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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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들어보는 작가. 책을 읽기에 앞서 앞날개에 달린 작가 프로필을 먼저 읽었다. 그랬더니, 확 깨더라.
 1955년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 이탈리아에서 생물학 공부, 2년 동안 동물유전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개구리와 쥐를 흥분시켜 알과 정액을 얻어야 하는 연구실 일에 염증을 느껴 인간 뇌에 관한 공부 다시 시작. “생각에 대한 생각”에 빠져 슬럼프를 겪을 무렵, 갖고 있던 주식이 대박을 쳐 다 때려치우고 11년 동안 휴가 행각. 1년은 미국, 10년은 아시아. 태국에선 보석을 공부하고, 방갈로나 레스토랑도 운영하다 심심해서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냄. 엽서를 받은 한 친구가 좀 더 긴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 글쓰기란 사람들을 행복의 절정으로 도달하게 하는 카마수트라처럼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첫 소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를 집필, 간행.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희비극적으로 풍자해내며 이탈리아의 천재작가로 떠올랐단다. 천재작가? 하여튼 출판사 광고문 보면 세상에 천재가 한 5분마다 한 명씩은 나오는 거 같다.

 

작가 알레산드로 보파

 책을 살 때 나는, 비스코비츠란 인간을 등장시켜 엉뚱하고 난처한 행각 또는 습관을 관찰해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운 존재라고 결론을 내리는 소설일 것으로 생각했다. 쉽게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고 구입했다는 얘기. 그래도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작품이니 혹시 숨어있는 원석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바람마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목차를 보면 프롤로그와 모두 스무 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제목이 “요즘 사는 게 어때, 비스코비츠?”, 2장은 “섹스 생각날 때 없니, 비스코비치?” 등등. 흠. 재미있겠군. 하고 드디어 본문을 열면, 1장의 주인공 비스코비츠가 누구, 혹은 무엇인가 하면, ‘겨울잠쥐’다. 다람쥐처럼 생겼으나 야행성인 설치류, 즉 쥐다. 일본 특산종이며 1년에 6개월 동안 동면한단다. 이렇게 생겼다.

 

 

 2장에서의 비스코비츠는? 가끔 섹스 생각이 나는 비스코비츠는? 궁금하시지? 등에 자기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불완전 자웅동체인 달팽이다. 달팽이는 몸속에 양성을 다 가지고 있지만 여간해선 처녀생식을 하지 않으며, 다른 짝과 만나 상대를 임신시키기 위해 난리를 벌인단다. 이쯤 되면 작가 알레산드로 보파의 십여 년 전 직업, 동물유전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겨울잠쥐와 달팽이 말고도 등장하는 동물을 보면 돼지, 꿀벌, 사자, 기생충, 개, 박테리아까지 다양한 비스코비츠들이 있다. 작가는 갖가지 비스코비츠들에게 인격과 사람의 지능을 부여하여 인간이 하고 있는 별의 별 짓을 다 하게 만든다. 성형수술,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포식동물, 백만장자 돼지, 독재자 개미 등등.
 근데 재미있느냐고? 글쎄. 기대한 거에 비해서는 별로다. 오히려 작가의 생애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심지어 질투난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아시아 구석에 들어가 하고 싶은 농땡이란 농땡이는 다 치면서 살던 광경을 조금 과장을 섞어 버무렸으면 훨씬 더 재미있는 소설이 될 거 같았다. 하긴, 십 몇 년 만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이런 글을 쓰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려. 그래도 이이가 소위 ‘천재’는 아니잖아? 혹시 모르지 요샌 천재 타이틀도 대형 마트에서 세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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