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읽기 싫어하였다.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 '천'자에는 아무리 봐도 푸른 빛이 없잖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아이들의 이 총명함은 문자를 만든 창힐을 기죽인다.

                                                                                    - (박지원), 173쪽.


... 요즘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역시나 한자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에구, 이 요상시런 그림들을 언제 다 외우나! 깨달은 것은 내 암기력의 한계와 밑도 끝도 없는 게으름이다. 한자 공부보다는 뒹굴거리며 잡생각하는 게 역시나 행복하다. 어제도 그렇게 뒹굴거리다 갑자기 나 자신을 강하게 변호하고 싶어졌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건 열정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열정의 과잉 때문일 것이다. 인간들의 저 과도한 열정에서부터 전쟁과 폭력이, 자유의 제한이, 타인에 대한 억압이, 생태계 파괴가 시작됐다. 게으른 자는 방바닥에서 똥배를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타인을 착취해서 자기 욕망을 채울 겨를이 없다.'

...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쨌거나 한자 공부는 어렵다. 나는, 그 옛적에 박지원이 살던 동네의 꼬맹이들보다도 총명하지 않으니 이를 어쩌나. 내 게으름과 아둔함은 문자를 만든 창힐을 기살린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물고기 2004-04-2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저보다는 훨씬 바지런 하십니다. 한자 공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입 걱정만 벌써 이백 년째입니다. 게으름에는 이미 익숙해 있어 괜찮은데 괜히 한자 공부 시작했다가 제 아둔함에 땅 치고 망연해질까봐 은글슬쩍 겁이 나네요. 열심히 하시옵!

도서관여행자 2004-04-2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앗, 그런데, 마녀물고기 님은 이백 몇 살이시구나. 최고령 물고기시네요. ^^

연우주 2004-04-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 존경합니다. 전 한문은 늘 공부한다, 한다하면서 안 합니다...ㅠ.ㅠ

도서관여행자 2004-04-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억지로 하는 공부는 자기 비하감과 괴로움만 더할 뿐이더군요. 다음엔 즐거운 공부(?)만 하고 싶어요.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