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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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같은 생각하면서 시집을 골랐다. 문태준. 아마 이이가 나보다 많이 위일 거야. 이름이 태준, 이태준을 생각해서 그랬나? 아니면 박태준? 이 시집이 세번째 읽는 문태준의 시집인데 처음엔 그랬을지언정 두번째, 세번째는 아니다. 정말로 한참 꼰대 시인인 걸로 기억해서, 이제 이이 시를 읽으면 얼마나 더 읽을꼬, 하는 심정으로 골랐을 수도 있다. 전에 쓴 독후감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말했더군.

  “1950년에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고, 시집을 다 읽을 때까지 잘못 알았다. (중략) 난 문태준의 생년이 1950년 범띠인 줄 알았다. 그렇게 알고도 시를 읽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데 1, 2년이 아니고 20년을 잘못 읽었다. 1970년생이다.”

  하, 이것 참. 처음엔 몰라서 그랬다 치고, 난 두 번째 미쳤던 거였다. 여전히 나보다 꼰대인 줄 알았다.

  얼마나 꼰대 같길래 그러느냐고? 한 번 읽어보실텨?



  빈집


  주인도

  내각(來客)도 없다

  겨울 아침

  오늘의 첫 햇살이

  흘러오는

  찬 마루

  쪽창 낸 듯

  볕 드는 한쪽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는

  집 (전문. p.13)


  그렇지? 요즘 시를 누가 이렇게 써? 이이 말고. 70년 개띠가 쓴 시라고 읽기 힘들겠지? 나도 서가 앞에서 시집을 훑어보고, 거 참 꼰대 시군. 종알거리고 나서 골랐다는 거 아냐. 시의 스타일도 좀 보시라고. 사람의 흔적이 거의 사라진 시골 폐가 비슷한 빈집에 그래도 햇살도 들고, 고양이도 여행객처럼 드나드는 모습을 스케치한 정물화. 2012년 2월에 낸 시집이니 시는 2011년, 문태준이 41세 때 썼으렸다? 그래, 그래. 스타일에 관해서는 이쯤에서 그만 두자. 그냥 이런 스타일을 유지하는 드문 시인이라고만 여기면 되겠다.


  요즘에는 만 89세, 즉 구순을 넘겨 사는 노인이 적지 않은데 21세기 초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찬 염주를 돌리며>를 감안해보면 이 시에 등장하는 구순 넘은 할머니가 시인의 외할머니로 보인다. 이미 영혼은 반쯤 천국에 가 있는 살아 있는 보살. 자연 가까운 상태의 할머니도 스케치했다.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


  내 옆집 구순(九旬)의 입과 입술에는 작은 언덕이 하나 느릿느릿 움직여갔습니다

  구붓하게 걸어갈 때 큰 귀가 풀잎처럼 떠 있었습니다

  숨이 가쁘고 지난해 풀벌레 소리가 났습니다

  가끔 어떤 속말에는 잔물결처럼 웃고 이내 허물어지듯 손을 내저었습니다

  앉아도 꽤 여럿이 앉을 긴 의자에 혼자 앉았습니다

  흐릿한 빛이 지나가는지 슬며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두어번 물어도 그렇지, 그렇지,라고만 나직이 말했습니다

  구순의 입과 입술에는 저 먼 계곡처럼 무른 구름더미가 가득하였습니다.  (전문. p.14)


  뭐 이렇게 사는 거지. 다음 시에서 구순의 할머니는 드디어 명명(明明)한 겨울 하늘로 올라가 명명(冥冥)한 저승으로 가면 그걸로 끝이지. 아무리 명명明明하게 올라가봐라, 그곳은 단위가 어떻게 됐든 10의 600제곱 공간의 영하 273도 차디차고 명명冥冥한 어둠 속일 터이다. 그걸 모르거나 의례상 “사슴벌레, 작은 새, 여덟살 아이와 구순의 할머니, 마른 풀, 양떼와 초원, 사나운 이빨을 가진 짐승들이 모두 다 알아온 가장 단순한 노래를 읊조릴” 수 있는 것이겠지. 인생 뭐 별 거냐,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게 대빵이다.


  누구나 몸에 돌을 하나 이상 담고 다닌다. 치사하게 담석, 신장석, 췌장석 같은 질환을 이야기하는 거 아니다. 예컨대 <돌과의 사귐>에 나오는 이런 것들. 어제보다 조금 더 닳아진 돌, (몸의)아래로 안쪽으로 내려서는 돌. 눈을 감겨놓고 귀를 닫아놓은 돌, 후일 물속 깊이 잠길 돌. 소낙비 내리고 눈보라 치는 날 발아래서 주워올려 가만히 꼭 쥐고만 있을 돌들. 이런 걸 흔히 “맺힘”이라고도 하고, 기억이라고도 하고 드물게는 지독한 사랑병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하여간 뭐가 됐든 당신 가슴, 당신의 대뇌, 아니면 당신의 생식기에도 이런 돌 하나 들어있는 줄 누가 알아? 그런데 이게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모습으로 새겨질 수도 있었네?



  주먹밥


  찔레나무에 막 새순이 돋아나면 풋풋한 산의 냄새가 울라오면 주먹밥 두어 덩이를 들고 산나물을 뜯으며 봄 산에 살았네 산등성이 넘고 넘어 갔네


  허기가 지면 빙빙 틀어앉을 줄도 모르는 봄뱀 독사의 새끼처럼 덤불 아래 퍼지르고 앉아 간도 안 친 주먹밥을 먹었네 송글송글 뚫린 몸으로 그 큰 주먹밥이 다 들어갔네


  반그늘을 툭툭 털고 일어나 숨이 조금씩 가빠지는 봄 산을 그녀는 넘고 넘었네  (전문. p.47)



   뭐가 돌이냐고? 나물 캐러 산을 둘 넘어 간 처자한테는 주먹밥이 돌이고, 이 처자를 앙가슴에 담고 사는 총각한테는 처자가 돌이겠지.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한테 돌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 내 돌은 누구냐고? 안 알려줌. 세종임금, 전봉준, 신채호? 그래, 그렇게 알고 있으면 편하겠다.



  불만 때다 왔다



  앓는 병 나으라고

  그 집 가서 마당에 솥을 걸고 불만 때다 왔다

  오고 온 병에 대해 물어 무엇하리,

  지금 감나무 밑에 감꽃 떨어지는 이유를

  마른 씨앗처럼 누운 사람에게

  버들 같은 새살은 돋으라고

  한 계절을 꾸어다 불만 때다 왔다  (전문. p.67)


  앓는 병을 결국 고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진짜 병일 수도 있고, 마음 속 갈증일 수도 있겠다. 다른 시 몇 수 읽어보면 진짜 병인 것도 같은데 시인들이 시에 쓴 걸 도무지 믿을 수 있어야지.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줄 확률이 95퍼센트는 넘을 거고. 담배가게 아가씨한테 사랑 고백하러 갔다가 괜히 담배 한 갑도 아니고 (그땐 “까치담배”라고 불렀지) 담배 두 개비하고 성냥 한 통 사가지고 온 거구의 막내 외삼촌 생각이 나네. 결국 말 한 마디 못하고 산악회에서 만난 은행원하고 결혼해 딸 둘 낳고 살다가 일흔 살, 만 69세에 눈 감았다. 잔뜩 술에 취해 지하철 1호선 타면 가죽 손잡이를 비틀어 가볍게 툭, 끊어버리던 기운 센 천하장사. 그래도 오래 살지 못하는 게 인생인 걸 뭐.

  다음에 또 서가에서 문태준 만나면, 50년 범띠가 아니라 70년 개띠 시인이란 걸 꼭 기억해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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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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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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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롄커. 이 58년 개띠 아저씨, 말빨 하나는 정말 우주 침략군 수준이다. 읽다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혀가 쑥 빠져 도무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가 숱하다. 쑥, 빠진 혀를 그냥 빼 버리면 다른 혀가 다시 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얼른 자라나고, 그런 다음에 <물처럼 단단하게>를 이어서 좀 더 읽으면 다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혀가 쑥 빠져 도무지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기어이 손가락으로 빠진 혀를 잡아당기면 쑥 빠진 혀가 정말로 몸에서 두 번째로 쑥, 빠져 버림과 동시에 역시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다시 한번 쑥 빠져 버릴 세 번째 혀가 슬금슬금 기어 나올 것 같은, 우주 침략군처럼 일말의 것에도 거침없이 쏟아져 흐르는, 창장(長江)이나 황허(黃河)처럼 도도한 말빨에, 조심하시라, 여차하면 빠져 죽겄다.

  옌 선생이 이 작품을 2001년에 발표했는데, 당시에 공식적인 직업이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군대에 속한 직업군인이었다. 이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만일 할 것이 없어 중국에 가 중국사람들 한테 맞아 죽고 싶으면 베이징 톈안먼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마오쩌둥 욕을 세 번만 외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부터 사반세기 전에, 현직 군인이, 1978년에 입대해 23년 동안이나 국방부 밥을 먹고 있는 직업 군인이 마오쩌둥 주석의 거의 모든 업적을 이리 꼬고 저리 비틀면서 한낱 희화로 다시 썼으니, 옌롄커의 입담도 입담이지만 배포 역시 지극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체제에 가장 협력해야 할 국방 공무원이 국부이자 위대한 태양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초등, 중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같이 학교에 다닐 무렵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비극과 사극과 희극과 무수한 소네트를 발표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천재이자 십사억 인민의 어버이를 이리 꼬고 저리 비틀었다니, 당연히 담당 공무원은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를 회수하여 읽어보고, 이왕 검열을 했으니 검열했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도 뭐 하나쯤 꼬투리를 잡아야 해서, 엣다 모르겠다, 땅땅땅, 아마도 옌롄커 처음으로 판매금지 도서로 판정했을 걸? 이후 옌롄커의 모든 작품은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애정을 담은 관심을 받아 줄줄이 <레닌의 키스>,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사서>로 이어지는 5연타석 안타를 치기에 이른다. 5연속 판매 금지. 나는 우연히 이 5안타를 다 읽어봤는데, 아이고, 그래도 <물처럼 단단하게>처럼 마오쩌둥 본인을 이리 꼬고 저리 비튼, 오리지널 중국인이라면 심하게 언짢은 수준에 다가가는 건 없을 걸? 그렇게 기억한다.


  주인공 ‘나’ 가오아이쥔은 1942년 섣달에 옌롄커 문학의 고향인 바러우 산맥의 청강진에서 태어났다. 진鎭은 그냥 마을 정도, 조금 더 인심을 쓰면 면 단위 정도로 생각하면 무난하다. 1942년이니까 동네 근처에 일본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아이쥔을 낳으려고 몸을 트니까, 아버지는 산파를 부르러 나갔다가 일본사람의 칼을 맞고 그 자리에서 토막 나 죽었다. 그래서 날 때부터 가오아이쥔은 혁명가의 자식이라 불렸다. 일본군한테 칼 맞아 죽은 아이니까 당연하지.

  아이쥔은 자라면서 키 크고, 근육 좋고, 당연히 힘도 좋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딸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 한 번 셈해 볼 정도였는데, 청강진의 청촌(程村: 청程씨 집성촌) 지부 서기를 하고 있던 청텐칭 씨가 유독 마음에 들어 아이쥔을 불렀다. 청톈칭 씨야말로 혁명가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중일전쟁 당시 팔로군의 편지를 전해준 눈부신 과업을 이루었기 때문에. 누군가 팔로군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를 주었고, 그걸 호주머니에 갖고 있다가, 마침 팔로군 행렬이 동네 앞으로 지나가길래 편지 생각이 나서 전해주었다니 이 아니 혁명적인가 말이지. 청톈칭은 딱 한 번 이룬 혁명과업 덕분으로 청촌의 지부 서기에 올라 어깨에 후까지 단단히 잡고 다녔다.

  청톈칭은 가오아이쥔을 불러 (세수를 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얼룩덜룩한 피부에 얼굴 전체에 잔잔한 점이(아마도 파리똥이라고 부르던 주근깨였겠지) 촘촘히 났고,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다리미로 빡세게 다린 것 같은 젖가슴을 단 것과 달리 펑펑한 엉덩이를 흔들고 다니는 못생기고 게으른, 봉두난발의 딸, 구이즈, 성까지 합해서 청구이즈와 결혼을 하면, 당시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군대에 입대하게 해주겠으며, 제대하고 돌아오면 자기는 뒤로 물러날 테니 자기 자리의 후임으로 앉으라, 이리해서 촌에서 제일 덜 생기고 지저분한 청구이즈와 혼인했고, 맏이 홍성을 구이즈의 배에 실은 후에 입대해버렸다. 그러니까 ‘나’의 아들 홍성은 친할아버지가 왜놈의 칼에 맞아 죽은 혁명가, 외할아버지는 팔로군에게 편지를 전해준 혁명가, 아버지 역시 혁명군의 총아니까 역시 혁명가, 가히 혁명 집안의 적자였던 거다.


  가오아이쥔은 1964년, 22세 때 공병대에 입대해 3등 공훈장 네 번, 중대장 표창 다섯 번, 대대장 표창을 무려 여섯 번 받은 빛나는 업적을 이루고 있었다. 입대하고 2년이 흐른 1966년에 처음으로 아내 청구이즈가 부대로 면회를 왔을 때는, 1년 8개월 동안 터널 작업을 하느라 전 부대원이 여자 냄새는커녕 구경도 한 번 못한 상태였는데, 하여간 그런 시기를 제대로 맞추어 면회를 온 구이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홍성이 두 돌을 지났으니 딸을 하나 낳아야겠어.”

  밥을 먹고 창문 없는 토굴 비슷한 면회소에 요강 하나 들고 들어가 구이즈가 요구한대로 딸 하나 만들려 구이즈의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여태 달걀 프라이 수준이었던 가슴이 오호, 제법 봉긋, 봉긋을 넘어 풍만하기까지 하다. 이 와중에도 우리의 혁명가 가오아이쥔은 궁금한 건 물어보고야 만다.

  “홍성이 아직도 젖을 먹지?”

  그렇단다. 여전히 수유중이라 젖이 불어 퉁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아내가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딸을 낳게 하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려 손을 배꼽 또는 그 아래로 내려 슬슬 더듬기 시작한다. 결혼하면서 본 아내의 알몸이 기억에서 흐릿하다 못해 깡그리 사라져버렸으니 아내가 아무리 못생기고 지저분해도 어찌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고 3년 말린 나무껍질처럼 목이 타들어가지 않겠는가. 미국 제국주의자들과 소련 수정주의자들한테 본격적인 폭격이라도 가할 태세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른 양물을 앞세워 아내의 입을 맞추고 손을 내려 아내의 아랫부분에 닿았다. 이때 갑자기 폭발한 아내 청구이즈. 벌써 폭발? 아니, 그 폭발이 아니고 이런 폭발.

  “가오아이쥔, 당신은 전 국민의 모범인 해방군이잖아. 그런데 2년 못 본 사이에 어째서 건달이 된 거지? 아이를 낳으려면 그냥 그 일만 하면 되지, 왜 건달처럼 몸을 더듬는 거야? 머리하고 얼굴을 더듬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참았는데 윗도리를 더듬다 못해 이제 아래로 손을 뻗다니 대체 당신이 건달이야, 해방군이야?”

  아오. 하여간 청구이즈가 말한대로 단도직입적으로 교미, 아휴 이건 너무 심한 표현이다. 뭐랄까, 하긴 했다. 수정. 좋아. 수정하는 데는 성공했고, 아홉달이 지나 원하는 대로 딸 홍화를 낳았다.


  윗 단락에서 아마 그저 훌쩍 읽고 넘어가셨을 것이 틀림없는데, 가오아이쥔이 딸 홍화를 만들 당시 1년 8개월 동안 투입된 작업이 터널 뚫기였다는 거, 이게 중요한 거다. 다 훗날을 위해 공병단에 입대한 아이쥔으로 하여금 교량공사나 도로공사, 건물, 지뢰매설 등이 아니라 땅굴을 파게 했는지, 다 이유가 있겠지? 있다. 근데 그건 나중의 일이니 넘어간다.

  청구이즈가 찾아와 아이를 만들고 1년이 지난 1967년. 부대를 해산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돌았다. 이때 대대장을 비롯한 많은 간부들은 가오아이쥔이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매사 열렬히 맡은 바 과업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을 인정하여 다른 부대로 전출해 계속 인민을 위해 복무하길 권했다. 그러나 가오아이쥔은 자신이 군 조직에서는 그동안 충분히 혁명적 과업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다시 고향 바러우 산맥 인근의 청강진으로 돌아가 세상 어느 곳과 비교해도 낙후되고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변하지 못한 지역에서 제대로 혁명적 과업을 이루어보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했다. 1960년대 중국은 군 제대 수속을 복무한 부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적이 있는 현청에 가서 신고를 해야 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랬나? 1980년대 초반에 나도 아마 동사무소 병무담당한테 제대했다고 신고했던 것도 같고. 그때 내 주민등록증에 담당자가 ‘병장’이 아니라 ‘상병’이라고 써서 그깟 병적, 아무 관심없다, 이렇게 산 건 좋았는데 친구 몇 명이 그것 때문에 내가 헌병이 아니라 방위병 출신인 줄 알았다. 맞다. 우리도 그랬다. 염병할 병무 담당자라니. 하긴, 고쳐달라고 하지 않은 내 잘못이기도 하지.

  청구이즈가 제대 증명서를 가지고 현성에 도착한 것이 1967년 여름. 당시 현성에 휘몰아치고 있던 크고 큰 격랑이 있었으니, 문화대혁명. 많아봐야 하이틴으로 보이는 소년들과 20대 초중반까지의 청년이 늙은 봉건잔재와 재산을 숨긴 부르주아, 혁명사상에 반대한 배 나온 간부, 간음한 남녀, 기타 등등 자기들 눈에 비정상이거나 하는 짓이 좀 더럽다 싶은 모든 인간들을 체포해 두드려 패고, 고깔을 씌워 조리돌림을 시키고 있었다. 가오아우쥔의 눈이 핑, 돌아갔다.

  이게 혁명이야. 혁명의 파도가 제대로 넘실거리고 있어. 나야말로 혁명가의 적자. 현성에서 3일 동안 대기하면서 다양한 것을 목격한 아이쥔은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물 때 철길에 앉아있는 한 여인, 숙명의 혁명 여인을 만난다. 샤홍메이. 붉은 매화. 캬. 첫 만남부터 옌롄커의 필봉이 장난 아니다. 이건 정말 읽어보셔야 아는데, 엣다, 맛보기만 조금. 아주 조금. 지독하게 조금. 1만분의 1만.

  “그런데 그때, 그 위대하고 신성한 순간, 제가 그녀의 선홍색 발톱을 만지려고 할 때 갑자기 그녀가 발을 거두었습니다. (중략) 그녀는 그렇게 잠시 발을 거뒀다가 수줍게 웃으며 이전처럼 달밤에 꽃이 피듯 다시 내밀었습니다. (중략) 저는 꽃을 입에 물 듯 그녀의 두 발을 들어 꼭 붙인 제 다리 위에 올려놓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붉은 발톱을 쓰다듬었습니다. (중략) 그녀의 발가락이 제 손안에서 톡톡 튀고 그녀의 발에서 피가 강물처럼 미친 듯 흐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게 몇 페이지를 넘긴다니까.

  첫날 이렇게 만난 여자 샤홍메이. 그녀를 곧 다시 만난다. 전임 진장 청톈민 집안의 며느리로. 현성 동관 사람이며 청톈민의 아들이자 아이쥔의 고등학교 동창 청칭둥의 아내. 그리고 가오아이쥔의 평생 혁명 연인이 될, 백옥 같은 피부, 칠단 같은 머리카락과 삼각형의 복슬한 음모, 진지한 마오쩌둥의 숭배자이자 혁명가 가운데 혁명가. 가오아이쥔과 함께 죽음을 맞을 때까지 조금의 후회도 없이 한 목숨 혁명과 사랑을 위하여 아이쥔의 온몸을 붙들고 쇠를 녹이는 혁명의 화염 속으로 투신할 미와 사랑과 혁명의 화신.


  그런데 이런 주인공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중국 당국에서 판매금지 조치를 해버렸다고? 이해되지 않지?

  이들이 말하는 혁명이 문제다. 청촌의 서기가 되고, 진의 진 서기나 진장이 되고, 현의 현장이나 현 서기가 되고, 성의 성장이나 서기, 시의 시장이나 서기, 그리고 베이징. 이런 식으로 단계를 올라가는 권력을 쥐는 것이 불행하게도 가오아이쥔이 생각하는 혁명이었다. 사랑도 마찬가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 앞을 막는 건 모두 혁명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법. 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거니까. 옌롄커는 애당초 말도 되지 않는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식 공산주의를 깔아 뭉개 버렸던 거였다. 당국자라고 그걸 모르겠어? 굳이 말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더 높은 당국자의 눈치를 봐야 하니 뿅망치 세 번 땅, 땅, 땅, 두드리면서 판매금지 판결을 내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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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10-17 0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옌롄커의 작품은 안 읽어봤는데, 입문작으로 괜찮을까요?ㅎㅎ

Falstaff 2025-10-17 06:59   좋아요 1 | URL
근데 옌롄커가 좀 험합니다. 하긴 중국 남성 작가들이 대개 그렇지만요. 저도 처음엔 옌이 무척 못마땅했는데요, 그래도 좀 더 읽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 권 읽으니까 그때부터 좋아져서 후다다닥... 어느새 이 책이 11번째 읽은 작품입니다. 괜히 만년 노벨상 후보가 아니더라고요. ㅎㅎㅎ
우화적 표현이 심해서 만족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읽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yamoo 2025-10-1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별5개 출현인데....중국 소설이라 뽈님의 리뷰만으로 갈음하겠습니다...ㅎㅎ

Falstaff 2025-10-18 03:54   좋아요 0 | URL
글쎄 옌롄커가 만년 노벨상 후보라니까요! ㅎㅎㅎ

케이 2025-10-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임에도 영화나 책에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느껴져요. 저한테는.
진짜 벌어졌다고 믿기지 않는 야만의 역사와 사건을 마주할 용기를 갖기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냥 슬픈 정도가 아니라 가슴을 천갈래 만갈래 박박 찢어 발기는 슬픔과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영화 <패왕별희>를 정말 좋아하지만 다신 보고 싶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미국으로 추방된 중국 국적의 사회학자가 공산당이 몇 년사이에 죽인 중국인이 8천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공산당에 반기를 드는 시늉만 해도 다 죽여서 결국 8천만명이나 죽였는데도 그래도 누군가는 이렇게 공산당을 고발하고 반기를 든다는 것에 인간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또 공산당이라고 칭하는 자들이 추구하는 바가 얼마나 어리석고 덧없는 것이었는지도요.
영화 <홍등> 이었나 <인생> 이었나 하여튼 두 영화 중 하나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 공리의 발을 지긋이 만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당시 남자에게 여자가 맨발을 내주는 것이 엄청나게 에로틱한 행위였다고 하더라고요. 시대적 배경을 보니 읽으신 소설과 같은 시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집에 옌레커 책을 한권 사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위에 쓴 진입장벽의 이유로 못 읽고 있어요. ㅋㅋㅋㅋ 이 책도 정말 내용이 쉽지 않아 보이네요.
이렇게나마 중국 소설을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 날씨 만끽하는 하루하루 되세요.

Falstaff 2025-10-21 17:14   좋아요 1 | URL
아휴.... 낮술에 취해서 말입죠. 글씨체도 작고 눈은 침침하고 ㅎㅎㅎ 훑어보니 영화 보신 거 같은데요, 모옌, 위와, 옌롄커 이 인간들은 영화보다 활자에서 더 뾰족한 대가리, 두각을 나타내는 거 같더라고요. ㅎㅎㅎ
아무쪼록 첫 작품이 <인민을 위해....>가 아니기 바랍니다. ^^
낮술에 꽐롸 폴스타프 올림.

케이 2025-10-22 11:25   좋아요 1 | URL
사놓은 책은 <연월일> 입니다. ㅜ 하지만 언제 읽을지 몰라요 ㅋㅋㅋ
 
처음부터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한경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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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세의 크리스토프 하인이 1997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의 바이오그래피와 비교하면, 다분히 자전적 성장소설로 봐야 할 터이다. 13세. 폭풍 같은 사춘기를 시작하는 시기. 사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이전 시기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체득하고, 감각하기 시작하는 시절. 그건 동서도 없고, 남북도 없으며, 체제의 다름도 관계없다. 세상의 모든 열세 살에게 닥쳐오는 폭풍의 시절.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이 그러하듯, 공산주의 체제에서 교구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작중 주인공 다니엘의 세상살이는 처음부터 쉽지 않게 만들어졌다. 종교가 아편인 세상에서 목사의 아들이라니.

  커트 보니것은 인디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인디애나폴리스의 인디애나폴리스 대학 졸업식 연설문 원고에서, 1840년대의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아편”, 여기서 아편이라 함은 당시에 가난한 인민들이 구할 수 있었던 가장 저렴하고, 가장 효과적인 진통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21세기였다면 “종교는 타이레놀”이라 했을 거라나? 졸업식 직전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그의 소원대로 고향인 트리팔마도어 행성으로 떠나는 바람에 의사 아들이 대독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여간 당시, 그때가 1950년대 중반이었는데, 책에 의하면 아버지의 직업과 외조부모의 신분이 구 동독에서는 공부 잘하는 두 아들이 인문계 고등학교 과정인 김나지움에 입학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학업능력은 요구 수준을 능가하지만 과업을 성취해갈 사회주의적 인성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았다는 이유. 그걸로 동독 체제 안에서 교구 목사님의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연달아 김나지움 진학을 거부당했다. 그게 나라냐고? 나라지. 세월이 문제였을 뿐. 공부만 잘해 서울법대를 졸업했어도 파르티잔이나 월북 빨갱이를 아빠로 두었다는 거 하나 때문에 사법, 행정, 외무 고시는커녕 공기업도 아니고 사기업에 취직도 못하던 시기가 우리나라에도 몇 십 년이나 있었는 걸 뭐.

  다양하게 지역사회 인사들, 당연히 아이들이 다니는 중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포함해서, 나름대로 발언 좀 한다는 이들과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잘한 충동과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 교구 목사님도, 그렇다고 자기 두 아들의 진학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맏아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먼저 둘째 아들 다니엘을 자기가 운전하는 낡은 차에 태워 라이프치히든가 하여간 가까운 도시의 기차역까지 데려가서, 함께 기차를 타고 서베를린에 있는 친척 방문이라 구라를 풀어 검문 경찰을 속여 서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미리 서신으로 연락을 해 둔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에 입학시켜버린다. 이미 서베를린에는 동독 출신 학생들을 위한 클래스가 있을 만큼 동쪽 출신 학생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다. 다음날 아이와 함께 시내에 나가서 초콜릿으로 겉을 감싼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아이가 배웅하는 기차역에서 올 때와 반대 방향으로 집에 도착하면 된다. 책 속에서는 엄마도 함께 따라 나섰다.

  작품은 이제 한 시간만 있으면 주인공 다니엘이 아빠 차를 타야 하는 순간에, 다니엘이 막달레나 고모에게 작별인사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 장면을 제일 앞에 놓고 시작하는 거다. 게다가 다니엘의 외할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홀츠베델에 있는 농장의 감독관으로 있었지만, 과거에 귀족 집안에 속한 농장의 충실한 마름이었다는 출신성분과 계속되는 당국자의 공산당 입당 권유를 끝까지 물리쳐 올해 감독관 자리에서 해고당하고 이젠 다니엘 집으로 와 함께 살고 있으니, 하여간 여러가지로 형 다비트와 다니엘을 도와주지 않은 건 맞다.


  작가 크리스토프 하인도 다니엘과 같은 또는 아주 조금만 다른 이유로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 작품을 쓰고 몇 년 지나면 잘 쓴 체제비판 소설 <호른의 죽음>을 발표한다. 그렇다고 이이가 1990년 10월 3일, 독일재통일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런 청소년기의 학습 좌절 경험과 서베를린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크리스타 볼프와 더불어 독일의 재통일에 반대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그룹 가운데 한 명이었다. “솔직히”라는 부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하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종이다. 즉, 1940년대부터 근 반세기 동안 유효했던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이런 빗나간 공산주의 체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이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1인을 제외한 모든 인민이 프롤레타리아인데, 딱 한 명이 나머지 모든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독재를 펼치는 체제를 의미했을 뿐이다. 한 번 더 솔직히, 스탈린과 우간다의 이디 아민이 뭐가 다른데? 이디 아민이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날 것으로 먹은 거 말고.

  호른과 볼프는 경제체제로의 공산주의와 정치체제로의 민주주의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1990년의 독일 재통일이 이런 가능성 자체를 없애는 행위라고 봤던 것이겠지. 기형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한 동독 안에서 호른과 볼프는 공산주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 체제를 비판하는 데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체제를 지양하는 방편으로. 사는 게 다 그렇다니까.


  작품 속에서는 적극적인 체제 비판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겨우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다니엘에게 숱한 사람들이 “비밀”을 요구한다는 것. 동베를린도 아니고,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도 아닌 시골 구석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관해 속닥이는 것도 “비밀”을 약속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 지. 체제가 전체주의적이었다는 뜻이다. 경찰국가였다는 말과도 같고. 내 부모가 조금이라도 정치적 발언이다 싶으면 새끼들 알아듣지 못하게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를 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행여 그냥 우리말로 했다가 얼핏 보니 옆에 나 및/또는 형이 있는 걸 알아차리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내 부모. 밖에서 절대 이런 말 하지도 말고, 어디서 들었다는 말도 말아라. 큰일난다.

  아주 사소한 대화도, 행위도 마찬가지. 비록 정말로 아버지의 누이는 아니지만 고모라고 부르는 막달레나 고모의 집에서 1차세계대전 이전에 만든 소년용 놀이인 “바다에서의 전쟁”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도 비밀, 형 다비트가 2년 전에 서베를린의 김나지움에 가서 지금 열공중이라는 것도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비밀. 공화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가끔 교구 목사인 아버지를 찾아와 깊이 악수하는 걸 본 것도 당연히 비밀, 러시아호lake에서 필레의 벗은 허벅지 사이 음모에서 물방울이 똑똑 듣는 모습을 훔쳐본 것도 당연히 비밀, 이건 정말로 비밀 중에서도 특급비밀. 심지어 순서대로 다비트, 다니엘, 도얼레, 미하엘, 마르쿠스를 두었음에도 엄마 배 속에 또 아들 하나가 들어 있어 몇 달째 엄마가 아빠한테 말 한 마디 안 하는 것도 비밀. 당연히 주인공 소년 다니엘은 이 비밀들을 다 지켰다가는 입에서 쉰내 날까 싶어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떠들고 다니지만, 이게 다니엘을 탓할 일인가? 애초에 언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 없었으니, 다니엘, 무죄다.


  그래서 이 책을 <호른의 죽음> 비슷하게 1950년대의 동독에 대한 체제 비판적인 작품으로 보지 않는 편이 좋다. 열세 살 먹은 소년 다니엘이 사춘기를 맞아 정서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열세 살이라는 애매한 나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교실에서는 훌렁 벗은 여성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정말로 성 경험이 있는 친구는 아직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는 꼬맹이들. 불과 1, 2년만 더 지나면 알 거 다 아는 걸 지나 해볼 거 다 해본 본격적인 반항기 시절을 맞을 예비 까칠이들. 정말 동성애를 하는 남자들도 있다는 얘기를 직접 듣기 시작하고, 두어살 더 많은 아이들이 호숫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라이브로 감상하면서 처음으로 사정을 경험하는 다니엘. 이때 얼마나 힘차게 사정을 했는지 일부가 필레의 자전거 안장까지 튀어 몇 달 지나 필레가 임신을 했단 얘길 듣고 혹시 자기 정액을 깔고 앉아 임신한 거 아닌가? 그럼 필레의 배 속에 내 아이가 들었을 수도 있겠네? 노심초사하기까지 하는 불쌍한 다니엘. 뭐 그러면서 크는 거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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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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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출간한 때가 2008년. 필립 로스가 75세. 어쩜 이렇게 한결 같은 수 있을까? 이제 손바닥을 붓 삼아 바람벽에 똥칠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건만. 전립선암 수술을 해 비아그라를 몇 큰 술 퍼먹어도 신체 반응이 전혀 없을 시기. 그러면 그럴수록 반동작용으로 뇌 속에서 더욱 찬란한 성적 판타지를 펼치는, 인류 가운데 몇 안 되는 작가. 대개의 경우에 수컷이 생식능력하고 멀어지면 저절로 그쪽 방면에 관심도 없어지는 법이거늘, 이 양반은 어째 그런댜? 하여간 이름난 거물이 좋긴 좋다. 아무리 주접을 떨어도 이이더러 더러운 변태, 중증 성도착 영감탱이라 멸시하는 인간은 별로 보지 못했다.

  지금 욕하는 거냐고? 아니다. 변태가 됐건, 더럽게 늙었건 간에 소설 하나는 재미있게 참 잘 쓴다. 상당한 좌파에 진보, 그리고 유대의식이 핏줄 속에 진하게 남은 자유주의자의 작품이 이제 새삼스레 림보에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이 문제긴 한데, 그러면 안 된다면 법 조항 또한 없으니.

  나는 이이의 작품을 읽으면, 처음엔 그것 때문에 거 참 시원하게 말 잘한다면서 팬이 되었지만, 이젠 어째 쓰는 책, 읽는 작품마다 균일하게 과장된 묘사와 과격한 주장, 쓸데없는 엄살, 별로 필요할 거 같지 않은데 굳이 가져다 쓰는 노골적 성행위 또는 유사성행위가 점점 싫어졌다. 아닌 척하면서 은근한 여성 비하/차별까지. 자기 주장을 과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있는 대표적 작가. 로스의 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한테 필립 로스를 한 다스 가져다주어도 커트 보니것 한 명하고 바꾸지 않겠다.


  주인공이자 화자 ‘나’의 이름은 마커스 매스너. 마커스? ‘마르쿠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3대째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매스너 코셔 정육점 집 외아들. 삼촌 두 명도 푸줏간을 하고 있으니 적어도 푸주한, 백정 집안의 명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실례지만, 시대적 배경이 1950년이니 그 시절 시각에 입각하면 그랬다는 말이다. 코셔 정육점이란 건, 짐승 즉 소, 돼지, 양, 닭, 염소, 거위, 개… 아, 개는 아닌가? 각주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개는 아닌 거 같다. 이런 것들을 도살할 때, 딱 한 번의 칼질로 단번에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렇게 도살했다는 걸 랍비로부터 공인을 받은 정결한 고기만 파는 곳을 말한다. 고객의 대다수는 유대인이다. 아무래도 도살 공정이 좀 더 길고, 랍비를 불러오려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시급을 랍비에게 주어야 하니까. 그래도 큰 전쟁 두 번을 치루면서 매스너 코셔 정육점은 괜찮은 실적을 내며 뉴어크 시내에서 안정적인 상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사정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자 세상의 시스템도 갑자기 바뀌어 뉴어크 역시 자본주의 적 팽창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대형 슈퍼마켓이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들어와 코셔 정육이 아닌 일반 도살된 소, 돼지, 양, 닭, 염소, 거위, 개… 아, 개는 아닌가? 이런 고기들을 저렴하게 팔기 시작하자마자, 창세기 시절부터 한 푼의 절약에 관한 한 세상 어느 민족과 비교해 “조금도” 뒤져본 적 없는 유대인 후손들이, 불경기를 과대광고하면서 정결하지 않은 비-코셔 고기를 사먹기 시작했고(에잇, 내가 차라리 죽은 다음에 지옥불에 빠지고 말지!), 뉴어크 시내가 조금씩 슬림화 되면서 뉴어크에 살던 기존에 자리잡은 유대인들이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이주하는 동시에 새롭게 유입되어야 마땅한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안전해지니까 굳이 이민 올 이유가 없어서, 뉴어크 유대인들의 절대 인구 또한 팍 줄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


  그런데 1950년 9월. 저 한반도, 코리안 페닌술라에서는 북한군이 밀려와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밀어 부치던 상황. 미군이 급하게 달려가 막아보려 했으나 예상 외로 잘 무장되어 있고, 훌륭하게 훈련되어 있는 북한군을 도저히 당하지 못해 판판이 깨지다가 일흔이 넘은 노장 맥아더가 이끄는 함대가 인천상륙작전을 벌인 시기였다. 이것이 이 정육점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면, 이집 아들이 주인공이자 화자 ‘나’이자 현재 모르핀을 강력단위로 맞고 마약으로 인한 환각이 뇌에 작용하여 평소에는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던 세밀한 기억, 숱하게 나누었던 대화까지 몽땅 기억하고 있는데, 이 ‘나’, 마커스, 애칭 마키 매스너가, 이 코셔 정육점의 외동아들로, 만일 대학에 들어가 ROTC 교육을 네 학기 이상 받지 못하면, 장교보다 훨씬 죽을 확률이 높은 사병 신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박박 기다가 아주 높은 기대치로 중동부 전선에서 귀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하시라. 당시 미국 청년의 병역은 징병제였다. 2년 정도? 그건 잘 모르겠다.

  이렇게 작품의 모두에 한반도의 내전이 제법 상세하게 나오는 것이 어째 좀 이상했다.

  하지만 코셔 정육점의 매스너 부부의 외아들 마커스 매스너는 온 뉴어크 시내가 알아주는 고교 야구선수, 책벌레, 착한 아들, 집안의 기둥, 기둥 즉 대주大柱는 당연히 매스너 씨가 맡아야 하니, 그냥 대들보 동량棟梁 정도라고 하자. 고등학교 3년 동안 여학생들과 키스, 입술만 살짝, 눈깜짝할 새만 가져다 댔다가 떼는 그런 키스만 두 번 해봤고, 의미있는 부위의 피부도 한 번 만져보지 못한 진국 또는 어리버리 공부벌레였다. 키도 크고 잘생기기까지 했는데도. 키 크고 잘 생기면 꽃도 나비나 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법이거늘. 이게 다 자애한 아버님의 지도편달 덕분이었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마키는 자신이 다닐 대학으로 뉴어크 시내에 있는 아주 작은 대학 로버트 트리트로 정했다. 집에서 다닐 수 있어서 비싼 기숙사비나 하숙비가 들지 않고, 틈틈이 정육점 일을 해 아르바이트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아버지 입장에서도 꾸준히 아들의 성장을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이 집구석에서, 사방팔방 온 친척을 다 망라해서 마커스가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자손이었다. 이건 진로에 대해 올바른 조언을 해 줄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마커스는 자신이 품고 있는 진로,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 장교 입대, (직접적 전투를 하지 않는)수송부를 거쳐 작전실에서 한국 전쟁 참전, 제대 후 다시 로스쿨 입학, 잘 나가는 변호사의 길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그런 대학의, 스펙도 별로 없는 교수들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진지하고 힘을 다하여 올바르고 훌륭한 배움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마커스는 1년만 다니고 오하이오 주에 있는 조용한 학교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전학한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 하면, 평소 자애롭기 그지없던 아버지가, 마커스의 대학 입학이 결정되자마자 아들과의 사이에 파괴적인 갈등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갈등의 기본은 아버지, 특별히 유대인 아버지다운 아들 인생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한다. 자기 자신이 살아온 것을 보더라도 이 험한 세상에 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아들. 세상 도처에 널리고 널려 있는 위험으로부터 아들, 그것도 외동아들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 이걸 동양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 “기 나라 사람의 걱정” 기우杞憂라고 했는데, 도가 지나쳤다. 자신이 항상 시퍼렇게 날이 선 크고 작은 칼을 다루어야 하고, 형제들이 아들을 몽땅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과 벌지 전투에서 잃는 바람에 이 쓸데없는 걱정이 더욱 심화되었을 지도 몰랐다. 하여간 로스의 글만 본다면 누군가 시급히 아버지를 뉴어크 병원 신경정신과에 데려가 입원치료를 시켜야 할 수준이었건만, 1950년대 초에 칼잡이한테 누가 쉽게 권할 수 있었으리오. 아버지는 앞뒤 문짝에 새로운 열쇠를 두 개 달아 이제 정한 시간이 넘어 마커스가 집에 돌아오려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현관문을 두드려 부모를 깨워야 했으니, 다 큰 아들이 이게 뭐야. 유대인 답게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아직도 제대로 된 키스도 한 번 못해봤고, 오직 하는 일이란, 도서관이 없는 삼류 대학을 다니는 죄로 시립 도서관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숙제도 하고, 책도 읽느라 집에 좀 늦게 들어올 뿐인데 말이지. 이게 아버지여, 웬수여?


  그래서 마커스 매스너는 오하이오주에 있는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전학을 선택했다. 뉴어크에서 8백km 떨어진 곳. 공항도 없고,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 아버지가 와볼 생각을 애초에 하지 못할 곳을 고른 것이다. 와인스버그 오하이오. 어디서 들은 책 제목이지? 지금 도서 신청하고 기다리는 셔우드 앤더슨의 “잘 쓴” 책 제목이다.

  마커스가 굳이 와인스버그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천만에. 하필 뉴어크에 아버지 옆 상점의 여주인 스펙터 부인의 조카가 이 와인스버그에 다녔는데, 유대인이면서 유대인 클럽 회장은 당연하지만 클럽연합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서니 코틀러였다. 무지 잘 생겼으며 축구단 주장이기도 하니 말 다했지 뭐. 서니 코틀러가 학생과에 힘을 써, 마커스는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 줄 알았는데, 마커스가 배정받은 기숙사 방에 들어가보니까, 이층 침대 두 개, 합해서 넷 가운데 세 침상의 주인이 전부 영문과 3학년에 다니며, 연극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인들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학교에서도 가장 문제아로 손꼽히는 플러셔는 나중에 알게 되지만 심지어 당시엔 용인되지 않았던 게이이기도 했다. 유대인 게이? 아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당해야 하는 곤란함은, 오하이오 와인스버그에 도착한 첫날 기숙사 룸메이트 대마왕 플러셔로부터 당할 피곤한 난관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게 여겨질 정도가 되어버리고 만 것. 근데 전에 다니던 로버트 트리트 학교보다 덩치가 수십 배 큰 학교이니 로버트 트리트에 다닐 때보다 수십 배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생기지 않겠어? 딱 두개만 골라보자면, 기대하시라, 금발의 아름다운 편입생 올리비아와의 첫 몸 섞음, 그리고 졸업 전까지 40회 참석해야 하는 채플. 마커스는 유대인이지만 종교적으로 아무 관심이 없는 무신론자. 이 채플을 위하여 일주일에 90분을 소비해야 하는 일이 정말 싫어, 나중에 친구 하나를 만들어 그 아이에게 한 번에 1달러 50센트를 주기로 하고 마커스 대신 채플을 듣는 걸로 하는데, 이 두가지가 그리 쉽지 않았던 모양이지? 마커스의 인생까지 결딴 낸 걸 보니까?

  내가 로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지, 재미있는 작가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나 때문에 로스에 저항감을 가질 필요는 1도 없다. 모쪼록 즐기시기 바란다. 그랬으면 좋겠다.



북적북적 앱엔 셋 반이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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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10-15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전 1년 전에 냥냥하게 별 다섯 줬네요. 죽은 할배 리스펙트

Falstaff 2025-10-15 16:00   좋아요 1 | URL
이거 올릴 때부터 열반인 님 댓글 기대했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5-10-15 19:54   좋아요 1 | URL
같은 책 읽는 거 겹칠 때마다 황송하고 영광입니다요!

Falstaff 2025-10-15 20: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열반 썜도 참... 별 말씀을!
 
알 수 없는 발신자 - 프루스트 미출간 단편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윤진 옮김, 뤼크 프레스 해제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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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엔 프루스트 소설집 《질투의 끝》을 읽었다. 도서관 홈페이지의 관심도서에 몇 년 동안 쌓아두기 만했다가 이웃분의 말씀 끝에 나와, 아이쿠 싶어서 얼른,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엔 혹시 프루스트의 책 가운데 내가 모르는 것이 또 있을까 싶어 서가를 뒤지다가 2022년에 문학동네에서 낸 《알 수 없는 발신자》를 찾았다. 부제가 “프루스트 미출간 단편선”이다.

  아시는 분은 아신다. 내가 이 “미출간 작품”을 별로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걸. 프루스트가 죽은 지 벌써 백 년이 넘었다. 이 책 나올 때가 딱 백 년이 되는 해였던 걸 보면 문학동네가 딱 시기를 맞춰 프루스트 마케팅을 한 걸로 보이며, 같은 해 2월에도 현암사에서 같은 레퍼토리(실린 작품들)로 “미출간 작품집” 《밤이 오기 전에》를 내기도 했다. 이 번역서의 원본 또한 2019년에 나왔는데, 여러 번 주장했던 내 생각은, 만일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품질이 좋았다면, 좋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면, 죽고나서 97년이 지나서야 책으로 찍었을까? 하는 거.


  이 책 속에는 겨우 두 페이지 분량밖에 되지 않는 미완성 작품도 들어 있다. 독자는 이걸 과연 작품으로 봐야 할까? 혹시 작품 쓰기 전에 메모 비슷하게, 아니면 좀 혹독하게 말해서 끄적인 낙서 정도로 치부해도, 기껏 책을 낸 출판사나 역자는 기분 나쁠지 몰라도, 안 어울리지는 않아 보인다. 그것도 이미 너무 올드한(확실히 외래어 남용이란 지탄을 받아 마땅한 표현이다) 것들을. 뭐가 그리 올드하냐고? 예컨대 이런 문장들?

  “저는 당신의 몸을 원합니다. 그럴 수 없음에 절망과 광란에 빠져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 종이를 구기고 나무껍질에 이름을 새기고 바람에 대고 혹은 바다를 향해 이름을 부르듯이, 그렇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 입으로 당신의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들 수 있다면 내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똑같이 저를 달아오르게 만듭니다. 지금 내가 바로 그 욕망으로 제정신이 아님을 이 편지를 받은 부인께선 알 수 있을 겁니다.” (p.56)

  이 편지를 쓴 사람이 책의 표제작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발신자” 크리스티안이다. 발신자가 그리 몸을 원하는 문제의 부인은 프랑수아즈인데, 이 편지를 죽어가는 그가 마지막 소원을 담아 쓴 편지인 걸 알고, 소원을 들어주려 자기 고해 신부까지 불러 사정을 설명해봤건만 신부는 딱 잘라 안 된다고 하고, 크리스티안까지 마지막 숨이 넘어간다는 스토리. 뤼크 프레스라는 이름의 프루스트 연구자는 이 작품이 189X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지만 발신자가 누군인지 모르는 이 편지만 읽어보면, 19세기라도 세기말이 아니라 세기 초중반에 썼다고 해도 그리 참신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 내가 비록 문외한이더라도 올드하다고 입을 놀릴 수 있었겠지.


  물론 프루스트다운 길고 유려한 문장이야 말 해 뭐하겠고, 이런 긴 글을 유려하게 번역하는 윤진의 우리말 실력이야 내가 진작 알고 있는 터, 여기에 관해서는 도무지 까탈을 잡을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그리하여 아마추어가 함부로 평을 하자면, 해제를 쓴 뤼크 프레스처럼 프루스트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 독자가, 프루스트한테 환장을 하지 않았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는 것.

  이 책에서 중요한 건 프루스트의 미발표작, 메모 또는 끄적인 낙서를 읽는 것보다, 오히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뤼크 프레스의 해제를 읽는 것일 수 있다. 이 책이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합쳐 209쪽인데, 프레스 교수가 쓴 서문이 34쪽에서 끝난다. 그러고 마는 것도 아니라서, 각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를 시작하기 전에 각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에 관한 프레스의 해설이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한다.

  또 있다. 각 페이지 아랫동네에 자잘한 글씨로 쓰인 각주. 멀미 날만큼, 하늘의 별만큼 달려 있어서 표제작 <알 수 없는 발신자>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150개의 각주를 달았다. 처음엔 각주 표시가 있으면 습관적으로 본문 아래 각주를 한 번씩 찾다 보다가 딱 두 페이지 넘긴 다음부터는 각주 표시가 아무리 다닥다닥 붙어도 문학동네, 아니, 각주동네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본문만 읽고 지나가게 된다. 아니라고? 당신은 정말로 단편 분량도 되지 않는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를 읽을 때마다 각주동네 구경까지 꼬박꼬박 하셨다고? 그럼 당신은 프루스트한테 환장한 거 맞다. 그것도 1급 환장.


  그래도 내 마음에 딱 드는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도 있다. <베토벤 8번 교향곡 이후>.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베토벤 교향곡 가운데 4, 6, 8번이 홀수 번호보다 더 좋아졌다. 이 가운데서도 8번이 참 좋다. 뭐라? 8번이 <영웅>, <운명>, 위대한 7번, 그리고 <합창>보다 더 좋다고? 그렇다. 그거야 내 마음이지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잖여? 그잖여?

  8번 중에서도 3악장 미뉴에트. 아오, 나이 좀 먹으니까 엄숙무비한 것보다 발랄하고 상큼하고, 앙큼한 게 얼마나 좋아? 나는 이제 대규모 편성 교향곡,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말러 같은 건 못 듣겠더라고, 변비 생길 거 같아서. 8번 3악장, 미뉴에트 한 번 들어 보실 텨?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브레멘 독일 실내 관현악단의 연주이다.


 

  이걸 프루스트는 이렇게 듣고(감상하고) 얘기한다.

  “우리 마음 속에서 애정으로 변하는 그 미소를 우리는 무한히 돌려받는다. 그 나라에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속도의 현기증을 느끼고, 기운이 소진될 때까지 싸워도 피로하지 않으며, 아무 위험 없이 미끄러지고 솟아오르고 날아오른다. 그곳에서는 매 순간 힘이 의지에 부응하고 관능이 욕망에 부응한다. 매 순간 모든 사물이 우리의 공상으로 달려와 가득 채워도 싫증나지 않는다.” (p.119)

  딱 하나, 위 인용에서 “우리”라는 1인칭 복수 대신 “나” 단수로 썼으면 좋겠다. 내가 애정으로 변하는 미소를 돌려받는지 마르셀 프루스트가 아니라 귀신이라도 그걸 어떻게 알아? 특히 음악, 미술, 시, 소설 같은 예술에 있어서야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함부로 “우리”라는 말 쓰면 안 될 걸?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우리”를 편애한다는 건 알아도 말이지.

  하여간, <베토벤 8번 교향곡 이후>라는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가 내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 모음집 《알 수 없는 발신인》을 당신한테 읽어보라고 권할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나는 프루스트에 결코 환장한 인간이 아니거든. 오히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활자까지 다 읽기는 했어도, 하마터면 질식사할 뻔했거든. 위대하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재미있고, 의미심장하고, 깊게 공감하며 읽은 분이라면 이 작품이랄까 메모 또는 낙서 모음집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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