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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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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프랑스 생제르맹앙레Saint-Germain-en-Laye에서 출생한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영화 관련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이이가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 자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파리로 올라가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다음에 다시 영화계에 뛰어들어 감독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다가 소설이 더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쓰기에 전념해 <나의 여왕>으로 데뷔, 첫 작품부터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이후 오늘 독후감을 쓰는 네 번째 소설 <그녀를 지키다>로 2023년에 모든 프랑스 소설가의 로망인 공쿠르 상을 받기에 이른다.
앙드레아의 모계가 이탈리아 출신이고, 알제리에 살던 프랑스, 그리스, 발레아레스 혈통도 섞인 모양이다. 왜 혈통을 말하느냐 하면, <그녀를 지키다>의 주인공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약칭 ‘미모’가 프랑스 출신 이탈리아 사람이며 작품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986년 가을, 피에몬테의 피르키리아노 산꼭대기에 있는 사크레 디 산미켈레 수도원. 죽음의 침상을 둘러싸고 서른한 명의 수도사가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서원하지 않고 40년을 머물렀다가 이제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려 하는 140센티미터의 왜소증 환자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영면을 기다리고 있다. 이 죽어가는 노인의 차마 꺼지지 못하는 영혼은 자신의 일생을 회상한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기억하고 싶은, 그러나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지극한 비밀, 은밀한, 그러나 정결했던 사랑 이야기를.
미모는 1904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미모를 낳기 15년 전에 제노바 리구리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터를 잡은 조각공방의 마이스터였다. 1889년의 프랑스는 벨에포크 시절. 물자는 풍부하고 전쟁도 없는 태평시대. 저택과 고급주택, 그리고 성당은 자신의 건물과 분수대와 정원을 꾸미기 위하여 조각 공방에 잔뜩 주문을 해대던 시절이라 비탈리아니 집안은 이탈리아 이민 가족과 달리 전혀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정부는 아버지의 출생증명을 10년 젊게 기록하고는 징병 대상에 이름을 올려 버렸다. 아버지는 전사했다.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의 궁핍을 맞게 된 어머니 안토넬라는 미모를 토리노에서 역시 작은 조각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16년 10월 미모는 아버지의 동료 가운데 마침 이탈리아로 귀국하는 술주정뱅이 카르모네와 함께 기차를 타고 토리노로 갔으나, 알베르토 삼촌은 미모를 난쟁이라는 이유로 도제로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카르모네는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이탈리아 식 의리는 있어서(떼어먹지 않고), 어머니가 미모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던 봉투의 돈 전부를 삼촌에게 주어 도제로 삼게 한다. 이 돈은 아버지가 번 돈 가운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만들어 이탈리아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미모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다.
제네바 항구에서 잘 나가는 매춘부의 아들인 알베르토는 당연스레 미모의 돈을 손에 넣고 단 한 푼도 미모에게 주지 않는다. 말만 도제일 뿐 조각과 관련한 일은 전혀 알려주려 하지도 않고 잡일만 노예 수준으로 하게 만들고. 당연히 보수도 전혀 없다. 일찌감치 조각에 관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미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조각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철학을 익혀, 삼촌이 조각가로서 완벽하게 3류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겨우 열두 살의 소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었다. 삼촌은 미모와 지내면서 미모가 간혹 보여주는 번쩍이는 조각가로서의 재능에 심각하게 질투하고, 못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듯 더욱 미모를 괴롭히게 된다. 이들의 악연은 조금도 풀리지 않은 상태로 훗날 삼촌이 제네바 매춘부 출신으로 큰 부자가 된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아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
토리노에서 상황이 나빠지자 삼촌은 미모를 데리고 리구리아의 시골 피에트라달바에 있는 공방을 거의 헐값에 인수해 떠난다. 피에트라달바는 오르시니 후작 가문과 부르주아 감발레 가문이 적대적으로 이웃하며 이들 주변으로 농민들이 거주한다. 고도가 높고 샘이 산재한 지역으로 유명한 산피에트로 델레 라크리메 성당이 있으며 갓 부임한 파드레 돈 안셀모가 주임신부이다. 파드레 안셀모가 자랑하는 성당의 보물은 17세기에 이름없는 장인이 만든 조각품 <피에타>. 십자가 아래에서 죽은 자식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어머니는 성 마리아, 죽은 자식은 그리스도이다. <피에타>의 죽은 그리스도는 대개 고귀한 모습을 한 미남 소년으로, 어머니는 역시 고결한 외모의 젊은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에 가서 우연히 돈 안셀모 신부와 이야기하게 된 미모. 신부가 조각을 극찬한다. 미모가 처음엔 수긍하다가 신부가 너무 오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솔직한 품평을 해버린다.
“이건 엉터리예요. 어머니는 슬퍼 보이지 않아요. 예수의 팔이 너무 길고, 외투 자락도 저렇게 길게 내려오면 성모님이 걷다가 발에 걸릴 거예요.”
미모는 천부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해부학적 균형에 입각해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녔다. 게다가 작품을 놓을 장소에 따라 인체나 사물의 비율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아버지한테 배웠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 아랫부분에 심하게 찌그러진 시계 기억하시지? 계단에 걸 목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계단 아래에서 보면 정확하게 시계가 보이지만 정면으로 그림을 보면 찌그러진 원반 같이 보일 뿐인 거. 이런 장면은 뒤에서 미모가 피렌체의 필리포 메티 공방에서 일할 때 수석 도제의 조각을 품평하며 적나라하게 나온다. 지붕 꼭대기에 설치할 조각은 사람들이 건물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때문에 머리 쪽을 더 과장해야 정상 비율로 보이는 현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 유명한 작품 <다비드> 상도 이 때문에 해부학적 균형이 맞지 않게 조각한 건 더욱 유명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숱한 조각가들이 도전한 작품이 바로 <피에타>. 미모가 눈물의 성 피에트로 성당 신부에게 솔직한 품평을 하니, 신부는 미모가 교만의 죄와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고 가볍게 야단친다. 성모는 기품이지 추함이 아니라면서. 이때 독자는 한방에 알아차린다. 미모가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피에타>를 조각할 것을. 이것을 위해 미모의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불멸의 <피에타>를 조각했다. 반면에 독자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또다른 걸착 <피에타>는 부오나로티를 능가하지만 결코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독특한 가치가 있어서 저 먼먼 산꼭대기 성당의 지하 보관소에 안치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냐고? 순진하기는.
작품 속 미모의 <피에타>를 본 레너드 B. 윌리엄스 박사는 이렇게 썼다.
“비탈리아니는 자신의 선배(부오나로티)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후에 발생한 젖산 가득한 육신의 경직 속에서 십자가형의 후유증이 드러난다. (중략) 얼굴의 안도감, 입술에 걸린 희미한 미소와의 대조, 비탈리아니는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매끈한 뺨이 임종의 고통으로 움푹 패고, 어머니가 방금 위무의 손길로 두 눈을 감긴 그리스도는 의도와 상관없이 아름답다. (중략) 이러한 대조는 눈부신 마리아의 얼굴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정한 미소로 내려다보는데, 기이하게도 두려움과 고뇌는 찾아볼 길 없어…(후략)” (p. 310~311)
사후 경직이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라니. 정말 놀랄 만하지 않나? 만일 이런 <피에타> 상이 있어서 세상의 한 큰 성당에 안치한다면 숱한 예술가들은 열광을 할지라도, 더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조각가를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하면서 바티칸 광장에 집결할 지도 모른다. 바티칸 여우들도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산 꼭대기 수도원의 지하 보관실에 묻어 버린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더 놀란 것은 미모가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파첼리 추기경이 주문한 <천국의 열쇠를받는 성 베드로> 상이었다. 미오는 최후의 만찬을 한 날, 밤이 새기 전에 그리스도를 세 번 모른다고 한 그 양반이며, 최초의 교황이며, 로마에서 도망가려다가 십자가를 다시 지고 로마로 들어가는 그리스도한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었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한 사람을 조각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베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염 기른 혈색 좋은 현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남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살면서 고통스러워했으니까, 1년 내내 세계의 온갖 교회에서 그가 저지른 배신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어 댔으니, 아무도 그가 아픈 과거를 잊고 살게 놔두지 않았다. 또한 그는 다른 성 베드로들이 보여주는 그런 대가연하는 표정으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았다.” (p.334)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어떻게 받느냐 하면,
“열쇠는 그것을 받으려고 벌린 베드로의 경직된 손과 땅바닥 사이 어딘가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중략) 그 효과는 강렬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교회를 올릴 반석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 번 부인했던 남자를 골랐다. (중략) 내가 창조한 성 베드로는 법열에 빠진 성인, 이제 은퇴한 건강하고 권태로 가득한 종교인이 아니라, 자신의 임무 앞에서, 그의 늙은 두 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건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안 그래도 두 손은 그걸 막 놓쳐 버렸다. 어쩌면 혹시 열쇠가 깨지는 건 아닐까, 자신이 벼락을 맞는 것은 아닐까 자문할지도 몰랐고, 그러면서 공포에 질려 열쇠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p.335)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추기경 파첼리가 주문을 해서, 이 <천국의 열쇠를 받는 성 베드로>를 성당에 모시지는 못하고 대신 자기 사비로 비용을 지불해 개인 소장하겠다고 했으니,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조각가로 최고의 명성을 떨치게 된다. 미모의 배경에는 피에트로달바의 오르시니 후작 가문이 있다. 후작은 아들 셋과 막내 딸이 있다. 첫째 바르질리오는 1차 세계대전에 지원해 참전했다가 유명한 열차 사고를 당해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죽고, 둘째 스테파노는 일 두체, 무소리니의 파시스트로 맹활약하다가 미모 때문에 오히려 파시스트에 체포된 후 곧바로 해방을 맞는 바람에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며, 셋째 프란체스코는 젊은 나이에 차례대로 사제, 주교, 추기경까지 올라가지만 역시 미모 때문에 교황까지는 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자줏빛 수단을 몸에 두르고 지낸다.
막내딸이 비올라. 누군가 그랬지, (현악기)비올라는 여인의 눈물샘 같다고. 이 동네 성당 이름이 “눈물의 성 피에트로.” 비올라는 미모와 생년월이 같다. 미모가 우연히 비올라의 생일을 알고 있어서 둘이 한꺼번에 생일을 말하는데, 22일, 같은 날 태어난 것으로 오해해 둘은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우정은 당연히 진정한 사랑이 되지만 신분의 격차는 둘에게 정결한 사랑을 요구하고, 둘은 이에 순응한다.
하여간 이 집의 셋째 아들이 추기경까지 오르니, 오르시니 가문의 후원을 받는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귀족과 바티칸의 후광을 입어 찬란한 꽃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아들들이 가장 우선하는 것은 가문의 자존을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하여 성직자임에도 더러운 거짓말을 종용하기도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파시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비올라는 20세기 초반의 여성이라는 제약에 걸려 자신의 뜻을 전혀 펴지 못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이런 책은 책꽂이에 꽂아 두어도 좋다. 혹시 아는가,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 지. 오늘 독후감을 길게 썼는데, 스토리의 1/10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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