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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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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을 읽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작품이 해피엔드로 끝나기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레싱이 심술 사나운 성격이라 그런 건 아니고, 사람의 심상과 마음의 변동, 이에 따른 행동의 이중성 같은 것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그게 너무 솔직한 바람에 독자는 자기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박아 놓고 절대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지나간 실수, 잘못, 악의, 행위 같은 것들을 기어이 들춰내게 만든다. 정말 가차없는 칼날이다.
나는 레싱을 사십대 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단 한 번도 즐겁게 읽지 못했다. 읽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어딘가 좀 불편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가. 독자에게 결코 친절을 베풀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작가로 새겨져 있다. 하긴 자신의 일생이 참 다사다난, 다양해서 그럴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이 소설집 《사랑하는 습관》을 읽으면서, 일곱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면서, 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작품들이 대개 그랬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변화, 그걸 변심이라 부르던, 질투라고 하던, 그냥 변덕이라고 여기던 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 결국 생각과 행동의 일관을 깨뜨리는 현상, 전에는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이제는 등장인물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슬퍼진 거 같다. 내가 내 마음, 정서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것 같다”라고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레싱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울해지는 대신 슬퍼지는 건,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사람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남자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의도적으로 남자에게 상처를 주어도, 레싱은 딱 한 장면을 강조하여 드러난 것만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의 바꿀 수 없는 성향일 수도 있고, 환경 때문에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또한 많고 많은 사람 사는 일에 그런 것도 생길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도리스 레싱을 연상하면 페르시아 출생과 아프리카에서의 성장, 제1,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결혼, 가정, 모성, 계급, 이데올로기의 진보성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구분 또는 특징지우려 하는데, 이제 나는 이이의 이런 모든 성향을 다 합해 휴머니스트라 말하고 싶다.
레싱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뀔 줄 나도 몰랐다. 처음 읽은 이이의 작품이 아마 거의 대부분 독자들과 비슷할 텐데, <다섯째 아이>, 이어서 <런던 스케치> 이런 순서로 읽었다. 하여간 불편한 작품들. 지금 다시 읽어도 불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암울하고, 무겁고, 두렵기도 하고, 내가 레싱의 책이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될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을 만큼 거리감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레싱에게 휴머니스트라고 하게 됐을까? 여전히 레싱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비극 속에서 슬픔을 발견하고, 가끔 슬픈 비극은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혹시 내가 그걸 본 것일까? 설마. 어떻게 불편한 레싱 안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러나 봤을 것이다.
이 책은 1957년에 초판 출간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후 1979년에 레싱은 다른 작품들을 추가해 《19호실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놓았다. 문예출판사는 1979년에 추가한 작품들은 따로 골라 《19호실로 가다》로, 이전 초판본은 원래대로 《사랑하는 습관》으로 냈다. 그래서 《사랑하는 습관》의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 초반까지가 시간적 공간이다. 런던은 맹렬하게 공습을 받고 있어서 3년간 연애하던 약혼자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걷어찬 아가씨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아버지가 산산이 부서져 죽은 이야기도 나오고,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동계 휴양지로 여행간 영국인 연인이 아직 패전의 응결을 해소하지 못한 독일인과의 관계도 이야기한다.
전후의 불안정한 시대. 뭐든지 다 불안했던 시기. 절정기를 누리기 시작한 아메리카와 달리 전반적으로 가난한 유럽인들, 동쪽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볼셰비키 물결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시작, 스탈린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국 시민들,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바람에 공급과잉이 되어버린 젊은 아가씨들, 아직도 군데군데 폐허로 남은 옛 시가지, 이 와중에 큰 돈을 번 새로운 부르주아, 아직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옛 귀족 떨거지들. 이런 것들이 모두 레싱의 레이더에 걸린다. 여전히 조금은 암울하고, 무거우며, 전망도 보이지 않지만 삼십대 막바지에 이른 레싱은,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일찍 달관했는지 조금씩 휴머니스트가 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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