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의 시 162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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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기 전에.

 원래대로 쓰자면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라고 쓰고 이 책에 나오는 시의 제목을 예를 들면 <개똥아 사랑해> 이렇게 써야 하는데, 그딴거 다 관두고 그냥 <은하가...> 및 <개똥아...>로 쓰겠다.  》기호 찾아 쓰기가 귀찮아서 그렇다. (물론 내 맘이다)

 

 

 강기원. 등단해서 시인이 된 시점이 1997년. 깜짝이야. 처음에 1977년 등단인줄 알았지만 결코 1977년이 아니었다. 마흔 살에 등단했단다. 닭띠 아줌마. 그래서 그런지 거침이 없다(절대 아줌마 비하 아니다. 나이 들면 남자나 여자나 성호르몬의 증가/감소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서 성별 차이가 거의 없어지니 사실 아줌마 비하는 아저씨 비하하고 같은 말이다. 그걸 알고 있는 아저씨가 아줌마를 비하할 수 있겠는가). 시는, 시야말로 해석은 읽는 사람 맘대로다. 언제나 주장하듯 <사미인곡> <관동별곡> 같은 걸 쓴 정철이 우리 국문학사상 최고의 연애시 전문가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뜻에서 강기원의 시는 지금 시대의 뛰어난 에로티시즘 작품들이다.

 책을 열면 자서自序가 제일 먼저 나온다. 우리나라 시집에 자서, 스스로 쓰는 서문이란 걸 싣는 게 보통이 된 이후부터 자서는 시인이 어떻게 하면 최고로 잘난 척하느냐, 하는 경쟁이라도 하는 거 같고, 강기원도 예외가 아니라 도대체 뭘 주장하는지 알아먹지 못할 애매모호한 이상한 시 비슷한 게 나오고, 그걸 넘겨 드디어 본문에 등장하는 첫번째 시가 등장하는데, (좋은 뜻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맹랑한 시인이 책의 첫 시로 올린 것의 제목이 <독자에게>다. 이렇게 써놓으니 후덜덜. 강기원 시인이 어느날 지금 내가 쓴 글을 읽고 야 새꺄 너 뭐야, 이렇게 따지면 어쩌나싶어 오금이 다 떨린다. 한 번 더 언급하노니 위에 건방지다, 맹랑하다는 건 전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쓴 거다. 원래 글이란 게 서로 바라보고 하는 얘기와 달라 지독한 오해를 왕왕 일으키기 때문에 확실히 밝혀두는 게 일신상 건강(혹은 보신, 또는 만수무강)에 좋다.

 얘기한 시집의 첫번째 시 <독자에게>는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해서 전문을 올린다.

 

 

  독자에게

- 만나게 될 때까지

 

 

 결합의 순간에 디스데라 벨리아(Dysdera velia)는 수컷과 암컷이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줄 하나씩을 내쏜다. 30cm 가량의 길이에 수평으로 늘어진 이 졸은 일종의 다리가 되고 그 양 끝에서 두 곤충은 마주 보게 된다. 신호가 내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동시에 양 끝에서 출발하여 빠른 종종걸음으로 다리를 건너지만, 서로 스치지도 못하고 엇갈린 채 각작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수컷과 암컷이 결국 만나게 될 때까지 이 장면은 되풀이된다.

- 이자벨 로시뇰, 『작은 죽음』 중에서

 

 

 이 시를 읽고 처음엔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의 일부분을 그냥 발췌해놓은 것도 시가 된다는, 그것도 멋있는 시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시집의 첫 시로 이 작품을, 그것도 제목을 <독자에게>라고 해놓은 건 앞으로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란 시집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디스데라 벨리아 라는 곤충의 교미 과정처럼 남녀가 교통하여 섹스에 이르기도 하고 이르지 못하기도 하는 고통스러운 절차에 대하여, 그리고 섹스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제목,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란 것도 남자가 여자를 관통하는 밤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프로이트에서 그랬던가? 관통하고 관통당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인간의 본성에 잠복하고 있다고. 하긴 프로이트 본인이 좀 도착증 환자인 듯도 해서 전적으로 믿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사용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번째로 실린 <흡혈>. 으시으시 하시지? 하필이면 어제 케이블 TV로 본 영화가(케이블 TV 영화를 보려면 진심 인격수양이 필요하다. 영화 도중에 광고가 무지막지하게 나오고, 심지어 중간에 한 20분 동안 광고만 나오기도 한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드라큘라>로 극장에서 본 것은 크리스토퍼 리가 처음이었고, 역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만든 작품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이 최고였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즉 흡혈의 제왕은 매우매우 에로틱하기도 하다. 강기원의 흡혈은? 역시 에로티시즘.

 

 나는 뺄셈이고

 너는 덧셈이다

 또한, 너는 뺄셈이고

 나는 덧셈이다

 내가 네게로 흘러간다

 네가 내게로 흘러든다

 (중략)

 날 받아들인 네 영혼에

 널 받아들인 내 영혼에

 알레르기 같은 열꽃이 돋는다

 ……(중략)………

 이 빈번한 삼투압

 (중략)

 진하고 단, 쓴 피

 피의 러브 샷

 

 너의 피를 내가 빨아먹는 것. 그거 자체가 성적 판타지를 제공하는 행위로 되어버렸다. 간혹 후천적 면역결핍증의 매개가 되는 '수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흡혈. 생명의 전이 과정이며 그것을 위헤선 생식과 비슷한 절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의도? 그러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내가 그렇게 해석했다면 그게 대빵이고 그게 결론이다. 안 그랴? 저거 봐. 빈번한 '삼투압'이라잖아.

 내 주장의 근거를 위하여, 강기원은 "나를 찌르던 바늘로 / 너를 찔러 / 네가 다시 내가 되었는데 말이다 / 내가 다시 네가 되었"(인형)고, "식구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든 밤 / 아버진 휘늘어진 덩굴 밑동에 / 아무도 모르는 거름을 붓곤 했는데요 / 나홀로 깨어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으며(장미의 나날), "가진 거라곤 / 벌거벗은 가슴 / 뿐입니다 / 희지도 않습니다 /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 (중략) / 제 위에 / 당신의 비밀을 적으"라고(로제타석) 말한다, 라고 쓴다면 아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수없게 평론가 흉내를 내는 거 같지? 그래서 관두겠다.

 하여간 강기원의 성적 판타지가 어디까지 뻗느냐 하면 예를 들어 큰 집을 등에 지고 새벽마다 나팔꽃 이파리 위에 점액질을 묻히며 기어가는 불쌍한 미물을 보고도 이렇게 노래한다.

 

 

 

 달팽이

 

여자들처럼 남자들도 여자들이다

-그루초 마르크스

 

 

 그러나

 늘 홀로였어

 최초의 창조물이 그랬듯이

 

 그 안의 수컷은

 그 안의 암컷을 외면하고

 

 그 안의 암컷은

 그 안의 수컷을 증오하지

 

 심장도 하나 위장도 하나

 머리도 하나

 그러나 질료 다른 두 영혼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자웅동체

 

 두 개의 더듬이는

 합쳐지는 법이 없지

 있는 힘껏

 다른 곳을 향해 뻗는 촉수

 

 한 마리 달팽이

 속의 두 알몸

 자기가 자기에게 침을 뱉으며

 끈적한 길 그으며

 느릿느릿 기어간다   (전문)

 

 

 드디어 시인의 판타지는 아예 한 몸에 양성이 다 있는 곳까지 왔다. 이 시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인간으로 한 몸에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어지자지>. 일종의 자웅동체. 한 몸에 양성이 다 있다고 해도 번식을 위하여는 다른 개체와의 섹스를 해야만 하는 개체. 그래서 시인의 눈에는 같은 몸의 두 성은 서로를 외면하고 증오한다. 어떤 경우라도 다른 개체와의 소통, 공감의 의미로 섹스가 필요한 필멸의 존재들. 그 비극성. (아, 너무 나갔다!) 하여간 그렇다는 얘기.

 

 또 하나의 주제가 있으니 바로 둔황 지역을 둘러보고 쓴 기행시편들. 그건 책 사 읽으실 분을 위해 노코멘트. 

 시집의 제목으로 오른 타이틀 시 <은하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이거 어떤 시인지 궁금하시지? 궁금하시면 요새 시인들 배고프다던데(언제는 뭐 안 그랬나?), 왠만하면 사 읽으시라고,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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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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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책. 공산주의 치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이렇게 통쾌한 풍자가 있었다니 역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법으로도 막지 못하는 법이다. 체코 출신의 코스모폴리탄, 잘난 척의 최고 권위자 밀란 쿤데라처럼 조국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 언어로 체코 체제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 아니라 프라하에 딱 개기고 서서 소설을 출간할 때마다 '출판금지' 조치에 얻어터져가며 꿋꿋하게 버티어낸 깡다구의 소설가. 우울이나 상실이나 소외나 실패, 하여간 체제로 하여금 도무지 기분좋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들을 해학과 유머 그것도 뼈있는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흐라발의 펜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은 딱 두개, <영국...>과 며칠 있다가 읽을 단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둘 말고 없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하나 더 있으나 지금 품절이고 언제 다시 찍을 지는 알 도리가 없다.

 '디테'란 이름의 키가 매우 작은 보통의 남자가 하는 다섯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이야기마다 "오늘 하는 이야기 잘 들어보세요"로 시작해 "오늘은 여기까지. 재미나게 읽으셨나요?",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써 있다. 짧게 말해 한 인간의 인생 스토리인 셈. 가난한 시골 출신의 디테가 돈을 벌기 위해 프라하 호텔 견습 웨이터로 취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웨이터란 직업은 본문의 첫 페이지에 나오듯이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것을 봐야 하면 모든 것을 들어야"하는 직종이란다. 당연하다. 서비스 직종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 아무것도 안 봤고 안 들었으나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을 듣는 능력. 지금 쓴 문장을 잘 보시라. 처음의 보고 듣는 것은 과거의 일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보고 듣는 일은 현재의 것이다. 이거 잘해서 우리나라 서비스 업계의 최고 자리에 오른 사람이 누구? 그이의 이름은 잊었으나 기억하건데 전직 요정 삼청각 사장 언니. 많고 많은 요정집 가운데 독립 대한민국의 정부가 수립한 다음 유독 삼청각에 정치, 경제, 즉 권력자와 부르주아들이 모여든 건 우연이 아니었으니 그집에서 밥 먹고 사는 종업원 거의 다가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의 달인들이었던 때문이다. 그렇게 교육을, 지독하게, 받아서.

 디테가 진짜 생존했던 사람이라면 그이의 손금을 한 번 보고싶다. 손금이 어떻게 그어져 있기에 그리도 돈복이 터졌는지. 첫직장 프라하 호텔에선 기차 정거장으로 파견 나가서 프라하 호텔에서 만든 즉석 김밥, 떡볶이, 순대, 오뎅, 호떡, 이런 걸 파는 일을 맡았다. 처음엔 진짜 우연하게, 5만원 짜리를 낸 손님한테 줄 거스름돈을 막 세고 있었다. 근데 열차가 빽! 울더니 조금씩 덜컹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다. 왼손에 떡볶이 한 봉지를 들고 있던 손님이 한 번은 열차를 쳐다보다 한 번은 디테를 내려다보다 막 신경질을 냈고, 열차와 디테를 바라보려 돌리는 고갯짓의 사이클타임이 점점 빨라졌는데도 디테가 아직 거스름돈을 다 세지 못하자 욕을 한 바탕 쏟아내더니 기어이 포기하고 열차에 오르는 거 아니겠는가. 이거다! 이후로 순대 한 접시 먹은 손님이 만일 5만원짜리를 내면 일부러 허둥지둥, 거스름돈을 찾는 시늉을 내며 "일단 먼저 타세요. 그럼 제가 가져다 드릴 테니 창문 밖으로 받으시면 되잖아요." 라고 하면 영낙없이 손님은 일단 열차에 오르는 거다. 디테는 그래도 천천히 거스름돈을 세다가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손님이 창 밖으로 고개를 한 없이 내밀었을 때, 돈을 오른 손에 들고 뛰기 시작한다. 손님의 손이 돈에 닿을락말락 닿을락말락 하다가 기어이 손은 멀어지고, 그럼 그게 다 디테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는 건 물론이었다.

 당연히 이런 사소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디테, 열 다섯 아이가 돈이 생기면 그걸로 뭘 하려고. 천만에! 디테의 직장이 동네에서 돈 깨나 만지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닌가. 그들이 사업계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면 프라하 호텔에 와서 한 잔 거하게 들이켜고 꼭 가는 곳이 있다. 사청각. 한국에 삼청각이 있는데 체고에 사청각이 있으면 어디 덧나? 이름을 잊어서 그렇게 부르고자 하니 양해 바람. 디테가 곰곰 생각해보고 침대 밑에 꿍쳐놓은 지폐 꾸러미를 들고 어느날 하루 사청각에 들른다. 아, 돈의 힘이란! 자신이 프라하 호텔에서 손님에게 서빙하는 것과 같이 사청각의 주인이자 지배인, 그리고 종업원 아가씨는 디테를 천상의 하느님으로 여기면서 최고급 샴페인이라고 속인 탄산음료를 마시며 디테에게 청구서를 내민다. 어쨌거나 구름 속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환대 속에서 열 다섯살 총각 딱지를 뗀 디테. 이날 가슴 속에 굳은 결심을 하니, 바로 백만장자가 되자는 것.

 그리하여 드디어 프라하 최고의 호텔 '호텔 파리'에 입성한 디테. 여기서 홀 수석 웨이터의 밑으로 들어가는데, 수석 웨이터는 손님이 탁, 들어오면 척, 한 번 보는 걸로 손님의 고향, 직업, 호주머니 상태 등을 다 꿰뚫고 있는 거다. 하도 신기해서 수석님,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데요? 하고 물어본 디테. 수석 웨이터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가 영국 왕을 모셨지."

 영국 왕을 모신 몸이란 것. 영국의 왕을 모셨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생긴 것이란 뜻인지, 왕을 모실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인지 아주 애매모호하지만 하여간 수석 웨이터에겐 특별한 이력이 있다. 영국 왕을 모셨다는 거.

 그게 뭘까. 다들 그런 거 하나 씩은 가지고 있을 거다. 내가 왕년엔 말야, 뭐 이딴 거. 나도 좀 있지만 이 책 읽은 담부터 다신 입끝에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걸로 끝이냐고? 천만에. 이제 겨우 이 재미난 소설 <영국 왕을 모셨지>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뿐이다. 진짜 재미는 위에서 얘기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니 그걸 즐기기 위해선 꼭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셔야 알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난 이 책의 십분의 일도 얘기하지 않았다.

 재미?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근엄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이 책을 출판금지 시켰다고 생각하시나? 궁금하시지? 그게 뭔지,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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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부지깽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1
로버트 쿠버 지음, 양윤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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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를 보시라. 이래서 책도 디자인이 중요하다. 위 사진의 어린아이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일 봤다면 안 그랬을 텐데, 작은 사진만 보다보니 이 책 <요술 부지깽이>는 제목이 주는 동화적 인상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화나 동화 비슷한 장르의 책인 줄 알았다. 당연히 작가 로버트 쿠버란 이름도 처음 들었으며 그가 미국에선 '메타 픽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원래 나처럼 남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만 죽어라 책 읽는 사람들의 한계다. 더구나 아시다시피 난 문과 출신도 아니라서 주위에 있는 친구라는 것들도 뭐 다들 엔지니어 출신 치킨집 사장님, 학원 강사, 납품업체 사장. 잘나가는 친한 친구들도 몇 명 있긴 한데 걔네들은 공직생활 끝날 때까지 연락 딱 끊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란 걸 다행히 알고 있어서 연락도 안 한다. 그러니 쿠버가 어떻고 메타 픽션이 어떻고 그걸 알 도리가 있어야지.

 오늘도 서론이 길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그냥 사는 얘기 한 번 해봤다.

 하여간 이 책 읽으면서 코피났다. 쉽게 보고 만만하게 들이닥쳤다가 된통 혼났다. 동화? 동화는 동환데 어째 좀 이상하다.

 표지 사진을 크게 보면​, 아이의 눈과 심술보가 대단히 사납다. 앙리 루소가 1903년에 그린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며>란 그림이라는데 어찌보면 척키 같은 인상이 좀 으스스한 것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아니나 달라, 재크와 콩나무 얘기가 나온다. 거기서 재크가 밤 새 대빵 커져 구름을 뚫고 솟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을 죽이고 돈 좀 만졌다는 건 다들 아실 거다. 쿠버, 여기서 정말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다. 구름 위의 거인이 누구인가. 누군데 그를 죽여야 하는 것인가. 다름아닌 재크 자신이란 거다. 성인이 된 재크. 재크 점점 자라 아랫도리에 털나고 턱 밑에 수염나 어른이 되면 괴물이 된다는 말일까. 하긴 어린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어른 남자는 괴물일 수도 있겠다.

 쿠버의 비틀기는 경계도 없다. 성경도, 아담과 이브도, 노아도, 원더랜드의 엘리스도 없다. 그냥 뭐든지 쿠버한테 걸리기만 하면 심하게 비틀려 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아하, 이런 거 어디서 읽어봤다. 천일야화의 셰혜라자데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불세출의 영웅 페세우스를 확 비틀어버린 존 바스의 <키메라>. 흠. <요술...>과 <키메라> 같은 책을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누가 나한테 메타 픽션이 뭐냐고 하면 일단 쿠버를, 그 다음에 존 바스를 얘기하면서, 크게 말해 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경향을 얘기하는 거지. 라고 하면 좀 폼은 나겠다. 상황 봐서 거기다가 구라도 좀 덧붙이고.

 근데 문제는, 위에서 내가 말한대로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와 바스의 <키메라>가 정말 메타 픽션, 이제 세상에 소설의 소재는 몽땅 다 떨어졌기 때문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미 인류가 알고 있는 신화나 전설등을 다시 만드는 작업,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물론 아마추어의 턱도 없는 주장이겠지만) 소설읽기의 주요 목적인 재미가 <요술...>엔 별로 없을까. <키메라>는 읽는 내내 웃겨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어째 <요술...>은 영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페이지 넘기기가 되게 힘들었다.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고 양해를 하더라도, 물론 재미가 있어야 소설이라는 얘긴 아니지만, 이왕에 있는 동화, 신화, 전설, 거기다가 성경 창세기까지 온갖 것을 다 가져다가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면, 독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니크한 다른 얘기가 펼쳐질 것인데, 그럼 (맨땅에 대가리 박는 심정으로 소설쓰는 작가에 비하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기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것임에야. 아하, 줄리언 반스의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도 이 부류에 드나? 그렇기도 하겠다. 반스가 알면 난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극동 아시아의 한 독자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단 걸 반스가 알 턱이 없으니 그냥 말해버려도 무방하겠다.

 왜 특출한 소설가 존 바스와 줄리언 반스까지 거론해가며 메타 픽션 어쩌구 저쩌구 하는가 하면, 매우 아쉬운 얘기지만 로버트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만 읽어보고 얘기한다는 전제 아래, 쿠버는 안타깝게도 자신이 개척했다고 하는 메타 픽션의 방식을 통해 바스나 반스처럼 장편소설로 영역을 확장할 역량까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바스와 반스를 포함해, 기존 작가들이 그냥 참고하거나 인용 정도의 수준에 머물던 여러 이야기를 다시 비틀어버려 사차원적 두뇌놀이로 만든 메타 픽션 소설가들의 아이디어는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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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마르 열린책들 세계문학 173
나기브 마푸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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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중원문화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나기브 마푸즈의 소설 <우리동네 아이들> 정성호 번역을 사서 아직 표지도 들추지 않았는데 민음사가 같은 소설을 배혜경의 번역으로 발매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정성호를 경원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성호는 영문학 전공으로 이집트 소설가의 작품을 중역한 것이고, 배혜경은 직역을 한 것. 당신 같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더구나 정성호 역은 중역본, 훨 먼저 발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격까지 비싸다. 정가 기준 1권은 2,000원 2권은 1,500원. 왜 열을 내느냐 하면, 세계 유수의 선정기관들이 빠짐없이 마푸즈의 <우리동네 아이들>를 100대 소설이라느니 하는 목록에 빠짐없이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아시리라. 내가 속물이란 걸. 그러니 배가 아프겠어 안 아프겠어. 읽은 결과, 아담, 모세, 예수, 모하메드, 그리고 (백퍼 내 생각으로)니체, 다섯 인간(또는 요괴인간 또는 반인반신 또는 하느님의 아들 또는 사람의 아들 또는 망치를 든 철학자)에 관한 우화적 구라를 푼 책. 중역이라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 동네...>가 그리 특징적으로 다가오지 않아 그의 다른 소설 딱 한 권을 더 읽고 마푸즈를 계속 읽을지 때려 치울지 결정을 하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미라마르>였던 거다.

 책을 딱 펼쳐보니, 아, 멀리 아득한 동경을 담은 도시 알렉산드리아.

 그곳에 한때는 고급 팬션으로 명성을 날렸으나 이제 많이 쇠락한 하숙집 미라마르. 역시 한 시절 기품있는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광휘가 넘쳐흘렀던, 그러나 이미 늙어 어깨가 굽고, 화사한 금발은 틀림없이 염색을 한 것이고, 손과 팔뚝의 살갗 아래로 정맥이 비치고, 입가에 주름이 낀 것으로 보아 적어도 예순 다섯살은 돼보이는 마리아나, 숱한 세월동안 한 남자로 하여금 가슴 속에 품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그리스 출신의 마리아나가 미라마르 팬션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

 비록 어느 한 순간은 마리아나를 추억하지 않았겠지만 수십년의 세월 동안, 1919년 영국의 식민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민족주의 혁명에 기꺼이 몸을 던졌으나 1952년 이름도 수상한 나세르와 자유장교단에 의한 쿠데타로 정치적 지위도 잃고, 아울러 명성과 재산까지 몽땅 털려버린, 그러나 남은 재산을 남은 생애만큼은 여유있게 쓸만큼은 되는, 그리고 더 남은 것이라고는 푸른 눈의 그리스 미인 마리아나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밖엔 없는, 퇴직 정치인 아메르 와그디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미라마르 팬션에 드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수십년의 그리움이여. 하지만 세월은 흐르는 것. 시간의 손톱이 사납게 할퀴고 지나간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은 전혀 옛시절의 연정을 다시 이으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명한 늙은이들. 그들은 그저 가끔 시간이 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같이 듣고, 지중해 날씨를 즐기며, 밤의 대화를 한다.

 나세르 정권은 시류 속에서 약한 수준의 사회주의를 채택, 일단의 부르주아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몰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지만, 거의 모든 부르주아들은 재산의 많은 부분을 이미 다른 곳으로 빼돌린 상태. 언제나 부르주아들은 그냥 앉아서 당하진 않았던 거다. 겉으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해 거덜이 난 것으로 보이나 사우디 아라비아로 시집간 딸에게 많은 재산을 빼돌린 것처럼 보이는 거덜난 구닥다리 부르주아 톨바 마주르끄가 또다른 하숙인으로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거기다가 여태 숙박인 하나 없던 팬션에 갑자기 세 명의 젊은 손님이 들이닥치니, 말로는 넓은 땅을 몰수당하지 않고 지켜냈다고 하는 지방 유지이자 자칭 부자(같이 보이는) 호스니 알람. 고위 경찰로 막강한 권력을 향유하는 형을 둔 사회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자 약간의 정신질환, 그것도 (내가 보기엔)심각한 범죄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평소엔)선량하기 그지없는 정신질환자 만수르 바히. 그리고 잘 생긴 건달이자 놈팽이이자 쓰레기, 그래서 가히 한 소설의 주인공 감이긴 한데 이 소설에선 주인공의 자리엔 오르지 못하는 사르한 알베헤이리.

 노인 셋, 젊은이 셋. 이렇게만? 하나 빠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 오라버니가 이빨 다 빠진 동네 할아비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땅까지 포기하고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쳐 미라마르 팬션에 하녀로 취직한 조라.

 그리하여 작품은 조라를 둘러싼 진짜와 가짜 사랑. 이를 둘러싼 눈길들의 안타까움과 냉정함의 교차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이들의 혼돈과 사랑, 이를 둘러싼 이집트 현대사의 암울한 정경, 이런 풍경들이 소설 속에 섞여 알싸하게 만든다. 결국 마푸즈의 소설을 더 읽을지는 이이의 작품을 하나 더 읽어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책.



 * 참고로 이집트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해준 소설이 있어 소개.

  

   치과의사 알라 알아스와니가 쓴 소설 <시카고>. 겁나 재밌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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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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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 커포티, 라는 이름은 무척 많이 들어봤는데 그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커포티의 작품들을 일반적으로 장르 문학, 장르 문학 가운데서도 추리소설로 구분하는 거 같다. 난 추리소설을 싫어하지 않지만 굳이 찾아 읽지 않는다(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는 무지하게 재미나게 봤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작품을 몇 해 동안 읽을까 말까, 들었다 놨다, 장바구니에 넣다 뺐다만 하다 오늘날 까지 온 거다. 이 책 말고도 좋다고 하는 책들은 쌔고 쌨으니까.

 이런 이유로 마음 속에만 이름을 기억하고 몇 해를 건너 뛰다가 진짜로 이 책을 읽어보니, 이게 추리소설? 글쎄. 장르 구분이야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쳐주겠지만 내 생각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심리소설이다(물론 잘 쓴 추리소설은 언제나 심리소설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엔 거의 대부분 책의 본문만 읽는 경향이 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사건을 진행시키는 악당들의 동선과 행위 같은 것이 어째 좀 으스스한 게 뭔가 수상쩍어,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좀 알아봤더니, 세상에 나 참, 심지어 이게 실화소설이란 거다.

 이른바 사이코 패스의 단계로 접어든 두 인간들에 관한 보고서. 이 책을 읽고 사이코 패스에 관해 좀 더 알아봤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사이코 패스를 만드는 건, 사이코 패스 당사자의 유전적 형질이나 천부의 성격 탓이라기 보다 특정한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움, 폭력에 대한 반항 및 반항으로의 재 폭력,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등의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 묻지마 살인/폭력이나 테러리즘에 가까운 다중을 향한 폭력의 기도, 사이코패스 등을 조사해보니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조사도 있단다. 즉, 다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지간에 특정인을 고립시키는 행위, 거기다가 폭력을 동반하여 고립시키면 더욱 그러한데, 그런 행위가 해당 특정인을 사회부적응에 이은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지름길이며, 이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거의 없다는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러니 외톨이를 만들지 말 것. 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웠으면 외톨이가 됐겠느냐고? 아, 제발 이딴 생각 마음에 두지 마시라.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내가 다니는 회사 안을 보더라도 다중이 인위적으로 만든 외톨이 몇 명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수와 다르다는 것, 이거 좀 제발 인정하면서 살자. 인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갑자기 독후감 쓰다가 왠 삼천갑자 동방삭이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이게 명색이 범죄사건, 미국 중서부 지역의 무지무지, 무지하게 건전한 부르주아 가족을 몰살시키는 이야기라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며, 골머리를 썩이는 수사관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독후감을 쓰자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어떤 장르보더 범죄와 수사를 통한 사건의 해결, 재판과정과 결과의 실행, 이딴 거 말하기 힘들다. 이런 거 정말 아시고 싶어? 좋다, 정 그러시다면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이 책은 네 부로 되어있다.


 1부. 그들이 살아있던 마지막 날.

 켄자스 주 홀컴이란 아주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마음 좋은 지주 클러터 씨 일가가 있다. 아들 하나와 딸 셋. 큰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둘째 딸은 대학가서 공부하다가 지금 좋은 남자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집엔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제 연애를 막 시작한 똑똑하고 마음 착하고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한 큰 딸과 그런 누나와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막내 아들, 이렇게 네 명이 살고 있다. 원래 인간이 너무 행복하면 신이 질투를 하는 법. 동부에서부터 먼 길을 운전해 온 두 악당이 한 밤중에 부엌문을 따고 침입해 들어와 네 식구를 결박하고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버린다. 그렇게 다 죽었다.

 2부. 신원불명의 범인들.

 공포상태에 빠진 홀컴 주민들. 심지어 형사반장 가족들까지. 딕과 페리, 두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고 태연하게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들며 부도수표를 남발해가며 잘 놀고 잘 때려먹고, 심지어 선량한 독일인 친구까지 사귀며 다니다가, 잡힌다.

 3부. 해답

 켄자스 법정에서 범죄사실에 관한 재판이 벌어진다. 딕과 페리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에 관한 묘사가 등장하며 살인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형제도에 관한 왈가왈부. 예상외로 커포티가 범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동정적이라 깜놀.

 4부. 구석

 '구석'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곳. 형무소 한 구석에 있다. 켄자스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딕과 페리. 사형제도 반대의견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 두 흉악범인은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건조하게라도 써놓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지만 팍 내용을 올리는 건, 스토리를 아무리 여기다 써봐도 진짜 이 책을 읽는 건, 커포티가 인터뷰한 숱한 사람들의 진술과 그들의 심리상태. 수사관과 범인들 사이의 범죄적 교감 등등에 관한 것이지 결코 범죄와 사건의 해결, 그리고 형벌의 집행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작은 아니지만 굳이 시간 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그러나 작품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들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다.
 미국 드라마 CSI 뉴욕에서 맥 테일러 반장이 괴물 아버지를 둔, 불우한 유년/소년/청소년 시기를 두루 지낸 미남의 연쇄살인범에게 (완전한 인용이 아니라 이런 취지로) 말한다.
 "난 널 동정하지 않아.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 거의 다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 넌 그냥 개새끼일 뿐이야."
 나는 커포티 보다 맥반장의 말에 더욱 동감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 소설 작품에 관해선 재미는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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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0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 보면 정말 좀 으스스하죠. 전 카포티가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페리 스미스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페리에게만 유독 동정적 시선이라 읽다가 부아가 치밀기도 했지요(실제로 이 사건 담당 형사 중 한 사람은 카포티가 페리와 애정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카포티의 그런 시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해보자면, 카포티가 자신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페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Falstaff 2017-05-04 12:38   좋아요 0 | URL
카포티도 어린 시절에 그런 기억의 흉터가 남았던 모양이지요?
근데,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있어서 시간의 상흔을 잘 치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겠습니까. 다들 아픔을 마음 속에 하나씩 가지고 사는 거지요. 그래서 소설가도 나오고 시인도 나오고, 심지어 철학하는 작자들도 생기고 뭐 그런 거지요.
에휴, 하여간 인생, 길지도 않은 거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ㅠㅠ

잠자냥 2017-05-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리 스미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카포티는 아주 어릴 때(4살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살았더라고요(부모가 둘 다 그를 원하지 않아서 ㅠㅠ). 카포티라는 성도 엄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이라고 하네요. 그나마 맡겨진 친척집에서 나이 많은 사촌으로부터 애정다운 애정을 받은 게 큰 위안이 된 것 같더군요. 그의 단편에서 그 시절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의 우정도 그 친척집에 있을 때 이루어졌던 것 같고요. 그 애정과 우정이 카포티를 살린 셈이랄까요. ㅎㅎ

Falstaff 2017-05-04 13:06   좋아요 1 | URL
아, 그래서 이 책에서 하퍼 리한테 (헌정했던가?) 특별한 감사를 했군요.
심지어 인터뷰도 하퍼 리하고 같이 했던 걸로 책 뒤에 나와 있더라고요.
덕분에 또 배웠습니다. 언제나처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