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6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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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말의 매사추세츠 세일럼. 이곳에서 젊은 일진 아가씨들 몇 명이 쇼를 벌인다. 그 가운데 애비가일, 열여덟 살의 이 아가씨가 일찍이 완고하고 정직하고 신심 가득한 농부 프록터 씨 집의 하녀로 일한 바 있었다. 이때 마침 부인 엘리자베스가 산후를 맞아 남편을 따뜻하게 대하지 않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곁을 멀리했다. 왕성한 혈기를 다스리기 힘들었던 잘 생긴 외모의 프록터 씨는 외양간에서 하녀 에비가일과 정을 통한다. 그러면서 불륜의 와중에 흔히들 그러하듯이 허튼 약속 정도는 흘려버렸겠지. 부인이 이를 알고 하녀를 해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 동네 아가씨들과 어울려 한밤중에 숲 속의 한적한 곳에서 노래하고, 밤참을 끓여먹고, 알몸으로 춤을 추다가, 하버드를 졸업했으며 권위의식에 쪄들어 자신의 권위를 위해 그리스도나 하느님의 복음보다는 지옥불과 악마의 현시 같은 설교에 목숨을 건 목사 패리스에게 발각되고 만다. 아가씨들 속에 마침 패리스의 질녀도 섞여 있었는데, 이 아이는 알몸으로 있지 않았지만, 어쨌든 집단 히스테리인지 뭔지 그만 넋을 잃고 마치 악마에 홀린 것같이 거짓으로 시체놀이를 시작하며 세일럼 조용한 농촌 마을에 광기가 덮이기 시작한다. 한 밤중 알몸의 무도, 항아리에서 끓고 있는 마법의 물약처럼 보이는 모종의 수프, 흑인 노예의 주술적 중얼거림, 수프를 끓이던 항아리 속에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 들어갔다는 진술, 게다가 순진하기 그지없다고 자기 홀로 생각하던 질녀까지 속한 집단의 행위를, 하느님이나 예수의 말씀 대신 지옥의 유황불에 관해, 교회당에 찬란한 광명을 밝히는 황금촛대에 관해(돈을 거둬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백랍의 촛대를 황금으로 바꾸란 뜻이지 뭐.) 신도들에게 설파하던 속된 목사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마가 지옥에서 땅을 뚫고 솟아 세일럼에 악취 나는 입김을 쏘이기 시작했다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비벌리에서 악마퇴치에 일가견이 있으며 패리스에 비해 신앙적 양식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있는 헤일 목사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헤일 목사가 도착해 애비가일을 비롯, 한밤의 알몸의 무도를 벌인 처녀들과 상담을 하고, 이는 명백한 사탄의 왕림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 본격적인 마녀사냥에 나서게 된다. 혼란을 틈탄 애비가일, 이 맹랑한 아가씨가 사건의 우두머리 격으로, 그녀의 본심은 프록터 씨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마녀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자리를 꿰차는 것.
 작품을 쓴 때가 1950년대. 매카시 선풍이 극에 달했던 시기. 밀러는 <시련>의 실제 무대였던 매사추세츠의 마녀 사냥 사건을 통해 매카시 열풍과 절묘하게 비틀어 버렸는바, 매카시 일당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희곡을 읽어보자마자, 어떻게 했느냐 하면, 기소해버렸다. 책 뒤에 나오는 작가 연보를 보면, 1953년에 초연했다고 나와 있는 반면, 출간은 언제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책 속에 묘사한 것을 볼 때, 초연 후 희곡 출간은 나중에 한 것이 분명하다. 책 속에 초연 당시 관객들의 분위기 같은 것도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또, 1690년대 미국 동부지역에서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집단에서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얼마나 야만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증명한 것을, 1950년대 세계정치에 빗대 이야기하기도 한다. 가령.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믿는 나라에서는 약간이라도 중요한 저항 행위는 모조리 자본주의라는 사악한 마녀와 결부되어 있고,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견해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붉은 지옥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비난을 공공연히 받게 된다.” (56쪽)


 내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헤스터의 행각이 마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개척시대 초기의 답답한 청교도적인 질식 상태의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가톨릭에 의한 핍박을 피해 죽음의 항해를 무릅쓰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가톨릭보다 더 지독한 교조적 기독교란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유럽보다 더 숨 막히고, 가식적이고, 보수적인 토양으로 변질된다.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세상에서 빅토리아 시대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구현되었던 곳이 바로 미국 아니었나? 정신적으로 미국인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쫓겨 온 구대륙 문화에 한 발 꿀리고 들어갔던 거였다. 그 반동으로 구대륙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당시 유행에 휩싸였던 것이고. 물론 지금은 돈의 힘으로 역전이 되긴 했다. 하여간 구대륙보다 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구속의 전통이 미국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발현되었던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메카시즘 아니었나 하는 것. 17세기 말의 기독교는 인간 개인을 옥죄는 확실한 이데올로기였다. <주홍글씨>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고통스럽게, 아니, 과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힘겹게 읽었다. 이미 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유물론자로서 이런 논의를 보는 시점은 시니컬할 수밖에 없으니까. 더구나 가장 우습게 아는 종교적 장치가 바로, 지옥, 내세, 윤회, 등인데 그중 가장 웃긴 것이 바로 지옥과 악마. <시련>의 등장인물들이 가장 중요하게 논의하고, 재판하고, 서로 죽이고, 이런 행위가 지옥과 악마와 관련 된 것이었으니, 이를 어이할꼬. 밀러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독교 시대 이전까지는 하계(下界)가 결코 인간에게 적대적인 세계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모든 신들이 유용한 존재이고, 이따금 실수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인간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리고 기독교가 인류에게 인간의 무가치함(구원받을 때까지는)을 꾸준히 조직적으로 주입해 온 사실을 보면, 악마란 인간을 채찍질하여 특정한 교회나 교회 국가에 굴복시키기 위해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고안되고 사용된 무기로서 필요했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55쪽)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가 유럽을 중심으로 지구의 절반을 2천년 동안 효과적으로 다스렸던 이면, 저변, 기초적 생각은 인간이야말로 생존해야 할 아무 가치가 없는 죄악 덩어리라는 학습이었다는 의견. 물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일하고 배타적인 (자기들만의)사랑의 종교. 그러나 밥 잘 먹고 종교에 대한 논의는 더 하기 싫다. 소화 안 된다.
 책 속의 종교판관인 부주지사 댄포스는 이렇게 (기독교적으로 또는 매카시 식으로) 선언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법정을 지지하지 않으면 반대하는 걸로 간주된다는 것이오. 그 중간 입장은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아주 정확한 시기이며, 명백한 때요. 우리는 더 이상 악이 선에 섞여 세상을 미혹하는 어스레한 오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오. 이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빛나는 태양이 떠올랐으며, 광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필경 그 태양을 찬양할 거요.” (141쪽)


 청교도의 아버지, 필그림 파더들의 정체는 이랬다. 집단과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개인의 삶과 생명과 재산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의식. 현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가져온 역사의 한 장면을 읽는 일은 참 여러 가지로 재미있다. 하, 그러고 보니 이처럼 비 기독적인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안식일 새벽기도 시간이다. 이런 게 인생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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