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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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스 레싱을 읽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작품이 해피엔드로 끝나기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레싱이 심술 사나운 성격이라 그런 건 아니고, 사람의 심상과 마음의 변동, 이에 따른 행동의 이중성 같은 것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그게 너무 솔직한 바람에 독자는 자기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박아 놓고 절대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지나간 실수, 잘못, 악의, 행위 같은 것들을 기어이 들춰내게 만든다. 정말 가차없는 칼날이다.

  나는 레싱을 사십대 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단 한 번도 즐겁게 읽지 못했다. 읽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어딘가 좀 불편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가. 독자에게 결코 친절을 베풀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작가로 새겨져 있다. 하긴 자신의 일생이 참 다사다난, 다양해서 그럴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이 소설집 《사랑하는 습관》을 읽으면서, 일곱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면서, 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작품들이 대개 그랬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변화, 그걸 변심이라 부르던, 질투라고 하던, 그냥 변덕이라고 여기던 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 결국 생각과 행동의 일관을 깨뜨리는 현상, 전에는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이제는 등장인물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슬퍼진 거 같다. 내가 내 마음, 정서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것 같다”라고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레싱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울해지는 대신 슬퍼지는 건,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사람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남자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의도적으로 남자에게 상처를 주어도, 레싱은 딱 한 장면을 강조하여 드러난 것만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의 바꿀 수 없는 성향일 수도 있고, 환경 때문에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또한 많고 많은 사람 사는 일에 그런 것도 생길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도리스 레싱을 연상하면 페르시아 출생과 아프리카에서의 성장, 제1,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결혼, 가정, 모성, 계급, 이데올로기의 진보성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구분 또는 특징지우려 하는데, 이제 나는 이이의 이런 모든 성향을 다 합해 휴머니스트라 말하고 싶다.

  레싱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뀔 줄 나도 몰랐다. 처음 읽은 이이의 작품이 아마 거의 대부분 독자들과 비슷할 텐데, <다섯째 아이>, 이어서 <런던 스케치> 이런 순서로 읽었다. 하여간 불편한 작품들. 지금 다시 읽어도 불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암울하고, 무겁고, 두렵기도 하고, 내가 레싱의 책이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될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을 만큼 거리감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레싱에게 휴머니스트라고 하게 됐을까? 여전히 레싱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비극 속에서 슬픔을 발견하고, 가끔 슬픈 비극은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혹시 내가 그걸 본 것일까? 설마. 어떻게 불편한 레싱 안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러나 봤을 것이다.

  이 책은 1957년에 초판 출간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후 1979년에 레싱은 다른 작품들을 추가해 《19호실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놓았다. 문예출판사는 1979년에 추가한 작품들은 따로 골라 《19호실로 가다》로, 이전 초판본은 원래대로 《사랑하는 습관》으로 냈다. 그래서 《사랑하는 습관》의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 초반까지가 시간적 공간이다. 런던은 맹렬하게 공습을 받고 있어서 3년간 연애하던 약혼자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걷어찬 아가씨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아버지가 산산이 부서져 죽은 이야기도 나오고,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동계 휴양지로 여행간 영국인 연인이 아직 패전의 응결을 해소하지 못한 독일인과의 관계도 이야기한다.

  전후의 불안정한 시대. 뭐든지 다 불안했던 시기. 절정기를 누리기 시작한 아메리카와 달리 전반적으로 가난한 유럽인들, 동쪽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볼셰비키 물결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시작, 스탈린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국 시민들,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바람에 공급과잉이 되어버린 젊은 아가씨들, 아직도 군데군데 폐허로 남은 옛 시가지, 이 와중에 큰 돈을 번 새로운 부르주아, 아직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옛 귀족 떨거지들. 이런 것들이 모두 레싱의 레이더에 걸린다. 여전히 조금은 암울하고, 무거우며, 전망도 보이지 않지만 삼십대 막바지에 이른 레싱은,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일찍 달관했는지 조금씩 휴머니스트가 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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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7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폴스타프 님 이 리뷰 읽고 오랫동안 묵혀두기만 했던 이 책 꺼내 읽었습죠… 참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전쟁 후 그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어서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Falstaff 2026-05-28 04:57   좋아요 0 | URL
옙. 단편집에 야박한 쇤네도 오랜만에 주저없이 5별 찍었습니다. ㅎㅎ
 
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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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에 네미롭스키 선집의 1번으로 출간한 《무도회》를 재미있게 읽고 네미롭스키를 더 읽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가 금세 잊은 적 있다. 이번달에 책을 읽다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여행 중에 늘 가지고 다니지만 정작 집중해 읽지는 못하는 책이 네미롭스키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차,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도착 며칠 만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은 이이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단박 읽기로 결정한 것이 저번에는 소설집이었으니, 이번엔 장편소설 <뜨거운 피>였다.


  주인공 화자의 이름은 실베스트르. 그러나 30년 전쯤 ‘나’를 사랑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가 이탈리아의 곤돌라 뱃사공을 닮았다고 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실비오’였다. 그래서 이 시골 동네의 별로 친하지 않은 주민들은 ‘나’를 실베스트르라고 원래 이름으로 부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웃과 친척은 대개 실비오라고 한다. 독후감은 실비오라는 3인칭 별명으로 쓰겠다. 나는 3인칭으로 쓰는 게 편하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편해서. 편한 건 거의 언제나 좋은 거니까.

  사실 이 소설의 중요한 스토리 가운데 하나가 누가 실베스트르에게 실비오라는 별명을 지었는지, 이걸 추리하고 맞추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독후감에 입도 벙긋하지 않을 터이다. 이 책, 나는 내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어 오랜만에 별점 만점을 줄 수 있을 정도, 웬만하면 당신도 직접 ‘아리따운 아가씨’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럼 이게 추리극일까? 읽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다. 혼외 연애를 둘러싼 치정극이라면 그게 제일 재미있는 추리극 아닌가? 그럼 작품 속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장소는 프랑스 중부의 고집 센 농부들이 모여 사는 농장지대. 주민들은 대개 비사교적이며 형편이 넉넉하다. 자기 땅에서 이웃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랜 관습으로 굳어져 남의 일에 자신이 끼어들지 않게 매사에 조심한다. 외부인에게 배타적이고, 커뮤니티 안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 따돌림을 받으면 거의 암묵적 압박을 받아 헐값에 자기의 땅과 시설을 다른 주민들에게 팔아 치우고 타지로 떠날 수밖에 없게 유도한다. 농민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땅 욕심이 많아 이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새롭게 큰 농장주가 한 명씩 생긴다. 에밀 졸라의 작품 <대지>에 나오는 푸앙 가문 사람들을 연상하면 아마 비슷할 지도.

  실비오는 늙고 가난한데다가 홀아비 신세. 아니, 결혼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숲 깊은 허름한 집에서 은둔하며 말년을 보내고 있다. 실비오는 젊은 시절 이 답답한 고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마자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아 그걸 차근차근 팔기 시작한다. 젊은 청년이 부동산을 급하게 파는데 그게 제값을 받을 수 있겠어? 그리고 이런 완고한 동네 사람들이 땅을 팔아 현금을 만들어 자기 고장을 뜨려고 하는 청년에게 제 값을 주고 그걸 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관습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터이지만, 어머니 정도는 실비오가 얼마든지 구워 삶을 수 있어서 과감하게 그렇게 했다. 실비오는 현금을 가지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 가서 사업을 벌였다. 구리, 향신료, 금 등. 취급품목은 화려했으나 용기와 배포만 있지 경험은 하나도 없는 초짜 사장은 당연히 탈탈 털려 불과 2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잠깐 연애를 해 실베스트르 대신 실비오라는 별호를 얻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실비오가 성격이 올바라 책을 시작하는 가을 저녁 무렵 그의 작은 집에 사촌 에라르 부부와 아이들이 놀러 와서 불 앞에 모여 가벼운 펀치를 마시고 있는 것으로 막이 올라간다. 프랑수아와 엘렌 사이에 맏딸 콜레트가 있고, 아래로 두 아들과 어린 딸을 두어 2남2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콜레트와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 부모, 프랑수아와 엘렌 부부는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조금의 도덕적 실금도 가지 않은 채 결혼 20여 년이 지나도록 진실한 사랑을 유지하고 있는 모범가족이다. 오늘 모임은 콜레트의 약혼자 장 도랭을 실비오 아저씨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

  실비오가 보기에 사위 후보 장이 장인자리 프랑수아와 비슷한 성격인 듯하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거의 여성적이고 아내가 지배하기 쉬운 남편 스타일. 매사에 조심스럽고 비사교적이며 수줍음을 타기까지 하는 부류의 남자들.

  이 가족모임에서 콜레트는 습관적으로 자기 부모가 결혼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달라고 조른다. 핑계김에 그걸 요약해보자.


  엘렌의 아버지, 그러니까 콜레트의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두 번 했다. 첫째 아내가 낳은 딸이 엘렌. 두번째 아내도 첫 결혼에서 얻은 딸 하나를 데려왔다. 세실 쿠드레. 세실이 엘렌의 의붓 언니. 계모는 기가 센 여자였던 반면에 세실은 어디가 좀 모자라 보인다는 평을 얻었다. 집에서 결혼시키기 위해 몇 번 맞선 자리를 마련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해서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다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훗날 갓난 여자 아이를 입양해 이름을 브리지트 드클로라고 짓고 나름대로 잘 키우다가 브리지트가 성년이 될 즈음 일찍 세상 떴다.

  프랑수아의 아버지는 프랑수아를 원래 세실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래 부자가 엘렌의 집에 가보니 뚱한 성격의 세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아 그냥 돌아가려고 현관문을 열자 눈 오는 날 양 볼이 빨갛게 얼었으면서도 짓궂은 남자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열세 살 소녀가 눈에 띄었다. 사랑은 종종 한 눈으로 결정된다. 프랑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된 프랑수아는 곧장, 지금은 아니지만 아이가 적당한 나이 열여덟 살이 되면 꼭 결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일단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아 파리로 떠나 열심히 일했다.

  당시 엘렌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늙어 병이 들었고, 계모는 엘렌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아마도 엘렌은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순 살이 넘은 부자 늙은이를 선택해 열일곱 살 때 결혼을 했다. 당연히 둘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남편은 모르겠는데 아내 엘렌의 마음 속에 사랑은 한 오라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라는 의무는 다 하겠다고 다짐한 엘렌. 이이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가히 홍살문이라도 하나 세워줄 만했다. 결국 심판의 날이 왔을 때, 남편은 엘렌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정도의 유산만 물려주고, 자기가 평생 모은 거의 전부의 재산은 자기 가문의 형제, 조카들에게 유증해버렸다.

  과부가 된 엘렌. 지금 프랑수아가 오면 당장 결혼할 수 있을 터인데 그는 보헤미아에서 교사로 지내고 있어 적어도 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젊디 젊은 남녀, 프랑수아와 엘렌. 그토록 먼 거리에서 각자 홀로 지내며 정말 멀리 떨어진 연인만 사랑하고, 생각하고, 서로를 연상하면서 몸을 달래고 있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럴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사람 사는 일에 집중해, 사람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렌 네미롭스키. 가히 눈이 매섭다.

  엘렌은 이 과정을 뺀 채 조만간 결혼하는 딸 콜레트에게, 그리하여 아빠가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결혼해 너와 세 동생을 낳고 편안하게 살고 있단다, 라고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마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콜레트는 장 도랭과 결혼해 도랭의 집이자 직장인 풍차 방앗간, 물랭뇌프에서 산다. 방앗간 아래로 거품이 이는 녹색의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곳. 실비오도 가끔 그곳에서 송어낚시를 하고 그랬다.

  콜레트. 실비오가 엘렌의 아이들 가운데 제일 아끼는 당조카. ‘당조카’는 북한말이고 당질이 옳은 표현이라는군. 하여간 콜레트 당질은 아빠를 닮지 않아 웃는 눈과 큰 입에 불꽃의 뜨거움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엄마 아빠의 가정처럼 남편 장 도랭과 즐거운 신혼을 보내던 콜레트. 그렇게 깨를 볶는 신혼을 지내고 있을 거라 누구나 생각하던 시기. 장 도랭은 이틀 예정한 출장을 갑자기 하루만에 마치고 다음날 밤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방앗간 옆을 흐르는 강변의 나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어느 검은 그림자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애초 예민하고 섬세하여 완력이 세다고는 할 수 없는 장은, 다리 구간에서 난간이 없는 곳까지 밀려가 강에 빠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급류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이렌 네미롭스키가 숨겨왔던 모든 비밀들이 이제부터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해 사람이 산다는 것의 날 모습이 드러나는데, 허, 그것 참.


  왜 여태 네미롭스키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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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5-25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도회」참 재미있게 읽고 다른 책도 두 권 사두고 저 또한 잊고 있었네요. 이 책도 ‘읽고 싶은 책‘으로 찜만 해두고...저는 빛소굴출판사 페이지터너스 시리즈도 좋더라구요.

Falstaff 2026-05-25 18: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곧 네미롭스키 전작 읽을 예정입니다. 이 책의 별점이 4.5였는데요, 아무래도 만점을 주기엔 뭔가 캥겨서리... ㅋㅋㅋㅋ 그렇게 됐습니다.
 
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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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1979년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머빌 섬에서 캐나다인 사회복지사 엄마와 미국인 배관공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번째 이름 세인트존은 할머니의 성씨 성 요한에서 가져왔다는데, 엄마의 엄마인지 아빠의 엄마인지는 영어로 알아낼 수 없다. 이 사람들이 그런 개념이 별로 없다.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가족은 역시 작은 섬인 덴먼 섬으로 이사해 청소년기를 홈스쿨링으로 통과한다. 학교도 다녔는지 위키피디아에 18세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유명한 토론토 댄스 시어터 학교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했지만 잘 안 된 모양이다. 그래 이이의 사진을 보면 작은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체형이 무용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졌는지, 기대치를 재능이 받쳐주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무용을 그만두고 소설쓰기를 시작, 2002년부터 작품을 발표해 <스테이션 일레븐>이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내셔널 북어워드, 펜 포크너 소설상, 베일리스 여성 소설상 후보로 지목되었다가 미끈덩, 바나나 껍질을 밟았지만 대신 공상과학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아서 C 클라크상과 토론토 도서상을 받았다고. 받은 문학상의 상금보다 더 대박을 친 것은 HBO Max가 <스테이션 일레븐>을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했다는 거. 그게 펜데믹 신드롬 중이던 5년 전, 2021년 12월이었다.

  에밀리 세인트존 페어뱅크스는 “Executive Recruiter”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잘 나가는 회사원 케빈 맨델과 결혼해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로 이름이 바꾸고 딸 하나를 두었지만, 2022년 갈라섰다. 이혼 후 뉴욕에 살고 있다는데 2025년에 한 책방에서 로라 바리소지라는 사람과 재혼했다. 배우자의 이름만 보면 동성 결혼인 것 같다.


  이 책은 2014년에 출간했다. COVID-19 이전 시절이지만 이미 세상은 SARS를 겪은 후. 인수공통전염성 바이러스 질환으로 중국 윈난성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SARS-CoV-1이라 명명했다. 약 1년간 지속한 펜데믹에 8천4백여 명이 감염되었으며 치사율은 11%였다. 이후 17년만에 중국 우한에서 두 번째 변종 바이러스 SARS-CoV-2를 확인했으니 이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라 했다.

  에밀리 맨델은 바이러스로 인한 인간의 소멸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 이것을 소재로 비슷한 내용의 소설을 쓴 사람이 맨델 한 명은 아니겠지만 그런 작품들 가운데 돋보이는 수준이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중국과 인근 동남아시아를 제외하고 SARS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가 캐나다였다. 251명의 환자가 발병해 이 가운데 43명이 사망, 평균보다 높은 치사율인 17퍼센트를 기록했으니 이런 작품이 나올 만했을 듯하다.


  작품은 한겨울 밤 <리어왕>을 공연하는 토론토의 엘긴 극장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리어 역을 맡은 배우는 51세의 아서 리앤더. 연극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배우로 더 명성을 높였다. 한때 잘 나가던 영화배우답게 세 번 결혼했고 지금 세 번째 이혼 소송중이다. 이이가 맨델처럼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속한 작은 가상 섬 델리노 출신으로 (작가처럼)무용이 아니라 연기를 배우러 뉴욕으로 향했다가 젊은 시절엔 사서도 한다는 고생 끝에 단역에서 시작해 한때 스타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찌그러져 이제 뉴욕 브로드웨이도 아니고 토론토에 와서 리어를 공연하고 있는 신세다.

  공연일. 아침부터 아서는 피곤했다. 사흘 동안 불면증이 심했다. 나른하고 탈수증세가 있는 아서. 그럼에도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어 먹고 샤워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극장에 출근했다. 눈보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맞는지 회색빛으로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아있다. 아서는 <리어왕> 공연만 끝나면 캐나다와 미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스라엘로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두번째 처 엘리자베스와 아들 타일러가 살고 있는 곳. 함께 살지는 못하겠지만 자주 타일러를 보고, 함께 여행하고, 캠핑도 가고, 영화 속 행복한 부자관계를 연출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서에게 행복은 주어지지 않는다.

  4막, 왕이 실성하는 장면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남루한 넝마를 입은 리어왕, 아서는 대사 없는 배역인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글로스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기둥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거리가 맞지 않아 팔이 기둥에 세게 부딪혔다.

  “허리 아래로는 켄타우로스야.” 아서가 엉뚱한 대사를 하고 있는 것을 관객석 제일 앞자리에서 보고 있던 전직 파파라치, 연예담당기자이자 지금은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하여 배우고 있는 건장한 남자 지반 차드하리가 알아챈다. 지반의 머리 속에는 생명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차올랐고, 객석에서 벌떡 일어났으며, 뒷자리에 앉은 관객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무대로 뛰어올라가, 아서를 똑바로 눕히고 맥이 없음을 확인하더니, 기도를 확보한 다음 심폐소생술, CPR을 시작한다. 곧이어 객석 중에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무대에 올라 지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다. “심정전문의 월터 지코비요.”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얼마 없다. “지반 차드하리입니다.”

  조금 후 응급구조대가 도착해 두 시민을 뒷자리로 밀려가고 아서는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그 전에 지코비 박사는 선고했다. “밤 9시 14분. 사망했습니다.”

  무대 위 응급상황을 알아차리고 심폐소생술을 한 용감한 시민이 누구인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고, 급성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아서 리앤더는 모스크바에서 도착한 여객기 안에서 조지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2백여 명의 치명적 호흡기 전염병 보균자가 득실거리는 종합병원으로 실려갔고, 북미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펜데믹이 시작하는 바로 그날, 그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대부분 이날의 공연에 직간접으로 관련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이다. 문명의 몰락은 그렇게 왔다. 조지아 바이러스. 인간의 문명을 모두 파괴해버릴 공포의 바이러스가 왜 하필 조지아에서 시발했을까? 이오지프 스탈린의 고향이라서?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순식간에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잠복기간이 겨우 몇 시간.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흘, 보통 사람이라면 이삼일 안으로 몸에서 생명을 뽑아가는 바이러스가 토론토를 덮쳤다. 이건 뉴욕과 LA를 비롯해 모든 미국의 대도시도 마찬가지라는 말과 같다. 토론토 사람들은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메웠고, 이미 가득 찬 공항 행 고속도로 위에서 추운 겨울 폭풍을 차 안에서 견디다 몇몇은 행복하게도 가스 질식으로 죽었으며 몇몇은 가솔린이 다 떨어진 다음에 얼어 죽었다. 대부분은 걸어서 공항까지 도착했지만, 공항에는 “바이러스 감염지로 출입을 금함”, 이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을 뿐이라 기력이 다해 그냥 길 위에 쓰러져 유행병 증상으로 체온이 올라 죽었거나, 얼어 죽었거나, 하도 하가 치밀어 열 받아 죽어버렸다.

  화가 지망생 시절에 아서와 결혼한 첫번째 아내 미란다 캐롤은 이혼 후 선박회사에 입사해 맹활약한 끝에 중요한 경영진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평생 그림 대신 그래픽 노블을 만들었으니 <스테이션 일레븐> 이 책의 제목이다. 작품을 최고급 종이와 잉크로 자비 출판해 2권 열 세트 한정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두 세트를 전남편 아서에게 선물했다. 아서는 이 중 한 세트를 이스라엘에 사는 아들에게 보냈고, 한 부는 가지고 있다가 무대에서 심장질환으로 죽은 후, 대사 없는 어린 시절의 코딜리아 역을 하던 아역배우 커스틴 레이먼드의 손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등장한 주요 인물.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문명의 몰락 이후에 삶을 이어갈 사람이, 이스라엘에 살다가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려고 토론토행 비행기를 탔다가 현지 공항의 바이러스 오염 때문에 아이오와 공항에 내려 목숨을 구한 아서의 아들 타일러. 코딜리아 역을 했던 아역배우 커스틴. 그리고 바텐더를 하면서 응급구조대원이 되기 위하여 생명연장기술을 배우고 있는 지반 차드하리.

  여기에 한 사람을 더 보태야 한다. 아서의 가장 친한 친구 클라크 톰슨. 한 시절 아서와 함께 연기를 공부했지만 도중에 길을 바꾸어 잘 나가는 경영 컨설턴트가 된 현명한 남자. 문명 몰락 이후에는 바이러스가 침공하지 않은 새번시티 공항에서 지난 문명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책이 끝나는 문명 후 19년, 일흔 살이 될 때까지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지낸다.


  바이러스로 인한 문명의 몰락. 인구의 대부분이 한 번에 사라지면 제일 먼저 닥칠 것은 약탈과 싸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살인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행위 모두 각자가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며, 자기 DNA의 연속을 위한 본능이다. 세상은 또다시 남자가 지배할 것이다. 최선의 미덕은 힘과 무기가 되리라는 건 자명한 상식이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이런 야만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터. 이이가 만든 것이 유랑극단. 문명은 이미 사라졌을지언정 아직 예술을 기억하는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전문으로 공연하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아 소규모 단위로 모여 사는 씨족과 부족 수준의 커뮤니트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한다.

  물론 이들도 다른 인간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무기를 들고 보초도 서고 경계도 하며 유랑의 길을 떠돌며 산다. 그래도 작가 맨델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문명 몰락 이후에도 누군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문명이라고 하면 그것은 “빛”. 아서의 아들인 것이 확실한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찾고자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빛이지만, 남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구하려 하는 빛은 어둠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진정한 빛, 전기였다. 그걸 누가 만들어내는지는 직접 확인하시옵고.

  문명 몰락. 은근히 재미있다. <스테이션 일레븐>도 그렇고, 좀비에 의한 문명 몰락을 그린 콜슨 화이트헤드의 <제1구역>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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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6-05-23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순한 맛의 서정적인 peri & post-apocalyptic novel 이지만
<Station Eleven> 을 나름 재미있게 읽고나서
Emily St. John Mandel 의 책 몇 권은 종이책으로
몇 권의 초기작은 Kindle 로 구입했는데
Ponzi scheme 을 다룬 <The Glass Hotel>이 제일 흥미로왔답니다.

Falstaff 2026-05-24 05:18   좋아요 0 | URL
음. 그렇군요. 맨델의 작품을 좀 더 들춰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6-05-2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어왕 연기 중 배우가 쓰러지고 곧 전세계로 바이러스가 확산된다는 설정이 참 문학적이네요. 믿고 보는 HBO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니 섬 출신 작가의 대성공입니다. ㅎㅎ

Falstaff 2026-05-24 05:19   좋아요 1 | URL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로 만들어졌군요. 궁금한데 HBO를 볼 수 없어서 ㅎㅎㅎ

건수하 2026-05-2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코로나 퍼지기 전 읽어서 코로나 때 이 소솔 생각했었는데, 드라마로도 나왔었군요. 셰익스피어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로 끝나는게 인상적이었어요 :)

Falstaff 2026-05-24 05:21   좋아요 2 | URL
셰익스피어는 파고 파도 늘 달리 볼 것이 무궁무진한 모양입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고전 작가라서 말입죠. ^^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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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헤일 존슨. 미국 국무부와 미국 정보부, CIA 등에서 일한 아버지 때문인지 1949년에 서독 뮌헨에서 출생해 필리핀, 일본, 미국 워싱턴 DC 교외에서 살았다.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인 아아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레이먼드 카버를 사사하며 예술석사 MFA를 취득했다. 그러나 20대 시절 존슨은 약물과 알코올에 흠뻑 젖어 살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창작마저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약물과 알코올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중독자들도 그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 그러나 존슨은 스물아홉 살 때인 1978년에 완전 금주를 시작해 성공했고, 83년엔 기타 약물도 끊어버렸다. 여간한 독종이 아니다. 시, 소설, 단편소설, 희곡, 에세이 등을 남겼다. 이름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 번 퓰리처 상 최종심까지 올라갔다. <기차의 꿈>도 두 권 가운데 하나.

  지긋지긋하지도 않나, 세 번 장가들었고, 좋아했던 술이 나중에 심통을 부렸던지 2017년 5월 캘리포니아에서 간암으로 죽었다. 죽고 나서야 미국 의회도서관 소설상을 받았다. 출판사 다산책방은 당연히 판매 목적이겠지만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 믿거나 말거나.


  <기차의 꿈>은 장편소설이라 주장하지만 노벨라, 중편 정도로 봐야 옳을 듯하다. 주인공은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남자. 막이 올라갈 시점은 1927년 여름. 아이다호 팬핸들 스포켄 국제철도 공사장. 흑인 노동력을 대신해 철도 가설을 위하여 대거 수입한 인력이 중국인. 이 현장에서도 중국인 노동자가 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의심을 받아 그를 죽여버리려는 백인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 세 명, 철도회사 간부 시어스와 노동자 젤루이스 그리고 그레이니어는 모이강에 건설중인 50피트 높이의 다리를 중국인을 끌고 올라가 다리 아래 흐르는 급류에 던져 버리려 했다. 다리 꼭대기까지 끌고 가기는 했는데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에 중국인이 잽싸게 철골 빔을 타고 내려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어스 씨가 권총을 네 발 발사했지만 이미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레이니어는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가 중국인을 직접 처형하려고 해서? 천만의 말씀. 그레이니어가 가책을 느낄 만큼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가 도망치면서 자기한테 강력한 저주를 내렸을까봐 그게 걱정이 될 뿐이다. 그 다음에야 자신이 괜히 광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을 알아차렸다. 아내 글래디스가 갓난 딸 케이트를 넉 달 전에 낳았다. 애 키우는 젊은 남자가 옳고 바른 일만 해도 아차 하는 사이에 부정탈 게 많고 많은데 함부로 처형 팀에 합류하다니. 이거 뭐가 잘못된 건 확실하다.

  아니나 다를까, 큰 산불이 나고, 그게 자기가 힘들여 번 돈으로 마련한 1에이커의 땅에 지은 오두막과 밭까지 번져 아내와 딸은 흔적도 없이 타 재가 되어버렸다. 그건 좀 나중 일이지만.


  1917년 여름이면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레이니어가 일하는 철도 공사현장에는 전쟁 이야기도, 참전하자는 동요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 세월이 아니라 그런 장소였다. 중국인 처형 미수가 있고 41일이 지나 이들이 만든 다리를 기관차가 빽빽거리며 달려 지나갔다. 깊이 60피트 협곡 위 112피트 길이의 허공을. 이 다리를 건설해서 철로를 11마일 단축할 수 있었다. 그레이니어는 일이 끝나 한편으로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동료들처럼 환호와 환성을 질렀다.

  이어서 1920년에 워싱턴주 북서부 로빈슨협곡 다리 보수공사를 거쳐 심슨 컴퍼니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목재 운반일을 했다. 이때가 35세. 여름 일이 끝날 무렵 그간 받은 돈을 모두 집으로 보냈는데도 성실한 그레이니어가 받을 돈이 무려 4백달러에 달했다. 때마침 오한 환자가 급증해 1897년 독감유행처럼 번질까봐 산꾼대장이 보너스 4달러를 주며 산꾼들을 집으로 보냈다. 집에 가보니 이미 아내와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음.


  유타 아니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그레이니어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모두 죽어 혼자가 되었다. 1886년에 그레이트 노턴 철도를 타고 새로운 가족이 될 아이다호 프라이 마을에 있는 고모네 집으로 들어온 소년은 고모부의 성 그레이니어를 따랐고, 이름도 고모부와 같이 로버트 그레이니어로 정했다. 프라이 마을에는 철도 공사를 위하여 백명 너머 중국인들이 살았다. 1893년에 철도가 완공되자 프라이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마을에서 추방해 이들은 서쪽 30마일 떨어진 몬태나로 가 훗날 차이나베이슨이란 동네를 이루었다. 로버트의 고모와 고모부는 이미 세상을 뜬 1899년에 프라이는 이턴빌과 합병해서 보너스페리로 불렸다. 로버트는 보너스페리 학교에서 글과 셈하는 법을 배웠으나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이 소년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 정여울은 그걸 파노라마라고 평했다. 고독한 남자가 살아온 파노라마 같은 삶의 이야기? 20세기 초반에 그런 사람이 한 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뭐 그런가 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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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5-22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더라고요 영화 먼저 보고 소설을 읽어서 책이 좀 밋밋하게 느껴졌어요😆

Falstaff 2026-05-22 15:13   좋아요 1 | URL
이게 영화로도 나왔군요. 그럼 영화가 더 좋다, 저도 한 표 던집니다!
 
축 생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62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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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우. 1970년생, 하다가! 70년 개띠가 벌써 쉰여섯 살이야? 아이쿠. 여태 나 혼자 늙어가는 줄 알았구나 싶었다. 김선우. 강릉에서 나 춘천에 있는 국립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지만 아마 교사 생활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어디선가 그렇다고 읽은 거 같다. 정확한 것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 20대 시절에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해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소설도 썼지 아마? 이이의 인터뷰를 보니 소설도 출간했단다. 시집 앞날개에 소설 출간을 경력으로 소개하지 않은 걸 보니까 만족스럽지는 못했나 보다.


  《축 생일》 초판이 2025년 9월에 나왔다. 쉰다섯 살의 시인. 나는 이 시집이 처음 읽는 김선우이다. 그래 전에는 어떤 시를 썼는지 전혀 모른다. 한 편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을까? 모르겠다. 요즘 인터넷 좀 돌아다니면 넘쳐나는 것이 시들이니 뭐 한 두 편은 읽어봤을 수도 있겠지. 시들을 제대로 옮긴 건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자. 그래서 그렇게 읽은 걸 싹 무시하면, 이 시집이 처음으로 읽는 김선우다.

  처음에는 시들이 통통 튄다. 김선우가 사용하는 다른 말로 하면, 폴짝거린다. 폴짝거려?

  한 생명체가 도약하는 모습을 “폴짝이다”라고 쓰는 건 해당 생명체가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을 때 어울린다. 기린, 코뿔소, 히말라야 야크, 코끼리가 폴짝거리는 모습은 여간해 상상하기 힘든다. 대신 쿵쿵거린다라고 할까? 시집에서 제일 앞에 배치한 시부터 폴짝인다.



  폴짝인입니까?



  나도요 폴짝! 우리는 반가워서 폴짝폴짝 뜁니다


  그쪽 우물은 얼마나 깊었나요? 하늘은 동그랬나요?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었나요? 희미한 햇빛이 아주 잠깐 우물 바닥을 비추고 사라질 때나 뚝뚝 끊기는 바람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 머물다 가버릴 때 당신도 두 손 꼭 맞잡고 우물하늘을 올려다보았나요? 우물 속에선 내내 하늘을 쳐다봤죠 햇빛과 바람이 거기서 들어오니까…… 당신도 우물이 모든 걸 보내준다고 믿었나요? 그랬죠 그럴 수밖에요 내가 우물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물이 나를 사랑해서……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햇빛과 바람이……내게로 온다고…… 때로는 특별한 은총이라 느끼기도 했고요 우물하늘 바깥에 무엇이 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오른손으로 왼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죠 왼손으로 왼뺨을 철썩철썩 때렸죠 의심하는 자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음…… 글쎄요


  폴짝,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부분. p.9)



  시가 길다. 개구리 한 마리의 우물 탈출 서사. 우물을 사랑하고 우물도 나를 사랑했지만 그래도 우물 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바락바락 벽을 기어올라 “제기랄! 하늘이 이토록 드넓은 거였다니!” 눈알이 툭 튀어나온 채 햇빛과 나부끼는 바람 속에서 우물과 우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폴짝폴짝 웃고 또 폴짝폴짝 울며, 이런 젠장! 경탄과 경악을 하는 우물 안 개구락지였던 한 생명체를 시인은 폴짝인人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폴짝인의 서(序)를 소개하자면:

  『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

  포섭되지 않기 위하여 개구리는 우물벽을 바락바락 기어올라 우물이라는 구조에서 탈출해야 한다. 새롭지는 않다. 20세기 초부터, ‘헤르만 허세’의 <데미안>에 의하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하여 죽을 똥을 싸왔으니까. 어떻게 하면 우물에서 기어 나올 수 있을까?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있던 2016년, 지금부터 10년 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여전히 책만큼 훌륭한 학교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가끔 중고등학생 독자들이 작가님이 우리 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거 같아요? 라고 물어오면 이렇게 대답해요. ‘보나마나 학교는 때려칠 거고, 도서관에서 죽치며 살겠지. 거기가 제일 근사한 학교니까.’”


  인터뷰 당시 김선우가 46세. 아직 완경기에 달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밝혔듯, 남편의 스케쥴, 아이들 대학입시, 아파트 평수, 승용차 차종 등에 겁나게 신경 쓰는 시절이며, 이미 시인으로 이름을 낸 입장에서 팍, 말해버린 것이겠지. 근데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중고등학생 독자들한테 했다니. 왜, 자기 딸 아들 더러 먼저 학교 때려치우라 그러지 않고? 10년 전에는 몰랐겠지. 이런 멋진 말을 하면서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거라는 걸. 물론 이미 시인이 된 자기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만, 질문을 하는 어린 독자는 자기는 시인이 말하는 것을 왜 따라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음을 깊이 숙고해봐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말든지.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도 다 좋을 수 없다는 건 시에 나오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기어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황새, 너구리, 뱀이 우글우글거리는 것도 모른 채 개구리는 폴짝폴짝, 폴짝폴짝, 뜨겁게 서로를 응원하며, 폴짝폴짝, 폴짝폴짝 저마다 갈 길을 가는지, 시인이 그것도 봤대?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걸?



  산골, 폴짝인들



  착취당하고 싶지 않아

  착취하고 싶지도 않아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착취를 묵인하는 소비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꺼림칙해요

  그뿐이에요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구에 해로운 건

  동물종 가운데 인간밖에 없다고요


  폴짝, 폴짝폴짝, 폴짝폴짝폴짝,


  사는 동안 있는 힘껏 내 삶을 책임지고 싶어요

  그래봤자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어렵지만

  최소한의 폭력

  네, 그 정도라도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폴짝, 도시로부터 폴짝폴짝, 산골로 폴짝!   (전문. p.22~23)



  이것 참. 누군가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하고, 누군가로부터 착취당하는 삶. 착취를 묵인하고 심지어 착취를 조장하는 소비. 이것이 도시의 삶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딱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 더 무섭다. 슬며시 세상살이를 이것과 저것으로 양분하는 행위.

  착취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시인은 도시인에게 폴짝, 개구락지 뜀박질을 권유한다. 시골로 가라! 자연으로!를 외친 루소 같아? TV에 나오는 자연인 같기도 하고. 산골로 가면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폭력, 참을 수 있는 수준만 행하고 견디면서 살 수 있다는데, 그것 참.

  김선우가 딸 여섯 조르륵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 만든, 우스운 옛 습속의 딸부잣집 중 한 명이어서 그런지, 아마도 지긋지긋했을 것 같은 게마인샤프트에서 벗어나는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우물을 탈출하는 개구리, 착취 행위의 최소화를 지향하는 산골행. 지금 김선우는 어디서, 어느 산골에서 살아? 하긴 그건 문제가 아니다. 자기도 산골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시로 쓴 것일 수 있으니.

  산골 생활 우습게 알지 마시라. 이 시는 산골로 폴짝, 한 마디를 위해 사용 수식한 단어들이 너무 컸다. 착취, 조장, 소비, 지구, 인간종, 폭력. 산골에서는 이런 단어들을 그래도 견딜만한 수준이 될 거라고? 정말? 독자들은 조심하시라. 산골. 다른 말로 하면 정글이다. 단어가 아닌 진짜 폭력, 자연에 의한 심각한 폭력이 눈을 크게 뜬 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걸.


  내가 말을 험하게 해서 그렇지 김선우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시에서 읽히는 첫인상, 선한 탈출과 선한 산골행일 것이다. 나도 알면서 일부러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건 아니고, 폴짝 뛰쳐나가는 행위, 자유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라붙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폴짝, 뛰쳐나가면 좋지. 그래서 성공하기만 하면. 학교를 때려치우고 교실 대신 도서관에 가서 진짜 스승이 빼곡 들어찬 책 속을 유영할 수 있으면 더 큰 시인이 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자기 생각을 새파란 고등학생 독자한테 얘기해줄 수도 있지. 도시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진 청년 제위께 산골로! 마치 도시 속 브나로드 운동처럼 외칠 수도 있고.

  좋다. 폴짝 뛰어 도약에 성공해 우물탈출을 했다 하자. 그럼 만날 수 있는 건 평평. 한자어로 쓰면 平平. 21세기 김선우 식 평등이다. 그것을 노래한다.



  평평으로



  平

  어떤 것을 올리든 고르게

  고르게 하려는 의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른 쪽에 무게를 더하려는 의지


  平平

  고르게

  고르게 될 때까지

  작고 가벼운 쪽으로

  희미한 반짝임 쪽으로

  선한 눈물의 방향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는 쪽으로

  끊임없이 중심축을

  이동하려는 의지


  平平平

  마침내 저울이 지렛대가 되는 의지


  平平平平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하려는 의지를

  지켜내려는 의지


  그때 비로소

  자유는 자유   (전문. p.29~30)



  폴짝 뛰어서 만든 평평한 세상. 미륵이 도솔천을 건너 환생했다. 이렇게 오해하지 마시라. 김선우가 노래하는 건 세상이 고르게 평평평평, 이런 상태가 된 미래 또는 약속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세상을 평평평평 고르고 고르며 고르게 하고자 하는 “의지”, 즉 마음만 그렇게 먹으면 자유로워진다는 선언이다. 행동은 완전하게 별개다. 시인은 왜 행동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행동, 즉 운동과 운동에 이른 성취까지 해야 혁명이 이루어질 터인데 말이지. 그걸 내가 어찌 알겠노? 뭐 사정이 있겠지.

  폴짝폴짝 뜀박질도 그렇고 땅만 열나게 갈고 갈아, 다지고 다져 평평하고 평평하며 평평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시인. 시인의 동지, 동무들이 함빡 모였던 저 어둠의 시절에 이런 시 읊었으면 정말 조리돌림 당했을 텐데. 말과 생각만 혁명이고 그것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는 전혀 발언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기소장을 받기 딱 좋았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건 그저 립 서비스잖아?

  노래하기는 좋지만, 평평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자는 발언은 잃어버린 식어버린 운동시. 앙꼬 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 불알 빠진 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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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5-23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소 전혀 시를 읽지 않기에 가끔 폴스타프님이 올려주신 시는 꼭 읽으려고 해요. 이번 리뷰도 재밌게 읽었는데 착취를 조장하는 도시는 나쁘고 산골생활은 착취로부터 자유롭다는 이분법적 시선은 저도 맘에 안드네요. 시골 출신 친구가 도시보다 시골이 더 폭력적이고 무섭다고 한 말도 갑자기 떠오르고요. ㅎㅎㅎ (시골 출신이신 분들 혹시 기분나쁘실까요?)

근데 중간에 ‘헤르만 허세‘ 는 오타신가요? 아님...ㅋ

Falstaff 2026-05-24 21:55   좋아요 1 | URL
헤르만 허세가 오타일 턱이 있습니까, ㅋㅋㅋㅋ 눈 밝은 몇 분들만 보실 수 있는데 쿨캣님이 보셨군요!
이 양반 시는 위험해요. 여차하면 현혹당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입죠. 그저 공상 속에서 살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는, 신기루 시편들...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