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로스 리포트 위픽
최정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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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인천에서 충청도 남자와 서울 여자의 딸로 태어나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옆구리 언덕바지 인성여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도 하필이면 취직하기 힘드는 국문과를 나왔다. 노무법인 사무보조, 편의점 알바, 백화점 캐셔, 논술강사, 환경잡지 사무보조 등 생계형 잡일을 하며 틈틈이 습작시절 10년을 지내다 창비신인소설상을 타 등단한 작가. <봇로스 리포트>를 읽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다. 미안하다.

  고등학교 시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해 <난쏘공>이 그러했듯이 노동자, 여성, 소수자, 그리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회적 약자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는 작가. 음. 그렇군.


  <봇로스 리포트>는? 인조인간 로보트를 말하는 ‘봇’. 때는 2030년대. 인간은 다양한 분야의 로봇을 개발하여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시절을 맞았다. 유소년 돌보미 봇을 필두로 사람이 마지막 길을 갈 때 24시간 노령 환자 곁에서 운신을 도와주고 배변과 배뇨를 아무런 불만도, 피로도 없이 보살피는 봇까지. 그러니까 미래형 “요람에서 무덤까지.”

  2030년대에도 시절은 여전히 후기 천민자본주의 시대. 봇 메이커 주식회사 에니매이트는 초창기 봇 제조사로 주로 애완, 요즘에는 애완 대신 ‘반려’라는 말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애완 동물의 냄새, 털 알러지, 분뇨 등 거추장스러운 일 없이 편리한 건식 애완 동물 봇을 생산, 판매한다. 애완/반려 봇은 말 그대로 기본이 기계이기 때문에 못 만드는 동물이 없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슴도치, 타조, 당연히 한센병 원인균을 보유하지 않는 아르마딜로에서 독 없는 코브라와 코모도 도마뱀, COVID 매개와는 관계없는 박쥐, 악어, 대형 고양이과 동물까지 못 만드는 봇이 없다. 죽여주지? 다만 이 애완/반려 봇의 수명이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 몇 달에 국한하는 아주 짧은 보증기간이 지나면 어떤 경우라도 제조사는 수리해주지 않으며, 만일 누군가 야매로 이 봇을 수리할 경우에 무지막지한 벌금 또는 징역형을 받도록 입법조치까지 되어 있다. 그렇게 막강한 봇 회사들이었다.

  시작은 이런 애완/반려 동물봇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앞에서 말한 생활 도우미형 봇이 탄생한다. 최정화는 온갖 봇들을 다 구현했으나, 유감스럽게 섹스봇, 2010년대 한때 ‘리얼돌’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주드 로가 배역을 한 섹스봇이나 건설현장의 어렵고 덜 좋은 환경에서의 작업을 전담하는 노가다봇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나중 두 가지 경우에 더 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근데 육아봇 또는 과외공부봇 같은 (청)소년용 봇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하고, 가사도우미봇이나 말동무 벗의 주된 소비자인 중장년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데,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수명이 문제다. 인간이라서 기껏 정을 붙이고 이제 흠뻑 빠져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봇이 오작동을 해, 심각한 경우엔 주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날이 오면, 법에 의하여 수리해 사용할 수도 없고, 고쳐봤자 사실 언제 다시 오작동을 할 줄 모르니까 불안한 심정을 여전할 거 같기도 하고, 이젠 주식회사 애니메이트가 아니라 인간봇 전문 메이커 “엘리봇”에 전화를 해봐도 전화상담 전문봇이 하는 얘기는 새로운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하라는 것 말고는 없다.


  이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정든 봇과의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진짜 인간들. 기르던 개가 죽어도 상실감이 보통이 아니던데 하물며 나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 모습의 봇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그걸 어째? 한 순간에 넋이 나가버릴 수밖에 없겠지? 이 신드롬을 “봇로스 증후군”이라 했다. “봇과의 분리에서 연유한 우울 증상.” 여덟 가지의 이런 예를 쓴 것이 이 책이자 단편소설인 <봇로스 리포트>이다.

  저 앞에서 최정화가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다 했는데, 여기서 약자, 수명이 기껏해야 2년밖에 안 되고 수리할 수도 없으며, 수명이 다하면 마치 “사람을 빈 박스에 접듯 접어”놓아 폐기물 처리를 하는 봇은, 내 생각에, 아파트 한 레인당 여섯 마리 이상 짖어대는 개와 여섯 마리에 조금 못 미치는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빗댄 거 아닌가 싶다. 그나마 비록 봇이기는 하지만 인간봇과 비교를 하니 조금 우상향 한 것인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제 읽었는데 오늘 벌써 별로 생각나는 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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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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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매체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한 거 같은데”라고 썼으니, ‘전적으로 그렇다’고 주장하기엔 뭔가 애매하다와 비슷한 수준으로 받아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말해자면, 출판사들이 더 이상 최영미의 시집을 찍어주지 않아서, 혹은 찍지 않을 거 같아서, 최영미가 아예 자기 출판사, 흔히 말하기를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자기 책을 내게 됐다는 걸 본 것도 같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도 같고 뭐 그렇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2024년 4월 17일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


  “최 시인은 2019년 1인 출판사(이미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이후 주요 문학 전문 잡지의 원고 청탁이 끊기면서 시를 발표할 창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에도 문단의 '왕따'긴 했지만, 이젠 확실히 왕따가 된 느낌’이라며 웃었다.”

  최영미가 문단 내 최고급 괴물을 건드렸거든. 누군지 아시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 같다고, 매년 가을이 되면 입 가진 자들이 떠들고 다니던 전직 중이자 꼰대. 최가 En의 개판무인지경 손버릇을 까발린 것이 2018년. 그해 2월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하 좍 붙여넣기 했다가 싹 지웠다. 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여간 “이미출판사”의 사장이자 영업담당 상무이자, 홍보이사, 재무이사, 총무부장, 사환, 청소부를 겸하는 최영미는 2019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자신이 쓴 한 두 권의 시집과 소설책을 출판했다. 내 책꽂이에 꽤 오래 꽂혀 있던 <청동정원>은 은행나무에서 찍은 것이었고, <서른, 잔치…>도 창비시선이었다가, 계약기간이 지나가도 출판사들이 정말로 중판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몽땅 다 이미출판사에서 다시 냈다. 하긴 뭐 시 청탁을 받지 못하는 시인 신세였으니. 최영미의 왕따는 아직도 지속중인 거 같다. 전적으로 최영미 개인사정이니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겠다. 차라리 그게 도와주는 일인 거 같아서. 독자는 시나 읽자.

  이 시집은 한 편 빼고 모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쓴 시를 모았다. 이 기간 동안 문단 내 성추행, 소위 En 사건이 터졌고, 비슷한 시기에 생활보조금 신청대상자 최영미가 유명 호텔에 1년간 무료 숙박을 요청했다는 소식도 매스컴에 크게 소개되었으며, 이것저것 합쳐서 최영미가 최고 왕따로 등극했던 시기 아닐까 싶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써야 했겠지. 평생의 업이니 할 수 없지 뭐. 이미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는 조금 알만 했던 때라, 시집의 첫 노래는 이랬다.



  밥을 지으며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전문. p.11)



  읽는 순간 뭘 이야기하는지 탁, 알아챌 수 있어서 좋다. 원래 사는 게 그렇지. 힘들지 않으면 그건 사는 일도 아닌 걸 뭐. 밥 지어먹는 일을 대충 했다는 건 사는 일도 비슷하게 대충 살았다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인 자신의 말대로 개나 소나 다 따는 박사학위가 없어서 대학 강사 노릇도 못하고, 개나 소나 다 듣는 교육학 학점을 따지 않아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도 못하니 차라리 서울대 나온 게 밑지는 장사 같고, 열라 시 써서 시집 내 봤자 인세 받는 걸로 먹고 사는 건 애초에 포기해서 그나마 돈 좀 될까 싶어 소설도 써봤건만 그것도 별로 팔리지 않는다. 도무지 되는 게 없는 팔자. 이런 팔자를 타고난 인간을 아마 ‘슐레밀’이라고 할 걸? 토머스 핀천의 책에는 확실하게 나오고,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도 나오던데 그 책 제목과 작가는 벌써 잊었네. 그래서 대충대충 살았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 이 시에 큰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전쟁만큼 힘들”었다고? 전쟁, 전쟁, 전쟁?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이란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에는 “시작 메모”라는 글이 붙어 있다. 전문을 옮긴다.



  엄마의 병실에서 돌아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를 읽으며 여름을 보냈다. 어느 가수가 실비아에게 바치는 노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를 듣는데 가슴 속에 뭔가 꿈틀댔다. 익숙한 쓰라림,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왔다. 가슴에 불이 켜져도 시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사는 게 피곤해서인가. 너무 피곤해도 시가 달아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시가 도망간다. 생각하지 않고, 만들지 말고, 받아 적어야 좋은 시가 나오는데, 만들어지면 그래도 다행이다. 언젠가 아무것도 끄적거리고 싶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니.    『시인수첩』 2016년 겨울호   (p.17)



  “시작 메모”를 시인은 무슨 생각으로 붙였을까? 차라리 소설을 쓰지. 헛되이 벽을 때렸다는 시를 썼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뭐가 아쉬워 본문 정도의 분량으로 사족을 달았는지, 최영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 이상하다. 이것도 현대 자유시의 한 표현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시 한 수로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시작 메모”를 써야 했다면 어째 곱게 보이지 않는다. 밥 지어먹는 것도 힘들고, 사는 게 피곤해서 시가 써지지 않을 정도라면 잠깐 쉬어야지 그걸 어떻게 하겠어? 물론 시인의 가오가 있어서 식당에 가 설거지 알바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딱 자기 입으로 사는 게 피곤하다는 걸 노래가 아니라 문자로 밝혀야겠느냐는 말이다. 오히려 이게 더 가오 죽는 일 아닌가 싶다.

  시로, 노래로 하자면 아무리 궁상스러운 삶을 토해내도 읽는다. 독자에 따라 시인과 함께 흑흑 흐느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혼자 울게 내버려둬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제발 그냥 내버려둬  (전문. P.21)



  시인이 까칠한 건 맞는 거 같다. 시를 읽어보니 여러가지로 왕따 당할 짓만 골라 한 시인. 전투력 95, 그러나 사회성 17. 그렇게 사는 일도 좋기는 한데, 그러려면 인생이 외로운 걸 우짜나. 하긴 뭐 어쩔 수 없다. 팔자가 그런데 어떻게 고쳐. 다 업이지, 업. 시집을 냈을 때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 57세. 우리 나이로 하자면 59세. 윤석열 정권에서 딱 하나 잘한 일이 나이를 만으로 세게 한 거다. 57세와 59세는 불과 2년 차이지만 느낌이 어마어마하잖아? 그럼에도 벌써 아쉬운 게 있으니, 최영미의 시에서 늙음을 숨기지 못했다는 거. 예컨대.



  지하철 유감



  내 앞에 앉은 일곱 사람 중에

  청바지를 발견할 수 없다면

  청바지를 앉히지 않은 의자가 있다면,


  내 앞에 앉은 일곱 남녀 가운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이 스마트한 문명을 용서해줄 수 있다  (전문. p.63)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쳐다보느라 일상에 거치적거리는 인간을 싫어하는 족속의 일원으로, 최영미의 시에, 좋은 시라고 하긴 어색하지만, 동감 또는 공감하는 바이건만, 대개 이런 공감 또는 동감은 꼰대들만 이 비슷하게 생각하더라고. 하다못해 남자 화장실 가면 소변기 위에다 휴대전화 올려놓고, 한 손으로는 물건 지탱하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열나게 스마트폰 조종하는 것들도 있다니까? 도서관 복도를 정상속도로 걷다가 갑자기 우뚝 서서 뒤 따라오는 나하고 우당탕 부딪히면, 이 아가씨한테 어쨌든 몸이 부딪혔으니 남자인 내가 미안해다 해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 갑자기 서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를 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하고. 이런 마음 가지면 그건 꼰대라니까. 영미씨, 사느라 애썼다. 이렇게 사는 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예정에 없던 음주



  위로받고 싶을 때만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하는 척했다  (전문.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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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8-23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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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김인순이 쓴 해설을 보면, 이 책 《저지대》가 원래 1982년에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출판된 헤르타 뮐러의 첫번째 작품집이었는데, 정작 책이 나오기 전까지 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공산 루마니아 정권이 이 작품집을 검열하는 데만 4년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시간을 써버린 거다. 그래도 뭔가 일을 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하여 루마니아 당국은 모두 열아홉 편 가운데 네 편을 삭제해버리고 나머지 열다섯 편도 대폭적인 가위질과 수정을 한 다음에 출간을 허락했다고 하니 차우세스쿠가 우정을 돈독히 했던 김일성하고 막상막하였던 모양이다. 책이 나오고 2년이 흐른 1984년에 동독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제출간 되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더 세월이 흘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헤르타 뮐러가 200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보고, 소비에트는 벌써 무너졌건만 그제서야 통일 독일 출판계는 어마 뜨거라 싶어 서둘러 개정판을 냈는데, 애초 삭제 당한 네 편을 원상 복귀하고, 나머지 가위질과 수정을 가한 것도 작가가 직접 가필해 원작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다시 책을 만들었다. 뭐든지 번개만 쳤다하면 그 새에 콩이라도 구워먹는 습관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즉각 작가에 의한 최종 교정본을 가져다 번역해 이듬해인 2010년에 책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이의 작품은 겨우 두 권, <숨그네>와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만 읽어보아 뮐러의 1980년대 작품은 차우세스쿠 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독재와, 독재정권에 항용 따라다니는 인민의 정서상 봉건잔재로의 부정부패를 희화적으로 고발하는 성향인 줄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던 걸? 《저지대》를 읽어보니까 루마니아의 바나트 슈바벤 지역에서 유소년 시대를 보낸 기억을 적어 나갔다. 뮐러가 1953년생이니 《저지대》 속의 바나트 슈바벤 농장 역시 50년대의 루마니아 시골지역으로 생각하면 얼추 맞을 터이고, 그래도 우리나라의 70년대 초중반보다 나은 환경의 농장일 듯하다. 작품 속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경찰이나 관서에 근무하는 약간 명을 제외하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독일계 루마니아인들. 자기들끼리 독일어로 대화하고, 독일인들과 혼인하고, 같은 민족끼리 바람 피워, 삼각, 사각, 오각, 하여간 무지하게 복잡한 다중각 연애를 불사하는 바람에 어떤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동네마다 소문이 파다한 커뮤니티.

  1차, 2차 세계대전 때마다 독일군으로 징집되어 주로 러시아와 소련 전선에서 싸우다 코피 터지고, 몸의 일부분을 잃고, 간혹 PTSD 증상을 겪기도 하는 남자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 부근으로 강제적 노력봉사에 끌려갔다가 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음 직전의 굶주림을 견디면서 기어이 죽음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하여 여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명 보전을 해 걸어걸어 다시 바나트 슈바벤 농장으로 돌아온 여자들. 이들은 사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적인 영웅들이다. 시대의 폭풍 한 가운데서 살아 남았으면 그걸로 영웅이지 더 뭐가 필요한가.

  귀환한 영웅들은 그러나 그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죽어야 영웅의 딸더러, 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러시아 사람을 총을 쏴 죽였는지 아니? 몇 명의 러시아 여자를 겁탈했는지 모르지? 이렇게 물음으로 해서 귀환 영웅들의 뇌 속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과거의 동료들이자 죽기 바로 전까지의 연적이자, 어쩌면 이렇게 묻는 망자의 딸의 진짜 아버지일 수 있는 남자들. 20세기를 산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들이 미친 것이 아니라 세기가 미쳤던 거라는 걸.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강박적으로 못을 수집한다. 길 가다가 휜 못 하나를 보더라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아무 의미 없이 벽에 박인 못을 보면 얼른 뽑아 곧게 펴 주머니에 넣고, 어쩌면 남의 작업장에 가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하얗게 반짝이는 못을 한 주먹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몇 개 슬쩍 주워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어, 화자 소녀 ‘나’의 집에는 작은 못상자가 몇 개 씩이나 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늘 망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벽이나 선반에 탁탁탁탁 못질을 해댔다. 할머니는 제라늄을 수프 냄비에 넣어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다른 식물도 잘 키우지만 특히 제라늄을 좋아하는 할머니. 집안 곳곳에 찌그러지고, 주워 온 고물 수준이고, 주둥이가 우그러진, 그러나 때가 새까맣게 묻은 수프 냄비는 하나도 없었는데, 이 모든 수프 냄비마다 가득 제라늄이, 가득, 말 그대로 가득,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순식간에 시들어버리고 다시는 제라늄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결혼 첫날부터 술을 잔뜩 퍼 마시고 신혼의 침상에서 뛰쳐나와 화장실로 쳐들어가 먹은 걸 몽땅 게워버린다. 그러니까 화자 소녀 ‘나’를 임신시키기는커녕 신부였던 ‘나’의 어머니의 어떤 부위의 살갗도 만지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몇 년 후 긴급하게 루마니아 의사가 불려왔을 때, 아버지는 의사 앞에서 통째로 자기 간을 토해버렸고, 그래도 죽는 데엔 실패해 질기게 살아남았다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작품을 염두에 두면 아마 뇌물을 써서 동독으로 이사까지 했을 걸? 어머니는 이들 속에서, 그리고 우크라이나 수용소에서의 생존 경험이라는 절망적 기억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한 가망 없는 희망, 그리고 진정으로 수용해본 적 없는 사랑의 결핍을 가지고 평생을 살며, 재재거리고 활발한 하나 있는 딸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야멸차게 자신의 손바닥 도장을 딸의 오른쪽 왼쪽 뺨에 찍어주고는 했다.

  이렇게 사람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동안 농장 지역의 수시로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짐승들. 너무 많이 출산하는 개와 고양이들의 처분. 그리고 쥐. 개구리. 나비와 파리. 새들. 사용하지 않지만 절대 철거하지도 않는 굴뚝 속을 터전으로 하는 올빼미 가족. 여기에 뱀까지. 바람과 비와 눈과 안개. 이런 것들이 가난하지만 아슴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을 쓰자면 마치 전원일기처럼 엷은 톤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헤르타 뮐러는 이이의 첫 작품집 《저지대》에서 수사법도 쓴다.

  이런 판화들을 수록한 문자적 판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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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1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만의 시대 살아남은 인간들의 생존방식인가요? 문자적 판화집이라니까 이런 저런 판화들이 떠오르면서 소설의 분위기가 확 느껴집니다.

Falstaff 2025-08-22 03:28   좋아요 1 | URL
이 시대 동유럽 지역에 살던 독일인이 거의 비슷하더군요.
외국 내 독일인으로 살고, 1차, 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징집, 패전 후 다시 살던 동유럽으로 가서, 소비에트의 위성국가로 독재에 신음하다가 운 좋은 사람들은 동독으로 귀국하고, 상당수는 현지에 남아 아직도 독일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그러나 시절이 더 괴로웠지않나 싶습니다.
책은 바람돌이 님이 생각하시는 딱 그대로일 것 같네요.
 
인생의 친척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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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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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히카리는 오에 겐자부로와 이타미 유카리 사이에서 1963년에 태어난 맏아들이다. 날 때부터 두개골에 문제가 있어 그쪽으로 뇌수가 흐르는 뇌헤르니아 증상으로 인한 장애를 가져야 했다. 젊은 오에 겐자부로는 아기가 평생 정신과 신체 일부에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하는 조건으로 수술을 해서 살려야 할지, 그냥 방치해 서로 불행한/불행할 것처럼 보이는 생을 일찌감치 포기할 지 선택해야 했다. 당시 진퇴양난의 번민과 방황은 1964년 작품 <개인적인 경험>에 그대로 실려 있다.

  결국 히카리와 함께 사는 생을 결정한 겐자부로는 두 번에 걸친  수술과 계속된 치료로 거의 잃어버렸던 히카리의 시력을 회복하고, 간질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평생 복용하면서 특수학교를 졸업,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성장하기 위하여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겐자부로의 책에서도 수시로 등장하는 누이동생 나츠미코와 남동생 사쿠라마도 자신의 생활 일부를 양보하는 등의 영향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장애인이 집안에 있으면, 당연하겠지만 장애인도 사회적 약자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약자를 좀 더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장애인, 이 가운데 특히 히카리 같은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순수한 심정을 갖고 있으리라는 일종의 선입견이나 바램을 가지고 있기 십상이다. 물론 조금은 그렇다. 반면에 뇌의 성장과 발달이 늦어 이미 큰 몸집을 하고 있을지언정 여전히 양보나 포기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고집 같은 것을 부려 가족들을 화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 즉 장애가 있음으로 해서 피할 수 없이 가질 수밖에 없는 추함과 뒤틀리고 비뚤어진 마음도 장애아만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선함과 마찬가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뒤틀리고 비뚤어진 것을 오에 겐자부로는 ‘독나무’라 부른다. 나무는 나무이되 독이 든 나무. 정신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건 독나무를 품고 사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인생의 친척>은 허구이다. 그런데 특히 오에 겐자부로가 쓰는 허구는 지극한 사소설적 경향을 띄고 있는 작품이 많아서 소설 안에 실제 자기 가족의 경험을 담기도 한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히카리와 같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친구 어머니인 마리에 여사를 등장시키는데, 이 인물이 실제로 생존했으며 책에 나온 대로 살다가 간 실제 인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독자는 그렇게 믿어도 좋고, 나처럼 틀림없이 허구 인물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마도 허구일 터이지만.

  일본에서 이름이 꽤나 난 ‘나’ K가 구라키 마리에 씨와 친해진 일은 K, Kenzaburo가 도쿄 스키야바시 공원에 제법 큰 텐트를 설치해놓고 단식투쟁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물론 3일을 기한으로 한 단식투쟁이라서 처음부터 죽음을 불사한다는 의미는 없었지만 한국의 젊은 시인을 반공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 사형을 선고해버린 처사에 항의 의사를 이런 방식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정말 있었던 퍼포먼스. 당시 한국의 젊은 시인은 실제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시인 김지하였다. 당시 오에 겐자부로는 시인이 시를 쓰는 일이 아닌 다른 일로 사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시를 쓰다 사형을 받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이야기인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아마도 조금쯤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다. 하여간 이때 구라키 마리에 씨는 재일한국인 청년 세 명과 함께 겐자부로의 텐트에 자원봉사자로 등장해 처음으로 친하게 된 것. 텐트에 들어와 슬그머니 식물성 영양 음료, 걸쭉한 상태로 보아 음료라기보다 죽에 가까운 물질이 오에의 목을 타 넘어가게 만들기도 했단다. 뭐 보통 단식투쟁은 이렇게 하는 거라나?

  당시 K의 맏아들 아카리는 산겐자야 근처 파랑새 장애아 학교 고등부에 다니고 있었고, 마리에의 큰아들 무산은 중등부였는데, 장애 성격이 비슷하고 둘 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 교사가 두 학생과 학부모를 특별히 소개하여 친하게 지냈다. 물론 일본의 경우도 학생과 학부모 할 때의 학부모는 엄마들을 말한다. 무산에게도 동생이 있다. 미치오. 귀엽게 생기고 머리도 총명해 거의 모든 이들로부터 쉽게 친해지고 좋은 인상을 받는 아이.


  이제부터는 무산의 엄마 구라키 마리에에게 집중해야갰다. 소小부르주아의 딸이다. 아버지는 은퇴한 경영자였는데 일찍 죽으면서 마리에에게 상당한 현금성 자산과 이즈 고원에 있는 별장(그리고 다른 부동산 한 건)을 마리에에게 남겼다. 똑똑한 머리에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미국에서 근무하게 되어 뉴욕에 살며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건 아니라서 음악은 포기하고 그것만큼 사랑했던 학문인 영문학을 선택해 특히 <현명한 피>의 작가 플래너리 오코너를 공부한다. 하필이면 내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작가를.

  마리에는 이혼 여성, 돌싱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 마리에의 이혼이 남편과의 불화나 가정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일종의 탈출의지로 행해진 의사결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평생 천주교에 천착했던 플레너리 오코너. 글쎄 나는 많고 많은 작가 가운데 오코너를 전공했다는 것도 겐자부로가 제시한 한 가지 팁으로 여겼다. 마리에는 무산을 출산한 일을 무엇(절대자?)이 자신에게 속죄를 요구한 일이라 생각했고, 이 속죄를 위한 생활에 애꿎게 남편과 정상아인 미치오까지 끌여들일 필요는 없다고 믿었던 거였다. 물론 이혼을 협의할 때 남편에게 이걸 노골적으로 내밀지는 않았겠지만, 한편으로 황당하게 이혼당하고 있는 남자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 결국 마리에가 무산과 함께 살고, 남편은 귀엽고 공부 잘하고 사교성 있는 미치오를 데리고 나가 집을 얻었다가, 한 여자를 만나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

  말과 뜻은 혼자 무산을 키워보려 했겠지. 무엇을 속죄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요코하마에 있는 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마리에가 진짜로 혼자 힘만 갖고 무산의 뒷바라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친정엄마의 보조를 받아야 했는데, 친정엄마가 조금씩 치매 기운을 보이자 전남편과 미치오가 매주는 아니지만 주말에 들러 무산과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당연히 둘째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거겠지. 이렇게 살다가 하루는 미치오가 학교에 가다가, 버스에 올랐는데 평소 미치오를 괴롭히던 중학생이 물론 폭력을 쓰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불쑥 얼굴을 내미는 바람에 미치오가 기겁을 했고, 그래서 버스에서 뛰어내려 앞뒤 가리지 않고 길을 건너다가 정상속도로 운행하던 화물차에 치었다. 미치오의 두뇌는 변한 것이 없었지만 하반신은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갖게 됐고, 새엄마는 그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이제 무산에 이어 미치오, 그리고 혼자 남을 전남편까지 마리에 씨가 온전히 돌봐야 할 그래서 속죄에 대한 보속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살았다. 날 때부터 지체가 있는 무산은 세상 자체가 그렇거니 살 수 있었지만 미치오는 그러지 못했다. 여기에 높은 지능까지 있어서 형인 무산을 세뇌, 혹은 가스라이팅을 했을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겠지. 그러던 어는 날. 아이들이 사라졌다. 힘이 좋은 무산이 미치오의 휠체어를 밀고, 미치오가 밝은 표정으로 행인들에게 기꺼운 친절을 유도하며, 외할아버지가 엄마한테 물려준 이즈 고원의 별장으로 갔다. 이즈 고원은 전형적인 리아스 식 해안.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곧바로 바다로 이어진다. 원래는 무산이 미치오가 탄 휠체어를 전속력으로 밀어 함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어야 했으나, 마지막에 미치오가 휠체어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무산은 휠체어에서 떨어져 양쪽 팔로 귀를 막은 상태로 그대로 돌진, 먼저 벼랑에서 떨어졌는데, 이것을 본 미치오가 자기 힘으로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가다가 바퀴가 돌인지 나무뿌리인지에 걸려 멈추자, 뉴턴의 2법칙에 의하여 몸을 앞으로 기울여 휠체어와 함께 역시 벼랑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마리에와 전남편 앞에 무엇이 남았을까? 슬픔과 고통이겠지. 자식이 죽으면 부부는 많이 이혼한단다. 슬픔과 고통을 서로에게 쏟아 부어 서로 견딜 수 없어 헤어지고 마는 거겠지. 그러나 이 커플은 그러지 않았다. 아빠는 직장을 때려 치우고 아들의 죽음의 순간을 연상하며 서서히 폐인이 되어갔고, 엄마는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아들들의 빈 곳을 채우려 하지만 그건 애초에 가능하지 않는 일이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아 아들 둘을 자살이라는 형식으로 잃어버린 엄마 마리에 여사의 뒤를 좇는다. 겐자부로 부부와 장애아 부모라는 공통점이 이 모색에 더 타당성을 부여하고.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지식인. 먹물 오에 겐자부로. 이이는 자식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예이츠의 시와 발자크의 소설과 플래너리 오코너의 신앙과, 마리에 여사의 마지막 무대였던 멕시코 시골농장을 거론하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까지 인용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그다지 좋은 의미로 쓰지 않는 말이지만 naïve한…”

  이 묘사는 오에 겐자부로의 책 가운데 내가 기억하는 것만 세번째 나오는 구절이다. 잘난 척하는 방면에서는 한 치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악마처럼 거만한 오에 겐자부로.” 이건 내가 아마 네번인가 다섯번째로 이 작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당연히 좋은 의미에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별점 4개는 아깝다. 그렇다고 5개까지는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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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9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구라고 생각해도 마리에씨 얘기는 너무 가슴 아픈데요. 직업상 장애학생들과 부모들을 자주 만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문제와 다름을 다 가지고 있듯이 장애아이들과 부모도 마찬가지예요. 가슴 아픈 일도 즐거운 일도 화나는 일도 똑같이 많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이 장애아이를 길렀기에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겠네요

Falstaff 2025-08-19 15:52   좋아요 1 | URL
옙. 굉장히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설로 썼습니다.
그럼에도 오에니까 이런 것들을 이야기 했던 거 아니냐 싶어서 저릿하더군요.

케이 2025-08-2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리에 부부 사연 너무 너무 안타깝네요.
마리에는 종교가 아니라면 그 고통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사지 마비가 되었을 때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 적 있어요.
만약에 현재 상태, 그러니까 엄마가 말도 못하고 손발 어느 것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적처럼 암이 완쾌된다면 어떨 것인가? 남들은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고 말하겠지만 난 그런 엄마라도 집안 한켠에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지요.
물론 옆에서 돌보는 간병 같은 건 생각치도 않은 순진한 생각이었지만요.

얼마 전 봤던 장애인 누나를 하늘로 보낸 동생이 쓴 글이 생각나네요.
(https://humoruniv.com/pds1346541)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겁고 참 슬픕니다.
죽도록 고통스러운 불행이 러시안 룰렛처럼 아무한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무섭고 두렵지만, 어쩌겠습니다. 결국 하루 하루 안도하면서 살아야겠지요.

Falstaff 2025-08-20 18:14   좋아요 1 | URL
저는 아이들에게 똑부러지게 말했습니다. 1분의 연명치료도 싫다고요. 정말로 행여나 1분이나마 그렇게 살기 싫답니다. 지긋지긋하게 오래 경험한지라. 제 초년 팔자가 그랬습니다. 뭐 다 그런 거지요. ㅋㅋㅋ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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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미래주의 문학의 기수.”

  이 말 한 마디 딱 듣고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1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유대계 작가.

  1885년생 스타니슬라프 비트키예비치. 1892년생 브루노 슐츠, 그리고 1904년생 비톨트 곰브로비치. 이 세 명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를 읽으면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폴란드 문학판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냐고 말한 적 있다. 이 절묘한 유대인 트라이앵글 사이에 1901년생 브루노 야시엔스키라는 작가가 소위 “미래주의 문학의 기수”라는 기치를 들고 나타났으니 어떻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내게 비트키예비치를 읽는 즐거운 고통을 선물해준 역자 정보라가 “옮긴이의 말” 첫 마디에 “브루노 야시엔스키(1901~1938?)는 진정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역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야시엔스키의 문학을 우리나라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한 역사적, 아니, 오버하지 말고, 문학적 소명을 갖고 번역에 임했다, 이렇게 오해해도 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브루노 야시엔스키는 1901년 폴란드 클리몬투프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가족이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전쟁은 더 치열한 국면으로 번졌다가 자동화기, 즉 기관총의 발달로 “전군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 대신 지루한 참호전 양상을 띄자, 삼국동맹측은 소위 봉인 열차에 블라디미르 레닌을 태워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을 관통해 북해를 건넌 다음 다시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낸다. 삼국협상 측의 하나인 러시아로 하여금 전쟁에서 발을 빼게 만들려 했던 것이고 어쨌든 책략은 성공했다. 러시아에 도착한 레닌은 그야말로 어린애 팔목 비트는 격으로 로마노프 왕조를 거덜내고 혁명을 완수해 소비에트 연방을 구축하니, 이걸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본 16세 브루노 야시엔스키가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소년 브루노는 성장해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글쓰기를 실천한 시인, 소설가, 극작가, 그리고 공산주의자”가 된다. 이후 1918년에 다시 폴란드로 돌아갔고, 1929년에 소련 레닌그라드로 망명했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스탈린 체제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야시엔스키는 1938년에 소비에트 권력에 의하여 “면회 없는 10년 수용소 형” 즉 사형 판결을 받고 모스크바 부티르카 교도소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한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고, 시신 또한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미 할 말은 다 한 기분.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주인공은 피에르.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였으며, 노동자’였다’는 말은 지금은 불경기 여파로 공장에서 해고당했다는 뜻이고, 자신에게 지급된 측미기, 즉 마이크로미터를 누가 훔쳐가는 바람에 측정기 값 40프랑을 제한 나머지 임금 또한 이미 가불해 썼기 때문에 완전한 거렁뱅이 신세로 처박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머니에 있는 것이라고는 달랑 3수. 15상팀. 15/100프랑.

  피에르에게도 애인은 있었다. 자네트. 상점 점원이다. 모레가 성 카트린 축일인데, 이 상점에서는 점원들의 사기고양을 위해 매년 성 카트린 축일 날 밤마다 제법 큰 규모로 댄스 파티를 열어준다. 그래서 자네트는 며칠 전부터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며, 신발이며, 비단 스타킹 등속을 준비하느라 얼이 빠져 있었다. 미리 확 까놓고 얘기하자면, 자네트가 가을에 입을 옷 한 벌을 사주기 위해서 피에르의 월세 3개월치를 몽땅 가져다 바칠 만큼 피에르는 자네트한테 몰빵하고 있었던 반면, 자네트 입장에서 피에르는 자신한테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여러 남자 가운데 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인다.

  해고당했고,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는 자네트와 저녁식사, 영화 그리고 러브호텔 순례를 도느라 모든 현금자산이 15상팀밖에 남지 않은 피에르는 연인으로 오해하고 있는 여자의 집으로 향하지만 애초 가난한 피에르와 사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자네트의 엄마는, 자네트가 며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현관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아버린다. 피에르는 벌써 3일을 굶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을 걸로 보아 착한 남자인 건 맞는 모양이다, 그렇지? 천만의 말씀.

  이어서 피에르가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몇 십 페이지 분량의 묘사가 이어진다. 문제는, 크누트 함순 선생의 <굶주림>에 필적할 노숙인 피에르의 험한 세상살이를, 브루노 야시엔스키 선생은 어이없게도 다분히 미래주의적인 화법으로 설명한다. 이런 식이다.


  “어둠이 내렸다. 불이 켜진 가로등은 밤의 먹물 같은 표면 위에 굵은 무채색 불꽃이 되어 그 밤 속에 녹아들지도 못하고 밤을 밝히지도 못한 채 구불구불한 거리에 폭포 같은 그림자만 드리우며 바닥 없는 깊은 어둠 속에 둥둥 뜬 환상적인 동물군이 되었다.” (p.18)


  파리 시내에 밤이 내리고 가로등 아래를 며칠째 면도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은 꺼칠한 얼굴과 차림의 피에르가 지나가는 걸 이렇게 그리고 있는데 이 정도면 치장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다. 은유와 직유 같은 수사법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이 문장이 또 이렇게 이어진다.


  “가파른 물가는 인광燐光을 내는 마법의 동굴 같은 보석가게 진열장으로 가득했고 벨벳 바위 어딘가에 조개에서 파낸 콩알만큼 커다람 처녀 진주가 잠들어 있었고―수직의 벽이 헛되이 어둠의 수면을 찾아 위로 위로 길게 솟아올랐다.” (p.18)


  이 장면만 그런 게 아니다. 1부가 끝날 때까지 전체적이고 총괄적으로 궁상스러운 가난의 장면을 작가는 이렇게 풍성한 수사법을 총동원하여 화려하게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짜증나게시리.

  하여간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이 피에르라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말씀입니다, 비렁뱅이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프랑스, 하면 무지하게 유명한 연구기관이 하나 있으니 바로 파스퇴르 세균연구소, 여기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잡부 한 명이 필요해 피에르를 그 자리에 꽂아 넣어주는 선행을 베풀었건만, 가난과 불평등과 실연과 소외와 기타 등등 사회적 불만에 가득 했던 피에르가 겉으로 보기에는 매사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을 잘 하는 것 같았지만, 하루는 연구소에서 원래 있던 독성보다 월등하게 막강한 전염력을 갖게 배양한 특별 페스트 균이 담긴 시험관을 훔쳐, 파리의 상수도 원에다 살포해버렸던 거다. 나 혼자 죽기 서러우니 다들 한 번 죽어봐라, 하는 심정이었겠지.

  여기까지가 1부이고, 2부 들어가면 인류 역사상 구경해보지 못한 강력한 페스트 균이 전 파리 시내에 창궐해 숱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피에르의 싸가지없는 연인이었던 자네트 역시 길거리에 자빠져 죽음을 맞이하는데, 피에르가 달려들어 2부 초장에 꺼멓게 타버린 자네트의 입술에 미친듯이 입을 맞추면서 파리 시민들을 향해, 자신이 페스트 균을 퍼뜨렸노라고 웅변을 토함으로써 메인 스트리트의 만장하신 신사 숙녀의 발뒤꿈치에 짓이겨져 붉은 고깃덩이로 변하고 만다.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긴급조치를 발령해 파리를 완전 봉쇄해 이제 무정부 상태에 접어든 파리에는 인종, 사상 등으로 갈린 작은 독립적 단위로 갈라지지만 궁극적으로, 다, 죽는다.


  인구 증발 사태? 걱정하지 마시라. 그동안 격리구역에서도 완벽하게 격리된 계층이 있었으니 그들은 벽을 부수고 나와 아무도 살지 않는 파리를 파리 역사상 제2의 코뮌,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다. 당연하잖아. 작가가 공산주의자 브루노 야시엔스키니까. 흠. 너무 자세하게 가르쳐드린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굳이 권할 만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라서. 야시엔스키가 침을 튀면서 설정한 유토피아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다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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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08-18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췌하신 문장을 읽어 보니 정말 치장이 좀 과하네요. 제목과 표지도 화려하구요. ㅎㅎ

Falstaff 2025-08-18 08:4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아오, 처음부터 계속 저 지랄이라서 좀 지나면 막 짜증이 나더라공요. ㅎㅎ

바람돌이 2025-08-18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30페이지쯤 보다가 포기했어요. ㅎㅎ

Falstaff 2025-08-19 04:27   좋아요 1 | URL
아휴, 적당할 때 덮으신 겁니다.
저는 제가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라 양심상 끝까지 읽었답니다. ㅎㅎ

얄리얄리 2025-08-19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이 책 저도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내려버려야 할까 고민됩니다..

Falstaff 2025-08-20 05:46   좋아요 0 | URL
아직 구입하지는 않으셨군요. 다른 분의 감상평도 참고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야 변방의 아마추어일 뿐인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