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부지깽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1
로버트 쿠버 지음, 양윤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를 보시라. 이래서 책도 디자인이 중요하다. 위 사진의 어린아이를 자세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일 봤다면 안 그랬을 텐데, 작은 사진만 보다보니 이 책 <요술 부지깽이>는 제목이 주는 동화적 인상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화나 동화 비슷한 장르의 책인 줄 알았다. 당연히 작가 로버트 쿠버란 이름도 처음 들었으며 그가 미국에선 '메타 픽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다. 원래 나처럼 남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만 죽어라 책 읽는 사람들의 한계다. 더구나 아시다시피 난 문과 출신도 아니라서 주위에 있는 친구라는 것들도 뭐 다들 엔지니어 출신 치킨집 사장님, 학원 강사, 납품업체 사장. 잘나가는 친한 친구들도 몇 명 있긴 한데 걔네들은 공직생활 끝날 때까지 연락 딱 끊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란 걸 다행히 알고 있어서 연락도 안 한다. 그러니 쿠버가 어떻고 메타 픽션이 어떻고 그걸 알 도리가 있어야지.

 오늘도 서론이 길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그냥 사는 얘기 한 번 해봤다.

 하여간 이 책 읽으면서 코피났다. 쉽게 보고 만만하게 들이닥쳤다가 된통 혼났다. 동화? 동화는 동환데 어째 좀 이상하다.

 표지 사진을 크게 보면​, 아이의 눈과 심술보가 대단히 사납다. 앙리 루소가 1903년에 그린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며>란 그림이라는데 어찌보면 척키 같은 인상이 좀 으스스한 것이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아니나 달라, 재크와 콩나무 얘기가 나온다. 거기서 재크가 밤 새 대빵 커져 구름을 뚫고 솟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을 죽이고 돈 좀 만졌다는 건 다들 아실 거다. 쿠버, 여기서 정말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다. 구름 위의 거인이 누구인가. 누군데 그를 죽여야 하는 것인가. 다름아닌 재크 자신이란 거다. 성인이 된 재크. 재크 점점 자라 아랫도리에 털나고 턱 밑에 수염나 어른이 되면 괴물이 된다는 말일까. 하긴 어린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어른 남자는 괴물일 수도 있겠다.

 쿠버의 비틀기는 경계도 없다. 성경도, 아담과 이브도, 노아도, 원더랜드의 엘리스도 없다. 그냥 뭐든지 쿠버한테 걸리기만 하면 심하게 비틀려 제 모습을 찾지 못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아하, 이런 거 어디서 읽어봤다. 천일야화의 셰혜라자데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불세출의 영웅 페세우스를 확 비틀어버린 존 바스의 <키메라>. 흠. <요술...>과 <키메라> 같은 책을 메타 픽션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누가 나한테 메타 픽션이 뭐냐고 하면 일단 쿠버를, 그 다음에 존 바스를 얘기하면서, 크게 말해 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한 경향을 얘기하는 거지. 라고 하면 좀 폼은 나겠다. 상황 봐서 거기다가 구라도 좀 덧붙이고.

 근데 문제는, 위에서 내가 말한대로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와 바스의 <키메라>가 정말 메타 픽션, 이제 세상에 소설의 소재는 몽땅 다 떨어졌기 때문에 남은 것이라고는 이미 인류가 알고 있는 신화나 전설등을 다시 만드는 작업,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다고 가정하더라도(물론 아마추어의 턱도 없는 주장이겠지만) 소설읽기의 주요 목적인 재미가 <요술...>엔 별로 없을까. <키메라>는 읽는 내내 웃겨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어째 <요술...>은 영 그렇지 않다. 오히려 페이지 넘기기가 되게 힘들었다.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다고 양해를 하더라도, 물론 재미가 있어야 소설이라는 얘긴 아니지만, 이왕에 있는 동화, 신화, 전설, 거기다가 성경 창세기까지 온갖 것을 다 가져다가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면, 독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니크한 다른 얘기가 펼쳐질 것인데, 그럼 (맨땅에 대가리 박는 심정으로 소설쓰는 작가에 비하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기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을 것임에야. 아하, 줄리언 반스의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도 이 부류에 드나? 그렇기도 하겠다. 반스가 알면 난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극동 아시아의 한 독자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단 걸 반스가 알 턱이 없으니 그냥 말해버려도 무방하겠다.

 왜 특출한 소설가 존 바스와 줄리언 반스까지 거론해가며 메타 픽션 어쩌구 저쩌구 하는가 하면, 매우 아쉬운 얘기지만 로버트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만 읽어보고 얘기한다는 전제 아래, 쿠버는 안타깝게도 자신이 개척했다고 하는 메타 픽션의 방식을 통해 바스나 반스처럼 장편소설로 영역을 확장할 역량까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바스와 반스를 포함해, 기존 작가들이 그냥 참고하거나 인용 정도의 수준에 머물던 여러 이야기를 다시 비틀어버려 사차원적 두뇌놀이로 만든 메타 픽션 소설가들의 아이디어는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