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의 시 162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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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기 전에.

 원래대로 쓰자면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라고 쓰고 이 책에 나오는 시의 제목을 예를 들면 <개똥아 사랑해> 이렇게 써야 하는데, 그딴거 다 관두고 그냥 <은하가...> 및 <개똥아...>로 쓰겠다.  》기호 찾아 쓰기가 귀찮아서 그렇다. (물론 내 맘이다)

 

 

 강기원. 등단해서 시인이 된 시점이 1997년. 깜짝이야. 처음에 1977년 등단인줄 알았지만 결코 1977년이 아니었다. 마흔 살에 등단했단다. 닭띠 아줌마. 그래서 그런지 거침이 없다(절대 아줌마 비하 아니다. 나이 들면 남자나 여자나 성호르몬의 증가/감소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서 성별 차이가 거의 없어지니 사실 아줌마 비하는 아저씨 비하하고 같은 말이다. 그걸 알고 있는 아저씨가 아줌마를 비하할 수 있겠는가). 시는, 시야말로 해석은 읽는 사람 맘대로다. 언제나 주장하듯 <사미인곡> <관동별곡> 같은 걸 쓴 정철이 우리 국문학사상 최고의 연애시 전문가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뜻에서 강기원의 시는 지금 시대의 뛰어난 에로티시즘 작품들이다.

 책을 열면 자서自序가 제일 먼저 나온다. 우리나라 시집에 자서, 스스로 쓰는 서문이란 걸 싣는 게 보통이 된 이후부터 자서는 시인이 어떻게 하면 최고로 잘난 척하느냐, 하는 경쟁이라도 하는 거 같고, 강기원도 예외가 아니라 도대체 뭘 주장하는지 알아먹지 못할 애매모호한 이상한 시 비슷한 게 나오고, 그걸 넘겨 드디어 본문에 등장하는 첫번째 시가 등장하는데, (좋은 뜻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맹랑한 시인이 책의 첫 시로 올린 것의 제목이 <독자에게>다. 이렇게 써놓으니 후덜덜. 강기원 시인이 어느날 지금 내가 쓴 글을 읽고 야 새꺄 너 뭐야, 이렇게 따지면 어쩌나싶어 오금이 다 떨린다. 한 번 더 언급하노니 위에 건방지다, 맹랑하다는 건 전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쓴 거다. 원래 글이란 게 서로 바라보고 하는 얘기와 달라 지독한 오해를 왕왕 일으키기 때문에 확실히 밝혀두는 게 일신상 건강(혹은 보신, 또는 만수무강)에 좋다.

 얘기한 시집의 첫번째 시 <독자에게>는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해서 전문을 올린다.

 

 

  독자에게

- 만나게 될 때까지

 

 

 결합의 순간에 디스데라 벨리아(Dysdera velia)는 수컷과 암컷이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줄 하나씩을 내쏜다. 30cm 가량의 길이에 수평으로 늘어진 이 졸은 일종의 다리가 되고 그 양 끝에서 두 곤충은 마주 보게 된다. 신호가 내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동시에 양 끝에서 출발하여 빠른 종종걸음으로 다리를 건너지만, 서로 스치지도 못하고 엇갈린 채 각작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수컷과 암컷이 결국 만나게 될 때까지 이 장면은 되풀이된다.

- 이자벨 로시뇰, 『작은 죽음』 중에서

 

 

 이 시를 읽고 처음엔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의 일부분을 그냥 발췌해놓은 것도 시가 된다는, 그것도 멋있는 시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시집의 첫 시로 이 작품을, 그것도 제목을 <독자에게>라고 해놓은 건 앞으로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란 시집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디스데라 벨리아 라는 곤충의 교미 과정처럼 남녀가 교통하여 섹스에 이르기도 하고 이르지 못하기도 하는 고통스러운 절차에 대하여, 그리고 섹스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제목,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이란 것도 남자가 여자를 관통하는 밤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 읽은 프로이트에서 그랬던가? 관통하고 관통당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인간의 본성에 잠복하고 있다고. 하긴 프로이트 본인이 좀 도착증 환자인 듯도 해서 전적으로 믿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사용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번째로 실린 <흡혈>. 으시으시 하시지? 하필이면 어제 케이블 TV로 본 영화가(케이블 TV 영화를 보려면 진심 인격수양이 필요하다. 영화 도중에 광고가 무지막지하게 나오고, 심지어 중간에 한 20분 동안 광고만 나오기도 한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드라큘라>로 극장에서 본 것은 크리스토퍼 리가 처음이었고, 역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만든 작품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이 최고였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즉 흡혈의 제왕은 매우매우 에로틱하기도 하다. 강기원의 흡혈은? 역시 에로티시즘.

 

 나는 뺄셈이고

 너는 덧셈이다

 또한, 너는 뺄셈이고

 나는 덧셈이다

 내가 네게로 흘러간다

 네가 내게로 흘러든다

 (중략)

 날 받아들인 네 영혼에

 널 받아들인 내 영혼에

 알레르기 같은 열꽃이 돋는다

 ……(중략)………

 이 빈번한 삼투압

 (중략)

 진하고 단, 쓴 피

 피의 러브 샷

 

 너의 피를 내가 빨아먹는 것. 그거 자체가 성적 판타지를 제공하는 행위로 되어버렸다. 간혹 후천적 면역결핍증의 매개가 되는 '수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흡혈. 생명의 전이 과정이며 그것을 위헤선 생식과 비슷한 절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의도? 그러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내가 그렇게 해석했다면 그게 대빵이고 그게 결론이다. 안 그랴? 저거 봐. 빈번한 '삼투압'이라잖아.

 내 주장의 근거를 위하여, 강기원은 "나를 찌르던 바늘로 / 너를 찔러 / 네가 다시 내가 되었는데 말이다 / 내가 다시 네가 되었"(인형)고, "식구들이 모두 단잠에 빠져든 밤 / 아버진 휘늘어진 덩굴 밑동에 / 아무도 모르는 거름을 붓곤 했는데요 / 나홀로 깨어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으며(장미의 나날), "가진 거라곤 / 벌거벗은 가슴 / 뿐입니다 / 희지도 않습니다 /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 (중략) / 제 위에 / 당신의 비밀을 적으"라고(로제타석) 말한다, 라고 쓴다면 아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수없게 평론가 흉내를 내는 거 같지? 그래서 관두겠다.

 하여간 강기원의 성적 판타지가 어디까지 뻗느냐 하면 예를 들어 큰 집을 등에 지고 새벽마다 나팔꽃 이파리 위에 점액질을 묻히며 기어가는 불쌍한 미물을 보고도 이렇게 노래한다.

 

 

 

 달팽이

 

여자들처럼 남자들도 여자들이다

-그루초 마르크스

 

 

 그러나

 늘 홀로였어

 최초의 창조물이 그랬듯이

 

 그 안의 수컷은

 그 안의 암컷을 외면하고

 

 그 안의 암컷은

 그 안의 수컷을 증오하지

 

 심장도 하나 위장도 하나

 머리도 하나

 그러나 질료 다른 두 영혼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자웅동체

 

 두 개의 더듬이는

 합쳐지는 법이 없지

 있는 힘껏

 다른 곳을 향해 뻗는 촉수

 

 한 마리 달팽이

 속의 두 알몸

 자기가 자기에게 침을 뱉으며

 끈적한 길 그으며

 느릿느릿 기어간다   (전문)

 

 

 드디어 시인의 판타지는 아예 한 몸에 양성이 다 있는 곳까지 왔다. 이 시 바로 다음에 나오는 것이 인간으로 한 몸에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다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어지자지>. 일종의 자웅동체. 한 몸에 양성이 다 있다고 해도 번식을 위하여는 다른 개체와의 섹스를 해야만 하는 개체. 그래서 시인의 눈에는 같은 몸의 두 성은 서로를 외면하고 증오한다. 어떤 경우라도 다른 개체와의 소통, 공감의 의미로 섹스가 필요한 필멸의 존재들. 그 비극성. (아, 너무 나갔다!) 하여간 그렇다는 얘기.

 

 또 하나의 주제가 있으니 바로 둔황 지역을 둘러보고 쓴 기행시편들. 그건 책 사 읽으실 분을 위해 노코멘트. 

 시집의 제목으로 오른 타이틀 시 <은하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이거 어떤 시인지 궁금하시지? 궁금하시면 요새 시인들 배고프다던데(언제는 뭐 안 그랬나?), 왠만하면 사 읽으시라고,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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