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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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 커포티, 라는 이름은 무척 많이 들어봤는데 그의 책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커포티의 작품들을 일반적으로 장르 문학, 장르 문학 가운데서도 추리소설로 구분하는 거 같다. 난 추리소설을 싫어하지 않지만 굳이 찾아 읽지 않는다(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는 무지하게 재미나게 봤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작품을 몇 해 동안 읽을까 말까, 들었다 놨다, 장바구니에 넣다 뺐다만 하다 오늘날 까지 온 거다. 이 책 말고도 좋다고 하는 책들은 쌔고 쌨으니까.

 이런 이유로 마음 속에만 이름을 기억하고 몇 해를 건너 뛰다가 진짜로 이 책을 읽어보니, 이게 추리소설? 글쎄. 장르 구분이야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쳐주겠지만 내 생각엔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심리소설이다(물론 잘 쓴 추리소설은 언제나 심리소설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게다가, 나 같은 경우엔 거의 대부분 책의 본문만 읽는 경향이 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사건을 진행시키는 악당들의 동선과 행위 같은 것이 어째 좀 으스스한 게 뭔가 수상쩍어, 잠깐 책 읽기를 멈추고 좀 알아봤더니, 세상에 나 참, 심지어 이게 실화소설이란 거다.

 이른바 사이코 패스의 단계로 접어든 두 인간들에 관한 보고서. 이 책을 읽고 사이코 패스에 관해 좀 더 알아봤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사이코 패스를 만드는 건, 사이코 패스 당사자의 유전적 형질이나 천부의 성격 탓이라기 보다 특정한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움, 폭력에 대한 반항 및 반항으로의 재 폭력, 소외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 등의 종합선물세트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에 묻지마 살인/폭력이나 테러리즘에 가까운 다중을 향한 폭력의 기도, 사이코패스 등을 조사해보니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는 조사도 있단다. 즉, 다중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지간에 특정인을 고립시키는 행위, 거기다가 폭력을 동반하여 고립시키면 더욱 그러한데, 그런 행위가 해당 특정인을 사회부적응에 이은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지름길이며, 이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거의 없다는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러니 외톨이를 만들지 말 것. 그의 성격이 얼마나 더러웠으면 외톨이가 됐겠느냐고? 아, 제발 이딴 생각 마음에 두지 마시라.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내가 다니는 회사 안을 보더라도 다중이 인위적으로 만든 외톨이 몇 명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수와 다르다는 것, 이거 좀 제발 인정하면서 살자. 인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갑자기 독후감 쓰다가 왠 삼천갑자 동방삭이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이게 명색이 범죄사건, 미국 중서부 지역의 무지무지, 무지하게 건전한 부르주아 가족을 몰살시키는 이야기라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며, 골머리를 썩이는 수사관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독후감을 쓰자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어떤 장르보더 범죄와 수사를 통한 사건의 해결, 재판과정과 결과의 실행, 이딴 거 말하기 힘들다. 이런 거 정말 아시고 싶어? 좋다, 정 그러시다면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이 책은 네 부로 되어있다.


 1부. 그들이 살아있던 마지막 날.

 켄자스 주 홀컴이란 아주 작은 마을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마음 좋은 지주 클러터 씨 일가가 있다. 아들 하나와 딸 셋. 큰 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둘째 딸은 대학가서 공부하다가 지금 좋은 남자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집엔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제 연애를 막 시작한 똑똑하고 마음 착하고 거기다가 예쁘기까지 한 큰 딸과 그런 누나와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막내 아들, 이렇게 네 명이 살고 있다. 원래 인간이 너무 행복하면 신이 질투를 하는 법. 동부에서부터 먼 길을 운전해 온 두 악당이 한 밤중에 부엌문을 따고 침입해 들어와 네 식구를 결박하고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버린다. 그렇게 다 죽었다.

 2부. 신원불명의 범인들.

 공포상태에 빠진 홀컴 주민들. 심지어 형사반장 가족들까지. 딕과 페리, 두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고 태연하게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들며 부도수표를 남발해가며 잘 놀고 잘 때려먹고, 심지어 선량한 독일인 친구까지 사귀며 다니다가, 잡힌다.

 3부. 해답

 켄자스 법정에서 범죄사실에 관한 재판이 벌어진다. 딕과 페리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에 관한 묘사가 등장하며 살인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형제도에 관한 왈가왈부. 예상외로 커포티가 범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동정적이라 깜놀.

 4부. 구석

 '구석'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곳. 형무소 한 구석에 있다. 켄자스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딕과 페리. 사형제도 반대의견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 두 흉악범인은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건조하게라도 써놓는 것이 과연 옳은지 모르겠지만 팍 내용을 올리는 건, 스토리를 아무리 여기다 써봐도 진짜 이 책을 읽는 건, 커포티가 인터뷰한 숱한 사람들의 진술과 그들의 심리상태. 수사관과 범인들 사이의 범죄적 교감 등등에 관한 것이지 결코 범죄와 사건의 해결, 그리고 형벌의 집행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명작은 아니지만 굳이 시간 내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


 그러나 작품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들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다.
 미국 드라마 CSI 뉴욕에서 맥 테일러 반장이 괴물 아버지를 둔, 불우한 유년/소년/청소년 시기를 두루 지낸 미남의 연쇄살인범에게 (완전한 인용이 아니라 이런 취지로) 말한다.
 "난 널 동정하지 않아.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 거의 다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 넌 그냥 개새끼일 뿐이야."
 나는 커포티 보다 맥반장의 말에 더욱 동감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 소설 작품에 관해선 재미는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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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0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다 보면 정말 좀 으스스하죠. 전 카포티가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페리 스미스에게 인간적으로 끌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페리에게만 유독 동정적 시선이라 읽다가 부아가 치밀기도 했지요(실제로 이 사건 담당 형사 중 한 사람은 카포티가 페리와 애정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카포티의 그런 시선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해보자면, 카포티가 자신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페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Falstaff 2017-05-04 12:38   좋아요 0 | URL
카포티도 어린 시절에 그런 기억의 흉터가 남았던 모양이지요?
근데,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있어서 시간의 상흔을 잘 치유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겠습니까. 다들 아픔을 마음 속에 하나씩 가지고 사는 거지요. 그래서 소설가도 나오고 시인도 나오고, 심지어 철학하는 작자들도 생기고 뭐 그런 거지요.
에휴, 하여간 인생, 길지도 않은 거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ㅠㅠ

잠자냥 2017-05-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리 스미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카포티는 아주 어릴 때(4살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살았더라고요(부모가 둘 다 그를 원하지 않아서 ㅠㅠ). 카포티라는 성도 엄마가 재혼한 남자의 성이라고 하네요. 그나마 맡겨진 친척집에서 나이 많은 사촌으로부터 애정다운 애정을 받은 게 큰 위안이 된 것 같더군요. 그의 단편에서 그 시절 이야기들이 종종 나옵니다.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와의 우정도 그 친척집에 있을 때 이루어졌던 것 같고요. 그 애정과 우정이 카포티를 살린 셈이랄까요. ㅎㅎ

Falstaff 2017-05-04 13:06   좋아요 1 | URL
아, 그래서 이 책에서 하퍼 리한테 (헌정했던가?) 특별한 감사를 했군요.
심지어 인터뷰도 하퍼 리하고 같이 했던 걸로 책 뒤에 나와 있더라고요.
덕분에 또 배웠습니다. 언제나처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