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자서전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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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머니의 자서전. 그러면 화자 ‘나’는 작가 또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일까, 작가 또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의 어머니일까? 화자 ‘나’의 이름은 수엘라 클로테르 리처드슨. ‘나’의 어머니 이름은 수엘라 클로테르 데바리외.

  ‘나’의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수녀원 문 앞에 버려졌다. 프랑스에서 온 원장 수녀는 아이를 받아들여 이름을 ‘수엘라’라고 짓고, 자기 이름을 뒤에 붙인 다음, 자신의 성姓을 좇아 데바리외라 했다. 도미니카 연방의 앤티가 섬은 오랜 세월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8세기 들어 영국 연방에 흡수, 19세기 초에 영국의 정식 식민 연방에 속했다가 1978년에 독립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어의 카리브 사투리, 영어의 카리브 사투리, 크롤어 등을 사용하는데, 좀 있는 사람들은 대개 표준 영어를 쓰는 것 같다. 내가 뭐 아나, 책을 읽어보니 대강 그렇더라는 것이지.

  서인도제도의 슬픈 역사는 당연히 백인 유럽인들이 섬에 발을 딛자마자 시작했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인들은 서인도제도에 플랜테이션 농장을 지어놓고 현지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평생 농업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카리브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수도 없었거니와, 항해시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들어온 유럽인들의 잔혹한 노예 경영과 이에 대항해 벌인 싸움에서 원래 카리브인들은 거의 전멸을 당했다. 그냥 전멸이 아니라 멸종에 비슷한 수준. 하늘도 양심이 있었는지, 유럽인들이 유독 도미니카 연방에서는 백년이 넘도록 느슨한 관심만 쏟아 극소수의 카리브 사람들이 이 섬의 오지에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인구의 3퍼센트, 약 3천명 정도라고 한다.

  화자 ‘나’의 어머니 수엘라 클로테르 데바리외가 바로 이 카리브 원주민 여성이다.


  서인도 제도에서 원주민을 멸종시킨 유럽인들은 황망했을 수밖에. 노예들을 다 죽여버렸으니 이제 사탕수수는 누가 심고, 소는 누가 먹이나? 그리하여 이들이 선택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들어 도미니카가 정식으로 영국 연방으로 편입되자 영국 사람이 많이 유입해 들어왔고, 이 가운데 스코틀랜드 출신 리처드슨 가도 있었다. 이 집안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아프리카 여성과 관계해 아들을 낳았다. 흑백 혼혈이라서 구리 같은 금속 색깔의 피부와 붉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아들 앨프레드 리처드슨은 커서 자신에게 백인의 피가 흐르는 것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늘 염두에 두었던 듯 남과 차별을 둘 수 있는 돈과 권력을 좇아 반은 군인, 반은 경찰 정도의 지배층이 되었다. 이이가 화자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는 영국인에게 거의 멸종을 당한 카리브족 어머니와, 영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아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나마 숱한 ‘나’의 아버지의 아이들 가운데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계약 아래 태어났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 ‘나’의 어머니는 죽었다.

  이제 홀아범이 된 아버지는 집에 빨래를 해주는 여자에게 두 보따리를 건넸다. 더러워진 아버지의 옷이 든 보따리, 그리고 하나뿐인 건 아니지만 유일하게 결혼해서 얻은 딸이 든 보따리. 세탁부 유니스 폴은 부모 어떤 쪽의 친척도 아니었다. 그냥 세탁부. 이미 여섯 자녀를 두었고, 막내가 아직도 아기라서 젖을 생산할 수 있는 여성. 유니스는 ‘나’를 자식들과 똑같이 다루었다. 다정했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하고 작은 섬에서 흑인 가족으로 살려면, 아니, 생존하려면 잔혹함이 유일한 재산이었고, 유니스는 자기 자식한테 하는 것처럼 ‘나’도 잔혹하게 대했다.


  아버지가 ‘나’를 버린 건 아니다. 유니스의 동네에서 여자아이로 유일하게 ‘나’를 학교를 보냈다. 문 하나와 창문 네 개가 있는 작은 건물. 남자 아이들만 있는 교실이었지만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법을 몰랐고 지금도 그렇단다. 어린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 어머니가 죽는 것뿐인데 ‘나’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선생은 감리교 선교사에게 교육받은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한 아프리카 여자였다. 선생에게 자기 출신과 피부색은 굴욕과 자기혐오의 근원인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영어를 사용했고 아이들끼리는 프랑스 사투리를 썼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아주 잘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늘 그러듯이 공부는 잘하지만 선생하고 문제가 생겼다. ‘나’는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선과 악만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선생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이유를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해서 그랬다. 어머니가 카리브 족이라서.

  이후 ‘나’ 수엘라 콜로테르 리처드슨이 일흔 살이 넘어 살 때까지 ‘나’는 언제나 옳았고, 정의로웠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세상 모든 것이 틀려 처먹었다.

  ‘나’는 검은 피부색을 가진 식민지 여자. ‘나’의 어머니는 꿈에서만 만났다. 흰 드레스를 입고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발뒤꿈치. 그 위로는 모른다. 딱 발꿈치로만 존재를 드러내는 어머니. ‘나’와 같은 이름을 썼던 카리브 원주민, 흑인, 식민지, 노예의 후예, 나자마자 백인의 수녀원 앞에 버려진 아이, 딸을 낳고 곧바로 생을 버린 여성.


  독자는 벌써 알아챘다.

  “내 어머니의 자서전” 내 어머니는 정말로 ‘나’의 어머니이면서 ‘나’이기도 하다. 도미니카 연방, 더 넓게 확장하면 서인도제도 또는 피식민지 시절을 겪은 모든 유색인 지역, 특히 검정 피부를 지닌 곳에서조차 버림받은 여성이다. 결국 이 자서전은 수엘라 클로데르 데바리외나 수엘라 클로데르 리처드슨이 쓰는 자서전이 아니라는 것을.

  일흔 살이 넘은 ‘나’의 기억. 그 속에는 단 한 명도 옳거나, 옳음과 비슷하거나, 옳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없다. ‘나’가 똑똑하고 독립적이고 용감하다는 건 알겠는데, 과하다. 과해도 너무 심하게 과해서 내 눈에는 소시오패스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글솜씨가 하도 뛰어나 독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 버리는 것. 자신도 모르게 아예 처음부터 킨케이드가 의도하는 대로 완전히 수엘라 클로데르 리처드슨을 해석하고 이해한다. 아마 실제 살면서 주위에 수엘라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내 삶이 피곤해질지 전혀 생각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나’ 수엘라의 사고는 언제나 자기가 우선이다. ‘나’의 가장 막강한 무기는 자신의 정체성, 버려진 식민지 검둥이 여성이라는 것. 그러나 ‘나’가 권세 있고, 부유하고, 오래 사는 남자가 정식으로 결혼해 얻은 딸, 도미니카 연방의 앤티카 섬에 사는 많은 여성 가운데 월등하게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교육받았고, 적어도 독자가 읽기에 여러 방면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산 것처럼 보이는데다가,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백인 의사와 혼인해 오래도록 함께 사는 동안, 자서전을 쓰는 일흔 살이 되도록 거의 반세기를 카리브 족들의 커뮤니티에 가서 살았다. 가난한 의사 봤어? 아내보다 나이가 적어도 스무 살 많은데 늙도록 아내 괴롭힐 수 있는 남자 봤어? 얻어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사랑하지도 않는 돈 많고 늙은 백인과 결혼해 한평생 배부르게,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으면서도 자신보다 불행하게 산 여성, 아니 여기서 젠더가 왜 나와, 불행하게 산 앤티카 사람들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한다. 모든 게 자기 중심이다. 사람도, 환경도, 역사도. 그러니 내가 ‘나’를 소시오패스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역시 문제는 문장이다. 독자를 현혹시키는 문장. 저메이카 킨케이드, 글 하나는 정말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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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6-02-10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대에 역행하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폴스타프님,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사랑하지도 않는데 스무 살 어린 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 이것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어쨌거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Falstaff 2026-02-10 15:26   좋아요 0 | URL
수이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사랑하지도 않는 돈 많고 늙은 백인과 결혼˝한 인간은 나이만 먹었지 철딱서니 없는 백인 의사가 아니고요 주인공인 수엘라였는데, 제가 좀 헛갈리게 썼나 봅니다. 수엘라가 백인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어서는 아닌 거 같고, 하여튼 백인 의사가 갖고 있는 복지 시스템과 완전하게 분리된 결정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 기억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설 전에 부모 성묘하러 갔다가 고속도로에서 수이 님 댓글 보고(도로 꽉 막혀서 밀릴 때입니다) 화들짝, 이제 집에 와서 답글 썼습니다. 운전 중이라 즉각 답신하지 못했습니다. 설 잘 보내셔요!!

수이 2026-02-10 16:17   좋아요 0 | URL
소설 읽어볼게요. 읽어봐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듯 싶어요. 하지만 뭔가 저는 화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불끈 했습니다. 폴스타프님도 해피 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