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눈 먼 암살자> 한 편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팬이 됐다. 이후 이이의 작품을 특별히 검색해 찾아 읽는 정도는 아니지만, 쇼핑 중에 눈에 띄면 유심히 바라보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래서 <시녀 이야기>를 읽었는데, 비록 올해 영국의 맨부커 상을 <시녀 이야기> 15년 후를 다룬 소설 <Testament>가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특별히 인상 깊게 읽지 못하는 바람에(페미니즘 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은 이거 말고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이갈리아의 딸들>이 확실하게 깨는 작품 아닌가 싶어서.) 애트우드의 다른 작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한국어로 바꾼 <눈 먼 암살자>도 우리말 문장이 별로 매력이 없었다는 것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 하겠고. 그래 <도둑신부>를 몇 년째 책방 보관함에 담아두고는 있었지만 정작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사 읽게 된 것. 이제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거릿 애트우드가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 가운데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 애트우드만큼 탁월한 구라꾼은 쉽게 발견하지 못하리라. <눈 먼 암살자>도 그렇고 <도둑신부>도 그렇고,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한다. 1권 507쪽, 2권 327쪽, 합해서 834쪽에 쪽 당 24행 편집. 이거 이틀 반이면 다 해치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섣불리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첫 장을 여는 우를 범하지 마시라. 나야 밤엔 한 병의 소주를 마시느라 이틀 반이 걸렸지 눈하고 신체 건강한 독자가 금요일 오후에 시작하면 일요일 새벽엔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주중에 시작하면 어쩔 수 없지 뭐, 연차휴가 내야할 걸?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책은 대학 동창 토니, 로즈, 캐리스가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날부터 4년 6개월 전인 3월에 전쟁사학자 토니와 성공한 기업가 로즈, 심령술에 관심이 많은 친환경 잡화점 점원 캐리스는 그들과 같은 대학 선배 ‘지니아’의 장례식에 참석을 한 적이 있다. 이 문제적 여인 지니아로 말할 거 같으면, 러시아에서 탈출한 백작부인의 딸로서 엄마의 생계를 위해 어려서부터 매춘도 불사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폴란드 계 유대인으로 독일의 탄압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원래는 동유럽 집시족의 후예로 갖은 고생 끝에 캐나다로 굴러들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니아가 세 명의 주인공에게 접근해서 한 일은 사실 대동소이하다. 일단 트렁크를 끌고 와서 갖은 핑계와 궁상을 떨어대 주인공 집에 몇 주 동안 머무를 수 있게 허락을 받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몇 달간 무료로 기숙한다. 밥과 돈을 축내면서도 설거지 한 번 도와주지 않고 점점 불편한 관계로 성숙, 발전시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남자친구 또는 남편과 함께 사라지는 일. 사라지면서 집안의 현금은 물론이거니와 자기가 부정 서명한 수표까지 한 장 들고. 그까짓 돈이야 주인공들이 원래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어 그리 큰 타격은 아니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까지 주머니에 홀랑 담아 내빼버리는 건 어떻게 감당이 되지 않았던 거다. 자신은 저 옛 시절의 인연으로 정성을 다 해, 아니면 가능한 한 선의를 가지고 돌봐주었는데 그걸 이리 큰 원수로 갚아버리니 인간에 대한 신뢰 자체가 붕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금발, 아름다운 얼굴과 훌륭한 몸매, 실리콘 유방, 거기다가 남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천재가 있는 여자 지니아. 얼굴과 몸매는 모르겠고,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설득 천재. 중국에서 이런 유형의 대표적 인물로 합종연횡과 관련한 소진과 장의를 따를 수 없고, 우리나라에선 역시 봉이 김선달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리라. 장의는 사람을 잘못만나 늘씬하게 얻어터져 자리보전을 하다가 마누라한테, 여보 내 혀가 잘 붙어 있는지 좀 보소, 해서, 뻘건 살점이 제대로 붙어 있소, 하니, 그럼 아무 문제없소,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한 나라의 재상자리가 내 것이오, 했다는 거 아닌가. 이런 인물들이 한 번 마음먹고 특정인을 속여 넘기려 안짱다리 걸기를 했다하면, 이건 알고도 당하게 되어 있는 거다. 사람이 살면서 절대 하면 안 될 말이, 다른 사람 다 속여도 나한테는 사기 못 친다, 하는 것도 들어 있다. 명심하시라. 그런데 잘 보면, 사기 당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쉽게 돈 벌려다 뒤통수 제대로 맞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토니, 로즈, 캐리스, 이 세 명의 여자들은 공히 순전히 선의에 입각한 친절을 베풀었다가 귀싸대기 맞는 지경을 당했으니, 귀싸대기도 보통 귀싸대기가 아니고 집안이나 생활 자체가 완전히 전도될 정도의 타격을 입었으니 이이들의 상실감은 심리치료사의 진료를 받아야할 정도였다.
 그런 지니아가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질 때 하필이면 그 자리에 있다가, 로즈의 표현대로 하자면, 꼴까닥 해버렸다. 그래 현지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이 도시락 통에 밀봉된 채 캐나다에 도착했고, 세 친구는 장례식에 참가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 눈으로 직접 땅에 묻히는 장면까지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동묘지까지, 꽃샘추위에 발발 떨면서도 가야 했던 거였다. 그리고 4년 6개월이 흘러 이 세 명의 40대 중후반의 여성들은 주로 젊은이들이 밤에 약간의 마약도 즐기고, 펑크 음악도 듣고 술도 마시는 음식점 ‘톡 시크’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전히 동일한 주제, 즉 지니아가 얼마나 죽일 년이었는지를 토의하며, 구덩이에 지니아의 유골을 묻은 나무가 말라죽어 뼛가루에조차 한 점 선선한 그늘을 만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쏟아 부으며 깔깔깔 홍소를 퍼부을 때, 역시 제일 재미있는 건 여기 없는 애들 흉보는 거라니까, 하면서 말이다, 거의 검은 빛깔이 나는 진보라 색 옷을 입은 묘한 분위기의 여자가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저편 자리를 향해 걸어갔고, 다른 여자들에 비해 머리통 하나 정도의 키가 작은 여성 전쟁사 연구가 토니가 한 눈에 검은 옷의 여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니아임을 단박에 알아채, 로즈와 캐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봐. 소리는 지르지 말고.”
 죽어 이미 나무 밑에 묻어버린 지니아가 죽은 지 4년 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들이, 방금 전까지 와인과 생수를 겸해 점심으로 당근, 코티지 치즈, 차가운 렌즈 콩 샐러드로 만든 래빗 딜라이트(캐리스), 허브와 캐러웨이 씨를 넣은 빵, 구어메이 토스티드 치즈 샌드위치(로즈), 팔라펠, 샤실릭, 쿠스쿠스와 후머스로 이루어진 중동요리 스페셜(토니)을 먹고, 디저트까지 다 해치운 식당, 톡 시크에 온 것이며, 지니아가 왜 하필 이곳에 왔을까, 하나만 가지고도 세 친구들은 등골을 타고 소름이 쪽 끼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상당량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이후 소설은 이들이 어떻게 지니아에게 당했는지 토니, 캐니스, 로즈의 순서대로 설명을 하고, 지니아가 어떻게 살아났으며 어떤 목적으로 다시 이들 앞에 선 것인지가, 아주 재미있게 펼쳐진다. 읽어보시라. 번역한 문장도 나무랄 데 없어 읽기에 아주 좋다. 물론 우리네 살림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사건들이 친구 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건 우리네 살림을 그대로 쓰면 소설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도 주인공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않나.
 “잘 해주면 이것들이 아주 날 바보로 생각한단 말이야!”
 “오냐 오냐 하면 사람을 우습게 봐요!”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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