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여자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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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 알라메딘은 1959년 요르단 암만에서 민족종교인 “레바논 드루즈” 교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드루즈”는 무슬림이 아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천지창조와 에덴 추방 같은 것을 믿기는 하지만 라마단, 성지순례 등을 공유하지 않는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신비주의적 일신교로 전세계에서 백만명 미만의 신도를 보유한 소수종교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라비 알라메딘은 쿠웨이트와 레바논에서 성장했고, 영국을 거쳐 미국 UCLA에서 공학사,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취득해 전공과목으로 먹고 살다가, 뜻한 바 있어 화가와 작가로 살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라고.

  굳이 이이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 알리야 살레는 72세의 노인 여성이며, 이이 주변의 주요 등장인물 역시, 절친 한나를 비롯해 어머니와 한 아파트 지붕 밑에서 사는 세 마녀, 파다야, 주마나, 마리-테레즈 등 주로 여성으로, 그냥 읽다 보면 작가 역시 당연히 여성이겠거니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알리야. 화자 ‘나’의 이름. 1937년에 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높은 데 있는 사람, 하늘이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이 이름을 아꼈고, 알리야를 그보다 더 아꼈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정작 알리야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이가 두 돌도 되지 않아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아버지는 병들어 죽었다. 이때 아버지가 겨우 스물한 살. 어머니는 16세에 알리야를 낳고 18세에 과부가 됐다.

  1930년대 말에도 이 나라 레바논은 여전히 14세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도 낳지 못한 과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알리야를 안고 다시 친정집으로 들어가고, 친정 부모에게 들들 볶이다가 남편의 동생과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됐다. 알리야는 이후에 세 명의 이부 동생이 생겼으며 새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냥 알리야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었을 뿐.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아주 잘했던 알리야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음에도 열여섯 살이 되자 한 찌질이한테 시집가야 했고, 먼 훗날, 72세가 되도록 평생을 살게 될 아파트에 집을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할 때는 행복한 줄 알았다. 작품에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알리야가 4년 후에 이혼당할 때까지 틀림없이 숫처녀는 아니지만 숫처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았던 거 같다. 이슬람 여성답게 남편이 요구하면 거절할 수 없었을 테니 “당시” 10대 소녀들이 종종 그랬듯 성적으로 기피나 혐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찌질한 남편이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알리야는 살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남편의 물건을 보지 못했단다. 그래 하루는 밤중에 완전히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슬쩍 일어나 성냥불을 켠 후 이불을 들춰 남편의 아랫도리를 확인했더니, 세상에나, 공룡이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글쎄 지렁이가 달려 있었다. 이후에도 몇 번 다시 확인해봐도 여전히 지렁이였다고. 아마도 성기 왜소증이나 조루증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할례를 하다가 껍데기가 아니라 작대기를 잘라 버렸을까?

  나도 <한밤의 아이들>을 읽고 알았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자가 이혼을 원하면 여편 앞에서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라고 세 번(네 번?)만 외치면 이혼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 지렁이 달린 찌질이도 “아는 당신과 이혼한다.”라고 외쳤을 때 알리야의 나이 스무 살. 천만 다행이었던 것이 남편이 이 말을 던지고, 알리야를 친정으로 쫓아 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집에서 나가버렸다는 거. 속이 다 시원했겠지? 그러나 이후에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집을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요구, 강제, 지랄을 했지만 어린 알리야는 감히 버텼다. 여성이 동산이건 부동산이건 소유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첫번째 의문이 여기서 생겼다. 둘이 살기에 넓기는 하지만 어차피 월세집. 시집이고 친정집이고 간에 왜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겠다는 거지? 다른 아파트 구해 들어가면 되잖아. 특히 친정 어머니와 의붓 큰동생이 협박을 해가면서 집을 내놓으라고 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게 이해가 힘들었다. 거액의 보증금을 전남편이 따로 낸 거였나? 그것 참. 이게 다행인 이유를 모르겠던 것.


  찌질한 남편이 50년대 말에 이혼하면서 위자료를 주었을 턱이 없고, 그렇다고 이혼 후 생활비를 보내주었을 리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이때 등장한 인물이 한나. 찌질한 남편의 친형과 사랑했던 사이. “사랑했던.” 과거형이니까 지금은? 여전히 숫처녀. 어떻게 그집 집구석 남자들하고 관계만 되면 숫처녀나 숫처녀 비슷하냐고? 한나는 장교, 정확하게 중위와 사랑해서 결혼하자고 굳게 맹세했다. 그런데 남자가 죽어버렸다. 이후에 한나는 결혼 약속을 굳게 마음에 새겨 마치 그 집안의 며느리인양 평생 그렇게 살았다. 한나보다 열다섯 살 더 많지만 알리야와 친밀했던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일흔두 해를 산 알리야가 아꼈던 유일한 사람으로.

  물론 친절했다. 남자 없는 이혼녀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유일한 사람. 그리고 먹보.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그저 통통한 수준을 유지할 뿐 절대로 비만 체형이 되지 않는 행운을 누리던 여자. 역시 가장 큰 친절은 먹고사니즘과 관련이 있어서, 한나의 육촌 형제 가운데 지적 과시욕에 들떠 시내 골목에서 작은 책방을 연 사람이 있어서, 알리야를 이 책방에 취직시켜주었다. 이 책방에 반백년, 오십년을 다닌다. 책방이 결코 이익을 만들지 않는 사업이라 월급을 받아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알리야는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 비슷하게 살았다. 키만 크고 몸에 근육은 별로 없는 꺽다리.

  책방이라니. 물 만난 물고기. 앞에서 이야기했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무척 잘했다고. 알리야는 손님이 별로 없는, 별로가 아니라 거의 없는 책방에서 이 책, 저 책 쉬지 않고 읽는다. 곡식과 풀만 먹고도 힘이 남아 열심히 읽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문을 넣는다. 두 권. 어떤 때는 세 권. 레바논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두 권 가운데 한 권 팔리면 나머지 한 권은 남는다. 일정 기간 동안 팔리지 않으면, 알리야가 그냥 집으로 가져간다. 풀만 먹고 살아도 책 살 돈이 없다. 이해해달란다. 뭐 좋다. 어차피 사장도 돈 벌려고 책방 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한 번 책 훔쳐가는 게 힘들지 이력이 나면 그까짓 거야 뭐. 그래도 도둑년인 건 확실하지만.

  원래 공부를 잘하고, 레바논 역사를 보면 영어와 프랑스어하고 친할 수밖에 없어서 두 언어에 능숙한 알리야는 원문이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책을 중역하기 시작한다. 스물두 살부터 일흔두 살, 이제 2002년이 저물고 며칠 지나면 2003년이 되는 겨울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아랍어로 중역할 때까지 모두 37편. 1년에 한 편을 원칙으로 하되 때로는 분량 많은 책들도 있어서 1년이 넘어 걸린 책도 꽤 있다. 알리야는 자기가 번역한 원고를 출판하고자 하지 않는다. 중번역이 끝나면 원고를 종이 박스에 넣고 그걸 하녀방과 하녀화장실에 쌓아 놓았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나중에 뒤져 보기야 한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다른 시인, 작가들이 쓴 시, 소설, 에세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가의 경우 다행스럽게 많은 작품을 읽어보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데 별로 문제가 없었다. 시로 말하자면, 나는 외국시를 읽지 않아 좀 곤혹스럽기는 했다. 근데 알리야가 고전음악도 많이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음반도 많다. 주로 LP. 두번째 의문. 알리야가 월급 받아 월세 내면 돈이 거의 없어 풀만 먹고 산다는 얘기는 했고, 책도 사지 않고 주로 자기 직장에서 훔쳐 가져왔다는 것도 썼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이 와중에 한 달에 LP 두 장을 샀을까? 해적판도 아니고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 말로 노랑딱지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을? 좋다. 그럴 수 있다 치자. 알리야가 50년 동안 돈을 벌었으니 50년 곱하기 12개월 곱하기 LP 두 장은 LP 1,200장. 그런데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LP 1,200장 소유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LP 1,200장이면 CD 기준으로 한 7백장 수준. 알리야가 주장하는 레바논의 문화수준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자기가 들은 LP, 그리고 가능했다면(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랬다고 치면) 판 가게 주인남자와 나눌 수 있었던 음악 이야기, 그리고 딱 1회성인 라디오 음악방송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감상 환경일 텐데, 쇼팽의 피아노 곡부터 시작해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거쳐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쇤베르크, 메시앙, 리게티까지 도무지 막힘이 없다. 음악 강의 한 번 안 듣고 12음 기법 이후의 현대음악을 이해했다면, 알리야는 정말 천재다. 인정 안 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늙은 알리야는 이제 기력이 달리지만 주로 걸어서 이동하고, 좀 먼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책방이 문을 닫을 때는 아무리 헐값을 주고 샀다 해도, 집안이 거의 책으로 메워질 만큼 많은 책을 한 방에 사들였다. 1970년대 말부터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공습과 내전으로 허덕이고 또 허덕였는데, 책방도 연 날보다 문 닫은 날이 더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여유로운 노년을 맞을 수 있었을까? 합당한 설명이 없다.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말이 자꾸 왔다갔다 해서 문제다. 177쪽에는 또 “나는 수시로 책을 사서 읽을 책더미에 올려 놓는다.”라고 헛소리를 한다. 이건 알리야 문제가 아니라 작가 라비 알라메딘이 문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알리야는 음악, 미술, 문학, 어학에 도가 텄다. 어려서부터 잘 교육받은 라비 알라메딘이 그러하듯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수준이다. 알리야는 자기도 모르게 고백한다.


  “내가 남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도 평생 신경 쓰였다. 수년 동안은 내가 특별하다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선택했다고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사실상 나는 내가 우월하다고 믿고 싶었다. 예술가는 아니라도, 마티스 같은 천재는 아니라도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p.280)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자만심을 용서해줄 마음이 1도 없다. 내가 음악, 미술, 문학, 다 합해 예술과 어학을 너보다 훨씬 잘 이해하기 때문에, 너보다 낫다, 우월하다는 마음이 차별을 낳고, 차별이 혐오를 낳고, 혐오가 또 무엇을 낳고, 무엇이 아브라함을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최종적으로 나치를 낳는다. 알리야 살레도 일흔두 살. 이제 곧 죽을 늙은이라 다행이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어중이떠중이 가운데 한 명이 말씀드립건대, 히틀러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레바논 근현대를 살면서 그리 많은 이스라엘의 폭격을 맞아도 유대인 천재 작가, 시인, 철학자, 작곡가, 화가, 그리고 홀로코스트만 이야기할 뿐 이스라엘의 대 레바논 공격을 비난하지 않는다. 라비 알라메딘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반유대주의자로 찍힐 거 같거든. 하긴.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똑똑이가 그걸 몰라요. 우월하다고? 사실은 위험한 거야, 대단히.

 라비 알라메딘, 그리고 알리야. 너넨 정말 속물이야,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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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2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둑년 일리야 ㅋㅋㅋㅋ
제가 그래서 그 아파트가 일리야 자가 소유로 생각했다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왜 형제들이 저기 와서 살려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나..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LP판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 부분 의아했습니다. 아니 서울 사는 월급쟁이 잠자냥도 단 한 장 사지 못하는 사치품 LP를..... 턱턱 사는 이 여자...(탈을 쓴 레바논계 미국 남성 ㅋㅋㅋㅋ)

건수하 2026-06-12 10:44   좋아요 2 | URL
제가 전에 썼듯이 보증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그러니깐, 그래서 노년 여성의 삶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니까요… 왜 굳이 여성으로 썼을까요 작가는? 마지막 여성 연대 서사까지도 피상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잠자냥 2026-06-12 10:59   좋아요 2 | URL
저 남자 작가가 (좋게 말해서) 영리한 수를 쓴 거죠. (나쁘게 말하면 잔머리 굴림)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쓰면 잘 팔리겠구나! 여성-노인-유색인-페미니즘 담으면 바로 이거야!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게 너무 속 보여서... 얄팍해짐. 심지어 이렇게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올바른 나..란 남자까지 느껴져서 좀 더 싫음.)

건수하 2026-06-12 11:0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얄팍하다에 공감!

Falstaff 2026-06-12 15:46   좋아요 3 | URL
내전이 있던 시대에 리비아계 미국인 작가가 리비아를 무대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체험해보지 않은 동족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든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광장이 아니라 자신의 방으로 공간을 축소시킬 수 있는 당시 여성으로 했다는 데 한 표 던집니다.
리비아 현지에 사는 남자 주인공. 리비아 뿐만 아니라 중동의 내전 지역에서 내전에 관해 함부로 썼다가 파트와 판결이라도 받으면 어쩌라고요. 얄팍/잔대가리 이전에 생사의 문제가 달렸을 수도 있습니다.
공쿠르 상 받은 ˝남자˝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도 알제리 배경, 여성이 주인공입니다만 그래봤자 다우드는 결국 파트와 판결을 받았을 뿐입니다.

<후리>의 스토리가 다우드의 아내,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실제 환자 이야기라서, 의사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비밀준수의 의무를 위반해 소송을 벌였다고 하지요, 아마? 다우드는 그러면서까지 여자를, 그것도 ˝실재하는˝ 아내의 환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써야 했을까요?

건수하 2026-06-12 20:09   좋아요 0 | URL
레바논의 과거 혹은 현재가 안타까워서 썼다기에는 너무 이야기가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작가가 잘 모르는 것을 대충 이것저것 엮어서 쓰려했다는 점에 동감입니다.

건수하 2026-06-12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용된 책 내용들을 만나는 건 좋은데 책의 나머지 부분이 별로였어요. 인용에 공들이느라 나머지 부분을 너무 대충 쓴 느낌…

Falstaff 2026-06-12 15:45   좋아요 1 | URL
아무렇게나 막 쓴 거, 또는 쓰고 난 다음에 퇴고를 하지 않은 작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더라고요.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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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만 에르펜베크의 책을 세 권 읽었다. <카이로스>가 2024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을 두었는데 정작 인상깊게 읽은 책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였다.

  딱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읽었다. 20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역, 그러니까 중부와 동유럽 지역의 현대사를 지낸 한 아기, 소녀, 청년, 중년, 노년의 이야기. 시대는 프란츠 요제프 1세 시절, 1902년 봄과 여름 사이에 태어난 여자 아이.

  아이는 스페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시아에서 열여덟 살의 유대인 어머니와 가톨릭 교도 즉 유럽 원주민 아버지 사이에서 맏이로 난다. 유대 어머니가 갓 태어났을 때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했다. 유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1902년에 난 아이의 어머니.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그녀와 남편이 거실에 있고 아이는 보모가 아이방에서 돌보고 있을 무렵 어수선한 기척이 나 창 밖을 내다보니 집 밖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순간 덧문도 닫지 않은 1층 창문에 첫번째 돌이 날아 들어왔다. 남편이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까 그곳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안드레이가 있어 그를 불렀더니 안드레이는 못 본 척해버렸다. 두번째 돌이 유리창을 깨고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 남편이 부모한테 졸업선물로 받은 괴테 전집 9권 책등에 맞았다. 그래서 조금 상처를 입은 괴테 전집 9권은 <모든 저녁이 저물 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이어 안드레이와 청년들이 집 현관문 앞에 들이닥쳐 도끼질을 하기 시작한다. 부부는 피신할 수밖에 없다. 2층 아기방을 두드렸다. 보모는 문을 걸어 닫은 채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건네주는 것도, 아기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거부했다. 긴박한 순간에 부부는 할 수 없이 2층과 지붕 사이의 다락방으로 피신했고, 그 순간 도끼질에 산산조각이 난 현관문을 박차고 청년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사정없이 박살내기 시작했다.

  다락방에 숨었다 해도 발각나 폭행을 당할 것이 틀림없어 부부는 맨손으로 천장을 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금 구멍을 낸 사이에 다락방까지 다가온 청년들이 문짝을 도끼질했다. 겨우 뜯어낸 지붕으로 먼저 아내를 올려보낸 남편이 점프를 했고, 순간 다락방의 방문이 도끼질 두어번에 조각이 나버렸으며 뛰어오른 남편의 팔을 붙잡은 그녀가 힘을 주어 끌어올리는 바로 그때, 안드레이와 함께 들이닥친 청년이 남편을 향해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러 그를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녀가 죽을 힘을 다해 남편의 팔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쑥, 남편의 팔만 아내가 있는 지붕 위로 불쑥 솟아오르고 그냥 고기 덩어리가 된 나머지 부분은 2층 창문에서 거리로 내던져졌고, 지나가던 행인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에 유대인 과부가 된 여인은, 아이에게, 훗날 1902년에 난 아이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마도 미국으로 갔을 거라고, 미국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이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사실 미국에도, 파리에도, 베를린에도 가지 않고 유대인 거주지역 안에 있는 집에서 안드레이를 비롯한 폴란드 청년들에게 난도질을 당한 채 죽어버린 다음 어머니가 남편의 상점을 이어 운영했는데, 아이가 점점 자라 당연한 듯 상점에서 일을 도왔을 것이다. 열여섯 살이나 열일곱 살이었을 때, 갈리시아 지방 칼 루드비히 철도의 35km 구간을 책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최하위 그러니까 11등급 철도 공무원 청년이 상점에서 유대인 여주인의 딸을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청혼했다. 청년은 매우 가난했으며 그럼에도 살기 위하여 이곳저곳에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혹시 결혼하면 유대인 여인이 내줄 혼인 지참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작 오직 법률적으로만 결혼하는 날, 청년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없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어도, 주변에 침묵이 퍼지는 걸 확인하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그건 보편적으로 종말과 관련한 ‘무엇’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법률혼 때도, 아기 그러니까 아버지의 손녀가 출생했을 때도 오지 않았다. 길이 너무 멀고 돈이 많이 든다고만 했다. 아내, 그러니까 아버지가 미국이나 아니면 파리,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있던 아이가 커서 혼인을 한 여자의 외할아버지도 오지 않았다. 손녀가 이교도와 결혼하는 날. 그는 길을 떠나 손녀를 축복하는 대신,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신부를 위해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례인 시바를 치루고 있었다. 조상의 신이 보자면 그녀 또한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이 젊은 부부가 법률적으로 혼인을 하고, 아홉달이 지나 딸을 낳고 나서, 이제 아빠가 된 청년은 자기 주변에 침묵만 깔린 것을 확실히 알아챌 즈음해서, 아내가 가져온 지참금으로 자기 빚을 다 갚을 수도 없고, 최하위인 11등급 공무원에서 10등급으로 승진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점점 자라 벌써 세상에 나와 여덟 달이 되고 처음으로 겨울을 맞았고, 그리고, 죽었다. 자다가 담요가 두꺼웠나, 똑바로 누워 재웠는데 사레가 들었나, 아팠는데 그것을 몰랐나. 그렇게 죽었다. 유아돌연사. 그건 지금도 잦은 빈도로 일어난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가 미국으로 간 줄 알며 산, 아니면 파리나 베를린으로 떠난 줄 알고 산 엄마는 그냥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등에 책가방을 메고 집은 나설 어린 여자 아이, 열살 먹어 쉬지 않고 조잘대는 꼬맹이, 청년들의 눈길을 한 없이 즐기는 처녀애, 그리고 늙은 여자가 될 자기 딸이 흙 세 줌과 함께 땅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을 부은 거였다. 그렇게 땅 속에 죽은 아이를 묻고 돌아온 젊은 엄마는 유대인 관습에 따라 현관문 앞에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녀의 할머니한테 유일하게 물려받고 싶어했던 발 받침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앉곤 하던 발 받침대를 옆에 두고 꼬박 일곱 날을 기대 앉아 있을 것이었다.

  아이가 죽었나, 싶었을 때, 그녀는 집안의 물이란 물은 모두 바깥으로 쏟아버렸다. 죽음의 검은 천사가 검을 물에 담아 씻을 테니까. 담요로 거울을 덮고 모든 창문을 열어 놓았다. 아기의 영혼이 되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날아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아기는 가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젖이 돌아 가슴이 뭉쳤다. 땅 속에 묻혀버린 아이를 위한 젖.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젖 때문에 그녀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상들의 신과 거래하여 자신의 생명과 그녀의 몸에서 태어난 생명을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신은 그녀가 건넨 것을 결코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모든 가능성을 포함한다. 여기서 막간극이 벌어진다.

  만약 예를 들어, 아이가 죽어가던 순간 그날 밤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바깥 창틀에 쌓인 눈을 한 줌 퍼다가 아기의 옷 속으로 밀어 넣었더라면, 그 순간에 창을 열고 은은하게 빛나는 눈을 바라보거나, 추위에 오그라든 창틀이 삐걱대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런 영감이 떠올랐을 수 있었을 텐데, 만일 정말로 창틀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한 줌이라도 퍼다가 아기의 가슴 그러니까 심장 부위에 밀어 넣어 자극을 했더라면 아마도 아기는 불현듯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소리를 지르며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둘 가운데 뭐가 됐든 아기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아기의 피부는 온기를 회복하면서 눈은 아기의 가슴에서 녹아버렸을 것이다.

  다만, 만약이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작가는 결심한다. 창작자의 권한으로 만약이었던 것을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결심해버린다. 그리하여 때는 1918년. 아이는 16년 전인 1902년에서 190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죽은 것이 아니라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의 겨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전 국민이 곤궁의 골짜기로 떨어졌을 무렵, 이제 극도로 좁아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전근해 온 아버지를 따라 여전히 고도의 위용을 자랑하지만 조금의 식량을 얻기 위하여 밤새도록 배급소 앞에서 줄을 서야 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 나이가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했던 시기. 그렇다고 아이에게 당연히 연인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패전해 곤궁에 떨어진 왕년의 제국 도시 빈에는 스페인 독감이 돌아 아이의 절친한 친구도 죽어버리고, 도시에서 넘쳐나는 빈에서 운구용으로 쓰이던 전차를 타고 공동묘지로 향한다. 죽은 친구의 애인, 전장에서 독가스를 마시고 돌아온 남자를 연모하던 아이는, 남자에게 온몸을 던졌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 주일을 견딘 후에, 1919년 1월 26일, 23시 17분경, 알저 거리 4번지, 북위 48.21497도, 동경 16.35231도, 빈 종합병원 앞에 멈춘 택시 안에서, 우연히 만난 의대 3학기에 재학 중인 페르디난트 G. 씨로 하여금 서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아이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갖다 대고, 정확히 그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짖는 소리에 화답하듯, 정말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게 해서, 죽었다.


  이렇게 아기는, 소녀는, 젊은 여성은, 중년 부인은, 노인은 다섯 번의 삶을 20세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엔나, 프라하, 모스크바, 동베를린을 거쳐 역사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문장, 글이 매혹적이다. 배수아의 가필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전에 인상깊게 읽은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떠올리게 만드는 빼어난 글과 20세기, 한 문장도 허투루 읽지 못하게, 그렇게 몰입하게 되는 작품. 이런 걸 뭐라 해야 하나? 아름답다고? 비슷한 느낌이다.

  에르펜베크, 이제 이이의 단행본은 한 권 남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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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ㅣ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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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로알드 달이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쓴 어린이 소설 작가인 줄 알면서도 읽기 시작한 건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섬에 있는 서점>에서 특별한 단편소설 작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 “교유서가”의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1번 《맛》을 읽어보니까 흥미가 돋았다. 재미있고 특색있는 대중소설가가 쓴 단편들. 특히 도박이나 내기 같은 장면은 달만큼 인상적으로 묘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그래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세 권을 올해 안에 모두 읽어 보기로 작정을 했고, 순서가 헷갈리는 바람에 2번을 건너뛰고 3번 《헨리 슈거》를 먼저 읽었다.


  한 번에 탁, 말해 버리면, 전작만 못하다. 시리즈에 번호 1을 괜히 주는 게 아니었나비여?

  《맛》은 이야기했듯이 내기와 도박 장면이 참 근사했다. 물론 《헨리 슈거》에도 표제작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에서 도박장, 카지노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 헨리 슈거가 무려 3년에 걸친 요가 수행으로 투시력을 확보해서 기껏 한다는 일이, 누가 로알드 달 아니랄까봐, 카드 뒷장만 본 채 어떤 카드인지 알아 맞히는 거라서 평생 카지노에 들락날락하며 1억 파운드가 넘는 돈을 버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아홉 단편의 맥은 조금 허황된 이야기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어른 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 판이라고? 그렇다. 어른 판이라면 당연히 허리 아래 이야기를 피할 수 없지? 그리하여 맨 앞에 실은 <로제트 부인> 속 로제트 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포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다. 스태그, 스터피, 윌리엄. 이렇게 세 명의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공군과 격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휴가를 받아 이집트 카이로로 놀러가서 카이로의 이름난 포주 로제트 부인을 찾아가 벌이는 활극. 활극도 시거를 입에 문 채 총 쏘고 말 달리는 활극이 아니고, 로제트 부인의 유곽으로 쳐들어가 세계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열네 명의 아가씨를 해방시키는 이야기. 해방이라 해서 정말로 해방, 즉 매춘업 업종을 바꾼다는 게 아니라 그저 로제트 부인의 무지막지한 폭리로부터 해방일 뿐이기는 하다. 뭐 스토리 전개는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하다. 그걸로 끝이라서 문제지만.


  또다른 허리 아래 이야기로 <대역전>이 있다. 크게 개구멍이 나 있는 산울타리 덤불을 사이에 이웃한 두 가정. 제리-사만다 부부와 화자 ‘나’인 빅-메리 부부.

  사건은 제리-사만다 부부가 파티를 여는 날 밤에 시작한다. 빅이 보기에 사만다가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다. 관상을 보니 사만다 역시 남자를 무척 밝히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절대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유혹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사만다의 남편인 제리와도 절친 사이다. 그러니 친구의 아내와 한 침대에 오르는 건 정말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안 될 일이 또 뭐가 있을꼬?

  빅, 이 개 아들 놈은 발상 전환 모드에 들어간다.

  통박을 굴려보니까 절친 제리가 빅의 어여쁜 아내 메리한테 매우 높은 수준으로 끌리고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자기와 같은 이유로 함부로 껄떡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 앗따, 바로 이거다.

  빅이 제안한다. 마치 자기 직장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실제로 저지른 일을 들은 것처럼. 바로 스와핑.

  스와핑은 스와핑인데 두 부부, 즉 네 명의 합의하에 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벽 한 시에 옆집 남자 둘이 서로 침대를 바꾸어 들어가 한 시간 동안 한 번씩 하고 두 시에 다시 원위치하는 것. 이 과정에 돌입하고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이는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그걸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여간 제리와 빅은 그렇게 한다. 화자가 빅이니까 책에는 빅과 사만다의 침대 장면만 살짝 나온다. 아참,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제리의 물건이 빅보다 훨씬 크고, 빅이 아래로 휘어져 있는 반면 제리는 위로 휘어졌으며(이건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나?), 지속 시간도 비교하자면 무척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미리 이야기를 주고받아,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으로 빅은 제리의, 제리는 빅의 침대 루틴을 지키기로 했음에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새 자기 루틴으로 방사를 치루었는데, 처음엔 뻣뻣하던 사만다의 몸이 나중에 배배 꼬이면서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이렇게 ‘좋아’를 네 번 외친 다음에, 아이구 미국인들이란, 뒷처리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아, 드러. 아니, 드러운 건 아니지만, 거 좀 척척하니 찝찝하지 않아?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식탁에서 벌어진다. 화자 빅과 메리의 대화. 흠. 이건 알려드릴 수 없지.

  박완서의 단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놀랍지?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의 두 남자. 하루는 어울려서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고 아뿔싸, 의도치 않게 오직 헷갈려서 서로 상대방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다. 이미 밤은 깊어 두 집의 여사님들은 벌써 잠에 떨어진 상태. 그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섬주섬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파고 들어 아내(인줄 아는 옆집 여자)의 몸을 더듬다가 위로 올라가 일을 치룬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지. 두 남자가 비슷한 수준의 상투적 전희에 이어 거의 비슷한 속도와 유지 시간,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같은 방식의 뒷처리 후에 잠에 빠지더라는 거. 박완서 시절이니까 천민자본주의의 절정기에 물화, 정형화된 가정의 단면을 비튼 소설이다.

  반면에 미국 가정을 무대로 하는 영국인 소설가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 사회성이 쏙 빠진 흥미 본위의 절반 대중소설. 그래서 재미로 치면 조금, 아주 조금 윗길이기는 하지만 기대하지 마시라. 절대 결말을 일러드리지는 않을 터이니.


  그런데도 이 책을 <찰리의 초콜릿 공장> 류라고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이랄까, 하여튼 그 비슷한 묘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게 소년시절을 지나고 있는 시절이라면 재미있고, 놀랍고, 빨려들면서 읽을 수 있겠지만, 대가리 다 커서 이제 인생에서 유별날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성인이라면, 이게 무슨 허황되고 헛된 이야기야, 타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시간 죽이는 데는 끝내줄 거 같다. 여행길이라면 즐겁게 가방에 넣고 가라고 추천. 당신의 정서함양을 위한 교양도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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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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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이 두 편은 유진 오닐이 쓴 작품에 국한하자면 망작일세. 다른 극작가가 썼으면 훌륭한 작품이겠지만 천하의 오닐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아, 오해하지 말기. 내가 최근에 본 연극이 몇 십 년 전 일이다. 이런 문외한이 하는 말이니 1도 믿지 않아야 마땅하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서는 노골적으로 탈, 마스크가 나오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에서도 조현병이 심각한 여자 주인공 엘라는 콩고 탈을 보고 경끼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온다. 엘라의 진짜 탈은 그깟 콩고 탈이 아니라 흑인, 백인으로 세상을 가르는 인종의 문제, 그 문제에 함몰하여 빠져나올 줄 모르는 엘라 본인이 쓴 탈이다. 라고 나는 주장한다.


  <위대한 신 브라운>에는 두 명의 탈 쓴 이가 나온다. 주인공 윌리엄 브라운. 애칭 빌리. 그리고 디온 앤서니. 두 명 다 출중한 젊은이들.

  디온의 아버지 앤서니 씨는 큰 건축회사 사주. 몽상가이면서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디온은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는 약한 자아를 감추기 위하여 매사 냉소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세상을 조롱하는 듯한 가면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빌리는 자기 아버지 브라운 씨가 앤서니 씨의 도급업자로 시작해 동업자의 말석에 끼워주어서 그런지 디온에 대하여 열등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사실 실력도 디온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빌리는 자신감 넘치는 야심찬 모습의 탈을 지니고 있다.

  두 등장인물은 늘 가슴에 달고 다니는 탈을 썼다 벗었다 하며 극을 이끌고 있다. 벌써 인물들을 열거하니 누가 더 우위에 있게 될 줄 딱 드러난다. 당연히 빌리. 속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자신만만해서 신뢰감을 주는 빌리가 자연스레 성공해 앤서니 씨의 회사를 인수하고 사명을 “브라운 앤드 선”으로 고쳐버렸다. 이 동안 솜씨 좋고 머리도 좋은 디온은 빌리도 사랑해마지않는 마거릿과 결혼해 날이면 날마다 술과 도박에 미쳐 자기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어 버렸다.

  착한 마거릿이 디온에게 좋은 말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바가지를 살짝 긁는다. 디온은 진짜 싫었지만 빌리에게 가서 자리를 얻으려 한다. 그래서 마거릿이 빌리에게 가 자리를 부탁하고, 디온의 실력이면 속으로는 모셔오고 싶어할 정도라, 빌리는 버선발로 달려가 디온을 모셔온다. 디온의 직업? 건축사.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빌리는 마거릿의 그림자만 봤다 하면 선 자리에서 꼿꼿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짝사랑했다. 그게 지금도 그렇다.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마거릿이 예술가 기질이 넘치면서 어딘가 우울하게 보이는 디온한테 반해 디온과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다. 빌리는? 탈을 쓴 빌리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디온의 탈을 빌리가 쓴다면? 당연히 마거릿은 빌리를 디온으로 알고 남편이니까 뭐든지 다 해준다.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일이 생기겠지? 맞다. 생긴다. 살인? 흠. 너무 나갔다. 그건 아니고 빌리의 집, 빌리의 응접실에서 세상 살 기력이 모두 빠진 디온이 팍 고꾸라져 죽었다. 심근경색이나 뭐 비슷한 거겠지. 여태 디온의 가슴에 매달려 있던 그의 탈. 그걸 빌리가 낚아챈다. 빌리는 디온의 시신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했지. 빌리가 디온의 탈을 쓰면 마거릿, 십대 시절부터 자신의 몸뚱이와 다른 한 부분을 꼿꼿하게 만들었던 마거릿이 자신을 남편 디온으로 알아본다고. 그래서 디온의 탈을 쓰고 마거릿의 집으로 찾아가고 뭐 그렇다.


  탈(mask) 이론.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주장한 건데, “마스크는 시인의 분기된 자아”로 시에 나타나는 시인의 비밀스러운 자아와 구분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 예이츠 저널, 2019)

  그러니 이 작품의 탈은 예이츠의 주장하고는 별개로 차라리 척 러셀이 감독하고 천재적인 코미디언 짐 캐리가 주인공을 한 영화 <마스크>의 스탠리 입키스와 더욱 유사하다. 탈을 쓰면 자신의 속마음, 실체와는 전혀 다른 인격으로 행위하고, 타인들도 자신을 완전히 타인으로 봐주는 것.

  세상 사람 다 탈을 쓰고 살지만 아무래도 좀 과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 이야기이다.

  백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흑남백녀 간의 혼인. 반대로, 즉 백남흑녀는 그나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봐준단다. 물론 지금 시절이 아니고 20세기 때 이야기다. 1967년에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대 특급 배우들인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 시드니 포이티어가 출연한 명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왔을 당시에도 흑남백녀의 혼인을 두고 난리가 벌어졌다고 들었다. 작품 속에서도 백인 아가씨의 부모,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햅번이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부부지만 열네 살이나 더 많은 흑인 홀아비 박사님을 사위감으로 데려왔을 때 처음엔 당황하고 이어서 결혼에 찬성하지 않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하물며 이 희곡을 발표한 것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나오기 42년 전인 1925년이었으니 당시에는 어떠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주인공은 흑인 청년 짐 해리스와 백인 여성 엘라 다우니. 장소는 뉴욕.

  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다.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무대의 막이 올라간다. 어려서 아직 사춘기도 맞지 않은 짐과 엘라는 나름대로 첫사랑을 한다. 동네의 흑백 아이들도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고, 찬하다기보다 허물없이 지낸다. 아이들은 짐과 엘라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나이에 맞게 놀려대고, 엘라는 애들한테 바락 화를 내니, 구석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던 어떤 할애비가 이랬다지?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엘라 눈에는 도무지 짐이 차지 않았다. 예쁜 백인 여자애가 집에 돈 많고 똑똑해서 장래 변호사를 지망할지라도 흑인 남자애를 좋아하기는커녕 말 한 마디라도 나누고 싶겠냐고. 이미 사춘기를 훌쩍 지난 무렵인데. 엘라 역시 보통의 백인 여자애와 다를 바 없어 이미 백인 권투선수 쇼티한테 몸과 마음, 줄 건 다 준 눈치다. 당시에 가장 인기있던 스포츠가 복싱. 복싱의 인기는 이후 60년이 넘게 간다. 쇼티도 동네 여자애들은 다 건드린 모양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엘라였을 뿐.

  세월이 더 가면 엘라가 낳은 쇼티의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자마자 쇼티는 엘라를 모른 척해버렸다. 갑자기 자유로워진 쇼티는 다른 아가씨를 찾아가고, 절망하는 엘라 앞에 나타난 남자가 바로 더러운 흑인 짐. 짐 크로 해리스. 왜 하필이면 짐의 두번째 이름으로 ‘크로’를 붙였는지 거 참.

  짐은 고등학교 시절에 유급을 한 번 먹은 것처럼 연달아 변호사 시험에 낙방중이다. 분명히 다 아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서 답안을 쓰려면 머리 속에서 정답이 서로 막 헝클어져 조리있는 답안을 작성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매번 그랬다. 뭐 그럴 수 있지. 이럴 때 엘라를 만났고, 엄마와 누이동생 해티가 반대하는대도 불구하고 결혼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프랑스로 이민을 떠난다. 둘은 결혼 전에 미국 안에서는 흑남백녀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거 같아 그런 건 하나도 허물이 되지 않는 나라로 떠나 살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면 잘 살 것 같지? 파리에도 미국인은 득실거렸고, 거기서도 흑남백녀는 완전히 왕따를 당했으며, 따라서 엘라는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홀로 극한의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파리를 떠나 시골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방안에 틀어벅혀버린 엘라. 이러다 사람 하나 잡을 거 같아서 이민 2년 만에 다시 귀국길에 오른다.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난 엘라. 이제 유진 오닐은 자기 전공분야를 만났다. 약간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그것도 혼인한 여성을 오닐만큼 잘 묘사하는 작가는 세상에 없으리라. 그리고 이건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애초 오닐을 읽으면서 해피 엔드는 기대 난망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사랑 이야기? 사랑을 못 이루게 하는 인종 문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심리적 궤멸을 향해 오랜 시간을 치닫는 불행한 여성의 궤적,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희생당하는 주변 인물, 즉 오닐과 오닐의 어머니가 용해된 플라스크 속 액체인 듯했다. 뭐 그랬다는 거다. 믿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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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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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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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생 어드리크는 1972년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때 아홉 살 연상의 인류학자, 작가, 원주민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이클 도리스의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동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가방끈을 늘리는 동안 도리스의 뉴질랜드행 등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문학적 파트너십으로 단편소설을 함께 쓰며 연인의 관계를 돈독히 해 1981년 결혼에 이른다.

  이때 도리스가 한부모가정 자격으로 입양한 세 자녀가 있었고, 어드리크와의 사이에도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태아 알코올 의존 증후군이 있는 입양한 첫째는 23세에 차에 치어 사망했다. 4년 후에는 입양 셋째 사바가 아버지 도리스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이 사건으로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 다음해인 1996년에 이혼했다. 1997년에는 마이클 도리스가 자살했다. 이후 입양 딸이 도리스가 평소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으며 루이스 어드리크 또한 학대를 방관했다고 증언했다.

  <그림자 밟기>를 읽고 루이스 어드리크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 이 책이 어드리크 부부와 입양한 삼남매 이야기 가운데 성적 학대를 제외하고 픽션을 더해 쓴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주민 출신 인류학자, 작가 대신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잘 나가는 화가로 바꾸고, 남편에 의한 아내에 대한 가스 라이팅을 더 구체화한 작품으로.


  작품의 주인공은 아이린과 길버트 부부. 길버트는 작품 속에서 약칭 ‘길’이라고 불린다.

  만일 내 생각대로 루이스 어드리크가 위 세 입양아와 부부 사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면 아이린은 자신을 모델로 한 치파웨족 인디언. 길은 클라스마족, 크리족, 자기 땅이 없는 몬태나 치페와족이 뒤섞인 혈통이라 미국 당국으로부터 원주민 등록이 미루어지고 있는 1/4 원주민이다. 원주민 등록을 하면 미국 정부와 원주민 협약 상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대학에 진학할 때에도 우선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길은 그걸 받지 못한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비싼 값에 미국 전역으로 팔려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것 없이, 부자는 아니지만 콜로라도에서 궁상스럽지 않게 살고 있다.

  아이린은 19세기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린 화가 조지 캐틀린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결혼 후 아이 셋을 얻어 첫째가 특히 과학에 천재가 있어 대학 강의를 듣는 13세 플로리언, 둘째가 원주민적 삶과 생존에 관심이 많은 11세 딸 리엘, 막내가 6살배기 아들 스토니. 이 가운데 둘째 리엘은 배 아파 난 딸이 아니라 친척이라고 했으니 입양한 모양이다. 입양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키운다. 하지만 리엘은 부모와의 사이에 얇은 막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실제 생활에서 전남편 도리스가 어드리크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아홉 살이 더 많다. 아이린과 길 부부도 정확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모임에서 길이 아이린을 만났고, 둘은 첫눈에 호감이 생겼으며, 길은 아이린에게 모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때 아이린은 대학에 다니고 있을, 다니기 시작할 때였는데 학비는 집이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당장 돈이 아쉬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무리 화가 앞에서 예술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남자의 시선이 머무는 공간에서 누드로 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은 아이린에게 다가와 피부, 윤곽선, 머릿결, 젖꼭지를 유심히 바라볼 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길을 처음 보는 순간 호감이 있었던 데다가 훌륭한 매너까지 가지고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린. 이들은 머지않아 연인관계로 접어들고, 원래는 에드워드 호퍼를 연상시키는 화풍으로 인디언보호구역과 풍경으로 시작했다가 아이린을 만나고 아이린의 초상과 인물화로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만 말이 초상화이지 아이린의 모든 모습이 다 그림으로 그려져 미국 각지를 돌며 전시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당연히 다수의 누드도 들어 있고, 그냥 포즈만 취하지 않고, 샤워하는 아이린, 누워 엑시터시를 감각하는 아이린, 술이 꽐라가 되어 충혈된 눈과 풀린 몸가짐의 아이린, 섹스 후의 젖은 몸을 적나라하게 벌리고 있는 아이린, 엉덩이 사이에 꽃 한 송이를 꽂고 엎드린 아이린, 하복부와 벌린 허벅지 마치 <세상의 탄생>과 흡사한 특별 부위만 노출한 아이린. 이런 그림만 있다는 게 아니라 이런 그림들도 아이린의 초상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이 인터넷 검색만 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큰아들 플로리언은 어머니의 초상화를 잔뜩 검색해 보고 있다가 아이린에게 들켜 화들짝 놀라 삭제하기도 했다.

  “괜찮아. 그림인데 뭐. 그러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이린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였다.


  길은 확실히 화가로의 재능이 있다. 하지만 재능은 그를 천천히 따분한 인간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정말 인생의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감정을 만회하기 위하여 더 일에 몰두했고, 성공과 관계없이 과로로 녹초가 된 밤에는 처음에는 가끔, 그러다가 차츰 자주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부창부수라, 아이린도 길을 따라 어느덧 술을 많이 마셨고, 당연히 알코올 의존증을 겪게 되었으며 이것으로 남편을 지치게 만들었다.

  남편을 지치게 만드는 범 가운데 하나. 일찍이 첫 아이 플로리언을 낳은 1994년. 길은 아이를 키우면서 기념이 될 만한 일기를 써보라고 두꺼운 표지의 빨간색 일기장을 사주었다. 아직까지 쓰고 있다. 몇 권이 되겠지. 똑 같은 빨간색 표지의 일기장. 이 가운데 최근에 쓰고 있는 건 오랜 서류를 모은 캐비닛의 뒤쪽에 보관하고 있다. 아이린은 속으로 말한다.

  “당신은 오랜 수색 끝에 이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 피우는지 알아내려 읽었을 거고.”

  상대가 바람 피우는지 배우자가 의심한다면 다 된 부부다. 이 집도 그렇다. 부부가 차츰 권태로워지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그래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면 별 생각이 다 들게 되리. 그리하여 남편 길은 (어드리크의 전남편 도리스처럼)아이린과 아이들을 몇 번 때렸고 (그러나 리엘을 성추행하지는 않았으며), 이건 미국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경찰에 고발하기 전에 심리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이후 손찌검은 하지 않지만 살면서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을 수 없고, 위협적인 몸짓 역시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결국 다시 한번 큰아들 플로리언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예정이다.

  이미 가정, 특히 부부 사이는 다 된 것으로 판단한 아이린은, 남편 길이 읽고 있다고 확신하는 빨간 색의 일기장에 소설 한 편을 쓴다. 세 아이 전부 아버지가 다른 남매. 특히 막내는 부부가 프랑스 여행 중에 만난 남자와의 베드씬까지 상세하게 적어 놓았다. 사실이 그렇냐고? 천만에. 아이린이 딱 한 번의 혼외정사로 혼인의 순결을 깨뜨리긴 했지만 안간힘을 다해 그 실수를 잊고 살려 애쓰며 살고 있다. 길은 성격이 지랄 같아서 문제이고 신경정신적으로 작지 않은 결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혼인의 순결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오히려 자신의 순결함이 배우자의 그렇지 못함을 캐려고 하는 집착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길은 아이린이 씨 다른 아이 세 명의 자녀를 만들었다고 확신하지만, 어떻게 아느냐, 그걸 알게 된 내력은 결코 밝힐 수 없다. 아내가 쓴 일기를 읽었다고 자백해야 하니까.

  아이린의 고민. 이혼을 원하지만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남편이 믿게 빨간 표지의 일기책에 불륜 소설을 쓰지만 정작 이혼하면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그렇다고 조지 캐틀린에 관한 논문에 열심인 것도 아니다. 박사가 되어야 취직할 수 있다며 이혼에만 집착할 뿐 이혼 후 아무 계획이 없다. 남편이 자기가 불륜행각을 벌였다고 믿게 만들려고 일기장을 통해 가스라이팅을 감행한다. 아빠한테 얻어맞아 혹이 난 플로리언의 이마 사진을 찍었지만 보관만 할 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말이 그 꼴이 나는 거다. 어떤 꼴인지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남편 길이 왜 자신의 외도를 의심하게 되었을까에 관한 묘사는 1도 없다. 신경정신적 질환인 편집증, 즉 의처증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면 아이린이 벌인 단 한 번의 외도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추측은 알고 있다는 데 한 표. 이혼 경력이 있는 루이스 어드리크는 전적으로 아이린 편이다. 그걸 읽는 독자들도 어드리크의 문장에 현혹되어 전적으로 복장이 터진다. 뻥!


  그러면 아이린의 진짜 모습은? 은행 창고에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웰즈 파고 은행. 안전보관소 데스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안내원이 지하 층의 은빛 창살을 열고 보관함 앞까지 데려다 준다. 그러면 아이린이 핸드백에서 자신의 열쇠를 찾아 보관함을 꺼내 열쇠를 비틀어 그 속에서 파란 공책을 꺼내 책상에 놓고, 자신은 의자에 앉아 진짜 자신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책은 남편이 보라고 쓰는 열린 빨간 일기와 진짜 자신의 내면을 밝히는 닫힌 파란 공책으로 구분한다.

  망조가 든 가정. 심리상담사 앞에서 씨 다른 아이들 때문에 대판 부부싸움을 하고, 그날 밤 길은 창문 밖으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모든 그림을 던져버린다. 피 같은 술병도. 그것이 쌓인 눈 속에 퍽퍽 꽂혔으니 다음날 우연히 이 집 앞을 걸어갈 노숙인이 있다면 얼마나 횡재 같았을까? 그리고 다음 날 길은 자진해서 신경정신과에 입원한다.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지만 수입은 발생하지 않는다.

  몇 달 후, 길이 퇴원해 집에 돌아온다. 신경이 죽은 듯한 길은 오랜만에 가족 동반해 6월의 호숫가로 피크닉을 떠나고, 소설 <그림자 밟기> 역시 대단원을 향해 막바지 스타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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