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스물여덟 살에 쓴 아체베가 연이어 힘을 줘 서른 살에 <더 이상 평안은 없다>를 쓰더니 서른네 살에 <신의 화살>로 이른바 아프리카 삼부작을 완성한다. 이 세 권의 책 전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이후 아체베는 피 식민을 경험한 제3세계 출신 대표선수로 전 지구의 문학 판에 식민, 반식민 논쟁의 불을 붙인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그나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관심을 두었다고 여겨지고 있던 조지프 콘래드조차 아체베의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벼른 붓 끝에 의해 거덜이 나고 만다. <암흑의 핵심>, <로드 짐> 같은 것들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식민의식을 기반으로 한 인종차별적 작품이라고 일갈을 해버렸으니.

 

 

 

 물론 전적으로 이런 영향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체베의 아프리카 삼부작이 나오고 약 10여년이 지난 후에 백낙청이 그의 명저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서 피 식민 문학으로 아체베를 소개하고 있다.

 

 

(이젠 몇 번의 중판을 거쳐 오른 쪽 그림의 두 권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게 내가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의, 치누아 아체베라는 작가에 관해 처음으로 들은 정보였다. 78년에 나온 백낙청의 저서가 지금도 여전히 책꽂이에 꽂혀 있지만 그거 꺼내 확인하려면 푸닥거리를 한 번 해야 할 만큼 깊숙이 묻혀있어 위에서 한 발언이 정확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서른여섯 살, 1966년에 또 다른 장편 <민중의 사람>을 쓴 후에는 단편소설과, 시, 아동문학만 집필하다가 1987년에 ‘마지막 장편소설’로 발간한 책이 바로 <사바나의 개미 언덕>이란다.
 아프리카 삼부작에서는 피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식민모국인 백인들에 의해 와해되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과, 영혼의 피폐를 원주민의 삶의 모습과 함께 잘 그려냈다면, <사바나의 개미 언덕>에선 식민 상태가 끝나고 식민모국이 임의대로 그어놓은 경계선에 따라 복잡하게 구성된 서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캉안’에서 벌어지는 식민 후유증, 끊임없이 벌어지는 군사 쿠데타와 장기집권, 독재, 부정부패, 경찰국가화 경향에 대해, 그리고 결론으로 아프리카가 나가야 할 화해의 궁극적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읽어본 한계 안에서 말하자면 그의 역작 아프리카 삼부작과 정말로 잘 어울리는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쉽게 얘기해 우리나라 역시 경험한 식민통치 후 반식민(半植民) 상태의 제3세계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생한 독재와 군사 쿠데타 속 지식인들의 양심적 저항의 모습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씀. 식민 시대의 반식민(反植民) 주제가 식민 후의 반식민(半植民)으로 넘어가는 건 전 지구적으로 자연스럽다는 뜻. 유사한 작품으로 응구기와 티옹오의 <피의 꽃잎들>과 <십자가 위의 악마>, 에스키아 음파렐레의 <2번가에서>,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일련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예를 들려면 수도 없이 많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의 70년대 호스티스 소설 이후 무더기로 쏟아진 작품들도 비슷하니까.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해 다시 언급을 하자면, 식민에 반대하는 반(反)식민 문학을 거친 아체베가 독립 후 절반쯤 식민 상태인 반(半)식민을 넘어 진정한 아프리카의 독립을 모색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이후 나이지리아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가 한 명 혜성같이 등장하는데, 바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한 흥미진진한 <아메리카나>의 해설에서,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란 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이이의 비빌 언덕은, 이미 대영제국에서 아메리카로 넘어간 다음이다. 21세기로 넘어온 아프리카의 작가들은 이제는 피부색과 빈부의 격차, 지역, 그리고 무엇보다 성적 차별에서의 해방을 외치고 있다. 이들 제3 세계로의 아프리카 문학은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알라 알와스아니를 필두로 하는 사하라 이북 지역의 아프리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떻게 쓰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나는 민음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인간이다. 우연히 그 회사 책을 많이 인용하게 됐다.)


 어떻게 쓰다 보니 건방지게 아는 척을 너무 많이 한 거 같다. 여태까지 쓴 거 그냥 이것저것 읽으면서 저절로 품게 된 ‘개똥철학’, 아니, '개똥문학' 범주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 괜히 기억하실 필요 없다. 이제 책의 스토리로 넘어가보자.
 해방 후 독립한 서아프리카의 가상 국가 캉안에 쿠데타로 집권해 대통령 자리를 꿰찬 '샘'이란 작자가 이웃국가들의 절대 독재자들, 아민, 보카사, 무가베 등한테 배운 바가 있어 자기도 평생 대통령을 해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국민투표를 하게 됐는데, 남부 열대우림 지역은 별 거 없는데, 북쪽 건조한 사바나 지역이 조금 문제라, 투표를 앞두고 우물 파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네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지금 우두머리가 영원히 통치할 수 있도록 투표하는 데 동의하라고 요구했지만 (우두머리 자신은 영원히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그렇게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단 말이요.) 지역 대표 촌로는 그 말에 속임수가 있다는 걸 깨닫고 이리 묻는다.
 “누가 우두머리에 강요합니까?”
 “국민들이요.”
 “국민이라면 우리를 뜻하나요?”
 대답을 못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만 있던 낯선 이를 보고 간계가 있다는 걸 안 촌로는 그냥 고맙다는 말만 전해 그들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두머리는 양식 있는 사람이라 영원히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소. 심지어 남자가 여자와 결혼할 때에도 영원히 결혼하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 둘 중 한 명이 죽을 것이고 그러면 결혼 관계는 끝나지요.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과 난 동의하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216~217쪽 요약해 다시 씀.)
 때는 바야흐로 전 아프리카의 사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초기. 이젠 문제의 사바나 지역 아바존에는 도무지 건기가 끝나지 않는 시절을 맞는다. 때 맞춰 정부는 여태까지 시공하고 있던 우물 굴착을 중도에서 뚝 끊어버려 아바존 지역에선 농사나 목축은커녕 마실 물도 부족한 상태에 이른다. 원래는 이 지역을 방문해 표를 좀 얻어 볼까 했던 대통령도 관계자의 보고를 듣고 방문을 취소해버린다. 당장 우물을 파야 하는 아바존 사람들은, 힘 있는 대통령이 오지 않겠다고 하니 당연히 약자인 지역민들이 우두머리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법이라 대표단 여섯 명을 수도로 파견을 하는데, 아마 아무도 몰랐을 거다. 이 파견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에 택시 운전수, 마약공급자, 강도, 깡패, 좀도둑, 실업자, 양아치 등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수 천 명의 아바존 출신자들이 모두 모여 대통령궁 앞에서 알현을 부탁하는 걸 보고, 이들이 지금 나더러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건가, 겁을 덜컥 먹은 대통령이, 이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며, 대통령과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한 동기동창이었고 심지어 영국 유학도 함께한 현재 신문사 편집장으로, 매사에 대통령의 의견을 거스르는 사설만 써재끼는 아켐을 납치, 숙청해버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원래부터 가상 국가 캉안에 형제처럼 친한 삼총사가 있었으니, 이들이 나중에 자라 공부 못했던 순서로, 샘은 대통령이 되고, 크리스는 공보처 장관이 됐으며, 하켐이 신문사 편집장 자리에 머물렀는데, 하켐이 야밤에 수갑을 찬 채 끌려가 분명 고문을 받고 죽었다는 걸 알고, 이미 자신에 대한 샘의 우정도 종을 쳤다는 것을 인식한 크리스는, 이제 완전한 독재자가 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대통령 샘을 피해 잠수를 타기로 결정한다. 자 어떻게 됐을까. 원래부터 스토리 전부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내가 여기서 크리스가 체포되어 죽기 바로 전에 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화해하면서 평생 자기가 죽인 하켐을 애도하며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게 사실일까, 거짓말일까.
 이 책의 스토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숨겼다. 하나는 아바존의 촌로가 수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경구. 표범과 거북이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 아무리 졸라도 이 두 가지는, 안 알려줌. 좋은 책이니 직접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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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헌책방에 가서리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를 찾아 보았는데 없더군요.
영어책으로는 있던데...

<아메리카나>는 그렇게 갠춘하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실종되어 버렸
습니다.

벤 오크리의 책도 어렵사리 구해 놓기는
하였으나 역시 읽지는 못했더라는.

<싸바나의 개미 언덕> 왠지 제목이 훈훈
합니다. 시간 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Falstaff 2019-01-15 12:35   좋아요 0 | URL
옙.
제가 읽기로는 아체베의 ‘아프리카 삼부작‘보다 더 재미 있더라고요.
<아메리카나> 어찌 됐는지는, ㅋㅋㅋ, 안타깝기보다 상황이 웃깁니다.
 
여행 가방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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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위 ‘지만지’. 참 매력적인 회사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작가들의 빛나는 소설들을 찾아 출간하는 특별한 출판사인데, 다만 책값이 오지게 비싸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친애하는 서재 친구 잠x냥 님의 소개로, 이 출판사를 통해 처음 들었다. 서문과 몇 편의 단편으로 간신히 200쪽이 넘는 작은 책의 정가를 18,000원으로 책정한 것에 놀랐고, 5%밖에 깎아주지 않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 얼마나 좋은 책이기에. 이런 책, 예를 들어 ‘한국문화사’란 기관에서 나온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 같이 무지하게 비싼데다가 한 푼도 안 깎아주는 회사에서 나온 책 같은 건, 본전 생각이 나서 본문을 더욱 까다롭게 볼 수밖에 없다. 나, 돈 안 많거든. <다니엘 데론다>에 관해 다시 한 번 욕바가지를 쏟아 부을 생각은 없고, 오직 <여행가방>만 놓고 따져보면 200쪽짜리 책에 각주를 135번이나 달아, 매우 성실하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기는 했다. 물론 각주의 대부분은 읽자마자 곧바로 잊어버렸지만. 역자 김현정의 한국말 번역도 좋다. 오역 여부는 당연히 모른다. 키릴 문자를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래도 한 때는 키릴 문자 읽을 줄은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길게 불평하는 건, 교정 교열에 관해서는 다른 출판사보다 나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여기서 다시 한 번. 책이 비싸잖아. 그러니 교정 교열도 더 잘해야지. 가격은 품질과 조금은 비례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간단하게 한 가지 예만 들자. 서문이 끝나고 첫 번째 본문 <핀란드제 축면사 양말>의 세 번째 문장.
 “학교 건물들은 도시의 구(久) 지구에 위치하고.....”
 역자 김현정이 실수했으면 교정 과정에서 발견했어야지. 구 지구(久 地區)가 뭐니? 신대륙(新大陸)의 상대 말이 구대륙(舊大陸)이 아니고 구대륙(久大陸)이란 말이지? 비싼 책 읽기 시작하면서 초장부터 초 쳤다. 이거 하나가 아니다. 몇 군데 더 있다. 그건 출판사에서 직접 찾아보고 고쳤으면 좋겠다. 한 번도 ‘꼼꼼하게’는 검토하지 않은 거 같다. 힌트를 주자면 한문표기가 아니라 한 문장에 같은 구절을 두 번 쓴 것도 있다면 될까.


 도블라토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 체제비판 적 소설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자기 작품을 소련 내에서 출판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원고를 서방세계로 몰래 빼돌려 출간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에 이런 작가들 좀 있었다. 50년대에 벌써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원고가 빼돌려져 이탈리아에서 출판이 된 것을 시작으로 문인들의 해외출판 경향이 늘어가고, 소비에트 정권은 이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이게 된다. 다들 아시다시피 파스테르나크는 나이 먹은 지바고 씨의 모자 밑으로 쌀알만 한 하얗고 포동포동한 이(蝨)가 이마를 타고 암벽 타듯 기어 내려오는 작품을 쓴 덕택에 1958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흐루쇼프 정권에 의해, 상을 받으러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 대신 한 발짝이라도 국경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오, 라는 경고를 듣고 결국 한림원 방문을 포기해버리고 말았잖은가. 하여간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 정권은 이후 (난 이이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건 별개로)솔제니친을 필두로 일단 약간의 세월 동안 콩밥을 먹인 다음 외국으로 추방해버리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여행가방>의 저자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 더구나 도블라토프는 처자식들이 이미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욕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밖에.
 도블라토프한테 몇 달 동안 콩밥을 먹이고 나서, 다행스럽게 해외추방은 아니고, 미국으로 이민을 허가하는 장면이 ‘서문’의 첫머리에서 나온다. 이렇게.
 “비자 담당 부서의 이 재수 없는 년이 내게 말하더군요. ‘출국자 개인당 여행 가방은 세 개, 규정이 그래요.’”
 심심한데 한 번 까다롭게 굴어볼까? 여기서 '재수 없는 년' 앞에 지시대명사 ‘이’가 붙은 이유는 뭐지? 지금 서문을 쓰고 있는 시기가 이미 미국에 도착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원고는 다 출간을 하고, 이제 소련에서 있었던 과거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 몇 가지를, 몇 개의 사물을 내세워 한 권의 책으로 쓰고 있는 시기. 그러니 원문에 어떻게 쓰여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말 번역문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단어가 바로 지시대명사 ‘이’다. 빼는 게 제일 좋고, 그래도 쓰고 싶으면, 바람직하지 않지만 차라리 ‘그’를 넣어야 하는 거 아냐? 이리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맞습니다. 책값이 비싸서. 이 정도면 나도 너무 집요한가? 좋다, 반성한다.
 까다롭게 굴면서 한 가지 말은 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썼다는 거. 도블라토프가 여행 가방 세 개 안에 들어갈 자기 재산목록을 챙겼다. 그랬더니 에그머니,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가, 겨우 가방 하나만 채울 수 있을 뿐이었다. 여행가방. 합판에 천을 덧댄, 모서리마다 니켈 도금을 가방. 자물쇠가 고장 나서 빨랫줄로 칭칭 감아야 했던 것. 이것 하나만 가지고 도블라토프는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에 도착하는데, 그동안 작가는 가방을 한 번도 풀어보지 않는다. 몇 달 후, 뉴욕에서 아내 레나와 딸 카탸와 합류하고, 다시 아들이 태어나, 아들이 좀 커져서 장난을 치기 시작해 견디지 못한 아내가, ‘지금 당장 벽장으로 들어가!’라고 호통을 치기 전까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가방. 아이가 금고형에 처해진 벽장을 열어보니 아이는 가방 위에 올라 앉아 태연하게 아빠를 올려다보고, 이제야 생각이 난 아빠는 드디어 가방을 열어보기에 이른다. 그 속에선 더블 버튼 양복, 포플린 셔츠, 종이에 싼 단화, 인조 모피가 달린 벨벳 재킷, 가짜 물개 모피로 만든 겨울 모자, 핀란드제 측면사 양말 세 켤레, 운전기사용 장갑, 그리고 장교용 가죽 벨트가 나온다.
 가방 속에서 나온 자질구레한 낡은 의복들. 도블라토프는 잠깐 헛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20년 가까이 흐른 세월 속에서 의복과 신발이 어떻게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하필이면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땅, 소비에트를 영구히(이럴 때 쓰는 한자 단어가 구‘久’다.) 떠나오면서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낡아 남루해진 물건들. 우린 이런 물품을 통해 누추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걸 추억이라고 칭하면서. 그러나 도블라토프의 추억은 결코 쓸쓸하거나 황량하지 않다. 오히려 신랄한 해학과, 규격화된 사회 속에서의 하찮은 반항과, 껄렁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미소 띤 애정이 들어있다. 이를테면 이것도 사소설이라 할 수 있으나 당시 소련 사회, 그중에서 스탈린그라드의 초상을 잘 반영하고 있기도 해서, 사소설이란 범주에 가둘 수는 없을 것. 해학과 풍자와 허풍과 재미와 객기가 적절하게 뒤섞인 유쾌한 잡탕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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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1-14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책값이 비싸면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되더라구요.
지만지 책은 정말이지 비싸서 선뜻 사지 않게 되는데... 편집이 좀 이런 식이면....--;;
요럴 때는 책 자체와 출판사에 대한 별점을 따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ㅎㅎ


Falstaff 2019-01-14 10: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위에 쓴 약간의 결함과 가격 때문에 별 하나를 깎았답니다. ^^;

레삭매냐 2019-01-1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에서 나오는 책들은 축약본이라는
썰이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

Falstaff 2019-01-14 11:32   좋아요 0 | URL
지만지 책 가운데 ˝천 줄 읽기˝란 제목이 달린 책이 있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축약본 맞습니다. ˝큰 글씨 책˝은 글씨만 큰 글씨로 했는지, 큰 글씨에 맞게 내용도 축약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아무 표시 안 한 책은, 축약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하긴 티를 안 내고 줄이는 게 기술이긴 합니다만. ^^;
졸라의 <쟁탈전> 같은 경우엔 500쪽이 넘어가거든요. <쟁탈전>의 후속편이랄 수 있는 <돈>이 문학동네에서 나왔는데 그건 해설까지 600쪽. ㅎㅎㅎ 잘 모르겠습니다. 아닐 거 같습니다만....

잠자냥 2019-01-1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만지 버전으로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을 2010년 뿌쉬낀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으로 읽은 터라 지만지 버전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ㅎㅎ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21572

‘학교 건물들은 도시의 구(久) 지구에 위치하고.....‘는 제가 읽은 책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ㅎㅎ

근데 지만지 책값 정말 비싸긴하죠. 이 얇은 책을.... -_-;
참, 최근에 지만지에서 출간된 유진 오닐,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가 완역본인지 궁금해서 지만지에 완역본은 완역본이라고 표시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돌아온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 참고로, 희곡선집은 발췌가 무의미하기에 거의 완역으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초기 축약본으로 출간했던 것들도 차차 완역으로 재출간하고 있으며 축약본에는 제목에 ‘천줄읽기‘를 달아 완역과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축약본이라면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천줄읽기˝라는 제목이 됩니다.-

그리고 큰 글씨 책은 천줄읽기라는 표시가 없으면 축약본은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예전에 도서관에 카렐 차페크 책 신청했는데 (도서관 정책상) 큰 글씨 책으로 구입해주는 바람에 -_-;; 큰 글씨 책으로 읽었는데요, 완역본이었습니다.

Falstaff 2019-01-14 12:40   좋아요 1 | URL
아, 이게 다른 출판사 책도 있군요! ㅋㅋㅋ 세르게이 도나또비치 도블라또프. 검색이 안 될 수밖에, ㅋㅋ.
제 짐작이 맞았군요. 큰 글씨 책도 축약은 아닐 거란 거. 근데 큰 글씨 책은, 지만지 소설 선집보다 훨, 훨씬 비싸서 감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아요. 늙어 로또 맞았는데 이제 작은 글씨 안 보이게 되면 모를까 말씀이지요. 큰 글씨 책 차페크를 읽는 잠자냥 님. 하하하, 그림이 그려집니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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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읽은 <인생 사용법> 한 권으로 난 뻑 갔다. 이거 뭐야. 누구야? 그림을 찾아보니 거 참 불량하게도 생겼네. 완전히 동네 양아치 형 같다. 근데 거 참, 어떻게 <인생 사용법> 같은 책을 쓰려 마음을 먹게 됐는지, 아예 불가사의 자체였다. 뭐라 할까? 레고? 한 아파트에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레고 조립하는 것처럼, 또는 해체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쳐보고, 돋보기를 들이내보다가 난데없이 팽개치기도 하는 모습이, 보통의 소설가라면 이 책 한 권의 에피소드 가지고 적어도 열권이 넘는 장편 소설을 쓰겠는데, 하는 심정. 아,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다. 하여간 <인생 사용법>을 읽은 다음에(근데 그 책이 조금 비싸긴 하다.) 페렉에 꽂혀서 <사물들>, <W 또는 유년의 기억>, <잠자는 남자>를 읽었고, 지금 막 다섯 번째 페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긴 거하고 똑같이 정말 동네 양아치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읽으면 독일 출신 미국 이민자이자 전직 웨이터의 거부, 70명의 백만장자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양조장 사장 헤르만 라프케. 이 거대 부호이자 미술애호가, 1913년 빌헬름 2세 황제 통치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독일인회 주최로 대규모 행사를 벌이는데 행사의 일환으로 그의 회화 컬렉션을 전시하게 된다. 많은 그림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은 하인리히 퀴르츠가 양조장 사장을 그린 초상화였다. 그게 왜? 거울 속의 거울. 양조장 사장 라프케의 초상을 그린 그림. 인물의 배경이 되는 벽면에 그가 거금을 들여 모은 수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고, 화가 퀴르츠의 그림 속에도 과거의 명작들이 다들 제각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뿐더러(마네가 그린 졸라의 초상 속에 벽에 걸린 자기 그림의 모사화가 걸린 것처럼), 그림 속에 또 미술애호가 라프케 사장을 그리고 있는 화폭이 있었다. 그래 그림 속의 그림에 다시 벽면에 가득한 명작들이 들어 있고, 그림 속의 그림 속의 그림에도 또 그렇다. 그리하여 이론상으로는 무한대 계속되는 거울 속의 거울 현상. 세 번째 그림 속의 화면은 가로 11cm, 높이 8cm. 첫 번째 화면에서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두 번째 화면에선 조금 변형되고, 세 번째에서도 다시 변형시킨 특색 때문에 이 그림이 장안의 화제가 된다. 이쯤에서 미술평론도 했던 페렉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소설’ 즉 ‘구라’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가로 11cm, 세로 8cm 안에 초상을 비롯한 모든 세부사랑은 그려 넣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을 텐데, 독자가 갖는 권리,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거다.
 이쯤에서 머리에 떠오른 또 한 명의 구라꾼, 로베르토 볼라뇨. 그가 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볼라뇨가 그의 책에서 숱한 나치 동조 문인들의 이름을 만들어서 마치 정말로 나치에 협력해 돈을 보내주는 등, 아메리카에서 파시즘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어찌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 처음엔 단박에 넘어갔다가, 어째 아직 살아 있는 인간들도 많다, 싶어 정신차려보니 여태까지 다 구라였던 기억.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서도 양조장 사장 헤르만 라프케가 이제 나이 들어 죽자, 그의 소원대로 최고의 박제사에게 자신의 몸을 박제로 떠서 화가 퀴르츠가 그린 그림과 거의 비슷하게 만든 지하의 방에서, 초상을 그리던 의자에 앉아, 초상화와 함께 묻힌다는 내용까지 읽고, 하, 이것도 구라구나. 확신을 하게 됐다. 그래도 얼마나 능글맞게 거짓말을 잘 하는지 화가 이름 '하인리히 퀴르츠‘를 구글 검색까지 해봤다는 거 아닌가. 근데 등장하는 옛 화가들의 명단에 솔찮게 진짜 화가의 이름도 등장하니 검색해보기 전까진 정말 긴가민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드가가 그린 <무용수들>은 1896년 1월에 화가에게 직접 6만 프랑을 주고 구입하고, 메종도레 식당에서 드가와 함께 콜체스터 특산 굴을 먹었다는데, 이땐 이미 빌어먹을 페렉이 지금 구라 중임을 알고서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드가가 그린 <무용수들>이 한 두 작품이냐 이거지.

 

참 매력적인 작품 <La Classe de Danse> 왼쪽 아가씨가 등이 가려운데 안타깝게도 손이 닿지 않는 거 같아!


 그런데, 15쪽에 시작해 100쪽에서 끝나는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이야기 해야겠다. 아직 덜 얘기한 나머지 하나,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 나오는 바, 그것까지 밝히면 이 독후감을 읽는 페렉 애호가 또는 애호가 준비생들에게 귀싸대기 몇 방 얻어 터져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거, 정말 인간으로 하여금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런 게 하나 마지막에 잔뜩 힘을 주어 도사리고 있다는 거 정도는 미리 알아도 뭐 크게 관계가 있을까.
 근데. 그게 뭐냐고?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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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조구호 옮김 / 시타델퍼블리싱(CITADEL PUBLISHING)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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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볼타 사건의 진실>, <경이로운 도시>,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구르브 연락 없다>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읽은 멘도사. 이 정도면 멘도사 팬 맞지? <사볼타 사건의 진실>을 읽으면 저절로 <경이로운 도시>를 읽게 마련이고, 그 담엔 당연히 멘도사의 팬이 된다. 이렇게 두 작품 말고, 이어서 읽은 셋, 넷, 다섯 번째 작품은 ‘소품’으로 구분해도 그리 틀리지 않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기발하다’는 것.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에선 정말로 어린 예수가 등장하고, 로마인 폼포니오가 당연히 예수의 유소년 시대에 간여하면서 겪는 역경을, <구르브 연락 없다>에서 ‘구르브’는 인간이 아니라 바르셀로나를 탐험하는 외계 생명체이고, <어느 미친 사내의 5년 만의 외출>은 정말 미친 사내, 그러나 광증 때문인지 복잡한 사건을 서로 엮어 꿰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전직 범죄자를 5년 만에 잠깐 정신병원에서 꺼내 또 다른 범죄사건에 연루시키는 이야기다. 소품들의 특징은, 재기발랄하다는 것.
 <어느 미친.....>의 키워드 역시 유머 코드. 출생부터 검사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부르주아이며, 여러 나라 말을 할 줄 알아 UN에서 통번역을 직업으로 했던 멘도사가 이번에도 바르셀로나의 가장 하층 계급 속에서 좌충우돌, 숱한 블랙 유머와 갖은 기발한 발언과, 예상하지 못한 단어들의 폭죽놀이를 벌여낸다. 정신병원 안에서 축구단을 결성해 죽기 살기로 시합을 하다 갑자기 병원장 수그라녜스와, 형사반장 플로레스 경위와, 여학교 교장 수녀의 호출을 받아, 한밤의 기숙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이틀이 지난 새벽 갑자기 등장한 여학생의 비밀을 밝히는 임무를 받는다. 왜? 애초에 이 미친 사내의 전직이 범죄자이자, 미친놈이자, 범죄자들과 형사들을 잇는 명예로운 프락치 또는 스파이, 혹은 이중 배신자였기 때문에.
 <구르브 연락 없다>에서 구르브가 바르셀로나에 처음 등장해 퍼마신 분수 물을 분석해보니 물과 똥으로 구성됐다고 했듯이, 사내에게 수그라녜스 원장이 펩시콜라 한 잔을 주며 5년 만의 외출을 허락한 순간, 미친 사내의 겨드랑에선 축구시합 동안 흘렸던 땀 때문에 지독한 액취를 뿜어내고 있었던 거다. 이후 책이 끝날 때까지 이 미친 사내는 단 한 번의 샤워도 하지 않고, 오히려 온갖 쓰레기와 상한 생선 등 비린내 나는 모든 것의 총합까지 더해져 무지무지한 악취로 인류를 질식시키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완전히 낡은 600cc 메르세데스를 운전하고 다니는 아름다운 메르세데스의 집에 하루를 묵게 되는데 (헛된 희망은 품지 마시라. 그리 냄새나는 남자와 사랑을 맺을 여자는 없으니까!) 그녀의 부모가 명절 때마다 와서 자는 침대에 글쎄 오줌까지 싸버리는 만행도 불사한다.
 멘도사가 서문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런 작품을 쓰기로 하고 주인공을 설정한 다음부터 자신이 한 일은 미친 사내가 하는 짓을 따라가 그대로 적기만 했다는 거다. 사내가 만들어내는 자기 이름이 한 스무 개(조금 과장) 정도 되고, 그것도 작가가 지은 것이 아니라 사내가 특정 상황을 만나 그냥 스스로 이름을 댔다고 하니, 참으로 뻥이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로 몰두해 작품을 썼다는 뜻이라고 이해하면 될 거다.
 이 책, 재미나고 나온 지도 15년 가까이 됐으니 예전 정가 8,500원이 그대로 적용되어 값도 싸다. 거기서 10% 에누리 받으면 7,650원. 이 정도를 지불하고 하루를 즐길 수 있으면 요새 말로 ‘가성비’는 죽여주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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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6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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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말의 매사추세츠 세일럼. 이곳에서 젊은 일진 아가씨들 몇 명이 쇼를 벌인다. 그 가운데 애비가일, 열여덟 살의 이 아가씨가 일찍이 완고하고 정직하고 신심 가득한 농부 프록터 씨 집의 하녀로 일한 바 있었다. 이때 마침 부인 엘리자베스가 산후를 맞아 남편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곁을 멀리했다. 왕성한 혈기를 다스리기 힘들었던 잘 생긴 외모의 프록터 씨는 외양간에서 하녀 에비가일과 정을 통한다. 그러면서 불륜의 와중에 흔히들 그러하듯이 허튼 약속 정도는 흘려버렸겠지. 부인이 이를 알고 하녀를 해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 동네 아가씨들과 어울려 한밤중에 숲 속의 한적한 곳에서 노래하고, 밤참을 끓여먹고, 알몸으로 춤을 추다가, 하버드를 졸업했으며 권위의식에 쪄들어 자신의 권위를 위해 그리스도나 하느님의 복음보다는 지옥불과 악마의 현시 같은 설교에 목숨을 건 목사 패리스에게 발각되고 만다. 아가씨들 속에 마침 패리스의 질녀도 섞여 있었는데, 이 아이는 알몸으로 있지 않았지만, 어쨌든 집단 히스테리인지 뭔지 그만 넋을 잃고 마치 악마에 홀린 것같이 거짓으로 시체놀이를 시작하며 세일럼 조용한 농촌 마을에 광기가 덮이기 시작한다. 한 밤중 알몸의 무도, 항아리에서 끓고 있는 마법의 물약처럼 보이는 모종의 수프, 흑인 노예의 주술적 중얼거림, 수프를 끓이던 항아리 속에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 들어갔다는 진술, 게다가 순진하기 그지없다고 자기 홀로 생각하던 질녀까지 속한 집단의 행위를, 하느님이나 예수의 말씀 대신 지옥의 유황불에 관해, 교회당에 찬란한 광명을 밝히는 황금촛대에 관해(돈을 거둬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백랍의 촛대를 황금으로 바꾸란 뜻이지 뭐.) 신도들에게 설파하던 속된 목사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마가 지옥에서 땅을 뚫고 솟아 세일럼에 악취 나는 입김을 쏘이기 시작했다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비벌리에서 악마퇴치에 일가견이 있으며 패리스에 비해 신앙적 양식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있는 헤일 목사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헤일 목사가 도착해 애비가일을 비롯, 한밤의 알몸의 무도를 벌인 처녀들과 상담을 하고, 이는 명백한 사탄의 왕림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 본격적인 마녀사냥에 나서게 된다. 혼란을 틈탄 애비가일, 이 맹랑한 아가씨가 사건의 우두머리 격으로, 그녀의 본심은 프록터 씨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자리를 꿰차는 것.
 작품을 쓴 때가 1950년대. 매카시 선풍이 극에 달했던 시기. 밀러는 <시련>의 실제 무대였던 매사추세츠의 마녀 사냥 사건을 통해 매카시 열풍과 절묘하게 비틀어 버렸는바, 매카시 일당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희곡을 읽어보자마자, 어떻게 했느냐 하면, 기소해버렸다. 책 뒤에 나오는 작가 연보를 보면, 1953년에 초연했다고 나와 있는 반면, 출간은 언제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책 속에 묘사한 것을 볼 때, 초연 후 희곡 출간은 나중에 한 것이 분명하다. 책 속에 초연 당시 관객들의 분위기 같은 것도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또, 1690년대 미국 동부지역에서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집단에서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얼마나 야만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증명한 것을, 1950년대 세계정치에 빗대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령.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믿는 나라에서는 약간이라도 중요한 저항 행위는 모조리 자본주의라는 사악한 마녀와 결부되어 있고,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견해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붉은 지옥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비난을 공공연히 받게 된다.” (56쪽)


 내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헤스터의 행각이 마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척시대 초기의 답답한 청교도적인 질식 상태의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가톨릭에 의한 핍박을 피해 죽음의 항해를 무릅쓰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가톨릭보다 더 지독한 교조적 기독교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유럽보다 더 숨 막히고, 가식적이고, 보수적인 토양으로 변질된다.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세상에서 빅토리아 시대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구현되었던 곳이 바로 미국 아니었나? 정신적으로 미국인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쫓겨 온 구대륙 문화에 한 발 꿀리고 들어갔던 거였다. 그 반동으로 구대륙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당시 유행에 휩싸였던 것이고. 물론 지금은 돈의 힘으로 역전이 되긴 했다. 하여간 구대륙보다 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구속의 전통이 미국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발현되었던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메카시즘 아니었나 하는 것. 17세기 말의 기독교는 인간 개인을 옥죄는 확실한 이데올로기였다. <주홍글씨>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고통스럽게, 아니, 과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힘겹게 읽었다. 이미 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유물론자로서 이런 논의를 보는 시점은 시니컬할 수밖에 없으니까. 더구나 가장 우습게 아는 종교적 장치가 바로, 지옥, 내세, 윤회, 등인데 그중 가장 웃긴 것이 바로 지옥과 악마. <시련>의 등장인물들이 가장 중요하게 논의하고, 재판하고, 서로 죽이고, 이런 행위가 지옥과 악마와 관련 된 것이었으니, 이를 어이할꼬. 밀러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독교 시대 이전까지는 하계(下界)가 결코 인간에게 적대적인 세계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모든 신들이 유용한 존재이고, 이따금 실수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인간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리고 기독교가 인류에게 인간의 무가치함(구원받을 때까지는)을 꾸준히 조직적으로 주입해 온 사실을 보면, 악마란 인간을 채찍질하여 특정한 교회나 교회 국가에 굴복시키기 위해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고안되고 사용된 무기로서 필요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55쪽)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유럽을 중심으로 지구의 절반을 2천년 동안 효과적으로 다스렸던 이면, 저변, 기초적 생각은 인간이야말로 생존해야 할 아무 가치가 없는 죄악 덩어리라는 학습이었다는 의견. 물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일하고 배타적인 (자기들만의)사랑의 종교. 그러나 밥 잘 먹고 종교에 대한 논의는 더 하기 싫다. 소화 안 된다.
 책 속의 종교판관인 부주지사 댄포스는 이렇게 (기독교적으로 또는 매카시 식으로) 선언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법정을 지지하지 않으면 반대하는 걸로 간주된다는 것이오. 그 중간 입장은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아주 정확한 시기이며, 명백한 때요. 우리는 더 이상 악이 선에 섞여 세상을 미혹하는 어스레한 오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오. 이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빛나는 태양이 떠올랐으며, 광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필경 그 태양을 찬양할 거요.” (141쪽)


 청교도의 아버지, 필그림 파더들의 정체는 이랬다. 집단과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개인의 삶과 생명과 재산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의식. 현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가져온 역사의 한 장면을 읽는 일은 참 여러 가지로 재미있다. 하, 그러고 보니 이처럼 비 기독적인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안식일 새벽기도 시간이다. 이런 게 인생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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