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의 사랑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앙리 뱅자맹 콩스탕 드 레베크. 1572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 때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위스로 도망한 위그노 교도 드 레베크de Rebecque 가문의 자제. 당연히 귀족이며 엄마 배에서 나올 때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나왔다. 1767년생이니까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지던 1789년에 생일이 아직 안 지나 스물한살. 열여섯 살 때 독일의 개신교대학에 다닐 때 유부녀와 불륜을 저질러 에든버러로 유학한 전력이 있으며 이때 버릇은 나이 들어 연장이 말을 안 들을 때까지 쉼 없었다. 다시는 콩스탕의 책을 읽을 이유가 없으니 이이의 바람기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지 마시라. 평생 딱 한 편의 소설을 썼다. 그게 바로 <아돌프의 사랑>이며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쓴 정치가. 1794년 로베스피에르 사후 (비겁하게) 공포정치가 종식된 다음부터 정치판에 뛰어들어 나폴레옹하고 의견이 갈릴 시기도 있었지만 나중에 보나파르트가 워털루 전투에서 쌍코피 흘릴 때까지 지속한 백일천하 당시 하필이면 나폴레옹과 죽이 맞았던 인물. 이때도 콩스탕의 변신은 눈부셨다. 나폴레옹이 엘베섬을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입에 거품을 물고 그를 탄핵하는 글을 발표하더니 파리로 잠입해 정권을 다시 잡는 순식간에 안면을 바꿔 전심전력을 다해 나폴레옹을 보위하기로 약속했단다. 근데 (내 생각에) 웃기는 건 1815년에 부오나파르테가 패전하자마자 콩스탕이 런던으로 도피를 한 건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전히 부르봉 왕가의 루이18세(마리 앙트와네트의 시동생)이 왕좌를 깔고 앉은 왕정복고 시기인 1817년에 파리로 돌아와서 하원의원을 해먹었다는 거. 하긴 뭐 위정자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 이후 자유주의자를 자처해 루이18세의 뒤를 이은 샤를10세하고는 또 척을 졌지만, 대신 노동자, 학생 등한테 인기를 얻어 죽은 다음에 국장까지 해 잡쉈다지 뭐야? 대중은 그리 현명하지 못하거든. 어쨌거나 자기 한 평생은 기깔나게 살았다.


  작품은 뭐 그냥 사랑 타령이다. 아니, 사랑도 아니다. 1806년에 초고를 쓰고 1816년에 완성해 출간한 책. 작품의 주인공 아돌프가 이자벨 드 샤리에르 노부인이 죽은 1805년에 열일곱 살이었으니 스물여섯 살이면 1814년. 그러니까 1810년 경부터 14년까지가 시간적 배경이다. 장소는 주로 독일의 소도시 D와, 아돌프의 아버지가 선제후 궁정의 장관으로 근무하는 선제후국에서 잠깐, 보헤미아의 지방도시에서도 잠깐,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 저택. 딱 봐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당시 세계에서 제일 막강하던 프랑스 군을 이끌고 마당쇠가 싸리비로 빗질하듯 독일과 러시아를 짓쳐나갔다가 애먼 병사들만 수만 명 얼려 죽인 전쟁 앞뒤 몇 년이다. 근데 그딴 거 아무 신경 쓸 필요 없다. 등장인물 가운데 전쟁과 국민의 고통에 관심있는 인간은 한 놈도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없는 것들, 천한 것들만 죽어 나가는 법이다. 있는 분들, 높은 양반들은 전쟁과 관계없이 사랑타령만 해도 시간은 능률능률 흘러간다.

  아돌프. 좋은 이름인데 1930년대부터 이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 아돌프 말고 이 책의 주인공 아돌프는 22세에 괴팅겐 대학을 졸업하고, 선제후 궁정의 장관인 아버지의 권유로 유럽 여행을 즐기면서 식견을 넓히기도 했다. 아버지가 외동아들인 아돌프를 얼마나 아꼈는지 언제나 어떤 요구도 들어주고, 문제가 생기면 부탁을 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그렇다고 부자 사이가 그리 원만했던 건 아니다. 아돌프가 보기에 아버지는 처음엔 공감의 웃음을 보이다가 얼마 안 가 결국 대화마저 끊어버리는 냉철하고 신랄한 관찰자였다. 이런 부자 사이는 대부분 아버지의 잘못이기는 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예 눈꺼풀 안에 넣고 다니며 키울 생각이었는지 세상에 모자란 거, 아쉬운 거, 하고 싶은 데 못하는 거 하나 없이 사는 게 습관이 되어, 모든 것을 자기 요량에 한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삐지는 외골수 내성적 성격으로 고착된 것처럼 읽힌다. 에잇 씨앙. 나한테도 그런 아버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그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 공평한 게 어디 있니?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대학을 졸업한 아돌프는 집안 친척인 P백작이 초청을 해 괴팅겐을 떠나 잠시 작은 도시 D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P백작은 D시에서 폴란드 태생의 첩 엘레노르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살았다. 아마 본처도 살아 있을 거 같다. 죽어도 이혼해주지 않으면서.

  엘레노르가 어떤 여자인가 하면, 폴란드의 상당한 귀족 가문에서 무남독녀 따님으로 태어나 지적 소양은 평범한 수준이더라도 교양과 몸가짐, 고상한 기품과 자존심 같은 덕성을 넘치게 갖추었는데, 폴란드에서 내란이 생겨 부친은 추방당하고, 어머니와 엘레노르만 프랑스로 피난을 했다가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19세기 초 파리에서 여자 혼자 살 수 없어서 P백작의 첩으로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조금 후에 알게 되겠지만 그게 사실이다. 첩실로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 P백작이 파산을 하고 법적으로도 구속 위협에 처했을 때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엘레노르는 헌신적으로 P백작의 곤경과 가난을 함께 하면서 용기와 이성으로 적극적으로 도와 백작의 재산을 일부나마 건져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재산 소송 건으로 D시에서 2년간 체류 예정이다. 만일 승소하면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을 확신하며, 조금 지나면 정말로 승소해 백작은 자기 재산을 온전하게 다시 찾는다.


  아돌프는 작은 도시에서 딱한 수준의 촌스런 사교계 사람들과 어울리려니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눈에 띄는 젊은이가 한 명 있어서 말을 트고 지냈는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사교계에서 그나마 괜찮은 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오랜 노력 끝에 부인의 코르셋 끈을 푸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성공담은 물론이고 그간의 속사정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것조차 얼마나 호기심을 부추기던지. 아돌프는 여태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지난 세월이 갑자기 후회스러웠다. 그때까지 이성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게 소위 모태솔로라는 말인지, 단지 연애 경험만 없다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아돌프 앞에도 새로운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허영이 깃들기는 했지만 새로운 욕망이 불끈불끈 솟아나는 거 같았다니까.

  그럼 이제 다 나왔다. 괜찮은 부인과의 불륜. 그리고 P백작의 첩실인 엘레노르에 대한 원고지 분량. 거기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결혼만이 진지한 남녀 관계이라서, 결혼 문제가 뒤따르지 않는 한 여자란 손에 넣었다가 때가 되면 떨쳐버려도 아무 불편이 없는 존재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19세기 초 귀족 집안의 연애관이란 게 이랬던 모양이다. 불륜이건 그냥 하룻밤 연애건 간에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대충 즐기다가 관계를 정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

  근데 사실 이건 유부녀 마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혼인상태이니까 상대가 미혼의 젊은 남자가 됐건, 유부남 부르주아 귀족이 됐건, 아니면 다른 건 몰라도 정력 하나는 끝내주건 간에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다가 사태가 여의치 않으면 안면몰수하고 그냥 걷어 차면 되는 거니까. 참 재주들 좋았어, 그지? 애라도 덜컥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 모양들이었는지 말이야. 유전자 검사도 하다못해 혈액형 판별법도 없던 시절에. 하긴 그래서 더 편했을 지도 몰라.

  이렇게 아돌프는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보다 열 살 연상의 엘레노르 여사한테 대시하기 시작한다. 아이 둘 있는 엘레노르가 척 보니까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애송이 새끼가 감히 자기 비단 스타킹을 벗기려드는 꼴이 가당치도 않아서 이리 빼고 저리 뺀다. 그럴수록 아돌프는 점점 몸이 달아가고, 급기야 이게 진짜 사랑인 것으로 오해해서 이젠 엘레노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고, 잠을 안 자도 졸립지 않은 반 마취상태로 접어든다. 젊은 남자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을 죽자사자 덤벼드니 엘레노르 역시 아돌프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줄로 착각해서 이젠 자기 역시 아돌프를 사랑하는, 사랑해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네, 싶을 정도로 푹 빠져 버린다.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뻔한 결말이지. 당연히 비극.

  이제 할 거 다 하고, 날짜도 벌컥벌컥 지나니까 젊은 만큼 변덕스럽기도 한 아돌프는 어느새 슬그머니 엘레노르한테 물리기 시작하는 반면, 엘레노르는 날이 갈수록 아돌프에게 목매달기 시작한다. 이렇게 둘은 사랑에서 엘레노르의 집착과 아돌프의 질림으로 변질되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부터 우유부단하기에 세상 둘째가 아쉽던 아돌프가 말끔하게 정리할 주변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엘레노르는 아돌프를 위하여 남자 버리고, 두 아이까지 몽땅 버리고, 백작이 되찾은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자발적인 제안도 물리치며 아돌프, 오직 아돌프를 향해 강한 편집 증상을 보이고 있는 비극적 판국에, 독자는 읽기가 가면 갈수록 지긋지긋해진다.

  사랑? 그거 잘못하면 갈수록 비극이라니까.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5-07-21 0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인줄 알면서도 하는게 사랑이지요?^^

Falstaff 2025-07-21 07:39   좋아요 1 | URL
ㅋㅋㅋ 글쎄 그게 뭐가 좋다고 그리 목을 맸는지 말입죠, 크....

젤소민아 2025-07-22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마지막 문장에서 감탄했어요~~멋진 문장입니다!

Falstaff 2025-07-22 05:18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우주비행사 피륵스 렘 걸작선 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전대호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

  스타니스와프 렘은 이번에는 피륵스Pirxie라는 괴상한 이름의 우주 비행사를 데려왔다. 20대 초반 우주비행학교 생도 시절부터 시작해서 40대 초반의 관록 넘치는 중견 비행사가 될 때까지의 열 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책 《우주비행사 피륵스》.

  연이어 렘의 소설집을 읽는다. 《사이버리아드》,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에 이어 《우주비행사 피륵스》. 다음에 읽을 렘 역시 소설집 《로봇 동화》이다. 그리고 렘은 좀 쉬어야겠다. 《사이버리아드》를 읽으면서 작가의 우주적 유머에 너무 매력을 느껴 와다닥 해치운 기분. 《우주비행사 피륵스》에서도 피륵스가 생도 시절에 학교와 현장에서 치기어린 재치 만땅의 행적이 나와서 이 책 역시 독특한 유머와 장난기가 가득한 재미있는 책이겠구나, 짐작했다가, 천만의 말씀, 아니었다. 내가 여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여자는 모르겠고, 남자의 20대 초반 시절, 똘끼 넘치는 시기에 그랬다는 거고,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비행사 면허증을 따서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 우주운송업체의 항법사, 비행사, 그리고 선장의 직을 맡아, 직에 걸맞게 (결과적으로) 훌륭한 임무를 수행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주 순양함 무적호>와 《사이버리아드》를 읽으면서 나는 스타니스와프 렘이 인간보다는 기계와 인공지능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어떤 의미에서 단정해버렸던 것 같다. 그리하여 철저한 디지털 주의자이라고 여겼던 작가가 이번에는 또 인간의 직감, 직관, 본능, 그리고 경험과 역지사지의 법칙 즉 ‘입장 바꿔 생각하기’의 지혜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도대체 렘 선생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듯.

  제일 앞에 실린 작품이 <시험비행>. 졸업반인 4학년 생도 피륵스가 이제 학기를 마감하면서 시험비행용 우주선을 직접 운전해야 한다. 피륵스는 자신을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괜찮은 생도 무리에 들지 못한다. 키만 훌쩍 컸지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뭐 그저 그런 수준. 그래서 일인용 우주비행선에 탑승하기 전에 다른 생도들이 거의 다 그렇게 하듯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커닝페이퍼를 만들어 소매 속에 숨겼다.

  임무는 우주왕복선 두 대를 인도하여 삼각 편대로 달에 접근, 루나 패스파인더처럼 일시적 적도 궤도로 달에 진입해 인도된 두 우주왕복선의 궤도가 제대로 진입했는지 확인한 후 독자 결정 항로와 가속도로 궤도로 이탈해 귀환하는 것이다. 본문은 더 복잡하다. 요약한 것이 이 정도.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주왕복선 선두에 서서 왕복선 두 대를 달 궤도까지 인도해주고 혼자 돌아오는 것.

  근데 무슨 커닝페이퍼가 필요하냐고? 우주선 앞에 계기판이 얼마나 많고, 화면이 또 얼마나 많은 지 모르시지? 나도 모른다. 중력가속도 g가 9.8미터*초제곱인데 시험비행에서 유지해야 할 가속도가 2.2g, 앞으로 비행사를 하면서 은퇴할 때까지 가장 가혹한 조건에서는 거의 6에서 7g까지 경험해야 할 터이니 영화 같은 데서 낭만적으로 우주 공간을 보는 유리창 같은 걸 기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아마도 스크린이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스크린을 포함한 모든 계기판과 관련 지식을 생도가 전부 알 수는 없을 테니 커닝페이퍼를 가지고 탑승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생도 사랑이 참 자상하다.

  이제 정말로 우주비행선에 탑승해 복잡한 통로를 거쳐 조종실로 이동해 드디어 조종석에 앉았다. 지름 3미터의 유리 고치라고 표현하는 곳. 조종석과 조종간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하는데 당연히 생략한다. 하여간 복잡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2.2g로 발진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슴과 두개골이 고무의 탄력과 유사한 압력에 짓눌리면서 시야가 어두워진다. 가속도 때문에 그렇다. 전투기가 5g를 넘으면 조종사들이 간혹 기절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셨지? 그러나 시야가 어두워지는 건 순간, 잠시 동안. 무자비한 압력이 전신을 계속 누르기는 하지만 시각은 점차 회복되고 모든 비디오 스크린들이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피륵스는 탁, 기겁을 한다. 커닝페이퍼가 어디 있지? 소매 속에 숨겨놓은 것이 가속도 때문인지 툭 떨어져 조종석 밑에 끼어 버렸다. 그런데 이 순간 정상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이번엔 -3g로 역가속을 해야 했다. 성공. 이제 우주선은 원래 지점 부터 고도 2400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다.

  바로 이때 귀에 들리는 붕붕 소리. 크게 들리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붕붕 소리. 오, 주여. 합선인가? 화재? 공산권 우주비행학교라 예수도 믿지 않으면서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드디어 소리의 주인공이 눈 앞에 다가왔다. 우주생명체? 이때의 피륵스를 우주인이라고 하면 이 생명체 역시 우주생명체라고 할 수 있겠지. 거대한 파리 한 마리. 지구에서 피륵스 모르게 피륵스와 함께 우주선에 탑승해 우주생명체가 되어, 이제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라 믿지 않을 수 없는 추한 녹갈색의 큼지막하고 성가시고 멍청한 동시에 약삭빠르고 교활한 파리.

  앗. 그런데 파리 한 마리가 아니네? 순간적으로 번식했나? 이렇게 잠시 생각했다. 확실히 큼지막한 파리 두 마리다. 그런데 비행목적상 무려 4g로 가속했다가 다시 2g로 감속하는 별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이 두 마리의 파리가 교미까지 해버린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지금은 모르겠고, 20세기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장의 차들은 거의 폐차 직전의 고물이었다. 생도를 위한 시험용 우주선 역시 고물 중에서도 상 고물. 거의 폐선 직전 수준이었을 것임은 20세기를 겪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터. 피륵스가 교미 중인 파리를 바라본 순간, 하필 이 파리들이 피복이 벗겨진 회로,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앞발을 턱 올려놓고, 흠흠, 즐기고 있는 거였다. 이 왕파리들이 만일, 진짜로 만일 몸을 조금 흔들어 합선을 일으키면 회로 차단기가 전류를 끊을 터이고, 파리는 감전사할 것이며, 그러면 다시 전력이 복구될…희망의 몰아지경에 빠지는 피륵스. 희망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일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갔다.

  섬광이 번뜩하고, 등이 꺼지고, 일시적 정전이 1초도 지속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퓨즈가 나가면서 완전한 암전. 다시 전력이 들어왔고 또다시 암전. 눈을 부라리니 두 전선 사이에서 타 죽은 파리들. 이제 최소 전력만 가지고 운전해야 하는데, 이 모든 자동조종장치가 전력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니 별 도리가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원자로는? 틀림없이 자동 조절장치를 가지고 있을 터. 근데 확실해? 피륵스는 확신할 수 없다. 모든 자동장치를 무시하고 조종실 안에 추한 녹갈색의 큼지막한 파리가 두 마리씩이나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 지금 피륵스 앞에서 섹스를 즐기다가 까맣게 타 죽어버렸지 않은가. 진퇴양난, 일촉즉발, 누란의 꼭대기에 선 피륵스. 이걸 어떻게 할꼬? 에잇, 모르겠다. 비상사태 발생이니 이제 남은 건 수동조종만 남았다고 판단한 우리의 주인공 피륵스. 그는 과감하게 조종석의 벨트를 풀고 일어나 수동 조종간을 움켜쥔다. 동시에 환경은 무려 5g 이상으로 치솟는 바람에 이리저리 부딪혀 입술이 터져 유혈낭자한 부상을 입은 피륵스. 그는 끝까지 수동조종간을 잡아 죽기살기로 수동 운전을 이어나가 안정된 상태로 만들어낸다. 성공!

  이제 보고를 해야 하는데, 달 기지에? 아니면 지구의 교장한테?

  이때 눈에 들어오는 또 한 마리의 파리. 그리고 난데없이 등 뒤에서 문이 열린다. 등 뒤엔 문이 없는데 갑자기 그게 열리면서 누가 들어오느냐 하면, 교장. 이게 전부 시뮬레이션이었던 것. 파리도, 파리가 교미를 피복이 벗겨진 전선 위에서 교미를 하는 것도. 합선과 정전과 비상상황까지 모두 다. 교장이 칭찬한다. 피륵스, 잘 했어! 비상상황에서 자동, 즉 컴퓨터 또는 AI를 믿지 않고 수동으로, 인간의 직감과 직관, 그리고 본능적으로 대처해 생존에 성공한 것이 교장의 눈에는 기특했던 거였다. 실제로 매사에 뛰어난 동료 생도라서 피륵스가 아니꼬워했던 모범생 보에르스트는 물을 먹었던 거다.


  어쩐지. 이제야 저 앞에서 교수 불펜이 피륵스한테 한 마디 했던 것이 생각난다.

  “컴퓨터는 인간의 작품일 뿐”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

  “컴퓨터도 고장 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 《우주비행사 피륵스》에서는 정상 상태에서 벗어난 인공지능이 인간과 인간의 구조물을 방해물로 착각하는 일이 몇 번 발생하기도 한다. 완벽을 기하는 프로그래머가 말 그대로 완벽을 기하기 위하여 컴퓨터에게 필요 이상의 자료, 모든 자료를 기억하게 만드는 바람에 오히려 인간과 우주선을 파괴하는 경우. 채광을 위해 개발한 노동 로봇이 암괴가 무너져 충격을 받아 인공지능이 오작동해 인간을 살상하는 경우도. 이때 사건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이미 생도시절을 벗어나 관록 붙은 베테랑이 된 영웅 피륵스는 자신의 경험과 입장 바꿔 생각하기로, 물론 조금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만,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68년. 아직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번째 인간의 발자국을 찍기도 전이다. 그럼에도 스타니스와프 렘은 달 기지와 화성 기지까지, 무척 생생하고 과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낭만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사실과 과학적 추리와 상상력에 입각한 달과 화성 기지. 읽는 내내 우리나라 작가 복거일의 <파란 달 아래>가 생각났다. 어떻게 달라도 이렇게 다른 달 기지, 화성 기지를 만들었을까? 1968년에.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7-18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주비행사 피륵스는 좀 별로였어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좀 뒤죽박죽인 느낌이었는데 책을 읽어내기가 상당히성가셨다는 느낌이에요.
sf를 통해 현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스타니스와프도 진짜 매력적인데 백미는 이욘티히의 우주일지였어요. 최고!!! 이욘티히 읽으시고 꼭 글도 남겨주시고 그러고 쉬세요. 네?????

Falstaff 2025-07-18 15:50   좋아요 0 | URL
옙 다음 렘은 무조건 이욘티히입니다!
저는 천방지축 피륵스가 나이 들면서 연륜이 쌓여 생도시절과 달리 멋진 선장으로 변하는 게 나쁘지 않았는데요. ㅎㅎ 감상이 다 똑같으면 재미 없잖아요. ^^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독일계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의 딸로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의 소설가, 단편소설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숱한 대학의 객원교수 기타 등등. 1951년 토끼띠 여사님은 눈치로 봐서 독신으로 평생 살고 있는 모양이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위키피디아에 가족 이야기가 없고, 작품 속에서도 주인공 시그리드 누네즈 역시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독신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지 않겠느냐 하는 것. 이 작품을 쓸 때 누네즈의 나이 예순아홉. 원래 제목은 <취약자들The Vulnerables>인데 우리나라 출판사 열린책들이 작가의 양해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해 봄의 불확실성>이라고 바꾼 것 같다. 제목이 폼 나지? 책 속에서도 나온다. 우리말 제목은 버지니아 울프의 1937년 작품 <세월>의 첫 문장 “변덕스러운 봄이었다.”를 조금 바꿔서 가져왔다. 역자 해설에서 민승남은 이 문장을 “불확실한 봄이었다.”라고 번역했고, “취약자들”보다는 어감이 좋았는지 제목으로 뽑았다.

  소설책 읽으면서 책 제일 뒤에 몇 페이지 보탠 “역자 해설”을 먼저 읽는 독자는 몇 명 없는 거, 있기는 있겠지만 지극히 드물다는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지? 표지에 영어 단어 The Vulnerables가 쓰여 있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의학 전공자 말고 이과생 가운데 아는 사람들 몇 명이나 돼? 그렇다고 사전 찾아보기도 귀찮아 그냥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말 제목 “봄의 불확실성”에 집중할 수밖에. 개뿔이나.

  아예 처음부터 The Vulnerables, 취약자들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훨씬 좋았을 듯. 그렇다고 별 셋짜리가 다섯 개로 올라가진 않겠지만.


  작품의 공간은 2020년 뉴욕. 화자 ‘나’의 이름은 시그리드 누네즈. 작가 본인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이름만 가져왔지만 픽션 인물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편하다. 하여간 화자 ‘나’가 2020년에는 예순아홉 살. 당시 미국을 지배하던 골통 대통령의 이름이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는 훗날 자기도 COVID-19에 걸렸지만, COVID 마저 트럼프 표 공갈포만 때리면 그깟 마스크와 거리두기 같은 하찮은 짓 없이도 알아서 꼬랑지 내리고 스르륵 사라질 줄 알았다. 기억 나시지? 우리나라도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이 TV에 나와서 COVID 박테리아는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핵산 덩어리일 뿐이라서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말한 적 있다. 물론 심각해지기 전이었던 초기 발병시기에 시민들이 과도한 공포에 휩쓸리지 말라는 취지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래도 이후 마스크 공급과 거리두기, 감염자에 대한 적극 격리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펼쳐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양호하게 위기를 넘겼지만 미국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월 참. 몇 년이나 지났다고 벌써 거의 생각나지 않네 그려. 하여간 이런 비상사태가 생기면 죽어나는 건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이다. 뉴욕에서도 고급 주택가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부유층들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도 좋고 인적도 드문 2nd 혹은 3rd 하우스로 피난길에 올라, 고층 아파트에도 한 두 가구만을 위하여 정장차림의 제복을 입었지만 가난한 관리인, 주차요원 등 전원이 근무를 해야 했다. 책에 나온다. 뉴욕 다운타운에도 이제 한 발짝만 더 디디면 일흔 고개를 넘는 화자 ‘나’가 한가롭게 산보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하니 어떤 수준이었는지 딱 접수가 된다.

  시그리드 누네즈가 책에서 말하는 취약자들The Vulnerables의 범위 안에 빈곤층, 유색인이라기보다 비백인들도 포함하지만, 작가와 비슷한 처지인 나이 든 사람들한테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그것도 많이 배우고, 돈도 좀 있고, 작가이거나 아마추어 수준의 시인이거나, 출판인이거나, 그들의 자식 또는 배우자도 포함해서. 그러니 시간과 공간이 COVID-19가 창궐한 시절의 텅 빈 뉴욕 안에서 가난하고 늙은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받았는 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1부에서 취약자들은? 어린시절 뉴욕의 안전하지 않은 동네에 살던 화자 ‘나’를 포함한 여성들인 듯하다. 누네즈가 인용한 아니 에르노처럼 실명을 까는 대신 로즈, 릴리, 바이올렛 같은 소녀들. 이 가운데 릴리가 제일 먼저 결혼했고, 당연히 제일 먼저 출산했으며, 여기까지면 좋은데 제일 먼저 죽었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 존 바에즈와 주디 콜린스의 뒤를 잇는 가수가 되는 거였을 만큼 목소리가 좋았지만 노래는 정말 못했다. 엄마 없이 자란 어린 시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비구름 같은 태도를 지녔던 릴리. 엄마가 정말 없었던 건 아니고 주기적으로 정신병이 발병해 수시로 입원을 했으며, 집에 있더라도 범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심하게 자식을 방치했다. 그리하여 저절로 삐딱한 성격을 지녔다가 대학 시절에 자기보다 두 배는 더 나이가 든 남자와 지내며 성격도 좋아지고, 공부도 잘하게 되고, 좋은 남자 만나 건강한 아이 낳고 잘 살다가 먼저 죽은 거다. 자기 가족과 평생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 다만 남편 한 명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해 숱한 남자와 관계를 맺긴 했어도.

  ‘나’는 로즈, 바이올렛 또 누구와 릴리의 장례식 다음날 식당에 모여 앉아 당연하게 페미니즘에 입각한 대화를 이어간다. 나이든 여자들의 페미니즘. 흥미롭다. 출판사 편집인으로 일하는 바이올렛이 말한다.

  “위험한 남자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문학의 중심이지. 하지만 지금처럼 남자들을 거의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멍청하며 폭력적인 존재로 가차 없이 집중 조명한 시대는 없었어. 과거엔 남자들이 여성 혐오주의자이면서도 훌륭하고 심지어 용감하기까지 할 수도 있었지. (중략) 여자들만 남자를 나쁘게 그리는 것도 아냐. 내가 읽은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 원고에서도, 그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지. 백인 남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노골적인 괴물이 아니더라도 똥 덩어리거나, 실수투성이거나, 패배자거나 비열한이지. 그리고 이제 남성 작가들은 여성 인물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매진하고 있어.” (p.66~67)

  백인 남성만? 이들의 논의는 특히 성직자 같은 특별한 도덕을 요구하는 계급의 남자들의 경우, 신부나 목사가 어린 아이와 함께 등장할 때 작품을 읽으면서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고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60대 후반, 이제 세월을 살 만큼은 산 중년의 여사님들은 남자들 역시 여자와는 다른 방법으로 삶을 만들고 유지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점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나 참, 살다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작가도 다 보네 그려. 별 일이네….


  하지만 이야기가 호화 맨션에 혼자 남은 ‘유레카’라는 이름의 금강앵무를 돌보는 일도 접어들면서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바이러스가 침공한 뉴욕에서 누가 보나 취약자들의 일원이 아닌 ‘나’와 집에 세 채 씩이나 있는 부잣집 외동 아드님이 까다롭고, 지능 엄청 높고, 살기도 오래 산다는 금강앵무 한 마리를 돌보기 위하여 한 집에 살게 되고, 처음엔 물과 기름처럼 어색했다가 점점 의기투합해 서로 뜻을 같이 하는 큰엄마-막내조카 정도의 사이로 개선되는 이야기.

  그래, 그래. 누네즈가 말했듯이 이제 소설에서는 스토리가 증발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일관성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자서전이기도 하고 픽션이기도 한, 하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하는 것도 엄연히 문학작품이며 소설이다.

  그렇지만 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다양한 정보를 제시해야지. 때마침 어제 내가 브레이브스가 쓴 <그리스 신화>를 읽어 딱 말할 수 있는데:

  “격노한 제우스는 ‘아름다운 재앙’ 판도라를 창조해 낸다. 여러 신들이 부여한 매력을 지닌 판도라는 남자들을 파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로부터 여자라는 종족이 시작되며, 악을 행하는 본성을 지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악이다.”

  아닌데요. 제우스 이전의 그리스가 애초부터 알뜰하게 가모장제 사회였다고 신화학자이자 작가인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딱 부러지게 얘기했는데요.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실 아무래도 별 상관없긴 하지만.

  하여간 재미있게 써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 2부로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팍, 무드 상실, 누네즈가 하도 자기 입만 털어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으니….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07-17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7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리스 신화 1 - 신의 시대 그리스 신화 1
로버트 그레이브스 지음, 안우현 옮김, 김진성 감수 / 알렙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주책 심하고 질투도 많은 그리스의 숱한 신들에 관해 새삼스러운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로버트 그레이브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레이브스Graves, 이 음산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꼴랑 하나만 읽었음에도 독특한 인물을 독특한 시선으로 조망한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한 방에 반해버렸다. 그때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후 그레이브스의 다른 책을 구할 수 없어 아예 잊고 살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이 깊게 영향을 받은 선배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와 더불어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거론하는 것에 기꺼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이를 검색해보니 2년 전에 <그리스 신화>를, 올해에 <호메로스의 딸>을 번역 출판했다는 걸 알고 득달같이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이제 막 첫 권 <그리스 신화1 – 신의 시대>를 끝마쳤다. <그리스 신화2 – 영웅의 시대>와 <호메로스의 딸>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이 되어야 읽을 것 같다.

  나는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직업을 그냥 작가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시인, (역사)소설가, 비평가, 고전학자, 신화학자를 겸했다. 살면서 장교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고 전쟁 말기에는 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감에 걸려 스틱스 강변까지 다녀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면서도 쉬지 않고 150편에 육박하는 집필활동을 펼쳤다. 같은 그리스 신화를 썼다고 하더라도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쓴 소설가의 그리스 신화는 당연히 <…클라우디우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그리스 신화1 – 신의 시대>는 소설가가 아니라 신화학자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쓴 신화 해설서이다.

  책은 우리가 아는 그리스 문명을 만든 그리스 사람들이 에게해와 섬에 도착하기 전부터 살고 있던 신석기 시대 선주민을 일컫는 펠레스고이족族의 창조 신화부터, 올륌포스 신들의 탄생과 이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과정, 신과 인간의 교류를 거쳐 크레테의 왕 미노스와 그의 일가, 그리고 아테나이의 왕 테세우스까지 다룬다. 구성은 먼저 해당 신화를 소개하고, 이 신화가 등장하는 고전 작품 등의 출처, 이어서 진지한 신화학자로서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신화 해석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이런 구성이다. 신화의 내용은 일목요연하게 주제별로 나열되어 있다. 사실 이 신화 가운데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거의 없다. 다만 꽉 짜인 규격 속에서 그리스 신화를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첫 독서였다는 것이지 유럽과 아메리카 문학, 음악, 미술 작품을 읽고, 듣고, 보며 조각조각 알게 된 내용이었다. 그런 작품을 겪으며 호기심을 느껴 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거의) 다 한 번 이상은 자세하게 읽어본 내용들. 다만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이 새로웠다.


  예컨대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기러기로 몸을 바꾸어 도망가는 네메시스를 겁간하여 두 개의 알을 낳아 그것을 레다가 가져다 부화시켰다거나, 다른 버전으로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직접 레다와 어울려 알을 낳았는데 거기서 헬레네, 카스토르, 폴뤼데우케스 그리고 버전에 따라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나왔다는 이야기. 그레이브스는 제우스 등 올륌포스에서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고 마시는 신들은 헬레니즘 문명을 만든 그리스인들,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세력을 일군 헬레네스를 상징한다. 당시 그리스는 씨족, 부족, 그리고 후에 도시국가 형태를 지니고 있었는데, 신화 속에 숱하게 등장하는 신들에 의한 겁간이 헬레네스들이 다른 씨족, 부족, 도시국가를 점령한 것을 신화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들에 의하여 강제로 관계를 맺은 여성들은 거의 빠짐없이 세 명의 후손을 생산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초기 그리스는 가모장제 사회였단다. 그레이브스가 자주 인용하는 작품으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명저 <황금가지>가 있다. <황금가지>의 부족장/왕들은 대개 제사장을 겸했으며 특히 비와 바람 등의 천기를 관장하는데 이들의 능력이 한계를 보이면 부족장/왕을 살해하고 후계자로 자리를 잇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레이브스는 그리스 시대도 마찬가지였다고 단정한다. 그러면 그리스의 왕들은 얼마나 오래 왕좌에 앉을 수 있었을까? 즉 시간을 측정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태양력을 한 단위로 하려면 단위를 측정하기 위하여 365일과 1/4일이 필요하다. 반면에 달의 공전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으로 측정하려면 30일이면 충분하다. 훨씬 쉽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 시대에는 달이 차오르는 시기(처녀)와 꽉 찬 만월 시기(뮤즈), 그리고 지는 시기(노파)로 구분했다 하며, 배란에 따른 여성 몸의 변화와 일치하는 등을 근거로 가모장제가 상당한 기간동안 지켜져 왔다고 주장한다. 문명이 조금 발달함에 따라 열두번과 열세번 달이 변하는 사이에 1년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열세번의 달이 변하면 왕을 살해하는 일종의 제의식을 벌일 수 있었다고.

  이렇게 유지하다가 왕의 권력이 점점 강화되면서 소위 큰 1년이 등장한다. 태음력과 태양력이 맞는 시기로 약 100번의 월이 지나는 기간, 8년에서 9년을 큰 1년이라 하여 왕의 임기로 삼았다가, 그것도 나중에는 왕이 직접 죽는 것이 아니라 미소년을 골라 딱 하루 동안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해서 다음날 진짜 왕 대신 제물로 죽음을 맞게 하고 진짜 왕은 다시 큰 1년 동안 새로운 임기를 맞았다. 이상한 방식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수긍이 간다. 한 사람에 의한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그리스 사람들. 일찍이 도편추방이라 해서 인기투표를 해 1등을 먹은 정치가를 아예 도시에서 추방해 버리기도 한 이들인데 한 왕을 오래 자리에 두고 싶어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 즉 그리스 역사에 기반한 신화가 <황금가지>식 인류학과 매우 유사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1 – 신의 시대>가 다루는 시기가 기원전 3천년부터로 <황금가지>의 중요한 무대인 신∙구석기 수준의 미문명 지역과 많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고대 이전, 그러니까 태고의 그리스 종교에는 남자 신이나 남자 사제는 없었고 오직 우주적 여신과 여사제만 있었단다. 여성이 단연 지배적인 성이었으며 남성은 두려움에 떠는 희생자에 불과 했단다. 아직 생명의 기원에 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나운 서풍이나 북풍에 엉덩이가 노출되면, 콩을 먹거나 벌레를 삼키면, 심지어 제우스와 다나에의 교합에서 보듯이 새는 지붕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물에 아랫도리가 닿기만 해도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기에 전쟁이나 희생을 제외하면 남성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족보는 모계를 기준으로 했고, 아버지 또는 남근을 나타내는 뱀은, 훗날 신성을 가진 동물로 격상하기는 하지만 죽은 이의 화신으로 여겼다. 이 가운데 ‘에우뤼노메’는 달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여신에 대한 호칭으로 수메르 식으로 ‘이아우’였으며 나중에 팔레스타인으로 넘어가 천지 창조자인 ‘여호와’가 되었단다. 즉 기독교의 여호와도 남성신보다 여신에 더 가까웠다는 그레이브스의 주장. 1955년에 영국인이 이렇게 발언할 때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아리아드네, 미노스의 미궁에서 소대가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때려 죽인 테세우스를 도와 미궁에서 탈출시키고 함께 낙소스 섬에 도착했으나 테세우스한테 바람맞고 디오뉘소스한테 시집간 아리아드네의 뒷 이야기. 포도주의 신이자 광란의 축제를 즐기는 디오뉘소스의 아내인 아리아드네는 크레테의 달의 여신으로 추앙받으며 포도알처럼 줄줄이 오에노피온, 토아스, 스타퓔로스, 타우로풀로스, 라트로미스, 에우안테스 등을 낳아, 키오스 섬, 렘노스 섬, 트라케 반도 등지에 헬라스 부족을 퍼뜨리게 하고 자신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목 매달아 죽었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특히 신화 속이라면 더.

  신석기 시대 수준의 문명에서 청동기까지 왔고, 아직 철기 시대는 도래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쇠를 사용해 특히 왕가의 무기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 철을 채취하지는 못했다. 어디서 구했느냐 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석 덩어리. 당연히 무지하게 귀한 것이기도 했다. 가공하지 않은 철광석 덩어리가 크레테 섬 고대 도시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태라코타 여신상, 조개껍데기, 제물을 담는 그릇 옆에서 발견되었단다. 초기 이집트 철은 모두 운석에서 뽑은 것이라서 니켈 함량이 높아 거의 녹이 슬지도 않았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이어서 난데없이 “켈미스가 레아를 모욕한 일로 인해 가운뎃손가락에는 디기타 임푸디카digita impudica라는 이름이 붙었다.”라는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왔을까? 레아가 대장장이의 후원자 여신이라서? 근데 가공하지 않은 철광석 덩어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하여간 역자 안우현은 각주를 달아 친절하게 “현대의 가운뎃손가락 욕은 그 연원이 그리스까지 올라가는 셈이다.”라고 설명해주었다. 흠. 그렇군.

  소개한 것 말고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들어 있다. 533쪽에는 보름달 아래 물개 가죽을 뒤집어쓴 여자들이 가죽을 벗고 나와서 알몸으로 모래사장에서 춤을 추는데, 한 영웅이 바위 뒤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물개 가죽 하나를 숨겨 이것의 주인인 여자를 아내로 삼고 아이도 낳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식 셋을 나을 때까지 참았어야 했건만 둘을 나았을 때 부부싸움을 거하게 하던 중, 여자가 물개 가죽을 우연히 발견해 얼른 뒤집어쓰더니 헤엄쳐 달아나 버렸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거의 똑같다.


  하나만 더 소개하자.

  쌍둥이 아들인 아가메데스와 트로포니오스는 아폴론이 델포이 자기 신전에 몸소 놓은 주춧돌 위에 돌로 문지방을 쌓았다. 아폴론이 기특하게 여겨 신탁을 내렸다.

  “엿새 동안 즐겁게 살고, 세상 모든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거라. 그리고 일곱 번째 날이 되면 너희 들 심장이 바라는 것을 얻을 것이다.”

  일곱 번째 날, 둘은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단다.

  “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은 요절한다.”

  잘 죽는 거, 웰 다이잉well dying은 지극한 복이다. 그리스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무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작품집.

  “입 속”, 하면 뭐가 생각나? 두 말 할 것 없이 그냥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의 시 안에서 ‘입 속’에는 정말로 ‘검은 잎’이 든 건 아니잖아?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은 스무 살 청년 시인이 용기가 없어서인지, 차마 말로 하기에는 너무 참담해서인지, 마음은 있지만 내뱉기에는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선지, 하여간 입에서 나오지 못한 말, 주장, 이야기였지 정말로 잎맥과 그물맥을 채운 조직에서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의 잎을 뜻하는 건 아니었는데, 슈웨블린의 “입속의 새”는 정말로 깃털과 부리와, 발톱과, 얇은 맨다리를 가지고 있는 작은 새다. 부리와 깃털을 단 새를 입에 물고 있다면 물고 있는 주체는 그럼 동물? 아니다. 사람이다.

  왜? 날 것을 새 잡아먹는 사람 처음 봐? 흠. 한 고조, 유방의 작은 동서 번쾌가 유명한 홍문의 잔치에 등장해 산 닭을 자기 방패에 올려놓고 칼로 쑥덕쑥덕 자른 다음 날 것으로 삼켜 항우 측근 장수들의 암살 의지를 꺾어버렸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로 부리와 털과 똥 묻은 발톱을 달고 있는 살아 있는 닭을 털도 뽑지 않고 육회로 즐겨 자신 양반은 한 고조의 저 먼 후손, 증산정왕의 수백명에 달하는 유전자 보유자 가운데 한 명인 유비의 의동생 장비였다. 그들과 사만타 슈웨블린이 주인공으로 만든 소년의 차이는, 번쾌가 사람들 기를 죽이느라 용맹 또는 야만을 과시할 목적이었다면, <입속의 새>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은 새 말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버릇이 들었고, 자기도 새를 먹는 것이 가히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하게 놀랄만한 야만적인 일이라는 걸 알아서 꼭 사람을 등지거나 자기 방에 들어가 혼자서 작은 새를 입에 넣고 오도독, 오도독 뼈째 씹어먹는다. 다 먹은 후에 만족한 얼굴로 뒤를 돌면 입 주위와 손가락에 새 피가 점점이 묻어 있기는 하지만.


  책에 실린 작품 모두 <입속의 새>만큼 엽기적이지는 않다. 어떻게 읽으면 페미니즘 소설 같은 것도 있지만 굳이 페미니즘 작품으로 읽지 않아도 된다. 그저 문자가 드러내는 형태만 따라 읽으면 21세기의 잔혹 우화, 마치 그림 형제가 재림을 했으면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몇 번이나 그림 형제 생각을 했는 지 모른다.

  제일 앞에 배열한 작품 <절망에 빠진 여자들>부터 그러하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펠리시다드. 결혼식을 하러 가는 중인지, 식이 끝나 이제 허니문의 여정이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웨딩드레스 자수에 밥풀 하나가 말라붙은 걸로 보아 결혼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스텝지역. 끝도 없는 벌판. 남편인 것으로 짐작이 가는 그는 펠리시다드를 차에 태우고 스텝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사방 팔백리에 건물이라고는 쓰러져가는 주유소 겸 휴게소 하나. 오래 운전해 지친 그는 휴게소 앞에 차를 세우고, 기름을 채우고 그동안 펠리시다드는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눈다. 눴다. 하지만 너무 오래 화장실에서 지체했다. 복잡한 드레스를 걷어 올리고 속옷을 내리고 오줌을 누고, 화장지 두 칸을 뜯어 뒤처리를 하고, 속옷을 올리고, 드레스를 내리고, 변기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가볍게 세수를 하고, 틀림없이 상당히 지워졌을 화장을 꼼꼼하게 고쳤을 것이다. 눈썹, 색조, 가벼운 파우더, 그리고 립스틱까지. 입술을 몇 번 뻑뻑 거린 다음 화장실에 나오니 그가 없다. 차도 없다. 이거 뭐야? 버림받은 거야? 그가 사라진 도로만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아.”

  어둠 속에 늙은 네네가 말한다. 그들? 잠시 후 밤의 적막이 내리자 길 건너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네네가 말한다. 하도 여러 번 하는 얘기라 최대한 간단하게.

  “남자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당신을 떠나는 거라고. 아무래도 기다림이 남자들을 지치게 만드는 모양이야. 그러면 여자들은 울면서 남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정말로 도로 저편에서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밤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울고, 울고 또 운다고, 네네가 말한다. 이제 펠리시다드도 저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야 하는 거다. 둘이 침울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 동안 다시 차 한 대가 도착한다. 여자가 내려 화장실로 간다. 가솔린을 채운 남자. 잠시 기다리다 화장실을 몇 번 바라보더니 차에 오르고, 시동을 걸고, 그냥 가버린다. 이렇게 남은 여자들이 무척 많다. 이들은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기는 해도 보살펴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감에 따라 오히려 더욱 서로를 미워하고 경원하는 거 같다.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기도 한다.

  조금 후, 다시 차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여자와 남자. 그러나 남자의 용무가 급한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바지 자크에 손을 올리고 화장실을 향해 급하게 간다. 이때 네네가 서둘러 차를 타라고 말한다. 펠리시다드와 네네와 다른 여자들 몇 명도 차에 올라, 남자가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아무 방향으로나 도로를 따라 급하게 출발한다. 그렇게 이 광활하게 갇힌 스텝 지역에서 벗어난다. 이때 펠리시다드의 눈에 차량 여러 대가 급하게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는 것이 들어온다. 남은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혼자 남은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네네가 말한다.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기도 하지만 현대의 엽기성을 그림 형제처럼 우화적으로 이야기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마지막 작품은 분량이 제일 긴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이다. 이것은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역시 현대인의 엽기를 그린 그림 식 우화로 읽어야 제맛이다.

  베나비데스 씨한테는 바퀴 네 개가 달리고, 무릎 높이에 손잡이가 우아하게 솟아 있는, 겉을 갈색 가죽으로 덧댄 튼튼한 여행 가방이 하나 있다. 여행가방? 고유정의 여행가방에 들어간 건? 작은 토막으로 잘린 전남편.

  베나비데스 씨는 꼭 그럴 목적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아내를 칼로 찔렀다. 그는 칼로 찔러 죽인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바이지만, 살인의 동기를 이해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란 점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다음으로 수행한 일련의 일들은 아래와 같다.

  1. 시신을 쓰레기 봉투에 싸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다.

  2. 침대 옆 여행가방을 열어놓고 결혼 29년 만에 죽은 아내를 바닥 쪽으로 밀어 넣는다. 가방 안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삐져나온 살을 마구 쑤셔 넣는다.

  3.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기보다 깔끔한 뒷정리를 위해 피 묻은 침대 시트를 걷어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일을 다 마치고 다시 두어 시간을 기다려 어둠이 내린 거리로 나선 베나비데스 씨는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예술 애호가이자 자신의 의사인 코랄레스 박사의 집으로 향한다. 박사는 파티 중이다. 약속을 하지 않은 베나비데스가 쉽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끈질기게 호출벨을 눌러 파티장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고, 면회를 신청해 딱 5분간 허락을 받는다. 그래서 아내의 시신이 들어 있는 여행가방을 질질 끌고 2층에 있는 박사의 서재로 끌고 가 사실을 고백하지만 박사는 믿지 않는 눈치다. 그냥 약 두 알을 주고 먹으라 하기만. 베나비데스는 약을 먹고 세상 모르게 골아 떨어진다. 수면제였지 뭐. 초청하지 않은 객을 우아한 예술가들 사이에서 교양있게 내다 버리는 방법.

  다음날 아침에 박사를 찾은 베나비데스. 그는 묻는다. 가방이 어디 있느냐고. 차고로 치웠단다. 사실 그 안에 정말로 아내의 시신이 있다는 베나비데스. 그와 박사가 차고로 가서, 베나비데스는 기어이 여행가방을 열어 아내의 시신을 바닥에 부려 놓아야 하는 순간, 경직이 일어난 시신과 이미 부패를 시작한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 박사는 경악한다.

  세상에나! 이런 놀라운 작품이 있나! 이렇게 완벽한 설치 미술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꼬? 그가 베나비데스에게 말한다.

  “베나비데스… 이건 좀 심하네요. 그런데 정말… 정말… 훌륭하군요. 당신은 천재예요. 지금껏 너무 과소평가한 것 같군요. 생각 좀 해봅시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예요.”

  코랄레스 박사가 전화한다.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도노리오 씨. 득달같이 도착한 도노리오는 가방에서 꺼낸 베나비데스 씨의 죽어 부패하기 시작한 아내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조금밖에 새나지 않은 검붉은 피, 거기다가 특히 시취, 냄새에 뻑 가버려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는 예술작품이라고 선언한다. 도노리오는 코랄레스에게 당장 차고에 완벽한 냉장시설을 하라고 요구하고, 이 작품이 설치된 이곳, 차고도 중요한 예술적 가치가 있으니 작품을 미술관에 옮기지 말고 이곳에서 대중에게 공개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 졸지에 천재 예술가로 등극한 베나비데스 씨.

  이제 베나비데스는 만장한 신사숙녀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연설을 했다.

  “제가 그녀를 죽였습니다.”

  열광하는 군중. 이렇게 베나비데스의 죽은 아내는 전설적인 작품 <폭력>으로 이름 짓게 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