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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3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옥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 년 여 전에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읽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은 아니다.”라고 독후감을 썼다. 그때 했던 말을 이제 취소한다. 아디치에는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다. <태양은 노랗게 떠오른다. Half of a Yellow Sun>은 1960년 영국에 의한 식민지를 종식하고 이후 10년 동안 벌어진 나이지리아의 혼란상태를 그린 소설이다. 치누아 아체베가 식민지 시절을 겪으며 어떻게 나이지리아, 또는 아프리카의 순결한 문화와 정신과 자원과 원주민들이 수탈을 당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77년 생으로 2003년에 처녀작을 간행한 아디치에는 해방 후 정치, 경제, 문화,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식민 상태에 준하는 제3세계에서 혼란한 시절을 보낸 신생독립국의 이야기를 쏟아냈으니,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란 평가가 어색하지 않다는 뜻이다. 만일 <태양은……>을 먼저 읽었더라면 <아메리카나>의 독후감을 그리 용감하게 단정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아디치에는 아체베와 마찬가지로 이보Igbo족 출신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와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편은 아니지만, 매우 독특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에 해방을 맞아 정부를 수립한 신생독립국에서 쿠데타가 한 번 쯤 발생하는 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이보족을 중심으로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이보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재에 밝아 국부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주요 부족인 하우사족, 요루바족 등과 반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직 영연방의 일원이었던 나이지리아에서 호의적인 기후 덕택에 영국이 더 선호했던 북쪽 지역에 기반을 둔 하우사족이 다시 한 번 쿠데타를 터뜨려 이보족을 학살해버리는 사건이 터진다. 이 책에 장면이 상세하게 등장한다. 나이지리아 동부에 기반을 두고 살았던 이보족은 이에 반발해 자기 부족의 땅에 줄을 긋고, 학살당한 이보족을 가리키는 빨강, 그들을 추모하는 검정, 미래를 상징하는 초록, 그리고 지평선에 떠오르는 태양을 묘사하는 노란 태양의 반쪽을 국기로 정하고 나라 이름을 “비아프라”라고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에 21세기를 사는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는 것. 그까짓 땅이 문제가 아니다. 이보-하우사-요루바 세 부족이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이보족이 터를 잡고 독립을 선언한 비아프라에는 석유가 무진장 나오는 유전지대라는 것. 무진장이 도대체 얼마큼이냐고? 세계 7위에 빛나는 매장량이다. 기존의 나이지리아 입장에서는 그런 땅 위에서라면 이보족이 비아프라가 아니라 다른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그들의 독립을 용인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 모르고, 혹은 알기 때문에 만일 독립만 된다면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할 수 있을 거란 계산속이 있어서, 분리 독립을 위해 3년이란 세월을 내전에 쏟아 부었는데, 이때 치누아 아체베가 비아프라의 대사로 임명되어 나이지리아에 의한 봉쇄작전으로 근 100만 명에 달하는 전사와 아사의 참담한 광경을 전 세계에 토로해 구호물자를 보내달라고 호소한 전력이 있다. (아체베 작, <사바나의 모래언덕> 앞날개 참조.)
분리 독립은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니 기존 국가조직을 가지고 있던 나이지리아에 비해 기초체력이 형편없었고, 나이지리아 못지않게 부패한데다가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집단이 외부의 지원 없이 어찌 전쟁을 함부로 벌일 수 있었을까. 유럽과 아메리카 역시 석유를 가운데 두고 괜히 비아프라를 지원해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영국과 소련의 무기와 심지어 폭격기까지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 정부군에 의하여 3년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거덜이 나버리는 비아프라. 거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보족에 의한 비아프라 독립은 허망한 한 바탕의 꿈으로 끝나버리고,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혼돈 속에 석유 하나만 가지고도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어이없게도 완전히 탕진한 채 오늘에 이른다.
이 책은 보스턴 소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교수직에 갓 임용된 여성 ‘올란나’, 그의 애인이자 같은 학교 수학 교수이자 무신론자이자 사회주의자인 오데니그보의 하인 ‘으그우’, 올란나의 이란성 쌍둥이 카이네네의 영국출신 백인 애인 ‘리처드’,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의 시각을 주로 진행한다. 이보족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올란나, 이보족 청소년 프롤레타리아 으그우, 이보족의 애인인 (백인)영국인 남자 리처드. 아디치에 본인이 코네티컷 주립대, 존스 홉킨스 대, 예일 대에서 의약학, 언론정보학, 정치학, 문예창작학, 아프리카학을 공부한 박사님이니 작품의 가장 큰 무대를 자신과 비슷한 계급의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래 등장인물의 거의 대부분은 영관급 장교, 사업가, 권력자, 교수 등과 이들의 친척, 하인이며, 피란지에서 기근과 굶주림으로 인한 단백질 결핍으로 픽픽 쓰러져 죽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주변인들은 연줄이 받쳐줘 충분하지는 않지만 극한상황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책에 의하면, 당시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어쩐 일인지 단번에 적국인 비아프라를 점령해버리지 않는 것처럼 읽힌다. 3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물론 전쟁도 하지만 주로 봉쇄 전략을 사용하여 이보족 민간인들까지 수없이 굶어 죽게 만든 건 진실이다. 이런 점에서 나이지리아 정부군을 변호할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군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족만큼 영악하고 이기적인 종족도 없었을 것이다. 국부의 거의 대부분인 유전지역을 자기들이 독점하겠다는데 그걸 어찌 보겠는가 말이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거의 언제나 승리한 자의 것이 아니다. 기록한 자의 것이지. 이보족이 비아프라 공화국을 만들었다가 쌍코피가 터졌지만, 아체베와 아디치에가 자신들의 기록을 남겨 그들은 후세에 길이길이 애꿎은 피해만 본 불쌍한 종족으로 기억되리라. 불쌍한 아프리카 백성들. 교육받은 상류계급은 자기들끼리의 권력투쟁과 부의 집중에 정신을 놓는 동안 국민들은 땅 속에 묻힌 황금 덩어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검은 대륙에 머물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