 타자
김봉연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묵묵히 걸어나갔다. 최루탄 가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그들은

콘돔이나 좌약식 피임약을
상용하였으므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외동아들이거나 외동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정확히 물을 3컵 반
재어서 부어넣었는데, 어떻게, 면발이 퉁퉁-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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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다 - 정보고속도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안내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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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는 색깔도, 무게도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 그것은 정보의 디엔에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원자적 요소이다. 비트는 켜진 상태이거나 꺼진 상태, 참이거나 거짓, 위 아니면 아래, 안 아니면 바깥, 흑이거나 백, 이들 둘 가운데 한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우리는 비트를 1 혹은 0으로 간주한다. 1의 의미, 혹은 0의 의미는 별개의 문제이다. 컴퓨팅의 초창기에 비트열(a string of bits)은 대개 수치 정보를 가리켰다.-17쪽

형태가 없는 데이터 개념은 어느 단계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뉴스 리포트(가능하다), 혹은 소설(상상하기 힘들다)까지? 비트가 비트가 되면 해적질과 같은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이 제기된다.
이제 더 이상, 미디어는 메시지가 아니다.-62쪽

디지털 세계에서 미디어는 메시지가 아니다. 미디어는 메시지의 구현이다.-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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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구판절판


"그건 사랑에도 표준 규격이 있다는 뜻이야. 잘 들어봐.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벨의 전화, 에디슨의 전구, 자본주의 사회의 낭만적 사랑은 모두 역사적인 발명품이야. 17세기 프랑스 사람 라 로슈푸코는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G 코드 예약녹화가 가능한 VTR을 구입하지 않는 한, TV 편성표 프로그램 옆에 있는 숫자는 고정간첩의 난수표와 마찬가지고 피임약이 발명되기 전까지 성적 방탕이란 남성명사에 속하는 것이었지. 같은 이치로 18세기에 낭만적 사랑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뛰는 가슴으로 만나 일부일처제 가정을 꾸려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는 없었다는 뜻이지."-45~46쪽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 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 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넣는 일은 계속된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마음의 숲 속 빈터가 열리게 되면 뜨거운 육체의 아름답고 털 없는 동물들이 뛰놀게 된다고 서양의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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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 입문 - 테리 이글턴의
테리 이글턴 지음, 김현수 옮김 / 인간사랑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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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삼아 언급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정신분석학과 문학 사이에 엄존하는 단순명쾌한 상호관련이다. 옳든 그르든 프로이트의 이론은 모든 인간행위의 기본적 동기체계를 고통의 회피와 그 쾌락획득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이른바 쾌락주의(chedonism)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시, 소설, 희곡을 읽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 분명해서 대학에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해서 대학에서 문학연구에 몇 년씩 바치고도 문학이 궁극적으로 여전히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다시 말해서 많은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문학강의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짜여져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문학작품을 여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면 뭔가 잘못된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의 초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은 처음에 문학을 학문적인 ‘전문분야’로 설정한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영문학이 존경할 만한 고전의 일종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자 한다면 영문학 연구의 모든 주제가 우리를 좀더 위협하고 기죽이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 밖이 사람들은 학계가 이런 근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통속소설, 스릴러물, 역사소설을 탐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36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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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F -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 1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행복한책읽기 편집부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SF팬들이 들으면 무척이나 서운한 말이겠지만, 국내 독서가들에게 아직까지 SF는 낯선 장르이다. 이런 국내 출판-독서 상황에서 ‘과학소설 전문무크’를 표방하고 나선 <Happy SF>가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에서 창간되었다. 지금은 무크지로 시작하지만 편집동인들의 희망은 계간지로 정착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Happy SF>의 창간은 다른 누구보다도 국내 SF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SF로 독서의 폭을 넓히려는 독자들에게도 희소식이다. <Happy SF> 편집동인들의 바람도, 이 무크지가 기존 SF 작가 및 독자들의 소통의 장이 되면서 새로운 SF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지 않을까. 이번 창간호의 편집 방향도, SF에 대한 소개와 독자 가이드 특집이 있어서 SF 초심자들의 독서 가이드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창간 특집으로 마련한 “왜 SF인가?”에는 SF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 현대 SF의 양상과 한국의 SF 현황, 한국 SF출판의 번역과 편집의 문제, 주류문학과 SF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특집에 실린 글들은 국내 SF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자들의 말과 글의 조각들을 한 덩이로 모아보면, 논의될 만한 국내 SF 작가로 복거일, 듀나 이외에 거의 찾을 수가 없다. 국내 SF 작단은 협소한 편이고 때문에 해외 SF의 번역과 소개가 우선적으로 시급한 일이라고 한다. SF 독자들이 많아지고 나서야 높은 수준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도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과학소설 평론가 김상훈의 <현대 SF의 진화>라는 글에서 재미난 대목이 있다. 한 소설이 SF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 이는 SF와 주류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내용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쓰는 방식(독서 프로토콜 : 해당 텍스트를 읽기에 앞서 작가와 독자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일종의 마음가짐 내지는 인지적 패턴)의 차이에서 오기 때문이다. 작가이며 평론가인 딜레이니가 든 예를 보자. “그녀의 세계가 폭발했다.”라는 문장을, 주류문학 독자들은 ‘그녀의 격렬한 감정의 폭발’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나 SF 독자들은 그녀가 살고 있는 행성이나 거주지(우주선 등)의 폭발에 주목할 것이다.

SF 독서 프로토콜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나는, <Happy SF>에 실린 네 편의 SF들을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다. 여기서 SF 창작의 기린아로 추켜세워 소개된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이 듀나와 구광본과 강병융의 SF보다는 뛰어나다고 생각은 되었지만 말이다. 창간호의 뒤에 실린 SF 추천 목록의 세례를 받고 나서야 그때 나는 행복한 SF 읽기가 가능하리라. 나의 SF 탐사선의 엔진에는 아직, 불꽃이 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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