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스무어 - 일곱 교회의 비밀 현대세계문학선 3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읽으려고 책 몇 권을 사면서 가장 염두에 둔 작가가 피터 애크로이드였다. 작년 초에 <플라톤의 반란>을 읽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 외의 번역물은 전부 절판상태라 포기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헌책방에서 두 권을 골라 샀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물론 아직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만 1980~90년대 작가로 보아야겠고, Wikipedia를 검색해보면 런던의 역사와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둔 작가라고 씌어있다. 케임브리지와 예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역사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책의 앞날개에 (‘역사가’라고)적혀있다.
 류춘희는 2011년 부산대 박사학위 논문 《문학적 확산과 역사적 탐색의 메타서사》 3장 1절에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을 일어났음직한 방법으로 글을 쓰는 애크로이드의 저작 능력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공모하여 전기나 역사에 대한 독자의 해석을 치밀하게 교란시킨다.”고 적시한 바 있으며, 이 지적의 특징을 “역사적 타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전용(轉用)한” <혹스무어>를 통해 역사의 “탁월한 변형 속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의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박사학위 논문이라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느라 그렇지 내 식대로 풀어 얘기하자면 ‘비틀어버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골치 깨나 아픈 연관성 있는 혼돈’ 정도로 말 할 수 있다. 즉, 읽기가 쉽지는 않다는 의미.
 모두 12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은 1711년을 시작으로 실존했던 영국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Sir Christopher Wren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가 런던의 동쪽 지역에 일곱 개의 성당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여섯 성당을 완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는 실재로 렌 경의 서기였던 ‘니콜라스 혹스무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정말로 런던 동쪽 지역의 여섯 성당을 준공한 사람이 바로 니콜라스 혹스무어라고 한다. 소설 속 다이어는 적그리스도, 아니면 상당한 이단 또는 흑마법을 신봉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성당을 지으면서 인신공양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희생은, 성당의 마지막 돌을 지붕에 얹는 영광은 대표 석수장이의 아들이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해서 석공의 아들 토머스 힐이 마지막 돌기와(라고 하자)를 가지고 지붕으로 올라가 추락사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짝수 장은 250년여가 흐른 1980년대, 스피털필즈(250년 전에 스피틀 필즈라고 불렸으며 소년 토머스 필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교회의 지하, 전엔 납골당으로 사용하던 지하실에서 우연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 토머스 필이 목이 졸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궁에 빠지는 연쇄살인의 첫 번째 교살 사건. 런던 경찰청에서는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련한 수사관을 반장으로 배치시키는데, 그의 이름이 ‘니콜라스 혹스무어’, 그래 책의 제목이 <혹스무어>가 되는 것이다. 독자는 제2의 주인공 혹스무어가 등장하자마자 역사와 현실의 미궁에 빠지고 만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직접 읽어보면, 니콜라스 다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파인 Walter Pyne, 니콜라스 혹스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페인 Walter Payne, 정염의 불꽃을 숨기지 못하는 이웃집 여자 이름 역시 베스트 부인 Mrs. Best와 250년 후 웨스트 부인 Mrs. West, 250년의 차이를 두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징도 매우 유사하다.
 1부와 2부의 차이라고는, 거의 같은 인물이랄 수 있는 다이어와 혹스무어가 한 명은 살인범, 다른 한 명은 수사관. 그럼 책의 정체가 뭐냐고? 스릴러나 추리소설? 천만의 말씀이다. <혹스무어>는 말할 것도 없이 포스트 모던으로 불리어야 하며, 분명한 사실을 허구로 만들어버리고 이에 따른 실체와 음영효과, 비록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겠지만 무한한 평행의 비의를 담는 ‘역사적 변형의 담론’이라 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17세기 말 런던을 뒤덮었던 전염병의 참상과 대화재로 인한 폐허, 비교 의식 등도 흥미를 더한다.
 왜 이 책을 절판시켰는지, 다른 출판사에서라도 다시 낼 의향은 없는지 참 아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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