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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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눈 먼 암살자> 한 편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팬이 됐다. 이후 이이의 작품을 특별히 검색해 찾아 읽는 정도는 아니지만, 쇼핑 중에 눈에 띄면 유심히 바라보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시녀 이야기>를 읽었는데, 비록 올해 영국의 맨부커 상을 <시녀 이야기> 15년 후를 다룬 소설 <Testament>가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특별히 인상 깊게 읽지 못하는 바람에(페미니즘 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은 이거 말고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이갈리아의 딸들>이 확실하게 깨는 작품 아닌가 싶어서.) 애트우드의 다른 작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한국어로 바꾼 <눈 먼 암살자>도 우리말 문장이 별로 매력이 없었다는 것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 하겠고. 그래 <도둑신부>를 몇 년째 책방 보관함에 담아두고는 있었지만 정작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사 읽게 된 것. 이제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거릿 애트우드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 가운데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 애트우드만큼 탁월한 구라꾼은 쉽게 발견하지 못하리라. <눈 먼 암살자>도 그렇고 <도둑신부>도 그렇고,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다. 1권 507쪽, 2권 327쪽, 합해서 834쪽에 쪽 당 24행 편집. 이거 이틀 반이면 다 해치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섣불리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첫 장을 여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 나야 밤엔 한 병의 소주를 마시느라 이틀 반이 걸렸지 눈하고 신체 건강한 독자가 금요일 오후에 시작하면 일요일 새벽엔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주중에 시작하면 어쩔 수 없지 뭐, 연차휴가 내야할 걸?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책은 대학 동창 토니, 로즈, 캐리스가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날부터 4년 6개월 전인 3월에 전쟁사학자 토니와 성공한 기업가 로즈, 심령술에 관심이 많은 친환경 잡화점 점원 캐리스는 그들과 같은 대학 선배 ‘지니아’의 장례식에 참석을 한 적이 있다. 이 문제적 여인 지니아로 말할 거 같으면, 러시아에서 탈출한 백작부인의 딸로서 엄마의 생계를 위해 어려서부터 매춘도 불사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폴란드 계 유대인으로 독일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원래는 동유럽 집시족의 후예로 갖은 고생 끝에 캐나다로 굴러들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니아가 세 명의 주인공에게 접근해서 한 일은 사실 대동소이하다. 일단 트렁크를 끌고 와서 갖은 핑계와 궁상을 떨어대 주인공 집에 몇 주 동안 머무를 수 있게 허락을 받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몇 달간 무료로 기숙한다. 밥과 돈을 축내면서도 설거지 한 번 도와주지 않고 점점 불편한 관계로 성숙, 발전시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남자친구 또는 남편과 함께 사라지는 일. 사라지면서 집안의 현금은 물론이거니와 자기가 부정 서명한 수표까지 한 장 들고. 그까짓 돈이야 주인공들이 원래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어 그리 큰 타격은 아니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까지 주머니에 홀랑 담아 내빼버리는 건 어떻게 감당이 되지 않았던 거다. 자신은 저 옛 시절의 인연으로 정성을 다 해, 아니면 가능한 한 선의를 가지고 돌봐주었는데 그걸 이리 큰 원수로 갚아버리니 인간에 대한 신뢰 자체가 붕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금발, 아름다운 얼굴과 훌륭한 몸매, 실리콘 유방, 거기다가 남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천재가 있는 여자 지니아. 얼굴과 몸매는 모르겠고,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설득 천재. 중국에서 이런 유형의 대표적 인물로 합종연횡과 관련한 소진과 장의를 따를 수 없고, 우리나라에선 역시 봉이 김선달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리라. 장의는 사람을 잘못만나 늘씬하게 얻어터져 자리보전을 하다가 마누라한테, 여보 내 혀가 잘 붙어 있는지 좀 보소, 해서, 뻘건 살점이 제대로 붙어 있소, 하니, 그럼 아무 문제없소,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재상자리가 내 것이오, 했다는 거 아닌가. 이런 인물들이 한 번 마음먹고 특정인을 속여 넘기려 안짱다리 걸기를 했다하면, 이건 알고도 당하게 되어 있는 거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 하면 안 될 말이, 다른 사람 다 속여도 나한테는 사기 못 친다, 하는 것도 들어 있다. 명심하시라. 그런데 잘 보면, 사기 당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쉽게 돈 벌려다 뒤통수 제대로 맞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토니, 로즈, 캐리스, 이 세 명의 여자들은 공히 순전히 선의에 입각한 친절을 베풀었다가 귀싸대기 맞는 지경을 당했으니, 귀싸대기도 보통 귀싸대기가 아니고 집안이나 생활 자체가 완전히 전도될 정도의 타격을 입었으니 이이들의 상실감은 심리치료사의 진료를 받아야할 정도였다.
 그런 지니아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질 때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다가, 로즈의 표현대로 하자면, 꼴까닥 해버렸다. 그래 현지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이 도시락 통에 밀봉된 채 캐나다에 도착했고, 세 친구는 장례식에 참가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 눈으로 직접 땅에 묻히는 장면까지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동묘지까지, 꽃샘추위에 발발 떨면서도 가야 했던 거였다. 그리고 4년 6개월이 흘러 이 세 명의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은 주로 젊은이들이 밤에 약간의 마약도 즐기고, 펑크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는 음식점 ‘톡 시크’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전히 동일한 주제, 즉 지니아가 얼마나 죽일 년이었는지를 토의하며, 구덩이에 지니아의 유골을 묻은 나무가 말라죽어 뼛가루에조차 한 점 선선한 그늘을 만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쏟아 부으며 깔깔깔 홍소를 퍼부을 때, 역시 제일 재미있는 건 여기 없는 애들 흉보는 거라니까, 하면서 말이다, 거의 검은 빛깔이 나는 진보라 색 옷을 입은 묘한 분위기의 여자가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저편 자리를 향해 걸어갔고, 다른 여자들에 비해 머리통 하나 정도의 키가 작은 여성 전쟁사 연구가 토니가 한 눈에 검은 옷의 여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니아임을 단박에 알아채, 로즈와 캐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봐. 소리는 지르지 말고.”
 죽어 이미 나무 밑에 묻어버린 지니아가 죽은 지 4년 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들이, 방금 전까지 와인과 생수를 겸해 점심으로 당근, 코티지 치즈, 차가운 렌즈 콩 샐러드로 만든 래빗 딜라이트(캐리스), 허브와 캐러웨이 씨를 넣은 빵, 구어메이 토스티드 치즈 샌드위치(로즈), 팔라펠, 샤실릭, 쿠스쿠스와 후머스로 이루어진 중동요리 스페셜(토니)을 먹고, 디저트까지 다 해치운 식당, 톡 시크에 온 것이며, 지니아가 왜 하필 이곳에 왔을까, 하나만 가지고도 세 친구들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쪽 끼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상당량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후 소설은 이들이 어떻게 지니아에게 당했는지 토니, 캐니스, 로즈의 순서대로 설명을 하고, 지니아가 어떻게 살아났으며 어떤 목적으로 다시 이들 앞에 선 것인지가, 아주 재미있게 펼쳐진다. 읽어보시라. 번역한 문장도 나무랄 데 없어 읽기에 아주 좋다. 물론 우리네 살림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사건들이 친구 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건 우리네 살림을 그대로 쓰면 소설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도 주인공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않나.
 “잘 해주면 이것들이 아주 날 바보로 생각한단 말이야!”
 “오냐 오냐 하면 사람을 우습게 봐요!”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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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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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의 앞날개를 보면 시인의 약력이 나온다.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97년에 등단해 시집 네 권을 내서 이번이 적어도 다섯 번째고, 미당문학상, 이상화시인상, 현대시학작품상 등을 탔단다. 한 마디로 67년생이니 시집이 나온 2013년엔 마흔일곱 살의 잘 나가는 중견시인이었을 거다. 그새 또 6년이 흘렀고 시집 몇 권을 더 냈는지도 모른다. 소위 586세대지만 중앙일보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만든 미당문학상을 2012년에 받은 걸로 보아 적극적 진보는 아닌 거 같다. 상금이 어마어마했겠지 뭐. 그가 비록 고려대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까지 졸업을 했다 해도, 시인이 가난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이해심 넓은 독자가 양해해주겠다.
 미당문학상 상금이 무려 3천만 원. 흠. 그걸 1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규원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거지? 오규원은 당시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있었으니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입장이었을 거다. 권혁웅과는 다른 처지였겠지. 그래 권혁웅은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의 첫 번째 시로 <호구(糊口)> 즉, ‘입에 풀칠을 한다는 뜻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감을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을 골랐다.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  (전문)


 제목과 별개로 언뜻 읽으면 (내가 변태라서 그런지 몰라도)사랑을 노래한 시라고도 읽힌다. 근데 제목과 엮어서 읽으면 오리무중이다. 첫 단어 ‘조바심’이 어떤 조바심일까. 제목과 어울리려면 어디선가 누구로부터 돈을 받을 건수가 생길 것 같은 조바심, 또는 너무도 배가 고픈 몸의 기다림이라고 읽을 수 있겠고, 내 주장처럼 이게 연애시라면 당신에 대한 갈증으로부터 시작하는 조바심일 터인데, 에잇, 여기까지 온 것, 호구,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상태라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게 어찌 밥 먹고 사는 일에 국한을 할까보냐.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욕망과 질투 또한 내 몸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고픔’의 상태, 그리하여 겨우 입과 몸에 풀칠만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흠. 역시 변탠가 보다. ‘풀칠’이라 말해놓고 보니 또 음침한 생각이 드네 그려. 어쨌거나 이렇게 연애시라고 단정해놓으니 그대에게 보내는 내 목 아래, 말 없는 목 아래의 모든 몸이 저절로 추신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 참 멋있다. 확실히 시인이 일단 한 번 시를 썼다 하면, 그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 마음대로가 돼버린다. 그게 시와 시인의 팔자지 뭐.
 시집을 읽어보면 얼마나 먹는 것에 관해 많은 시를 올려놨는지, 그래서 첫 번째 시로 <호구>를 등장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첫 번째로 시인이 배가 고프다는 얘기를 해놓고 다음부터 숱한 음식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나열을 해볼까?
 신의주찹쌀순대, 의정부부대찌개, 춘천닭갈비, 연포탕, 청국장, 조마루감자탕, 김밥(천국), 오징어, 24시 양평해장국, 우동, 상추와 삼겹살, 조개구이, 고려삼계탕, 라면, 칼국수, (담배꽁초가 든)짬뽕 까지, 온갖 먹을거리가 시집을 관통한다. 물론 시인이 거론한 모든 음식들이 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가학과 피학이 있고, 궁기와 포만이 있고, 먹고 사는 애달픔이 있다. 그 외에도 시의 무대는 노인들 십 원짜리 고스톱 치는 아파트 경로당, 도봉근린공원, 주부노래교실, 천변체조교실, 금영노래방, 불가마, CGV 등을 망라한다. 이렇게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시의 소재로 찾은 권혁웅은 굳이 이런 ‘시설’이 아니더라도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 저 감감함 혹은 편안함 /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 무슨 맛이었을까?” 하고 한 때는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엔 여간해 보기 힘든 한 가장의 장면을 포착하면서 이 가장은 “다시 직립 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한 봄밤이 거느린 슬하, 즉 봄밤의 아들이 되어버린 광경을 그리기도 한다. (<봄밤> 부분)
 이렇게 대부분의 시가 조금은 우중충한 서민의 눈으로 본 세계다. 시인의 아버지는 많이 늙지 않은 나이에 한 방에 훅 가버렸고, 어머니는 무릎이 아픈데다가 오른 팔이 마비가 되어 십 원짜리 고스톱 화투장도 감칠 맛나게 찰싹 후려치지도 못하면서도 아이들한테는 오기는 뭐 하러 오니, 명절 때마다 얼굴이나 보고, 이웃들은 자식들을 키워놓고 보니 그게 범의 새끼였다는 걸 알아챈다. 그렇게 사는 모습의 시편들.
 대개 시집 한 권을 사 읽고 괜찮은 시, 괜찮은? 건방떨지 말고 얘기해서, 내 마음에 드는 시 한 두 편 건지면 본전은 뽑는 거다. 내가 읽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소개하고 독후감 접는다.




 할머니가 익어간다



 청국장은 고구려 전사의 음식이라고 한다 짚으로 만든 주머니에 콩을 담아 안장 아래 두면 콩이 발효된다 말의 체온은 42도, 달리지 않아도 이미 숨 가쁘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노랗게 굳은 요구르트다 장판 아래로 번지는 파문이다 거기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계신다 자잘한 콩들처럼 바글거리는 어머니……들


 아랫목에서 익어가는 청국장 냄새를 할머니 냄새라 말하지 마라
 저승,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러 가는 전사의 비상식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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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박사의 집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한기찬 옮김 / 프레스21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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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독후감을 쓴 <혹스무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타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전용(轉用)한” 작품. 이번에 애크로이드가 호출한 사람은 생몰이 1527~1609인 당대 영국 최고 수준의 수학자, 기계공학자, 점성가 또는 천문학자, 마법학자, 연금술사, 역사학자, 생물학자, 해부학자, 신비주의 철학자라 불리던 존 디 박사. 존 디 박사는 실존했던 인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헨리 8세의 딸인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의 자문역을 지냈다. <혹스무어>와 마찬가지로 애크로이드는 이 책에서도 시간과 인물을 무한정으로 왜곡해, 잠깐 딴 생각했다가는 몇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 쉽지 않은 <디 박사의 집>을 썼다.
 작품을 쓴 시기가 1993년. 목차를 보면 하나, 둘, 셋……, 일곱. 이렇게 숫자로 된 장章은 딱 1993년이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에 즈음하는 현대의 런던이고, “장관”, “서재” 같이 표제가 붙은 장의 무대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로 읽히는 시간적 공간이다. 현대의 화자는 ‘매튜’라는 이름의 젊은이이며, 과거의 화자는 당연히 디 박사다. 그러니 현대와 과거가 서로 병치해 자신의 주장과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것 역시 <혹스무어>와 대단히 유사하다. 하긴 애크로이드의 관점이 ‘역사의 변형’인 바에야 이런 구성이 최선일 수 있으리라.
 17세기 초반, 디 박사의 말년에 그의 주된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로마 이전에 벌써 번창하고 있었으나 이젠 폐허가 된 런던과 인조인간의 탄생. 온갖 서적을 뒤지고 탐사를 거친 끝에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건설하기 이전에도 후세에 런던이라고 불리게 될 지역 근방에는 자생적 도시가 번성하고 있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인조인간, 당대 최고의 연금술사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으로 일반적으로 ‘호문쿨루스’라 일컫는 것. 호문쿨루스를 만들기 위한 비법을 소개한다.
 “생명의 씨앗을 앤트워프산 유리 속에 담아 40일 동안 십자 모양을 한 자석 네 개와 함께 말똥 속에 묻어두는데, 나흘마다 신선한 이슬로 된 유리 속의 물을 갈아주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는 17세기 초에 발간한 백과사전을 뒤지면 대강 방법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특허 심사가 진행 중인 디 박사의 나머지 레시피를 조금 더 보자.
 “41일째가 되면 숨을 쉬며 팔다리를 움직일 것이며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만, 투명하고 눈이 달려 있지 않다. 이제 그것은 1년 동안 ‘인간의 혈액이라는 비약’을 흡수해야 하며, 그 동안에는 계속 유리 속에 머물러야 한다.”
 즉 유리병 속에서 1년 동안 더 머물며 사람의 피를 비약秘藥으로 섭취한 연후에야 활동이 가능하다는데, 호문쿨루스의 생명은 딱 한 세대, 30년에 한하며, 각자가 같은 방법으로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단다. 윽. 그러면 혹시 이들 호문쿨루스가 자기 번식을 통해 21세기에도 대를 이어 내려와 사람의 힘으로는 하기 대단히 위험한 일들, 우주탐사나 전쟁수행, 생체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거 아냐?
 거세게 비가 내리던 날 밤, 디 박사 집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과거에 박사가 스승으로 모신 바 있는 페르난드 그리핀 박사를 사사한 켈리 씨로, 그리핀 박사의 운명의 침상을 지켰으며, 넓게 생각하면 동문수학한 인연이 있는지라 얼른 켈리를 조수로 채용하게 되면서, 디 박사는 어이없게도 흑마법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된다. 물론 흑마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여 삼천 년 전의 런던을 발굴하려 하는 것. 켈리는 또한 테니스공만 한 유리구슬을 가지고 있어서, 전력을 다 해 구슬 속을 보고 있으면 몇 가지 형상과 말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것을 디 박사는 삼천 년 전 시대 사람과의 대화로 생각하고 있지만, 시간의 격차 때문일까, 도대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켈리 씨가 유리구슬 속에서 분명하게 보고 들은 남자 둘이 있으니 그들은 서로를 메튜와 다니엘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20세기 말에 디 박사의 집이었던 저택을 상속받은 메튜가 친구이자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다니엘을 초청해 집 구경을 하는 모습. 이게 애크로이드의 전형적 문법이다. 시간과 사건이 서로 변형되고 전이시켜 독자의 뇌를 뒤섞어 버리는 일. 역사는 언제나 왜곡될 수밖에 없고 창작 또한 언젠가 있었던 것을 적당히 섞어서 표절하는 행위에 불과하며, 심지어 역사란 것 자체가 바로 지금 이루어지는 것 말고는 없다는 과격한 주장.
 지금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독후감을 쓰면서 현대 시점의 등장인물인 메튜와 그의 부모, 어머니의 애인, 다니엘 등에 관해서는 피하고 있다. 물론 작품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인심 써서 힌트인지 미낀지 딱 하나만 얘기해드리지. 메튜가 지금 나이 스물아홉. 얘가 혹시 호문쿨루스 아냐? 1년 안에 죽든지 자기 복제를 해야 하는?
 책을 읽는 내내, 숱한 소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먼지’. 먼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궁리했다. 심지어 <혹스무어>에서도 먼지를 묘사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먼지는 바람 부는 곳에서는 날리기만 하지 쌓이지 않는다. 고요한 상태가 지속되면 표면 위에 쌓이기 시작한다. 끝없이. 몇 천 년이 흐르면 폼페이처럼 한 도시를 지하에 매몰시키기도 하고, 수백 년간 쌓여 3층의 집을 2층으로 만들기도 한다. 즉 시간의 퇴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의 퇴적을 자주 ‘역사’라고 부른다. 우연히 깊은 먼지 속에 살게 된 한 인격은 그의 삶 자체가 한 자리, 집이 있었던 장소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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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스무어 - 일곱 교회의 비밀 현대세계문학선 3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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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으려고 책 몇 권을 사면서 가장 염두에 둔 작가가 피터 애크로이드였다. 작년 초에 <플라톤의 반란>을 읽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 외의 번역물은 전부 절판상태라 포기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헌책방에서 두 권을 골라 샀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물론 아직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만 1980~90년대 작가로 보아야겠고, Wikipedia를 검색해보면 런던의 역사와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둔 작가라고 씌어있다. 케임브리지와 예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역사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책의 앞날개에 (‘역사가’라고)적혀있다.
 류춘희는 2011년 부산대 박사학위 논문 《문학적 확산과 역사적 탐색의 메타서사》 3장 1절에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을 일어났음직한 방법으로 글을 쓰는 애크로이드의 저작 능력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공모하여 전기나 역사에 대한 독자의 해석을 치밀하게 교란시킨다.”고 적시한 바 있으며, 이 지적의 특징을 “역사적 타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전용(轉用)한” <혹스무어>를 통해 역사의 “탁월한 변형 속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의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박사학위 논문이라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느라 그렇지 내 식대로 풀어 얘기하자면 ‘비틀어버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골치 깨나 아픈 연관성 있는 혼돈’ 정도로 말 할 수 있다. 즉, 읽기가 쉽지는 않다는 의미.
 모두 12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은 1711년을 시작으로 실존했던 영국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Sir Christopher Wren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가 런던의 동쪽 지역에 일곱 개의 성당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여섯 성당을 완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는 실재로 렌 경의 서기였던 ‘니콜라스 혹스무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정말로 런던 동쪽 지역의 여섯 성당을 준공한 사람이 바로 니콜라스 혹스무어라고 한다. 소설 속 다이어는 적그리스도, 아니면 상당한 이단 또는 흑마법을 신봉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성당을 지으면서 인신공양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희생은, 성당의 마지막 돌을 지붕에 얹는 영광은 대표 석수장이의 아들이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해서 석공의 아들 토머스 힐이 마지막 돌기와(라고 하자)를 가지고 지붕으로 올라가 추락사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짝수 장은 250년여가 흐른 1980년대, 스피털필즈(250년 전에 스피틀 필즈라고 불렸으며 소년 토머스 필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교회의 지하, 전엔 납골당으로 사용하던 지하실에서 우연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 토머스 필이 목이 졸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궁에 빠지는 연쇄살인의 첫 번째 교살 사건. 런던 경찰청에서는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련한 수사관을 반장으로 배치시키는데, 그의 이름이 ‘니콜라스 혹스무어’, 그래 책의 제목이 <혹스무어>가 되는 것이다. 독자는 제2의 주인공 혹스무어가 등장하자마자 역사와 현실의 미궁에 빠지고 만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직접 읽어보면, 니콜라스 다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파인 Walter Pyne, 니콜라스 혹스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페인 Walter Payne, 정염의 불꽃을 숨기지 못하는 이웃집 여자 이름 역시 베스트 부인 Mrs. Best와 250년 후 웨스트 부인 Mrs. West, 250년의 차이를 두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징도 매우 유사하다.
 1부와 2부의 차이라고는, 거의 같은 인물이랄 수 있는 다이어와 혹스무어가 한 명은 살인범, 다른 한 명은 수사관. 그럼 책의 정체가 뭐냐고? 스릴러나 추리소설? 천만의 말씀이다. <혹스무어>는 말할 것도 없이 포스트 모던으로 불리어야 하며, 분명한 사실을 허구로 만들어버리고 이에 따른 실체와 음영효과, 비록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겠지만 무한한 평행의 비의를 담는 ‘역사적 변형의 담론’이라 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17세기 말 런던을 뒤덮었던 전염병의 참상과 대화재로 인한 폐허, 비교 의식 등도 흥미를 더한다.
 왜 이 책을 절판시켰는지, 다른 출판사에서라도 다시 낼 의향은 없는지 참 아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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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입술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0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책세상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마누엘 푸익은 여태 <거미여인의 키스>와 <천사의 음부> 이렇게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천사의 음부>는 읽은 때가 꽤 되는지 독후감 써 놓은 것이 없다. 그 책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어쨌든 내 경우에, 푸익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른 이의 작품을 읽을 때보다 더욱 집중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책 <조그만 입술>은 가상의 아르헨티나 소도시 코로넬 바예호스에서 출판한 월간지 <우리 이웃>의 1947년 4월호에 실린 ‘후안 카를로스 에체파레’의 부고 기사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애 둘 달린 유부녀 ‘넬리다’, 애칭 ‘네네’가 읽고, 옛 시절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을 가족과 함께 애도하기 위해 고인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레오노르 살디바르 데 에체파레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여튼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소설들 읽을 때는 이 길고 긴, 그리고 동양인의 눈으로는 서로 비슷하기까지 한 이름 기억하는 것이 문제다. 러시아 소설도 그런 면이 있지만 그거야 이름, 부칭, 성, 이렇게 세 번만 기억하면 되는데, 라틴 계열 작품에서 이름 쓸 때 띄어쓰기 열 번 하는 것도 봤으니 절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하여간,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여자가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해서, 자신에 대하여 극히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집안의 안주인에게,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들 후안 카를로스가 분별없는 자기와의 데이트를 하느라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번졌으며, 결핵으로까지 발전해 드디어 숟가락 놨다고 굳세게 오해하고 있는 고인의 어머니에게, 새삼스레 자기 일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잘 생긴 아들 후안 카를로스였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서양인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이게 미풍양속인가, 나는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교통사고를 낸다. 자동차가 굴러다니며 부딪거나 뒤집어지거나, 다리를 건너다 난간 너머로 다이빙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관계, 즉 인간의 소통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사고가 생긴다는 뜻. 물론 내 개똥철학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죽은 이의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넬리다가 예전에 후안 카를로스와 서로 애가 타게 사랑을 하면서도, 처녀도 아니었던 주제에(시대가 1930년대임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라) 한 번 허락했으면 됐을 것을, 후안으로 하여금 갈증에 몸이 타게 만들어 자신과 헤어진 후에 다른 과부를 찾아 날이 밝을 때까지 정염의 불을 끄게 하는 바람에 귀한 집 외동아들한테 겨울바람을 자정부터 새벽까지 맞아 감기, 폐렴, 폐결핵까지 진행시키게 만든 것이 후안과의 첫 번째 교통사고라 하면, 십여 년이 흐른 후 후안이 결국 결핵으로 인해 숨이 넘어갔다는 부고를 읽고 편지, 글을 써서 고인의 어머니한테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못생기고 역겹고 추한 남편에 관해 조잘거리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교통사고다. 그까짓 편지 때문에? 그렇다. 넬리다는 Littera Scripta Manet의 뜻을 새겼어야 한다.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증거자료로 제출될 수 있는 지울 수 없는 자국임을, 넬리다는 깜박 했던 것.
 넬리다, 네네가 편지를 씀으로 해서, 소설은 급전직하 1930년대로 넘어간다. 같은 장소의 10여 년 전에는 세 명의 발랄한 아가씨가 등장하니 넬리다와, 후안 카를로스의 누나인 셀리나, 셀리나의 친구 마벨. 서양에서는 봄이 시작할 때쯤에 장대를 높이 세우고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봄의 축제를 하는 관습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봄을 시작하는 9월에 봄의 여왕을 선출했던 모양인데, 대개 클럽에 소속된 괜찮은 집안의 영양들 가운데 뽑았던 거 같다. 그래 좋은 집안으로 불리고 당연히 클럽에 가입한 셀리나와 마벨 가운데 한 명, 꼭 집어서 얘기하자면 마벨이 당연히 봄의 여왕 왕관을 쓸 줄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셀리나와 마벨의 소개로 가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넬리다가 감히 여왕으로 선출된 거였다. 마벨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매력적인 아가씨고, 네네는 잡화점의 계산원 신분에 불과하거늘. 이리하여 마벨과 셀리나는 자연스럽게 네네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후안은 네네와 연애를 하면서, 줄 듯 말 듯, 애간장만 태우다 덜커덕 폐병에 걸려버려 짝사랑하던 마벨은 물론이고 서로 사랑하던 네네마저도 아버지가 절대 결혼 불가를 외침으로써, 중개인을 만나 결혼을 해 거처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버린다. 이러니 이 세 아가씨 사이가 온전할 수 있겠어?
 이런 와중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지역에 별의 별 사건이 다 터지고, 그것이 배경처럼 깔리면서 작품은 더 복잡하게 얽히는데, 내용은 별개로 하고, 소설의 시점, 발언하는 주체가 수시로 바뀌면서, 이젠 읽는 일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절명의, 그러나 언젠가 한 시절엔 복음처럼 외우고 있지 않으면 엄청나게 얻어터지던 경구, 졸면 죽는다, 잠깐의 해이함도 허락하지 않는 독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300쪽을 조금 넘는 적절한, 약간 짧은 듯한 느낌이 드는 장편소설로, 거창하지 않지만 재미있고 생각할 만한 작품이다. 출판사 책세상의 세계문학 시리즈는 가격이 착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니 여러 생각할 필요 없이 냉큼 사 읽어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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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1-2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푸익에 빠져서 그의 책을 읽던 시절 생각
이 나네요.

거미여인은 영화가 소설보다 나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그만 입술>도 중고서점에 있기에 냉큼 사서
읽기는 시작했는데 결국 못 다 읽은 기억이...

찾아서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Falstaff 2019-11-22 09:14   좋아요 1 | URL
ㅎㅎ 본문에 쓴 것처럼, 이 책 읽다가, 졸면 죽습니다.
거미여인 영화는 못 봐서요. 한 번 뒤져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