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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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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다비드 그로스만. 요즘 이스라엘 하는 꼴이 하도 못마땅해 이스라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 전혀 없어서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었다가 왜 그랬는지, 갑자기 이 책을 관심도서 목록에 올려 놓았었다. 나 한테 그로스만은 다비드가 아니라 바실리 그로스만으로 콱 박혀 있다. 이 그로스만이 그 그로스만이 아니라는 것도 이이의 작품을 멀리한 작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웃기지? 살면서 별 일이 다 있는 법이니까 뭐.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를 읽는 내내 작가의 진짜 가족 이야기가 궁금했다. 위키피디아를 보니까 그로스만의 아버지는 아홉 살 때 과부 엄마와 함께 폴란드 디누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민 왔다고 한다. 외할머니도 폴란드에서 경찰의 괴롭힘을 피해 딸, 아들과 함께 이주했다. 이래서 다비드 그로스만은 팔레스타인 히브리어뿐 만 아니라 이디시어도 구사했을 듯.
그의 할아버지 가운데 한 명은 양탄자를 사고 팔아 마진을 챙겨 수입을 보충했다 하는데 책 속에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헌옷을 수입해놓고 팔지 못해서 집에 엄청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각색했다. 위키피디아도 못 믿겠다. 아버지가 과부 엄마 손을 잡고 이민 왔다며? 그럼 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죽었다는 거다. 팔레스타인에 와서 다시 결혼해 엄마를 낳은 외할아버지라는 뜻인가? 그런데 외할머니를 “그의 모계 할머니 his maternal grandmother”라고 썼으면 외할아버지도 비슷하게 불러야지. 아, 몰라, 몰라.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A Horse Walks Into a Bar>는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다음해인 2017년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작품으로, 우리나라 번역도 히브리어로 된 원본 말고, 제시카 코엔이 영어로 번역한 부커-인터내셔널 판을 정영목이 중역했다.
작품의 화자 ‘나’는 3년 전에 이스라엘 최고의 변호사, 우리나라로 치면 ‘김앤장’쯤 되는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생각하면 딱인 피고측 변호사를 법정에서 지독하게 모욕하고 판결한 지방법원의 판사 출신 ‘아비샤이 라자르’다. 판결 후에 이스라엘 법조계에서 기피인물로 찍혀, 대법원 판결이 완전히 뒤집힌 건 물론이고 완전히 사법계의 왕따 신세로 몰려 자진 명예퇴직을 선택해 일선에서 물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아내도 세상을 떠 사는 맛을 모르고 살던 터. 어느 날 밤 11시 반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린 시절 칼힌스키라는 사람한테 1년 내내 함께 수학 과외수업을 받은 적 있는 도발레 그린스타인.
도발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고등학교 시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무력으로 그들의 땅을 점령해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켰고, 아랍 국가들 한테도 여전히 깡패짓을 하고 있어서 고등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을 본받아 교련을 남녀 고등학생, 남자 대학생들의 정규과목으로 정해 열병 분열, 사격, 화생방은 물론이고 백병전까지 가르쳤다. 웃기지? 나도 했는 걸 뭐. 이스라엘은 고교 1학년 때 즉 여학생도 포함해 모든 학생을 상당기간 사막 한 가운데로 데려가 집체교육도 시켰다고 이 책에 나온다. 이 단기 병영에서 피가 끓는 많은 고등학생들이 처음으로 이성의 몸을 만지고 뭐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주인공 도발레는 158cm의 키와 마른 체격 때문에 아이들의 집중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비샤이가 도발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이 캠프였으니까 벌써 40년 이상의 세월이 훅 흘러갔다. 그동안 도발레는 베테랑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어 있었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 두 여자의 남편이었다.
40년 이상이 흘러, 전혀 연락도 없다가 처음 전화를 해서 하는 말이 며칠 후에, 이스라엘에서 실업률과 범죄율이 제일 높은 도시 네타니아의 한 바에서 공연을 하니, 그 공연에 꼭 참석해달라, 공연을 보고 느낀 감정을 단 한 두 문장이라도 좋고, 한 통의 전화라도 좋으니 자기한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거였다. 당연히 취미가 없던 아비샤이는 거절을 하려 했지만 말주변으로 수십년을 먹고 살았던 도발레답게 결국 아비샤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 도발레의 57번째 생일, 8월 20일 밤 공연을 그대로 지면에 옮겨 놓은 것이 이 작품이다.
미리 말해두자.
도발레 그린스타인은 158cm의 왜소한 체격에 살집마저 전혀 없다. 색깔도 거무튀튀하게 상해버린 가죽이 겨우 뼈에 발린 듯해서 과세 표준이 납세자의 몸무게에 따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사실 전립선 암이 말기에 달해 8월 20일 공연이 사실 그의 마지막 공연이다. 그래서 자기 평생의 작업을, 몇 십년 동안 남이 저지른 과오를 판정한 퇴직 판사에게 평가받고 싶어 아비샤이를 초청했을지도 모른다. 아비샤이는 아비샤이대로 자기가 본 가장 끔찍한 괴롭힘을 당한 소년 시절의 군사 캠프의 기억, 괴롭힘을 당한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사소한 일도 하지 못한, 하지 않은 자신의 비겁을 도발레가 세상에 고발하기 위한 무대일 수 있겠는 생각이 들어 공연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도발레는, 당연히 코미디 적인 발언이지만, 엄마한테 유감이 있다. 57년 전에 예루살렘의 오래 된 하다사 병원에서 진통을 시작한 어머니 사라 그린스테인. 내가 잘 되기만 바란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으면서, 그랬으면서도 나를 낳다니! 세상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슬픈 사람. 이런 사람은 그러나 도발레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 사라였단다. 아니면 어머니와 아들이 다 불안정하고 슬펐는 지도.
아버지는 늙어 조용하고 아들의 교육에 진심이기는 했지만 영낙없는 시온주의자라서 지독하게 가부장적이며 유대적 가부장의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 아들의 작은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허리띠를 풀어 채찍으로 삼아 휘두르던 작은 악마이기도 했다. 정말로 “작은” 악마. 하필이면 아버지는 지독하게 작은 키까지 아들한테 물려줬다. 어머니는 여자 가운데서도 큰 키인데 말이지.
도발레가 태어난 1956년. 12월에는 시나이 전쟁이 터졌다. 압셀 나세르가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 해. 그 해에 이스라엘은 시나이 전쟁, 카라메 전투, 엔테베 작전 등을 펼쳤고 도발레의 집에서는 그린스테인 전쟁을 시작했다고. 이 대목에서 책을 읽는 나는 긴장했다. 하여튼 내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기를) 때려 치울 테니. 즉, 이스라엘 작가라고 해서 이스라엘의 대 아랍국가 정책을 지지하기만 하면 이 책은 물론이고 다시는 다비드 그로스만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거다.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작품을 발표하기 8년 전 레바논 전쟁 당시 스무살이었던 막내아들 ‘우리’가 탱크부대 조장으로 레바논 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사했음에도, 아모스 오즈와 함께 팔레스타인에 다한 이스라엘의 정책에 반대 입장을 유지한 다비드 그로스만은, 내가 우려한 일이 일어날 기미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던 소년. 늘 밝은 모습으로 아비샤이의 기억에 남은 소년이 집에서는 아버지의 가죽 허리띠 채찍과, 폴란드에서 당한 괴롭힘과 감금 수준의 피보호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 심하게 우울했던 어머니를 견뎌야 했으며, 밖에서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끊임없는 폭행과 놀림, 따돌림을 감수해야 했다. 그걸 아비샤이는 몰랐다. 알긴 알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었고, 심각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며, 그를 돕기 위해 어떤 작은 행위도 하지 않았다. <마농의 샘>에서 마르셀 파뇽은 말했다. “침묵하는 자, 너희들 모두 유죄”라고.
집에서 어머니와 둘만 있던 시간. 하루에 길어야 두세 시간. 그 시간동안 도발레는 엄마에게 작은 기쁨을 주기 위해 공연을 시작했던 것 같다. 개그만 할 수 없어서 해본 것이 물구나무서기. 물구나무를 선 시간을 점차 늘어갔고,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넓어졌으며, 물구나무선 채로 걸어 다니면, 똑바로 섰을 때는 거의 모든 친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한 대씩 툭툭 때리고 다닌 것과 달리, 아무도 건드릴 생각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드리기는커녕 신기한 듯, 심지어 존경스럽다는 듯 바라보기까지. 세상을 거꾸로 서서, 거꾸로 보는 일. 아,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궁금해하시라고.
작은 키에 암으로 비쩍 마른 도발레 그린스타인은 거의 반백년 만에 한 시절의 친구, 남의 잘못을 판정하는 데 젊은 시절을 보낸 전직 판사를 관객으로 모시고, 자신의 필생의 공연, 백조의 노래를 부른다.
다비드 그로스만. 그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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