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읽기 싫어하였다.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 '천'자에는 아무리 봐도 푸른 빛이 없잖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아이들의 이 총명함은 문자를 만든 창힐을 기죽인다.
- (박지원), 173쪽.
... 요즘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역시나 한자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에구, 이 요상시런 그림들을 언제 다 외우나! 깨달은 것은 내 암기력의 한계와 밑도 끝도 없는 게으름이다. 한자 공부보다는 뒹굴거리며 잡생각하는 게 역시나 행복하다. 어제도 그렇게 뒹굴거리다 갑자기 나 자신을 강하게 변호하고 싶어졌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건 열정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열정의 과잉 때문일 것이다. 인간들의 저 과도한 열정에서부터 전쟁과 폭력이, 자유의 제한이, 타인에 대한 억압이, 생태계 파괴가 시작됐다. 게으른 자는 방바닥에서 똥배를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타인을 착취해서 자기 욕망을 채울 겨를이 없다.'
...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쨌거나 한자 공부는 어렵다. 나는, 그 옛적에 박지원이 살던 동네의 꼬맹이들보다도 총명하지 않으니 이를 어쩌나. 내 게으름과 아둔함은 문자를 만든 창힐을 기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