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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ㅣ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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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소설집.
로알드 달이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쓴 어린이 소설 작가인 줄 알면서도 읽기 시작한 건 개브리얼 제빈의 작품 <섬에 있는 서점>에서 특별한 단편소설 작가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출판사 “교유서가”의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1번 《맛》을 읽어보니까 흥미가 돋았다. 재미있고 특색있는 대중소설가가 쓴 단편들. 특히 도박이나 내기 같은 장면은 달만큼 인상적으로 묘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징적이었다. 그래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시리즈 세 권을 올해 안에 모두 읽어 보기로 작정을 했고, 순서가 헷갈리는 바람에 2번을 건너뛰고 3번 《헨리 슈거》를 먼저 읽었다.
한 번에 탁, 말해 버리면, 전작만 못하다. 시리즈에 번호 1을 괜히 주는 게 아니었나비여?
《맛》은 이야기했듯이 내기와 도박 장면이 참 근사했다. 물론 《헨리 슈거》에도 표제작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에서 도박장, 카지노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 헨리 슈거가 무려 3년에 걸친 요가 수행으로 투시력을 확보해서 기껏 한다는 일이, 누가 로알드 달 아니랄까봐, 카드 뒷장만 본 채 어떤 카드인지 알아 맞히는 거라서 평생 카지노에 들락날락하며 1억 파운드가 넘는 돈을 버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아홉 단편의 맥은 조금 허황된 이야기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어른 판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 판이라고? 그렇다. 어른 판이라면 당연히 허리 아래 이야기를 피할 수 없지? 그리하여 맨 앞에 실은 <로제트 부인> 속 로제트 부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포주.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다. 스태그, 스터피, 윌리엄. 이렇게 세 명의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공군과 격추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휴가를 받아 이집트 카이로로 놀러가서 카이로의 이름난 포주 로제트 부인을 찾아가 벌이는 활극. 활극도 시거를 입에 문 채 총 쏘고 말 달리는 활극이 아니고, 로제트 부인의 유곽으로 쳐들어가 세계각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열네 명의 아가씨를 해방시키는 이야기. 해방이라 해서 정말로 해방, 즉 매춘업 업종을 바꾼다는 게 아니라 그저 로제트 부인의 무지막지한 폭리로부터 해방일 뿐이기는 하다. 뭐 스토리 전개는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하다. 그걸로 끝이라서 문제지만.
또다른 허리 아래 이야기로 <대역전>이 있다. 크게 개구멍이 나 있는 산울타리 덤불을 사이에 이웃한 두 가정. 제리-사만다 부부와 화자 ‘나’인 빅-메리 부부.
사건은 제리-사만다 부부가 파티를 여는 날 밤에 시작한다. 빅이 보기에 사만다가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다. 관상을 보니 사만다 역시 남자를 무척 밝히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절대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유혹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사만다의 남편인 제리와도 절친 사이다. 그러니 친구의 아내와 한 침대에 오르는 건 정말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안 될 일이 또 뭐가 있을꼬?
빅, 이 개 아들 놈은 발상 전환 모드에 들어간다.
통박을 굴려보니까 절친 제리가 빅의 어여쁜 아내 메리한테 매우 높은 수준으로 끌리고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자기와 같은 이유로 함부로 껄떡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눈치. 앗따, 바로 이거다.
빅이 제안한다. 마치 자기 직장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실제로 저지른 일을 들은 것처럼. 바로 스와핑.
스와핑은 스와핑인데 두 부부, 즉 네 명의 합의하에 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벽 한 시에 옆집 남자 둘이 서로 침대를 바꾸어 들어가 한 시간 동안 한 번씩 하고 두 시에 다시 원위치하는 것. 이 과정에 돌입하고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이는 분량이 만만치 않은데 그걸 다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여간 제리와 빅은 그렇게 한다. 화자가 빅이니까 책에는 빅과 사만다의 침대 장면만 살짝 나온다. 아참,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제리의 물건이 빅보다 훨씬 크고, 빅이 아래로 휘어져 있는 반면 제리는 위로 휘어졌으며(이건 다른 작품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나?), 지속 시간도 비교하자면 무척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미리 이야기를 주고받아,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으로 빅은 제리의, 제리는 빅의 침대 루틴을 지키기로 했음에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새 자기 루틴으로 방사를 치루었는데, 처음엔 뻣뻣하던 사만다의 몸이 나중에 배배 꼬이면서 좋아, 좋아, 좋아, 좋아, 이렇게 ‘좋아’를 네 번 외친 다음에, 아이구 미국인들이란, 뒷처리도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빠져버린다. 아, 드러. 아니, 드러운 건 아니지만, 거 좀 척척하니 찝찝하지 않아?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식탁에서 벌어진다. 화자 빅과 메리의 대화. 흠. 이건 알려드릴 수 없지.
박완서의 단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놀랍지?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의 두 남자. 하루는 어울려서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시고 아뿔싸, 의도치 않게 오직 헷갈려서 서로 상대방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다. 이미 밤은 깊어 두 집의 여사님들은 벌써 잠에 떨어진 상태. 그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섬주섬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파고 들어 아내(인줄 아는 옆집 여자)의 몸을 더듬다가 위로 올라가 일을 치룬다. 그런데 놀랍기도 하지. 두 남자가 비슷한 수준의 상투적 전희에 이어 거의 비슷한 속도와 유지 시간,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같은 방식의 뒷처리 후에 잠에 빠지더라는 거. 박완서 시절이니까 천민자본주의의 절정기에 물화, 정형화된 가정의 단면을 비튼 소설이다.
반면에 미국 가정을 무대로 하는 영국인 소설가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 사회성이 쏙 빠진 흥미 본위의 절반 대중소설. 그래서 재미로 치면 조금, 아주 조금 윗길이기는 하지만 기대하지 마시라. 절대 결말을 일러드리지는 않을 터이니.
그런데도 이 책을 <찰리의 초콜릿 공장> 류라고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이랄까, 하여튼 그 비슷한 묘사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게 소년시절을 지나고 있는 시절이라면 재미있고, 놀랍고, 빨려들면서 읽을 수 있겠지만, 대가리 다 커서 이제 인생에서 유별날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아는 성인이라면, 이게 무슨 허황되고 헛된 이야기야, 타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그럼에도 시간 죽이는 데는 끝내줄 거 같다. 여행길이라면 즐겁게 가방에 넣고 가라고 추천. 당신의 정서함양을 위한 교양도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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