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올가 토카르추크. 노벨 문학상을 탄 후로 이이의 픽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말로 나온 픽션은 다 읽은 거 같다. 이번에도 토카르추크의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희망도서 신청해서 도서관 ‘첫빠따’로 읽었다. 도서관 새 책을 읽는 기분이 꽤 근사하다는 건 다들 아실 터. 흐뭇하다. 본문만 554쪽에 이르지만 하루 반나절 만에 후딱 읽었다. 팍팍 읽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토카르추크가 어떤 식으로 픽션을 쓰는지 선 경험이 있는 분들은 “팍팍 읽힌다”가 어떤 의미인 줄 훨씬 짐작하기 쉬우실 듯하다.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2018년에 폴란드에서 최초 출판한 《기묘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17년 전인 2001년에 발표한 책이다. 그러니까 훨씬 언니-책이다. 토카르추크는 이 때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썼다. 특히 앞 부분에 실은 작품들이 그러하다.


  책을 선도하는 작품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로 말하자면, 작가와 주인공과 독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실험적인 작품’은 대개 기묘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세계근대문학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실험적이라서 기묘한 이야기는 카프카가 쓴 풍뎅이, 잠자 이야기 아닐까? 이 작품도 그런 의미에서 기묘하다.

  주인공은 틀림없이 추리소설 애호가 C. 사무직 직장 여성이고, 딸과 아들을 키우며 아직도 나이든 남편과 놀랍게도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지지고 볶는 가정사 이야기는 제쳐두자. 더 중요한 건, C가 추리소설을 샀다는 것.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산 건 아니고, 그저 서점에 들러 다른 건 그만두고 표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어두운 배경, (중략) 귀퉁이를 직각으로 마감한 황금빛 서체”를 보니까 이 책이 자기가 선호하는 추리소설인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서 비자 카드 긁었다. 이 책의 제목? 모른다. 독자는 그냥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안다.

  추리소설의 주인공, 하여간 사건을 만드는 건 ’추리소설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노 작가 울리카. 이 노 작가가 플랑드르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작은 고성을 가지고 있다. 수십권의 추리소설을 출간했고, 그게 다 베스트셀러라서 아무리 작더라도 아름다운 성을 상속받아 계속 소유할 수 있었다. 쉬운 일 아니다. 유럽의 성을 소유했던 옛 귀족의 후손들 대부분 성의 유지비와 세금이 무서워서 다 팔아버렸을 걸? 하지만 울리카는 아니었다. 이제 늙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르고 왜소한 노파. 이이의 후손이 있는지 없는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여간 자신이 죽은 다음에 밤나무 숲을 포함해 이 성을 ‘추리소설 작가들을 위한 창작 센터’로 만들어달라고 유언을 해 놓은 상태. 벌써 집필실과 토론실 같은 부대시설도 다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을 위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추리소설 작가 몇 명이 도착한다.

  영국인 롱펠로. 매섭게 추운 날 오픈카를 직접 운전해 몰고 도착한 프랑스 여성 안마리 뒤라크. 왜소하고 비대칭적 외모의 프루흐트 씨,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온 흑인 청년 ‘루 어쩌고.’ 여기에 울리카까지 합해서 다섯 명이 며칠 동안 회합을 연다. 추리소설이니까 살인 또는 살인이 저질러진 상황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책을 산 독자 C는 믿고 있다.

  근데 아무도 안 죽는다. 이 당대의 추리 소설가들은 날마다 모여 ‘살인놀이’라는 게임만 하고 진짜로는 다른 사람한테 살인 목적으로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부비트랩을 설치하지도 않고, 독약을 조제하거나 와인 잔에 바르지도 않는다.

  우리의 C는 바쁜 와중에도 언제 이들이 서로 죽이려 기를 쓰고, 언제 진짜로 죽는 장면이 나오는지 조바심을 바치지만 결코 죽지 않은 채 지루한 살인놀이만 하고 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재미없는 게임. 그리하여 C는 열을 잔뜩 받아 직접 이들이 모임을 하고 있는 플랑드르의 아름답지만 작은 성에 찾아가 하나 하나씩 직접 살해하기 시작한다.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니까. 그리하여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이 되는 것이고, 토카르추크의 전편을 읽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웃으면서 그것 참 재미나네. 할 수 있겠다.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 앞에서부터 네 편에 달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환상 소설 장르를 부담 없이 읽기는 하는데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냥 보통의 순소설을 더 선호한다. 이 책에서도 제일 마음에 든 것이 아홉번째 실린 <체 게바라>와 열번째 작품 <나이트>였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가 아니라 누군가의 별명. 시절은 1981년 12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를 정부가 탄압해 그단스크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국 각지에서 동맹 총파업을 벌였던 시기. 화자 ‘나’는 바르샤바 대학에 (아마도)재학중이면서 자원봉사자였다. 재미있게도 자원봉사자도 파업에 동참했단다. 자원봉사자도 파업권이 있다? 자원봉사자가 노동자 자격을 갖추려면 반드시 임금노동을 해야 하는데 뭐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대학 부속병원에서 세 명의 성인을 맡아 돌보았다. 여기서 성인이 어떤 성인을 가리키는 말인지 헛갈린다. 성인成人adult인지 성인聖人saint인지. 왜냐하면 ‘나’의 보스 M은 이들을 일컬어 “고객” 또는 “미치광이”나 “광인들”이라 부른다. 아다시피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성스러운 바보, 조현병 환자들을 성인saint으로 여기는 경향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로지비. 도스토옙스키가 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 같은 사람이 대표적. 하여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나’가 세 명의 성인과 만남을 갖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첫번째 만난 사람, 즉 환자가 체 게바라. ‘나’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체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있다가 드디어 체가 등장했는데, “허리에는 탄띠를 흉내 낸 띠를 두르고, 철제 군용 식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걸친 채” “Heil Hitler”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어서 “노동에 경이를 표하라, 동포들이여!”

  카페 손님들은 익숙하다. 그들은 체 게바라를 향해 비웃는 듯하면서도 너그러운, 혹은 약간의 다정함이 섞인 미소를 짓고, 가끔은 누군가가 “안녕, 체 게바라!”라고 받아준 다음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이 늙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의 기억을 1945년에 닫아 놓고 산다. 그래야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체 게바라를 바라보는 ‘나’는 불안하다. 언젠가 그에게 불행이 닥칠 것 같아서. 체 게바라 자신도 가끔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내가 진짜 미친놈인가 봐.”

  두번째, 세번째 성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열번째 실린 작품 <나이트>의 나이트는 knight, 체스의 말 가운데 하나. 등장인물은 부부.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대형 암컷 개 레나타. 결혼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노년은 아니지만 부부는 서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서로 안다. 그리하여 이들은 결혼생활의 전환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을까? 한 겨울에 폴란드의 바닷가, 그러니까 북해일 것이 틀림없는 몹시 추운 바닷가 펜션으로 2박3일 여행을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들 사이에, 사실은 그만큼 산 많은 부부들이 늘 그러하다는 것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고,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서로 편한 일만 한다.

  그나마 이 부부에게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체스. 실력으로 말하자면 아내 쪽이 조금 더 윗길이다. 그래도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이길 수준은 아니라서 이들은 추위와 무지한 강설에 길이 막혀 일주일 동안 체스를 둔 적도 있다. 이 바닷가의 펜션에 도착해서도 이들은 결국 체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지금부터 TV를 볼 것임을 뻔히 알고, 아내가 2층 침실에 틀어박혀 잠도 자지 않으며 나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런데 TV를 보는 꼴도, 자는 척하는 꼴도 보기 싫다. 그러니 남은 건 체스.

  체스를 두다가, 일단 게임을 멈추고 내일 다시 하자는 데 동의한다. 와인도 좀 마시고, 침실로 들어 서로의 몸을 더듬지만 이내 그것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 사이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손길이 닿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짜릿한 전율, 우연한 스침, 애타는 갈망, 오랜 기다림 끝에 맞닿던 두 손, 향기에 취하는 설렘, 그 향기에 얼굴을 파묻을 때의 포근함, 눈빛 하나로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던 일, 같은 순간 같은 생각을 나누던 기적,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친밀함, 귓불의 모양 만으로 황홀해하던 나날, 밤마다 식물처럼 서로의 몸을 기어오르며 상대의 몸을 마치 내 껍질인 듯 여기던 순간들, 불꽃놀이, 동화 속 마법,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이제 둘 다 안다.

  다음날, 이들은 다시, 어쩌면 마지막으로 체스를 계속 두려 한다. 그러나 흰 나이트 말이 사라졌다. 레나타가 어디로 물고 가버린 모양이다. 결국 체스마저 이들 사이에서는 둘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게 끝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주제, 그리고 폴란드와 바르샤바라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 어떻게 거기서도 사람 사는 일은 이다지도 비슷한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여름
체사레 파베세 지음, 이열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파베세의 책이 나왔다는 걸 알자마자 득달같이 희망도서 신청했다가 벌써 신청한 이용자가 있어서 이제야 읽었다. 이 책 이전에 두 권의 파베세를 읽었는데 둘 다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레우코와의 대화>가 신선해 늘 기억하겠다 마음먹었다가 순식간에 잊고 지낸 것이 미안해 더 찾게 된 거 같다.

  1949년 작품 <아름다운 여름>은 1950년, 잊지 말자 6.25가 터진 해에 이탈리아의 최고 문학상이라고 일컫는 스트레가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광고를 읽고 더욱 기대가 부풀었다. 그러면, 기대가 크면 위험하다. 그걸 알고도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으니 정작 읽고 난 다음에 흠, 기대가 너무 컸군, 이러면서 좀 불만을 갖는 것도 이해가 가지? 뭐 사는 게 다 그렇잖아.


  열여섯 살 아가씨 지니아의 성장소설은 아니고, 젊은, 젊어도 가장 꽃다운, 물론 1950년 이전의 시각으로 볼 때 가장 꽃다운 젊음을 구가하는 소녀의 한 시절 이야기. 당연히 첫사랑과 첫경험. 그리고 자기 마음 같지 않은 사랑.

  구태여 스토리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194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괜히 쌍코피만 터진 패전국으로 아직 회복되지 않은 체제 안에서 열여섯 살의 청소년들은 학교 대신 공장의 직공이나 정비공 등으로 돈을 벌어야 했고, 기존 윤리도 급격하게 변화하던 시기를 맞아 방황했던 청소년들의 초상.

  주인공 지니아는 아직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마땅한 청소년이지만 안타깝게 부모는 세상에 없다. 오빠 세베리노는 발전소에서 중앙 스위치를 담당하는 야간 전담 근무자. 우리나라에는 교대근무가 보통이지만 서양에는 아예 야간근무를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일도 흔하다. 이 말은 오빠가 회사에 출근하는 밤에 지니아의 활동이 자유롭다는 뜻도 된다. 지니아 역시 학교 대신 시내에 있는 부티크 숍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 자기 옷, 화장품, 액세서리 등을 사는 데 쓴다. 아무리 오빠라도 이런 용처로 돈을 달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세베리노는 낮에 잠을 자기 때문에 지니아가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와 집 청소를 전담한다. 이런 일이 즐겁기도 하다. 안주인처럼 혼자서 집을 꾸미는 일.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이다. 물론 당신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194X년의 지니아 한테.


  지니아의 친구로 로사, 티나, 클라라 등이 있다. 얘네들하고 밤에 춤추러 나가면,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남자애들이 둘이서 들판에 가자고 한단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보리밭에 함께 가자”는 뜻이다. 마음이 여려 들판에 가자는 걸 싫다하지 못하는 로사가 하루는 공장에서 도망쳐 지니아한테 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떻하니, 나 임신한 거 같아 무서워 죽겠어.”

  지니아는 동요한다. 친구들 모두 여기까지는 아니지만 원인이 되는 행위는 해 본 것 같은데 자기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다행스럽게 로사는 그냥 기분이 그랬다는 것이고 별 일 없다. 괜히 소외된 듯한 감정이 들었던 지니아는, 그래도 열여섯 살이면 너무 빠르다고 믿기로 한다. 그렇게 스스로 설득하건만 마음 한 구석의 굴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친구 사귀는데 나이 차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아홉에서 스무 살 사이의 아멜리아는 키가 크고, 엉덩이 부분이 풍만하다. 말처럼 갸름한 인상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외모의 아가씨. 지금은 실직 중이다. 아멜리아가 지니아에게 접근한다. 암만해도 오빠 세베리노한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아니다. 알고 보면 정확하게 실직도 아니다. 나름대로 일 해서 적지 않게, 물론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이 모자라지도 않는 돈을 번다. 나쁜 직업도 아닌 것 같다. 바로 모델. 희한한 걸음걸이로 런웨이를 누비는 모델이 아니라,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대개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예술 모델. 옷을 입기도 하고 누드 모델이기도 하다. 다 한다.

  시절은 여름. 아멜리아는 덥다는 이유로 스타킹을 안 입는다. 예쁜 원피스만 입는다. 제법 날이 지나 지니아가 보니까 아멜리아가 겉으로는 명랑해 보여도 사실은 꽤 처량한 처지인 것 같다. 스타킹도 덥다고 안 입는 것이 아니라 없기 때문이고, 늘 예쁜 원피스만 입는 것도 옷이 그거 단 한 벌밖에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그럼에도 지니아는 하루에 겨우 한 두 시간 모델을 해주고 돈을 제법 받는다는 것에 혹해서 자기도 한 번 모델을 할 수 있을까, 말을 보탰다가 정말로 바르베타라는 이름의 회색 턱수염을 기른 뚱뚱한 남자 화가의 아뜰리에에 가서 얼굴 모델을 해본다. 화가는 싸가지없게 스케치를 여러 번 하더니 모델료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퉁 쳐버린다. 아멜리아가 말한다. 앞으로 바르베타는 모델로 너를 계속 찾으려 할 거야. 아이스크림으로 모델료를 대신할 수 있는 너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이렇게 해서 지니아는 또래의 친구들, 다리를 절고 집에는 먹을 것도 하나 없는 티나, 당구만 잘 치는 백수 피노와 들판에 나갔다가 임신했는 줄 알고 벌벌 떠는 로사, 별 존재감 없는 클라라와 약간의 거리감이 생기고 줄곧 아멜리아와 함께 하기 시작한다.

  모델 아멜리아. 당연히 이런 저런 화가와 친한 사이이고, 화가 가운데는 젊은 화가도 있다. 포르투갈에서 온 로드리게스와 이탈리아 시골 출신의 귀도. 여자 모델 두 명과 귀도의 집에서 사는 두 남자가 서로 어울리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지니아와 귀도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뭐 사랑이 다 그렇지. 40년대건 2020년대건 비슷하겠지. 사랑하다가 이런저런 사달도 만나고, 젊은이들이니 사달의 충격파도 그만큼 크겠고, 실수도 하겠고, 뭐 그러면서 자라는 거라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역자 이열이 사진작가인 모양이다. 이 책이 그가 번역한 첫 문학작품. 내가 주장하는 바, “번역도 습작이 필요하다.” 그냥 해보는 말이다. 다른 상도 아니고 스트레가 상을 받은 대표작인데 어찌 다른 작품보다 덜 재미있게 읽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해본 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개와 늑대 ㅣ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미롭스키를 찾아 읽는 중이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다가 그간 잊고 있었던 작가. 그게 좀 미안했는지 굳이 찾아서 읽고 있다. 1903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부유한 유대인 가족의 따님으로 태어난 작가. 책의 앞 날개에는 그러나 네미롭스키가 불행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소개한다. 금융가였던 아버지? 쉬운 말로 전세계 어떤 민족도 흉내내지 못하는 천재를 보여주는 대표적 유대인 직종, 고리대금업자로 시작해 입지전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말이고, 부르주아의 아내 자리에 오른 어머니는 네미롭스키를 유모의 손에 맡긴 채 “자신의 삶을” 누렸다고 해도, 외롭기는 했겠지만 정말로 불행했을까? 나름대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자기 민족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불행한 거니까. 나름대로.


  앞날개의 문구를 시비하는 건 이유가 있다.

  작품의 초기 무대가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 시대는 190X년. 유대인에게 이 도시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강과 가까운 도시 아래쪽은 불가촉천민과 같은 취급을 당해 마땅한 유대인과 불량배, 가난한 장인, 음침한 가게의 세입자, 유랑민이 모여 살고 동네엔 언제나 더러운 유대인 소년들이 질러대는 고함으로 넘실거렸다.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자들이 지옥의 암흑과 불길에 휩싸여 허우적대는 곳이라 해 마땅한 지역.

  언덕 위에 있는 선민들의 거처는 고급 저택의 광휘에 싸여 있는 발할이라 불러 마땅한 곳. 아래쪽 아이들은 열 살 먹도록 한 번이라도 이 동네에 놀러 와본, 아니 그저 지나가본 적이라도 있을까 말까 한 금단의 장소. 20세기 초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니콜라이 2세 황제 시절에는 유대인이 거주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아 이 언덕 위의 저택 지역에는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저 법령이 그랬다는 의미. 어느 민족보다 돈에 집착한 유대인들은 러시아 관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뇌물을 공여하는 대가로 조금씩 이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여러 왕가에끼자 돈을 빌려줄 정도의 부르주아들이 이웃집에 사는 것을 시비하거나 질투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귀족이나 부르주아는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시의 중앙부근에는 평온하고 창백한 빛이 비치는 평민들이 차지했다. 중앙이라 해도 언덕과 가까운 곳에는 의사, 변호사, 귀족의 영지 관리인 같은 이들이, 아래쪽과 가까운 경계에는 주로 위쪽과 아래쪽을 뛰어다니며 중개인 역할을 하거나 기타 장사치, 양복장이, 약사 등이 모여 살았다.

  책 앞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면 이렌 네미롭스키는 어린 시절에 적어도 잘 먹고, 잘 먹는 수준을 떠나 게토 지역의 어린 아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맛과 영양을 지닌 음식만 골라 먹었을 것이며, 고급 모피로 만든 모자, 외투, 토시, 신발 등의 의류,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벽난로 같은 시설로 아무리 겨울이라도 아래 동네 아이들과 비교해 힘든 것이라고는 1도 모른 채 지나왔을 터. 그럼에도 불행하다고 활자를 박았으니, 그래, 이렌도 나름대로 불행하긴 했겠지. 그렇겠지.


  <개와 늑대>의 주인공 아다 시너.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와 비슷한 나이로 생각하면 된다. 1903년? 아버지는 이스라엘 시너. 엄마는 먼저 죽었다. 시너는 도시의 중간지역이기는 하지만 아래쪽 게토와 인접한 곳에 사는 중개인으로 먹고 살기 위하여 비트, 설탕, 밀, 농기구 등 유통할 수 있는 모든 품목을 취급한다. 때로는 비단과 차, 터키 과자, 석탄, 아시아 과일, 볼가강에서 잡은 캐비어 같은 비싼 것들도 있기는 하다. 어떤 경우라도 중개인한테 요구되는 자질, 빠른 말투, 요란한 몸짓, 다급함, 비굴함, 고집스러움, 간청이나 애원하는 기술, 그리고 경쟁자를 비방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돈을 벌어 함께 사는 책상물림 장인과 하나밖에 없는 딸 아다를 먹여 살리기 위한 비즈니스 측면에서 그렇고, 아다를 위하여는 세상 둘도 없이 헌신적인 아버지. 뭐 세상의 아버지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오직 자식을 위하여 일하고, 살고, 희망을 품는 시너는 정말로 유대 족속 답게 아다가 만일 음악이나 예술, 배우 쪽으로 재능이 있다면 자기 살과 뼈가 도륙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루어 주기 위하여 스위스, 독일,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려는 욕심에 충만해 있다.

  이때 삼촌이 죽었다. 유대인이라면 동생이 죽을 경우에 당연히 동생이 남긴 식구들, 제수와 조카들을 형이 거두어야 한다. 그래서 졸지에 군식구가 셋 늘어 탐탁치 않지만, 엄마 없는 딸을 돌볼 여자가 필요한 때라서 별 불만 없이 거두었다.

  숙모와 사촌이 도착했다. 여기서 이렌 네미롭스키의 착오가 생긴다. 이때 아다가 일곱 살. 사촌 릴라 언니는 한 다섯 살 정도 나이가 많고, 말썽꾸러기 벤이 여섯 살(p.31). 저 뒤쪽으로 가면, 아다와 숙모 일행의 거주지가 파리로 바뀌고 난 다음에 갑자기 아다가 17세, 벤이 21세로(p.140) 휘까닥 뒤집어진다. 근데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도 좋으니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알고 말자. 뭔가 이유가 있겠지.


  본격적인 사건은 이 도시에서 포그롬, 유대인 탄압과 린치 사건 때 벌어진다. 포그롬?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 폭행과 학살은 유대인의 계급과 상관없이 벌어졌는데, 사실 그건 나치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잡은 후에 “수정의 밤” 같은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만행이었고, 190X년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에서 있었던 작품 속의 작은 포그롬은 비록 사납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중류 또는 하류 게토 지역의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던 모양이다. 폭도들이 귀족, 부르주아가 사는 동네에는 함부로 발자국을 찍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시너 씨와 외할아버지, 숙모는 릴라 언니를 천주교도 친구집으로 보내고, 벤과 아다는 먼지투성이 건물의 다락방으로 피신시켰다.

  어린 아다와 벤은 밤새도록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곳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그곳을 나온다. 집으로 가던 중, 아무리 어려도 위험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려 몸을 피해 달려간 곳이 사나운 남자들이 훨씬 적은 언덕 위였다. 그곳에서 아다는 생전 처음으로 아름답고 아름다운 저택을 구경한다. 세상에 사람 사는 곳에 이런 건물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그 건물이 사람이 직접 들어가 사는 집이라는 것에 깜짝 놀란다. 문패를 보니 한 번 더 놀라서 집주인이 “시너”씨. 이런, 자기네와 멀기는 하겠지만 친척이다. 배는 고파 죽겠지, 모자도 없이 창들을 넘느라 아다도 벤도 상처나고 피도 좀 흐르고, 옷도 찢기고, 머리카락은 다락방의 먼지와 엉겨 함부로 삐죽삐죽 솟구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음에도, 그냥 담장을 넘어 현관으로 가서 벨을 누른다.

  이럴 때 뭐라 한다고?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하여간 멀고 먼 친척 집에 용감하게 쳐들어간 아다와 벤은 걸진 아침을 얻어먹고, 노할아버지가 아다의 아버지 이스라엘 시너의 이름을 들은 바 있어서, 이 유력 가문 전속 거간꾼 중의 한 명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처음으로 특별한 (부와 안락함 같은)쾌감을 발견한 아다의 눈에 고귀하고 독특한 울림을 가진 미지의 이름, 해리 시너라고 하는 옷 잘 입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고, 보자마자 이 낯선 이름의 소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윗동네 시너 가문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 큰 공장을 운영했고, 노할아버지의 둘째와 셋째 아들은 파리에서 탄탄한 국제 은행을 설립해 막강한 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이런 집안에 전담 중개인 자리에 오른 이스라엘 시너 씨, 아다의 아버지는 돈 좀 만졌겠지? 그렇다. 큰 부자는 아닐지언정 제법 돈을 벌어, 포그롬 때 충격으로 장인이 시름시름 앓다가 곧 세상 하직한 이후 중간 지역의 도시 중앙으로 이사했고, 가만 보니까 딸 아다에게 미술적인 재능이 대단한 걸 알아챈다. 마침 배우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조카 릴라가 있어서 숙모 역시 시너 씨를 살살 긁어 숙모와 아이들 셋이 파리로 유학하기에 이른다. 이 때가 1914년 5월. 그리고 석달 후에 뭐? 맞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그러니 이들 앞에는 고생길이 훤할 수밖에.

  더욱 아쉬운 건, 우리의 시너 씨는 이들을 보내고 나서 작품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한 마디가 없이.

  근데 전쟁이 터지고, 이 식구들은 죽어라 고생길로 접어들었을 때, 릴라가 재주도 좋지, 런던 이튼을 졸업한 해리 시너가 파리 중심가의 저택에서 호화롭게 사는 것을 알게 되고, 해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 동쪽 늑대의 피를 물려받은 아다는(해리는 기껏해야 개라는 의미도 되고 뭐 그런데) 후끈, 어린 시절의 사랑이 달아오른다. 야수는 자기 몸에 그런 피가 흐르는 지도 모르고 살았으나 이제 눈을 뜨게 되었으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소포클레스 전집 ㅣ 그리스 고전 문학선
소포클레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소포클레스를 2014년에 처음 읽었다. 당연히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이란 제목의 책으로. 읽기 전에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은 중학생 시절부터 스토리 대부분을 알았다. 이게 오히려 책 읽기를 방해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천병희 선생의 책을 읽기에 앞서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오페라 <폭군 외디푸스 Oedipus der Tyrann>의 음반을 들었다. 이거 한 방에 그냥 뻑 갔다. 카를 오르프의 고전 3부작이, <폭군 외디푸스>와 <안티고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이다. 지금은 아마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때는 별의 별 어둠의 경로를 통한 야매 음반을 들어야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LP를 CD로 변환해 다시 발매하기 시작한 정식 음반과 DVD를 구해 들었다. 오르프의 <폭군 외디푸스> 음반에 글쎄 대본이 없는 거다. 왜 없느냐 하면, 카를 오르프가 한 날 베를린에서 독일어 번역으로 공연한 연극 <오이디푸스 왕>을 보고 감동 감화를 받아 당장 자신이 직접 오페라로 작곡하기로 마음먹었고, 소포클레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 독일어 번역본의 대사를 일체의 빠짐도 없고 수정도 없이 <오이디푸스 왕> 그냥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본, 즉 리브레토를 구해 읽느니 희곡집을 한 권 사서 읽는 게 훨씬 좋다는 말을 들어서.

  이렇게 소포클레스를 읽은 시작은 미미했지만, 2014년에 정말로 소포클레스를 읽고 나서, 소포클레스야말로 소위 무인도 책, 이 가운데서도 제일 앞에 두어야 할 필생의 책으로 여기게 되었다.


  말 나온 김에 오르프의 오페라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우리 입에 익숙한 작곡가들 가운데 예상 외로 좋은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들이 많다. 한 번 놀라 보실래? 핸델은 뭐 다 아시지만, 하이든, 베를리오즈,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안톤 루빈스타인, 라흐마니노프,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베르크, 젬린스키, 테오도라키스 등등. 이 가운데 카를 오르프. 정말 독특하다. (슈만과 슈베르트의 오페라는 피해가는 편이 좋다! 재미없어 못 듣는다.)

  <폭군 외디푸스> DVD를 보면,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그랜드 피아노가 두 대 놓여 있는데, 피아니스트가 당연히 주로 건반을 두드리지만, 작은 나무망치로 직접 피아노 현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르프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애초에 타악기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걸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 유튜브 검색을 열라 해봤는데, 내 실력으로는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 아쉽다. 연주뿐만 아니고 성악가들의 노래도 아주 흥미롭다. 노래는 이 작품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그의 또다른 유쾌한 명품 <재치 부인 Die Kluge>에서 이미 들어본 거의 유사한 톤으로 발성/노래하는데(아, 영원하리, 고틀롭 프리크와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레치타티보도 아닌 것이, 노래이면서 동시에 배우들의 대사와 흡사하다. 물론 화성을 포함하니까 배우의 대사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그리고 선율의 힘을 보탠 결과 청중에게 전달하는 호소력도 막강하다.

  게다가 원본 텍스트가 2천5백년 동안 인류에 의하여 끊임없이 공연되었을 정도로 인간 공통의 비극을 호소한 진짜 고전 아닌가 말이지. 그리하여 오페라로 만든 사람도 많다. 오르프 말고도 스트라빈스키와 에르네스쿠도 <오이디푸스 왕>의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재미 측면에서 도무지 오르프를 따라갈 수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무대 예술로서 음악적 스토리텔링 기법이니, 같은 <오이디푸스>인데 무슨 재미 차이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 단어의 빈곤함이란! 음악의 문자화, 이건 내 수준에선 죽어도 풀지 못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책을 이야기하지 않고 음악으로 서두를 오뉴월 쇠불알처럼 늘인 것은, 사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그리고 일곱 성문城門의 테바이 이야기, 헤라클레스, 일리아스를 모르는 분이 몇 명이나 되겠나? 다 알고 계시는 스토리로 독후감을 때우는 것도 민망한 일이라서 그렇게 됐다. 혹시 당신이 소포클레스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그냥 도서관에 가셔서 천병희 선생이나 오늘 독후감 핑계를 대고 자판 두드리고 있는 이준석 번역을 골라 읽어 버리시라.

  이렇게 말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러면 이준석 번역을 천병희 번역과 비교해도 괜찮을 것인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이에 관한 의견뿐이겠다.

  그간 그리스 고전에 관한 한 거의 독보적 위치를 고수하던 분이 천병희 선생이다. 2022년에 83세의 연치로 별세한 전설적 역자. 이준석 방송통신대 교수는 서울대 학부에서 미학을, 대학원에서는 고전문헌학을 전공해 소포클레스 연구로 석사논문과, 박사과정 수료, 이후 스위스 바젤에서 7년간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로 박사논문을 쓴 50대, 천선생과 비교하면 막내 아들 뻘 되는 젊은 학자.

  나는 여전히 천선생의 업적을 능가할 작업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그늘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리스 고전을 읽으려면 자동적으로 제일 먼저 천선생을 떠올리지 않기도 힘든 수준이겠지. 게다가 이 책도 정가가 3만원. 그리스 고전 책값이 만만하지 않아 일단 여태까지 숱한 사람들이 “믿고 읽는다”는 천선생의 책을 최우선 선택지로 선정해 두었을 확률도 매우 높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나도 소포클레스는 천선생의 책을 가지고 있고, 비싼 책값을 주고 다른 소포클레스 역서를 또 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 책 《소포클레스 전집》은 나 다니는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희망도서 신청을 해, 신간도서 전시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집어 든 거다. 워낙 소포클레스, 특히 <오이디푸스 왕>을 좋아한데다가, 기회가 닿기만 하면 다른 역서를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으니.

  이준석의 번역은,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입에 잘 붙는다. 물론 이이 특유의 단어, 다른 역자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엄연한 우리 고유말이며 표준말을 쓰는 등 좀 돋보이려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그래서 살짝 귀엽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장의 표현이 천선생에 비하여 많이 현대적이다. 그러니 귀에 착착 감긴다. 읽는 즉시 등장인물의 대사가 품는 감정이 와 닿는다. 이것들 다 합해서 진짜 연극을 위한 희곡/대본 같은 느낌이 든다. 천선생의 책과 비교해서 훨씬 더 그렇다. 나는 이런 번역이 더 좋다.

  이건 대단히 긍정적인 면 아닌가? 고전은 언제나 다시 번역해야 한다. 20년에 한 번 또는 30년에 한 번? 천만의 말씀. 고전은 언제나 다시 번역해야 한다. 늘 새롭게. 새롭지 않으면 더 이상 고전이라는 계수나무 잎을 이마에 쓸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여태 이준석의 번역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반성한다. 사실 책값,이라기보다 책 쌓아 놓을 공간 부족으로 선뜻 구입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는 건 핑계일 뿐이겠지. 좋다. 조만간에 이준석 번역의 다른 고전을 또 읽어보자.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6-08-05 0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왼전, 100% 공감 공감 입니다.
제가 지금 이준석 번역자의 오뒷세이아 읽고 있는데 같은 의견이라서 반가워요.
소포클레스도 꼭 재독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Falstaff 2026-08-05 07:15   좋아요 2 | URL
공감하신다니 즐겁습니다. 그것도 백퍼! ㅎㅎㅎ
저는 9월 14일에 <일리아스> 업로드 예정입니다. <오뒷세이아>는 올해 읽을까, 내년에 읽을까 생각중이고요. 페넬로페 님의 <오뒷세이아> 기대하겠습니다!

coolcat329 2026-08-05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준석 번역자의 책이 좋다는 얘기 듣고 읽고 싶었는데, 정말 그렇군요~요즘 영화 오디세이 덕분에 일리아스 등 그리스 고전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더라구요. 참 좋네요~

Falstaff 2026-08-05 11:53   좋아요 2 | URL
뉴스에서 봤습니다. <율리시스>가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거요. ㅎㅎㅎ 제 세대에 율리시스는 미아삼거리 대지극장에서 몰래 땡땡이 쳐 본 커크 더글러스였는데요, 유튜브에서 보면 얼마나 촌스러운지... ㅋㅋㅋ

잠자냥 2026-08-05 12:35   좋아요 1 | URL
요즘 진짜 신간 나오는 거 중에 오디세이 관련 책 우르르르르르. ㅋㅋㅋㅋ 제 주변엔 오디세이아 원전은 지루할 거 같아서 ㅋㅋㅋ 그냥 영화로 보겠다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잠자냥 2026-08-05 1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전 천병희 역으로만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수록된 작품들 다 좋아서 또 읽어도 좋을.

Falstaff 2026-08-05 11:5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울 잠자냥 님은 이 독후감 아니었어도 틀림없이 읽어보실 분.
 
비둘기의 날개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98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딱 2년 만에 다시 헨리 제임스를 읽었다. 제임스를 읽을 때마다 늘 그렇듯이 그의 장황한 상세묘사에 아예 넋이 나가버렸다. 1권, 2권, 서문과 해설을 합해서 꼴랑 860페이지를 읽느라 무려 일주일을 다 소비했다. 상세묘사도 상세묘사 나름. 이번에는 인물이나 주요 장소인 베네치아의 명소 등 외관에 관한 상세묘사 대신 사람의 심리를 샅샅이 해부했다. 심리적 실핏줄까지 전부 언어로 써 놓았으니 그의 노고가 “정말로” 대단하지만, 그걸 읽는 독자는 콱 질려버린다. 누군가 말했지. 진짜 잘 쓴 소설은 전부 심리소설이라고. 여태 그 말에 동의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젠 그만. 심리 소설도 심리 소설 나름.

  영국 젠트리 계급의 속물성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

  초간이 1902년이니까 헨리 제임스가 미국인으로 살 때이다. 하지만 무대는 런던. 벨 에포크 시대가 절정을 달하던 때.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귀족, 부르주아 종족들은 사치와 계급 유지와 일 하지 않는 미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나는 이런 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던 헨리 제임스가 애초 영국 젠트리와 미국 부르주아의 속물성을 까발리기 위하여 작품을 썼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유치한 사람들이 펼치는 사랑 놀음과 나름대로의 진정한 사랑을 읊느라고 읊은 것을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시각으로 읽으니 눈꼴 신 속물성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길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스물다섯 살 먹은 케이트 크로이 양. 위로 두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오빠 둘은 죽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로 말하자면 한 시절에 가히 영국 최고의 미남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훤하게 잘 생겼던 남자. 생긴 꼴을 하느라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안 살림을 망쳐 놓는데 전력을 다했음에도 아직 완전히 망자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독자가 보기엔 망가진 인물이고 망가진 집안이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방을 얻어 아버지 혼자 산다. 인간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지만 완벽한 외모와 몸에 박힌 신사의 품행을 가진 빈틈없는 영국 신사. 속 마음과 달리 악의를 찾을 수 없는 상냥한 눈과 또렷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기꾼.

  언니 메리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교회 목사한테 시집 가더니 결국 아이 넷 달린 과부 신세가 됐다. 아빠를 닮아 수려한 외모를 가졌으나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여인. 죽은 남편의 누이 두 명과 여태 친분을 쌓고 있다. 일찍 죽은 어머니가 메리언과 케이트, 두 딸한테 각각 2백 파운드의 연금을 남겼으나,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착하고 정의로운 케이트가 네 아이를 키우는 언니한테 1백 파운드를 양보했다. 그게 아버지의 불만이다. 젊은 메리언한테 줘 봤자 시누이들 비스킷 값으로 다 넘어갈 테니 차라리 자기한테 쓰라고 하면 오죽 좋았겠느냐는 거겠지.

  하여간 메리언 언니에 대하여 헨리 제임스는 조금도 좋은 방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주인공이자 정의로운 사랑꾼인 동생 케이트보다 훨씬 진정한 인물이다. 적어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게 산다.

  케이트는 이모 모드 러더 부인 집에서 이모와 함께 산다. 다만 조건이 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와 어떤 이유라도 왕래하지 말 것.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아버지한테 찾아가 함께 살자고 제안했지만 깨끗하게 거절당했다. 라이어널이 미쳤니? 자기 한 입 먹고 살기도 힘든데 노동하지 않을 것이 뻔한 막내딸을 들이게?

  모드 러더 부인은 전형적인 영국의 부르주아. 랭커스터게이트의 부촌에 저택을 짓고 산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인물. 조카들을 가끔 찾았지만 극도의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름대로 돌보느라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런 이모가 케이트와 함께 살고 있으니 조카의 거의 모든 일 역시 이모의 관심 속에, 관리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애정 문제도 마찬가지.


  케이트의 연인이 머튼 덴셔. 아쉽게도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할 정도로 돈이 없는 청년이다. 모드 러더 부인 눈에 찰 턱이 없다. 아무리 잘 생기고 몸가짐 바르고 성격도 좋지만 돈 없으면 꽝이다. 케이트 역시 이를 알아 덴셔가 자기 애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던셔도 마찬가지. 이모가 꼽는 케이트의 신랑감 가운데 한 명이 마크 경. 경卿. 영어로 Sir. 마크한테 시집을 보내면 잘 하면 공작부인이 될 지 그걸 누가 알아? 많지는 않지만 돈도 꽤 있는 양반인데. 하지만 틀렸다. 돈은 이모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신 나이가 많다. 벌써 머리가 훌렁 벗겨진 늙은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이 많은 남자가 그리 큰 흉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그냥 밀어붙이고 싶다. 케이트야 질색을 하건 말건.

  머튼 덴셔가 일을 꽤 잘한 모양이다. 이 시절 영국의 목면 사업의 최대 파트너는 미국. 이 가운데서도 뉴욕. 그리로 몇 달간 출장을 가게 됐다. 그래서 잠깐 무대가 미국으로 바뀐다. 뉴욕에서 만나 사랑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 좋은 감정을 나눈 아가씨가 밀리 실. 덴셔를 출장보낸 회사의 파트너 기업 최대 주주. 아버지가 일찌감치 죽으면서 졸지에 젊고 아름답고, 예절 바르기도 하고, 생각하는 것도 건전한 아가씨 손에 무지막지한 돈벼락이 떨어졌다. 자상한 헨리 제임스가 밀리 아가씨를 이런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하여 친척 나부랭이들이 한 명도 없고, 형제 자매도 하나 없는 완벽하게 외로운 젊은 여성으로 설정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

  밀리 실 양이 가진 부는 영국 섬나라의 부르주아 모드 로더 부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헨리 제임스가 설정한 여러 미국인들은 대개 무지무지하게 부자인 것과 마찬가지. 밀리가 알프스에 쉬러 갔다. 부잣집 아가씨가 여행을 혼자 떠나지는 않았겠지? 샤프롱 자격으로 함께 길을 나선 이가 수전 셰퍼드 스트링엄 부인. 보스턴 사람 스트링엄 부인이 젊은 시절에 어찌저찌 해서 모드 매닝엄을 알게 되어 아직 주소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밀리와 스트링엄 부인이 다음 행선지로 이탈리아가 아닌 런던을 택하게 된 것.

  여기서 주목할 가장 중요한 반전 상황.

  밀리 실 양의 런던 행에는 사실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수술 집도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루크 스트랫 박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던 점.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린다. 밀리 양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1권 256페이지에 스트링엄 여사를 향한 밀리의 대사가 나온다.


  “겉보기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보장해주는 즐거움조차 훌륭한 묘비에 적힐 정도가 못 되는 그날 내가 그럴 테지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죽은 것처럼 살았으니까, 틀림없이 죽을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을 거예요. 그게 아마 아줌마가 바라는 모습일 테고요.”


  “복선?” 나는 위 문장을 읽고 이렇게 메모해 놓았다.

  런던에서 자연스럽게 밀리 양은 모드 러더 부인과 일당들인 케이트, 마크 경을 만나 알게 되고, 케이트와는 우정까지 돈독하게 또는 겉으로만 돈독하고 속으로는 던셔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일 수도 있게 되겠지? 뉴욕에서부터 던셔를 만나 속으로 평한 밀리의 생각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여서, 훗날 알게 되는 사실, “개인적인 재산이라고는 없고, 생길 가능성도 없”는 건 밀리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던셔가 가난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정말 가난한 무산 계급 사람이 들으면 완전 허파 뒤집어질 이야기다. 몇 달씩 휴가 내고 베네치아에 갈 수 있는 청년이 개인적 재산이 “없다”고? 욕 나오겠지? 내 입에선 욕 나왔다. 더러운 속물 젠트리들.


  밀리는 무지막지한 부자. 그러나 곧 죽을 수도 있다. 1권에서 보면. 이때 내 머리 속에서 번쩍 떠오른 미쿡 사람 한 명. <한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 이사벨이 문병을 와 이모부한테 얼른 쾌차하셔야지요? 라고 의례적으로 묻자, “싫다. 나중에 죽으려면 또 이만큼 아파야할 거 아니겠니?”라고 대답해 나를 감격시켰던 인물. 이이가 진짜로 죽으면서 현금 7만 달러, 2017년 현재가치로 251억원을 상속해주었다.

  혹시 밀리 역시 죽으면서 이 불행한 연인, 현 상황이라면 절대 결혼에 성공할 수 없는 케이트와 덴셔에게 당연히 전 재산은 아니지만 거액을 물려주는 거 아냐?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 다시는 헨리 제임스를 읽지 않겠다.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한테 했다.

  어떻게 되느냐고? 안 알려드린다.

  이건 말할 수 있겠지. 벨 에포크 시절 귀족 부르주아 사회의 속물성, 지저분한 사고방식, 위선이 온갖 말빨과 수사와 눈치에 섞여 있다는 거. 등장인물 가운데 자기 생각을 드러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불쌍한 네 아이의 엄마이자 과부인 가난한 메리언 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사람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자기 본심은 꽁꽁 숨긴 채, 뜻대로 되지 않으면 꼭 그걸 꺼내 비틀어버리는 인간들. 이런 사람들 구경 한 번 제대로 했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6-08-04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 더위 잡수셨어~!! ㅋㅋㅋㅋ

“케이트의 런던 행에는 사실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수술 집도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루크 스트랫 박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던 점.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린다. 케이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얼른 밀리로 바꾸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8-04 16:08   좋아요 1 | URL
아이쿠... 뭔 할 말이 읎게 만드시네요. ㅋㅋㅋ 얼른 고쳤습니다.
덥기는 덥네요. 알라딘 두고 갑자기 ˝밀리˝서재가 뭔 말씀? 이랬다니까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