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대 - 열아홉 살 엽기소녀의 반위생학적 사랑법!
샤를로테 로쉬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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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가족 단위에서 노인 간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이혼 가정의 자녀들이 그렇듯 나도 우리 부모님이 다시 합치는 게 소원이다. 엄마 아빠에게 간병인이 필요하게 되면 엄마 아빠의 애인들만 양로원에 집어넣고, 이혼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집에서 돌볼 테다, 돌아가실 때까지 한 침대에 눕혀놓고. 이 상상은 내게 최대의 행복감을 안겨준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거다. 언젠가는 내 손 안에 들어올 문제다.”

 첫 문단이다.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이 소설은 한 결손가정 출신으로 이제 19세, 법적으로 성인이 된 여성 헬렌 메멜 양이 이혼한 부모가 재결합 해 다시 한 가족으로 살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지가 핵심이다. 헬렌은 열세 살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과 성적 접촉을 해왔고, 마약을 복용했다. 무대가 아무리 유럽, 독일이라 해도 이 정도면 전형적인 ‘결손가정 출신의 문제아’이긴 하지만 부모가 이혼한 아이가 헬렌 혼자도 아닐 터인데 이리 유난을 떠는 건, 어느 날 집에 가보니 엄마가 동생 토니와 함께 졸피뎀을 먹은 듯 주방에서 깊은 수면에 빠져 있고 대형 가스 오븐의 열린 밸브를 타고 프로판 가스가 무한정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헬렌이 직접 발견해 엄마와 동생의 동반자살을 막았던 사건이 어린 인생의 한 가운데에 큰 변곡점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봐야겠다. 작품 속의 부모 어느 쪽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인, 일상적으로 통용하는 위생관념에 의도적으로 반하는 행위를 헬렌이 수시로 저지르고 그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이상행위를, 이제는 낡아빠진 프로이트적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의 이상행동이 비위생적인 생활방식과 성기와 항문에 집중되니 이리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19세가 되어, 아직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인종차별주의자 농부가 운영하는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약간의 차별을 받은 에티오피아 출신 남자 카넬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제모를 배운다. (카넬은 헬렌의 제의에도 불구하고 성적 접촉을 갖지 않는다. 헬렌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대체로 소수자 및 약자들 가운데 선한 사람이 많이 등장하니까 이상하지는 않다.) 그가 헬렌의 전신을 아주 말끔하게 면도를 해주었더니, 예상외로 헬렌의 성적 흥분의 세계에는 신세계가 펼쳐지는 거였다. 그래서 이젠 자기 혼자 정기적으로 제모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어려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빠 쪽을 닮아 치질이 있다는 것(엄마와 외할머니는 치질이 없다고 하니까). 그것도 좀 심한 편이라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 마치 꽃양배추처럼 활짝 펴질 정도. 의사 말에 의하면 그저 삶의 질이랄까, 자존감이랄까 따위에 스크래치가 좀 갈 수 있지만 고통을 수반하지도 않고 특별히 염증도 일으키지 않으니 그냥 관리하면서 살면 된단다. 문제의 근본이 이 치질은 아니다. 항문 근처에도 몇 가닥 안 되지만 털이 나 있어, 면도에 익숙하지 않고, 매사를 꼼꼼하지 못하게 대충 처리하는 덜렁이 성격의 헬렌이 극히 요망한 자세로 항문 주변의 털을 면도하다가 그만 주름 근처를 벤 것이 탈이었다. 부위가 부위인 만큼 수도 없이 많은 세균이 번식하는 영양 많은 환경이라 염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서, 예상대로 극도의 고통을 수반한 염증이 발병해, 수업 도중 교사의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고통에 관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염증에 의해 부어오른 치질이 이제 온 힘을 다해 면도상처를 헤집는 거 같은 고통이 헬렌의 19년 동안 겪었던 고통 중에 가장 심한 고통이란다. 두 번째로 치는 것이 차 트렁크에 몸을 숙이고 있는데 아빠가 실수로 트렁크 덮개를 등골에다 내리 찍었을 때였으며, 셋째로 많이 아팠던 건 스웨터를 벗다가 젖꼭지의 피어싱이 떨어져나갔을 때였단다. 그래서 헬렌은 지금도 오른쪽 젖꼭지가 마치 뱀의 혀처럼 보인다는데, 트렁크 덮개에 찍힌 등골의 아픔은 얼마 정도였을까. 그리고 지금 앓고 있는 항문 염증의 아픔은 두 번째 아픔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하니, 모든 인류는 항문염증에 각별한 공포를 갖고 그곳의 위생관리에 미리미리 만전을 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래서 종합병원에 입원해 문제의 염증 말고도 소위 ‘꽃양배추’마저 말끔하게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우리의 헬렌. 헬렌의 속셈은 여기서도 다른 곳에 있다. 딸이 아프다는데 부모가 문병을 안 오지는 못할 거 아닌가. 그럼 여기서 엄마와 아빠가 몇 년 만에 재회를 하고, 비록 지금 각기 다른 가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둘이 다시 사랑의 불꽃을 피우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혹시 아나, 둘이 재결합해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게 될지. 인간사를 누가 있어 알리오. 안 그랴?
 내가 지금 말은 이리 쉽게 하지만, 정작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을 걸? 위와 같은 심오한 잔머리를 굴리는 헬렌이지만, 메멜 양이 열세 살부터 저질러온 갖가지 엽기 행각을 온갖 방식으로 하도 화려하게 묘사를 하는 바람에 완독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독자서평’을 통해 이런 엽기 내용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얼마나 엽기일까,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상상 이상이다. 여태까지 나는 주로 항문과 꽃양배추에 관해서만 언급을 했다. 근데 책에선 꽃양배추 밭 바로 옆에 있는 놀이동산에 대한 상세한 서술까지 더해 있을 뿐만 아니라, 놀이동산과 꽃양배추 밭에서 즐길 수 있는 갖가지 비위생적 방법에 관한 비 학술적 주장까지 보태고 있으니 잘 생각해보시고 책을 고르실 사. 역자 김진아도 글의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소설은 어떤 편견도 없이 독자에 의해 평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웃고 싶은 곳에서 웃고, 내던지고 싶을 때 내던질 수 있는, 개인으로서의 독자를 위한 소설이다.”


 

 

 


 이 책은 중고를 샀다. 헌 책을 구입하는 일의 재미 가운데 하나가 먼저 읽었던 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책을 넘겨 첫 빈 페이지에, 아후, 아래와 같은 헌사가 쓰여 있었다. 사진을 찍어 올릴까 했지만, 혹시 아는가, 필체로 전 주인을 알아보실 분이 있을지. 그래 그러지는 않고 그대로 옮겨본다.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 아래에서 처음 너를 만났고…
    잔잔한 호수 같던 마음에 커다란 파장을 주었고…
    따가운 햇빛을 따뜻한 햇살로 바꿔준 J…
                           사랑해

   From A."

 A가 J에게 이 책을 선물한 것으로 보이는데, 글쎄, 이 책을 연인에게 선물을 해? A, 참 대단하다. 난 마누라한테도 읽어보라 권할 생각이 나지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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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20-03-29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세요? @@@@@@

Falstaff 2020-03-29 18:40   좋아요 0 | URL
윗 글을 좀 길게 써서 그렇지 사실 본문의 10% 정도만 공개한 거거든요. 왜 입원하게 됐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읽으신 분이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면 스포일러 맞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군요.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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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의 등단 50주년 기념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25세에 등단을 했다니 어느덧 75세, 아무리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일본이라 하더라도 노익장이다. 참 쑥스럽게도, 그동안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일본 작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소설가임에도 여태 사 읽어보길 머뭇거렸다는 걸 고백한다. 그러나 역시 오에 겐자부로.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작품은 책 속에는 알파벳으로 Kenzaburo라 쓰인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고, 다른 작품을 통해 일찍이 탄생에서 중년에 이르기까지 성장과정을 독자들이 다 지켜봐왔던 작가의 아들 히카리도 작품의 서장과 종장에 중요 인물로 활약한다. 자폐증세를 앓는 대신 음악에 천재성을 보이는 아들 히카리와 일흔이 넘은 작가가 시내에서 있었던 콘서트를 보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히카리가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 Kenzaburo가 누군가. 10여 년 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이자 양심적 지식인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낸 사람. 순식간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일본인 특유의 친절 공여에 관한 제의가 쏟아지지만, 5분만 저러고 있으면 괜찮아지니 상관하지 말고 가던 길 가시오, 라는 무뚝뚝한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5분은커녕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히카리를 부축하며 귀갓길을 서두르던 ‘나’의 화면 속에 저 먼 기억 속의 인물 하나가 찍혀 있었던 것. 대학 동창 고모리.
 작가가 고모리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소설은 본론으로 접어들어 무대가 30년 전으로 바뀐다. 1970년대 중반. <미하엘 콜하스>라는 책이 있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라는 사람이 1810년에 쓴 단편소설로 우리나라에서는 창비가 번역 출간했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유럽에서 민란을 다룬 아주 드문 작품이며, 민란을 소재로 한 것 답게 당시 사회, 정치 등에 대한 비판과 종교 등에 관해 생각할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폰 클라이스트가 1777년 생으로 그의 출생 200년을 기념해 영화인들이 모여 대표작 <미하엘 콜하스>를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영화를 세계 각 대륙에서 제작한다는 M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동학혁명에 맞추어 제작하려 하였으나 박정희 정권이 때를 맞춰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던 김지하를 잡아들여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화자의 대학동창 고모리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마침 작업이 없어 쉬고 있던 Kenzaburo가 그의 작품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던, 두 번에 걸쳐 시코쿠에서 발생한 민란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그래 소설의 본문에는 <만엔 원년의 풋볼>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나오게 된다. 패전 후 불법으로 고급종이를 만들어 화가들에게 팔아 돈을 번 ‘나’의 어머니가 시코쿠에 극장을 짓고 메이지 유신 당시 발생한 민란 가운데 두 번째 사건에 관한 연극을 공연해 스스로 주연을 했다는 것, 1차 민란에서 옥사한 메이스케의 어머니가 죽은 맏아들의 뜻을 이어 소위 ‘환생한 메이스케’ 자신이 다시 낳은 아들과 함께 두 번째 민란을 도모했다가 잡혀 아이는 돌에 눌려 죽고, 어머니는 윤간을 당하고 죽음을 맞았던 향토사적 진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흔히 그렇듯 공식적으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불행한 과거를 마치 해원解寃 굿처럼 공연했다는 것이 다시 나온다. (오에 겐자부로야말로 지식인이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창피한 과거를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익사>에서 큰 상징을 갖는 상해에서 도착한 아버지의 붉은 가방도 <… 애너벨 리…>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리 유사한 내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애너벨 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1935년생의 ‘사쿠라’라는 여배우가 등장해서이다. 종전과 동시에 고아가 된 사쿠라는 일본,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활발하게 영화 활동을 했으며, 특히 미국과 멕시코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미군 장교였다가 종전 후 일본에 머물며 공부를 계속한 데이비드가 그녀를 후원해 아역배우에서 시작했던 터였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조그만 문제가 생겨 출국당하지 않기 위해 데이비드와 법적 결혼을 해 현재에 이른 여인인데,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확실하지 않은 불안 또는 불행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이런 사쿠라가 만엔 원년에 있었던, 특히 두 번째, 민란에 대단한 흥미를 느껴, 영화화 하고, 자신이 환생한 메이스케의 어머니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소설은 드라마틱한 꼭짓점으로 몰려가는데, 그곳에 어떤 장면이 있을까. 안 알려드림.
 겨우 227쪽에 이르는 짧은 장편이다. 게다가 <익사>,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 벌써 충분히 알고 있던 내용이 큰 흐름으로 흐르고 있다. 만일 내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이 책을 읽었을까? 안 읽고 말았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제 늦게나마 읽었다는 게 다행스럽다. <… 애너벨 리…>는 기본적으로 한 불행한 인간의 치유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번엔 작가 본인, 처자식, 가족, 고향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치유? 안타깝게도 그것도 알려드리지 않겠다. 오에 겐자부로. 이이의 작품은 믿을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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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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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 여 전에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읽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은 아니다.”라고 독후감을 썼다. 그때 했던 말을 이제 취소한다. 아디치에는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다. <태양은 노랗게 떠오른다. Half of a Yellow Sun>은 1960년 영국에 의한 식민지를 종식하고 이후 10년 동안 벌어진 나이지리아의 혼란상태를 그린 소설이다. 치누아 아체베가 식민지 시절을 겪으며 어떻게 나이지리아, 또는 아프리카의 순결한 문화와 정신과 자원과 원주민들이 수탈을 당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77년 생으로 2003년에 처녀작을 간행한 아디치에는 해방 후 정치, 경제, 문화,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식민 상태에 준하는 제3세계에서 혼란한 시절을 보낸 신생독립국의 이야기를 쏟아냈으니,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란 평가가 어색하지 않다는 뜻이다. 만일 <태양은……>을 먼저 읽었더라면 <아메리카나>의 독후감을 그리 용감하게 단정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아디치에는 아체베와 마찬가지로 이보Igbo족 출신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와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편은 아니지만, 매우 독특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에 해방을 맞아 정부를 수립한 신생독립국에서 쿠데타가 한 번 쯤 발생하는 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이보족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이보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재에 밝아 국부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주요 부족인 하우사족, 요루바족 등과 반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직 영연방의 일원이었던 나이지리아에서 호의적인 기후 덕택에 영국이 더 선호했던 북쪽 지역에 기반을 둔 하우사족이 다시 한 번 쿠데타를 터뜨려 이보족을 학살해버리는 사건이 터진다. 이 책에 장면이 상세하게 등장한다. 나이지리아 동부에 기반을 두고 살았던 이보족은 이에 반발해 자기 부족의 땅에 줄을 긋고, 학살당한 이보족을 가리키는 빨강, 그들을 추모하는 검정, 미래를 상징하는 초록, 그리고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묘사하는 노란 태양의 반쪽을 국기로 정하고 나라 이름을 “비아프라”라고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에 21세기를 사는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 것. 그까짓 땅이 문제가 아니다. 이보-하우사-요루바 세 부족이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이보족이 터를 잡고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에는 석유가 무진장 나오는 유전지대라는 것. 무진장이 도대체 얼마큼이냐고? 세계 7위에 빛나는 매장량이다. 기존의 나이지리아 입장에서는 그런 땅 위에서라면 이보족이 비아프라가 아니라 다른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그들의 독립을 용인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모르고, 혹은 알기 때문에 만일 독립만 된다면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할 수 있을 거란 계산속이 있어서, 분리 독립을 위해 3년이란 세월을 내전에 쏟아 부었는데, 이때 치누아 아체베가 비아프라의 대사로 임명되어 나이지리아에 의한 봉쇄작전으로 근 100만 명에 달하는 전사와 아사의 참담한 광경을 전 세계에 토로해 구호물자를 보내달라고 호소한 전력이 있다. (아체베 작, <사바나의 모래언덕> 앞날개 참조.)
 분리 독립은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니 기존 국가조직을 가지고 있던 나이지리아에 비해 기초체력이 형편없었고, 나이지리아 못지않게 부패한데다가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집단이 외부의 지원 없이 어찌 전쟁을 함부로 벌일 수 있었을까. 유럽과 아메리카 역시 석유를 가운데 두고 괜히 비아프라를 지원해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영국과 소련의 무기와 심지어 폭격기까지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 정부군에 의하여 3년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거덜이 나버리는 비아프라. 거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보족에 의한 비아프라 독립은 허망한 한 바탕의 꿈으로 끝나버리고,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혼돈 속에 석유 하나만 가지고도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어이없게도 완전히 탕진한 채 오늘에 이른다.
 이 책은 보스턴 소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교수직에 갓 임용된 여성 ‘올란나’, 그의 애인이자 같은 학교 수학 교수이자 무신론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오데니그보의 하인 ‘으그우’, 올란나의 이란성 쌍둥이 카이네네의 영국출신 백인 애인 ‘리처드’,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의 시각을 주로 진행한다. 이보족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올란나, 이보족 청소년 프롤레타리아 으그우, 이보족의 애인인 (백인)영국인 남자 리처드. 아디치에 본인이 코네티컷 주립대, 존스 홉킨스 대, 예일 대에서 의약학, 언론정보학, 정치학, 문예창작학, 아프리카학을 공부한 박사님이니 작품의 가장 큰 무대를 자신과 비슷한 계급의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래 등장인물의 거의 대부분은 영관급 장교, 사업가, 권력자, 교수 등과 이들의 친척, 하인이며, 피란지에서 기근과 굶주림으로 인한 단백질 결핍으로 픽픽 쓰러져 죽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주변인들은 연줄이 받쳐줘 충분하지는 않지만 극한상황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책에 의하면, 당시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어쩐 일인지 단번에 적국인 비아프라를 점령해버리지 않는 것처럼 읽힌다. 3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물론 전쟁도 하지만 주로 봉쇄 전략을 사용하여 이보족 민간인들까지 수없이 굶어 죽게 만든 건 진실이다. 이런 점에서 나이지리아 정부군을 변호할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군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족만큼 영악하고 이기적인 종족도 없었을 것이다. 국부의 거의 대부분인 유전지역을 자기들이 독점하겠다는데 그걸 어찌 보겠는가 말이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거의 언제나 승리한 자의 것이 아니다. 기록한 자의 것이지. 이보족이 비아프라 공화국을 만들었다가 쌍코피가 터졌지만, 아체베와 아디치에가 자신들의 기록을 남겨 그들은 후세에 길이길이 애꿎은 피해만 본 불쌍한 종족으로 기억되리라. 불쌍한 아프리카 백성들. 교육받은 상류계급은 자기들끼리의 권력투쟁과 부의 집중에 정신을 놓는 동안 국민들은 땅 속에 묻힌 황금 덩어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검은 대륙에 머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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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이 책이 바로 <비아프라 내전>을 그린
책이로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게다가 아체베의 책 <사바나>까지 곁들여서
읽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아메리카나>는 읽다 말았는데 미국물이 들
어서 그런지 어쩐지 다른 책들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더군요.

Falstaff 2019-07-29 20:13   좋아요 0 | URL
옙. 당시 얼마나 굶주렸는지, 아직도 나이지리아 벽지에 가면 아스팔트 길가에서 소년소녀들이 쥐 꼬치를 비싸게 팔고 있다....는 EBS 다큐멘터리를 본 게 한 10년 전인 거 같습니다. 참, 한비야의 책에서도 나오더군요.
정말 잠재력이 있던 아프리카 여러나라, 에티오피아, 콩고, 나이지리아 등을 보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식민지의 불운이 참 안타깝습니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솔시선(솔의 시인) 3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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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지 못했던 시인. 이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가 1999년에 찍은 그의 두 번째 시집. 처녀시집 <해조海藻>가 1969년 간행이니 30년 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다. 그러니 이름이 낯설 수밖에. 그동안 허만하는 시인이 아니라 병리학 전공 의학박사로 지내며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허만하의 시집을 넘기고 처음 몇 편의 시를 읽으며 든 느낌은, 이 시인의 주제는 46억년에 이르는 지구의 나이에 비하여 인간이란 종이 얼마나 왜소하고 허망한 것인지 보여주려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실린 시를 읽어보자.



 지층


 연대기란 원래 없는 것이다. 짓밟히고 만 고유한 목숨의 꿈이 있었을 따름이다. 수직으로 잘린 산자락이 속살처럼 드러낸 지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총 저수면적 7.83평방킬로미터의 시퍼런 깊이에 잠긴 마을과 들녘은 보이지 않았으나 묻힌 야산 위 키 큰 한 그루 미루나무 가지 끝이 가을 햇살처럼 눈부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흔적도 없이 정갈하게 사라져라. 시간의 기슭을 걷고 있는 나그네요. 애절한 목소리는 차오르는 수위에 묻혀가고 있었다. (13쪽. 전문)



 시인은 수직으로 잘린 산자락을 보고 있다. 거기엔 산자락의 지층이 마치 속살처럼 드러났다. 지층, 속살 같은 지층은 ‘짓밟히고 만 고유한 목숨의 꿈’이었을 뿐이란다. 이후 저수지에 묻힌 마을과 들과 미루나무에 관한 기억을 더듬고는 있지만 그것들이 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시간의 기슭에 잠시 거닐다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 즉, 사람이 정착해 한 마을을 이루고 번성하다 점점 쇠락해져 끝내 저수지 물속에 잠기는 연대기 따위는 처음부터 수직으로 잘린 지층에 비하면 아예 없는 것과 같다. 시인이 생각하는 자연, 자연의 누적으로 지질학적 시간은 이렇게 인간에 대하여 비정하다. 두 번째 실린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위의 적의


 길은 산자락을 따라 시내처럼 흐르고 있었다. 벼랑은 잘린 언덕줄기의 속살이었다. 통곡의 벽을 바라보듯 나는 벼랑 앞에 섰다. 흑표범의 눈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는 지층. 바위는 조용히 기억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양치식물의 숲. 아우성치는 맘모스의 마지막 울음 소리. 쌓인 시간의 무게 밑에서 목숨은 진한 원유로 일렁이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바위의 적의를 느꼈다. 바위는 기다리고 있다. 인류의 멸망을. 찢어진 바위틈에서 갈맷빛 물이 솟구쳐 바다가 되고 부스러진 스스로의 피부에서 다시 풀밭이 일어서서 눈부신 고함소리를 지르며 연둣빛 바람을 흔드는 부활의 순간을.  (14쪽. 전문)



 이 시 속에도 벼랑은 언덕줄기의 속살이다. 허만하가 우리가 아는 시인들과 결정적으로 차별이 되는 것은, 많은 시인들은 벼랑 ‘위’에 서서 삶의 위기와 절망과 고독과 추락을 노래하는 반면, 이이는 벼랑을 바라보면서 자기 ‘앞’에 선 것이 애초에 산자락이었던 언덕줄기의 속살, 부드럽지는 않지만 속을 이루고 있던 살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자연은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게 만든 인류를 향한 바위(지층)의 적의를 느끼고 있다. 바위는 인류가 하루빨리 멸망하기를 원하고 있단다. 그리하여 먼 먼 미래의 어느 날, 지구의 땅에는 다시 물이 솟구쳐 바다가 되고, 다시 풀밭이 일어서 눈부신 고함을 지르며 연둣빛 바람이 흔들지만, 인간은 없다. 그때쯤이면 인간은 저 지층 아래 한 켠, 한 틈에서 기껏 새까맣고 점성이 진한 원유로나 존재하리라. 인류가 원유로 존재하는 곳은 다시 지층의 한 틈. 이 ‘틈’은 다시 세 번째 시가 된다.



 틈


 틈을 주무른다.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더듬는 알몸의 포옹이 만드는 캄캄한 틈. 멀어져가고 있는 지구의 쓸쓸한 등이 거느리고 있는 짙은 그늘. 진화론과 상호부조론 사이를 철벅거리며 건너는 순록 무리들의 예니세이 강. 설원에 쓰러지는 노을. 겨울나무 잔가지 끝 언저리. 푸근하고도 썰렁한 낙탓빛 하늘 언저리. 안개와 하늘의 틈.


 지층 속에서 원유처럼 일렁이고 있는 쓰러진 나자식물 시체들의 해맑은 고함소리. 바위의 단단한 틈. 뼈와 살의 틈. 영혼과 육신의 틈. 빵과 꿈의 아득한 틈. 낯선 도시에서 마시는 우울한 원둣빛 향내와 정액빛 밀크 사이의 틈. 외로운 액체를 젓는 스푼.


 존재는 틈이다. 손이 쑥쑥 들어가는 적막한 틈이다.  (15쪽. 전문)



 이쯤 읽으면 독자는 시인 허만하를 가이아Gaia의 셋째아들 정도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세 번째 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의 모습이 그나마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저 거대한 시간이 만들어놓은 지구의 속살, 지층이 서로를 알몸으로 더듬는 작은 틈 사이에서. 이후 시는 광활한 대륙과 사막 등지를 넘나들며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나가기 시작한다. 확실히 새로운 시선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나는 시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로, 혹시 이런 경향은 이 시집을 내기 전에 무려 30년 동안 시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닌가, 라고 의문을 품었다.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이리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 허만하의 시가 다 이렇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하찮은 것에 관한 애정 어린 시선도 들어 있다. 그래도 그런 시조차 요즘 시인들과는 격이 조금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면서 독후감을 마친다. 이 시에 대한 내 감상은 당신들의 온전한 느낌을 위해 생략한다.



 二加里 뒷길



 닭장 곁에서 맨드라미꽃이 까만 씨앗을 품고 있는 정오. 비닐 대야 밑바닥에는 지친 면 러닝 셔츠 두 벌 구정물처럼 구겨져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그물처럼 널려 있는 바닷가
 초록빛 갯내가
 기진한 나팔꽃 덩굴처럼
 돌담에 붙어 있을 뿐


 꿈에서 본 적이 있는
 바로 그 빈 마을이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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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 살 때, 도서관 시 코너를 아무 의미없이 뱅뱅 돌다가 슥 뽑아들었던 게 허만하였어요. 교과서 바깥에서 제가 최초로 만난 시집이었는데, 그게 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게 시구나, 하며 열라 충격받았던 까마득히 여린 청춘의 제가 떠오릅니다.....

Falstaff 2019-07-26 12:41   좋아요 0 | URL
저도 대학에 입학하고나서야 알았던 시들한테 제대로 뒤통수 맞은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김수영, 신경림, 황명걸, 조태일, 신동엽 등등, 그리고 한 번 더 쇼크를 받는데요, 군대 마치고 복학생되며 읽은 시들에게 한 방 더 맞습니다. 황지우, 최승자, 이성복 들한테 말입니다. ㅎㅎㅎ 군역 시절을 경계로 해서 앞엔 창비, 뒤론 문지, 사이 좋습니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들어보는 작가. 책을 읽기에 앞서 앞날개에 달린 작가 프로필을 먼저 읽었다. 그랬더니, 확 깨더라.
 1955년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 이탈리아에서 생물학 공부, 2년 동안 동물유전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개구리와 쥐를 흥분시켜 알과 정액을 얻어야 하는 연구실 일에 염증을 느껴 인간 뇌에 관한 공부 다시 시작. “생각에 대한 생각”에 빠져 슬럼프를 겪을 무렵, 갖고 있던 주식이 대박을 쳐 다 때려치우고 11년 동안 휴가 행각. 1년은 미국, 10년은 아시아. 태국에선 보석을 공부하고, 방갈로나 레스토랑도 운영하다 심심해서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냄. 엽서를 받은 한 친구가 좀 더 긴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 글쓰기란 사람들을 행복의 절정으로 도달하게 하는 카마수트라처럼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첫 소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를 집필, 간행.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희비극적으로 풍자해내며 이탈리아의 천재작가로 떠올랐단다. 천재작가? 하여튼 출판사 광고문 보면 세상에 천재가 한 5분마다 한 명씩은 나오는 거 같다.

 

작가 알레산드로 보파

 책을 살 때 나는, 비스코비츠란 인간을 등장시켜 엉뚱하고 난처한 행각 또는 습관을 관찰해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운 존재라고 결론을 내리는 소설일 것으로 생각했다. 쉽게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고 구입했다는 얘기. 그래도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작품이니 혹시 숨어있는 원석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마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목차를 보면 프롤로그와 모두 스무 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제목이 “요즘 사는 게 어때, 비스코비츠?”, 2장은 “섹스 생각날 때 없니, 비스코비치?” 등등. 흠. 재미있겠군. 하고 드디어 본문을 열면, 1장의 주인공 비스코비츠가 누구, 혹은 무엇인가 하면, ‘겨울잠쥐’다. 다람쥐처럼 생겼으나 야행성인 설치류, 즉 쥐다. 일본 특산종이며 1년에 6개월 동안 동면한단다. 이렇게 생겼다.

 

 

 2장에서의 비스코비츠는? 가끔 섹스 생각이 나는 비스코비츠는? 궁금하시지? 등에 자기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불완전 자웅동체인 달팽이다. 달팽이는 몸속에 양성을 다 가지고 있지만 여간해선 처녀생식을 하지 않으며, 다른 짝과 만나 상대를 임신시키기 위해 난리를 벌인단다. 이쯤 되면 작가 알레산드로 보파의 십여 년 전 직업, 동물유전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겨울잠쥐와 달팽이 말고도 등장하는 동물을 보면 돼지, 꿀벌, 사자, 기생충, 개, 박테리아까지 다양한 비스코비츠들이 있다. 작가는 갖가지 비스코비츠들에게 인격과 사람의 지능을 부여하여 인간이 하고 있는 별의 별 짓을 다 하게 만든다. 성형수술,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포식동물, 백만장자 돼지, 독재자 개미 등등.
 근데 재미있느냐고? 글쎄. 기대한 거에 비해서는 별로다. 오히려 작가의 생애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심지어 질투난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아시아 구석에 들어가 하고 싶은 농땡이란 농땡이는 다 치면서 살던 광경을 조금 과장을 섞어 버무렸으면 훨씬 더 재미있는 소설이 될 거 같았다. 하긴, 십 몇 년 만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이런 글을 쓰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려. 그래도 이이가 소위 ‘천재’는 아니잖아? 혹시 모르지 요샌 천재 타이틀도 대형 마트에서 세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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