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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로스 리포트 ㅣ 위픽
최정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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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인천에서 충청도 남자와 서울 여자의 딸로 태어나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옆구리 언덕바지 인성여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도 하필이면 취직하기 힘드는 국문과를 나왔다. 노무법인 사무보조, 편의점 알바, 백화점 캐셔, 논술강사, 환경잡지 사무보조 등 생계형 잡일을 하며 틈틈이 습작시절 10년을 지내다 창비신인소설상을 타 등단한 작가. <봇로스 리포트>를 읽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다. 미안하다.
고등학교 시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해 <난쏘공>이 그러했듯이 노동자, 여성, 소수자, 그리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회적 약자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는 작가. 음. 그렇군.
<봇로스 리포트>는? 인조인간 로보트를 말하는 ‘봇’. 때는 2030년대. 인간은 다양한 분야의 로봇을 개발하여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시절을 맞았다. 유소년 돌보미 봇을 필두로 사람이 마지막 길을 갈 때 24시간 노령 환자 곁에서 운신을 도와주고 배변과 배뇨를 아무런 불만도, 피로도 없이 보살피는 봇까지. 그러니까 미래형 “요람에서 무덤까지.”
2030년대에도 시절은 여전히 후기 천민자본주의 시대. 봇 메이커 주식회사 에니매이트는 초창기 봇 제조사로 주로 애완, 요즘에는 애완 대신 ‘반려’라는 말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애완 동물의 냄새, 털 알러지, 분뇨 등 거추장스러운 일 없이 편리한 건식 애완 동물 봇을 생산, 판매한다. 애완/반려 봇은 말 그대로 기본이 기계이기 때문에 못 만드는 동물이 없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슴도치, 타조, 당연히 한센병 원인균을 보유하지 않는 아르마딜로에서 독 없는 코브라와 코모도 도마뱀, COVID 매개와는 관계없는 박쥐, 악어, 대형 고양이과 동물까지 못 만드는 봇이 없다. 죽여주지? 다만 이 애완/반려 봇의 수명이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 몇 달에 국한하는 아주 짧은 보증기간이 지나면 어떤 경우라도 제조사는 수리해주지 않으며, 만일 누군가 야매로 이 봇을 수리할 경우에 무지막지한 벌금 또는 징역형을 받도록 입법조치까지 되어 있다. 그렇게 막강한 봇 회사들이었다.
시작은 이런 애완/반려 동물봇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앞에서 말한 생활 도우미형 봇이 탄생한다. 최정화는 온갖 봇들을 다 구현했으나, 유감스럽게 섹스봇, 2010년대 한때 ‘리얼돌’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주드 로가 배역을 한 섹스봇이나 건설현장의 어렵고 덜 좋은 환경에서의 작업을 전담하는 노가다봇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나중 두 가지 경우에 더 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근데 육아봇 또는 과외공부봇 같은 (청)소년용 봇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하고, 가사도우미봇이나 말동무 벗의 주된 소비자인 중장년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데,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수명이 문제다. 인간이라서 기껏 정을 붙이고 이제 흠뻑 빠져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봇이 오작동을 해, 심각한 경우엔 주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날이 오면, 법에 의하여 수리해 사용할 수도 없고, 고쳐봤자 사실 언제 다시 오작동을 할 줄 모르니까 불안한 심정을 여전할 거 같기도 하고, 이젠 주식회사 애니메이트가 아니라 인간봇 전문 메이커 “엘리봇”에 전화를 해봐도 전화상담 전문봇이 하는 얘기는 새로운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하라는 것 말고는 없다.
이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정든 봇과의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진짜 인간들. 기르던 개가 죽어도 상실감이 보통이 아니던데 하물며 나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 모습의 봇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그걸 어째? 한 순간에 넋이 나가버릴 수밖에 없겠지? 이 신드롬을 “봇로스 증후군”이라 했다. “봇과의 분리에서 연유한 우울 증상.” 여덟 가지의 이런 예를 쓴 것이 이 책이자 단편소설인 <봇로스 리포트>이다.
저 앞에서 최정화가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다 했는데, 여기서 약자, 수명이 기껏해야 2년밖에 안 되고 수리할 수도 없으며, 수명이 다하면 마치 “사람을 빈 박스에 접듯 접어”놓아 폐기물 처리를 하는 봇은, 내 생각에, 아파트 한 레인당 여섯 마리 이상 짖어대는 개와 여섯 마리에 조금 못 미치는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빗댄 거 아닌가 싶다. 그나마 비록 봇이기는 하지만 인간봇과 비교를 하니 조금 우상향 한 것인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제 읽었는데 오늘 벌써 별로 생각나는 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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