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여자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 뮤진트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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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 알라메딘은 1959년 요르단 암만에서 민족종교인 “레바논 드루즈” 교파 집안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드루즈”는 무슬림이 아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천지창조와 에덴 추방 같은 것을 믿기는 하지만 라마단, 성지순례 등을 공유하지 않는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신비주의적 일신교로 전세계에서 백만명 미만의 신도를 보유한 소수종교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라비 알라메딘은 쿠웨이트와 레바논에서 성장했고, 영국을 거쳐 미국 UCLA에서 공학사,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MBA를 취득해 전공과목으로 먹고 살다가, 뜻한 바 있어 화가와 작가로 살고 있는, 남성 동성애자라고.

  굳이 이이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는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 알리야 살레는 72세의 노인 여성이며, 이이 주변의 주요 등장인물 역시, 절친 한나를 비롯해 어머니와 한 아파트 지붕 밑에서 사는 세 마녀, 파다야, 주마나, 마리-테레즈 등 주로 여성으로, 그냥 읽다 보면 작가 역시 당연히 여성이겠거니 짐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알리야. 화자 ‘나’의 이름. 1937년에 아버지가 지어 주었다. 높은 데 있는 사람, 하늘이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이 이름을 아꼈고, 알리야를 그보다 더 아꼈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정작 알리야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이가 두 돌도 되지 않아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아버지는 병들어 죽었다. 이때 아버지가 겨우 스물한 살. 어머니는 16세에 알리야를 낳고 18세에 과부가 됐다.

  1930년대 말에도 이 나라 레바논은 여전히 14세기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도 낳지 못한 과부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알리야를 안고 다시 친정집으로 들어가고, 친정 부모에게 들들 볶이다가 남편의 동생과 두번째 결혼을 하게 됐다. 알리야는 이후에 세 명의 이부 동생이 생겼으며 새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냥 알리야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었을 뿐.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아주 잘했던 알리야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음에도 열여섯 살이 되자 한 찌질이한테 시집가야 했고, 먼 훗날, 72세가 되도록 평생을 살게 될 아파트에 집을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할 때는 행복한 줄 알았다. 작품에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알리야가 4년 후에 이혼당할 때까지 틀림없이 숫처녀는 아니지만 숫처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았던 거 같다. 이슬람 여성답게 남편이 요구하면 거절할 수 없었을 테니 “당시” 10대 소녀들이 종종 그랬듯 성적으로 기피나 혐오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찌질한 남편이 그 방면으로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알리야는 살면서 한 번도 정식으로 남편의 물건을 보지 못했단다. 그래 하루는 밤중에 완전히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슬쩍 일어나 성냥불을 켠 후 이불을 들춰 남편의 아랫도리를 확인했더니, 세상에나, 공룡이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글쎄 지렁이가 달려 있었다. 이후에도 몇 번 다시 확인해봐도 여전히 지렁이였다고. 아마도 성기 왜소증이나 조루증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할례를 하다가 껍데기가 아니라 작대기를 잘라 버렸을까?

  나도 <한밤의 아이들>을 읽고 알았다. 이슬람권에서는 남자가 이혼을 원하면 여편 앞에서 “나는 당신과 이혼한다.” 라고 세 번(네 번?)만 외치면 이혼의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 지렁이 달린 찌질이도 “아는 당신과 이혼한다.”라고 외쳤을 때 알리야의 나이 스무 살. 천만 다행이었던 것이 남편이 이 말을 던지고, 알리야를 친정으로 쫓아 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집에서 나가버렸다는 거. 속이 다 시원했겠지? 그러나 이후에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집을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요구, 강제, 지랄을 했지만 어린 알리야는 감히 버텼다. 여성이 동산이건 부동산이건 소유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첫번째 의문이 여기서 생겼다. 둘이 살기에 넓기는 하지만 어차피 월세집. 시집이고 친정집이고 간에 왜 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겠다는 거지? 다른 아파트 구해 들어가면 되잖아. 특히 친정 어머니와 의붓 큰동생이 협박을 해가면서 집을 내놓으라고 하는 장면을 회상하는 게 이해가 힘들었다. 거액의 보증금을 전남편이 따로 낸 거였나? 그것 참. 이게 다행인 이유를 모르겠던 것.


  찌질한 남편이 50년대 말에 이혼하면서 위자료를 주었을 턱이 없고, 그렇다고 이혼 후 생활비를 보내주었을 리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이때 등장한 인물이 한나. 찌질한 남편의 친형과 사랑했던 사이. “사랑했던.” 과거형이니까 지금은? 여전히 숫처녀. 어떻게 그집 집구석 남자들하고 관계만 되면 숫처녀나 숫처녀 비슷하냐고? 한나는 장교, 정확하게 중위와 사랑해서 결혼하자고 굳게 맹세했다. 그런데 남자가 죽어버렸다. 이후에 한나는 결혼 약속을 굳게 마음에 새겨 마치 그 집안의 며느리인양 평생 그렇게 살았다. 한나보다 열다섯 살 더 많지만 알리야와 친밀했던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일흔두 해를 산 알리야가 아꼈던 유일한 사람으로.

  물론 친절했다. 남자 없는 이혼녀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유일한 사람. 그리고 먹보.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그저 통통한 수준을 유지할 뿐 절대로 비만 체형이 되지 않는 행운을 누리던 여자. 역시 가장 큰 친절은 먹고사니즘과 관련이 있어서, 한나의 육촌 형제 가운데 지적 과시욕에 들떠 시내 골목에서 작은 책방을 연 사람이 있어서, 알리야를 이 책방에 취직시켜주었다. 이 책방에 반백년, 오십년을 다닌다. 책방이 결코 이익을 만들지 않는 사업이라 월급을 받아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알리야는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 비슷하게 살았다. 키만 크고 몸에 근육은 별로 없는 꺽다리.

  책방이라니. 물 만난 물고기. 앞에서 이야기했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공부를 무척 잘했다고. 알리야는 손님이 별로 없는, 별로가 아니라 거의 없는 책방에서 이 책, 저 책 쉬지 않고 읽는다. 곡식과 풀만 먹고도 힘이 남아 열심히 읽는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주문을 넣는다. 두 권. 어떤 때는 세 권. 레바논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두 권 가운데 한 권 팔리면 나머지 한 권은 남는다. 일정 기간 동안 팔리지 않으면, 알리야가 그냥 집으로 가져간다. 풀만 먹고 살아도 책 살 돈이 없다. 이해해달란다. 뭐 좋다. 어차피 사장도 돈 벌려고 책방 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 한 번 책 훔쳐가는 게 힘들지 이력이 나면 그까짓 거야 뭐. 그래도 도둑년인 건 확실하지만.

  원래 공부를 잘하고, 레바논 역사를 보면 영어와 프랑스어하고 친할 수밖에 없어서 두 언어에 능숙한 알리야는 원문이 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책을 중역하기 시작한다. 스물두 살부터 일흔두 살, 이제 2002년이 저물고 며칠 지나면 2003년이 되는 겨울에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아랍어로 중역할 때까지 모두 37편. 1년에 한 편을 원칙으로 하되 때로는 분량 많은 책들도 있어서 1년이 넘어 걸린 책도 꽤 있다. 알리야는 자기가 번역한 원고를 출판하고자 하지 않는다. 중번역이 끝나면 원고를 종이 박스에 넣고 그걸 하녀방과 하녀화장실에 쌓아 놓았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나중에 뒤져 보기야 한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다른 시인, 작가들이 쓴 시, 소설, 에세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가의 경우 다행스럽게 많은 작품을 읽어보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데 별로 문제가 없었다. 시로 말하자면, 나는 외국시를 읽지 않아 좀 곤혹스럽기는 했다. 근데 알리야가 고전음악도 많이 안다.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음반도 많다. 주로 LP. 두번째 의문. 알리야가 월급 받아 월세 내면 돈이 거의 없어 풀만 먹고 산다는 얘기는 했고, 책도 사지 않고 주로 자기 직장에서 훔쳐 가져왔다는 것도 썼는데, 무슨 돈이 있어서 이 와중에 한 달에 LP 두 장을 샀을까? 해적판도 아니고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 말로 노랑딱지 도이치그라마폰 음반을? 좋다. 그럴 수 있다 치자. 알리야가 50년 동안 돈을 벌었으니 50년 곱하기 12개월 곱하기 LP 두 장은 LP 1,200장. 그런데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LP 1,200장 소유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LP 1,200장이면 CD 기준으로 한 7백장 수준. 알리야가 주장하는 레바논의 문화수준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자기가 들은 LP, 그리고 가능했다면(책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랬다고 치면) 판 가게 주인남자와 나눌 수 있었던 음악 이야기, 그리고 딱 1회성인 라디오 음악방송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감상 환경일 텐데, 쇼팽의 피아노 곡부터 시작해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거쳐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쇤베르크, 메시앙, 리게티까지 도무지 막힘이 없다. 음악 강의 한 번 안 듣고 12음 기법 이후의 현대음악을 이해했다면, 알리야는 정말 천재다. 인정 안 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늙은 알리야는 이제 기력이 달리지만 주로 걸어서 이동하고, 좀 먼 거리는 택시를 이용한다. 책방이 문을 닫을 때는 아무리 헐값을 주고 샀다 해도, 집안이 거의 책으로 메워질 만큼 많은 책을 한 방에 사들였다. 1970년대 말부터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공습과 내전으로 허덕이고 또 허덕였는데, 책방도 연 날보다 문 닫은 날이 더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여유로운 노년을 맞을 수 있었을까? 합당한 설명이 없다.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말이 자꾸 왔다갔다 해서 문제다. 177쪽에는 또 “나는 수시로 책을 사서 읽을 책더미에 올려 놓는다.”라고 헛소리를 한다. 이건 알리야 문제가 아니라 작가 라비 알라메딘이 문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알리야는 음악, 미술, 문학, 어학에 도가 텄다. 어려서부터 잘 교육받은 라비 알라메딘이 그러하듯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수준이다. 알리야는 자기도 모르게 고백한다.


  “내가 남들과 비슷하지 않다는 사실이 나도 평생 신경 쓰였다. 수년 동안은 내가 특별하다고, 남들과 다르게 살기로 선택했다고 나를 설득할 수 있었다. 사실상 나는 내가 우월하다고 믿고 싶었다. 예술가는 아니라도, 마티스 같은 천재는 아니라도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p.280)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자만심을 용서해줄 마음이 1도 없다. 내가 음악, 미술, 문학, 다 합해 예술과 어학을 너보다 훨씬 잘 이해하기 때문에, 너보다 낫다, 우월하다는 마음이 차별을 낳고, 차별이 혐오를 낳고, 혐오가 또 무엇을 낳고, 무엇이 아브라함을 낳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최종적으로 나치를 낳는다. 알리야 살레도 일흔두 살. 이제 곧 죽을 늙은이라 다행이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어중이떠중이 가운데 한 명이 말씀드립건대, 히틀러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레바논 근현대를 살면서 그리 많은 이스라엘의 폭격을 맞아도 유대인 천재 작가, 시인, 철학자, 작곡가, 화가, 그리고 홀로코스트만 이야기할 뿐 이스라엘의 대 레바논 공격을 비난하지 않는다. 라비 알라메딘이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반유대주의자로 찍힐 거 같거든. 하긴.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근데 똑똑이가 그걸 몰라요. 우월하다고? 사실은 위험한 거야, 대단히.

 라비 알라메딘, 그리고 알리야. 너넨 정말 속물이야,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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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2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둑년 일리야 ㅋㅋㅋㅋ
제가 그래서 그 아파트가 일리야 자가 소유로 생각했다니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왜 형제들이 저기 와서 살려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나..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LP판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이 부분 의아했습니다. 아니 서울 사는 월급쟁이 잠자냥도 단 한 장 사지 못하는 사치품 LP를..... 턱턱 사는 이 여자...(탈을 쓴 레바논계 미국 남성 ㅋㅋㅋㅋ)

건수하 2026-06-12 10:44   좋아요 2 | URL
제가 전에 썼듯이 보증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그러니깐, 그래서 노년 여성의 삶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니까요… 왜 굳이 여성으로 썼을까요 작가는? 마지막 여성 연대 서사까지도 피상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잠자냥 2026-06-12 10:59   좋아요 2 | URL
저 남자 작가가 (좋게 말해서) 영리한 수를 쓴 거죠. (나쁘게 말하면 잔머리 굴림)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쓰면 잘 팔리겠구나! 여성-노인-유색인-페미니즘 담으면 바로 이거야!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게 너무 속 보여서... 얄팍해짐. 심지어 이렇게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올바른 나..란 남자까지 느껴져서 좀 더 싫음.)

건수하 2026-06-12 11:0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얄팍하다에 공감!

Falstaff 2026-06-12 15:46   좋아요 3 | URL
내전이 있던 시대에 리비아계 미국인 작가가 리비아를 무대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체험해보지 않은 동족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든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광장이 아니라 자신의 방으로 공간을 축소시킬 수 있는 당시 여성으로 했다는 데 한 표 던집니다.
리비아 현지에 사는 남자 주인공. 리비아 뿐만 아니라 중동의 내전 지역에서 내전에 관해 함부로 썼다가 파트와 판결이라도 받으면 어쩌라고요. 얄팍/잔대가리 이전에 생사의 문제가 달렸을 수도 있습니다.
공쿠르 상 받은 ˝남자˝ 작가 카멜 다우드의 <후리>도 알제리 배경, 여성이 주인공입니다만 그래봤자 다우드는 결국 파트와 판결을 받았을 뿐입니다.

<후리>의 스토리가 다우드의 아내,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실제 환자 이야기라서, 의사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비밀준수의 의무를 위반해 소송을 벌였다고 하지요, 아마? 다우드는 그러면서까지 여자를, 그것도 ˝실재하는˝ 아내의 환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써야 했을까요?

건수하 2026-06-12 20:09   좋아요 0 | URL
레바논의 과거 혹은 현재가 안타까워서 썼다기에는 너무 이야기가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작가가 잘 모르는 것을 대충 이것저것 엮어서 쓰려했다는 점에 동감입니다.

건수하 2026-06-12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용된 책 내용들을 만나는 건 좋은데 책의 나머지 부분이 별로였어요. 인용에 공들이느라 나머지 부분을 너무 대충 쓴 느낌…

Falstaff 2026-06-12 15:45   좋아요 1 | URL
아무렇게나 막 쓴 거, 또는 쓰고 난 다음에 퇴고를 하지 않은 작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