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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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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작품. 김희선은 두 권의 소설집 2019년 《골든 에이지》와 2021년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사이에 이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냈다. 김희선의 단행본은 챙겨 읽는 편이다. 2019년부터 2021년, 이 시기에 김희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금 이르게 찾아온 갱년기? COVID-19 감염? 아쉬울 만큼 이 3년간의 결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긴 일개 독자가 아쉬워해봤자 중요하지 않겠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쩌면 역작 <무한의 책>을 낸 이후 그에 필적하는 다음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 수도 있고, 장편을 썼으니 좀 쉬는 의미에서 가벼운 것들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됐을 수도 있겠지. 뭐 내가 아나,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지.
작품은 모종의 죽음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의 사무실에서 시작한다. 책상, 의자, 집기, 캐비닛 등 모든 비품과 사무실의 색깔까지 전부 회색인 곳. 이곳에 비가 내리고 회색 레인코트를 입은 책임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회색의자에 앉아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이 죽음에 관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사실 시를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해서 사무실에 한 짝에 5백만원 하는 앤올롭슨사의 하이엔드 스피커를 갖춰 놓았다.
그가 신봉하는 말: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또 이런 표현들.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하라.”
이런 문장이 첫 세 페이지 안에 몰려 있다. 독자가 읽기에, 세상에, 클리셰 만땅이네.
큰 호수, 아마도 소양호나 충주호 같은 곳을 연상하면 비슷한 가상의 월상호. 월상시도 좋고 월상읍도 좋은데, 이곳에서 월상호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 다섯 곳의 마을이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두 곳은 출생 없이 사망이나 전출만 발생해 마을이 소멸됐고 이제 세 곳이 남았는데 이 가운데 여덟 호, 열 명의 주민만 남은 팔곡마을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벌어진다. 이걸 제일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연락선을 타고 우편물 배달을 하는 우체부 김씨.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평소엔 우편물을 선착장에 자신이 설치한 우편함에 넣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지만 이날은 직접 팔곡마을에서 내려 마을 이장 피 노인 집으로 향한다. 우편함에 주민들이 찾아간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문이 잠겨 있지 않아 곧바로 마당에 들어갔지만 인기척이 없다. 그래서, 워낙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 집안에 험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염치불고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봤다. 그랬더니 피 노인이 잠들어 있는 듯 이부자리가 두둑하게 솟아 있어, 이크 정말 큰일인지 모르겠군, 하면서 이불을 들춰보니까 옥수숫대를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 이불 속에 왜 옥수숫대가 들어 있다고 했을까? 안 해도 좋을 것 같은 묘사를 앞으로도 자주 읽을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
기겁을 해서 집 밖으로 나온 우체부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에도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거 수상한데 싶은 우체부 김씨. 그는 월상읍에 돌아와 파출소 소장 박경위에게 신고하고, 일단 민원을 접수했으니,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 박경위는 자기 생각에 무슨 일이야 생겼겠느냐만 그냥 지나쳐버리면 또 인터넷에 의견 달고 지지고 볶을 지도 몰라 시간이 남으면 뒷산에라도 올라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직접 팔곡마을로 향한다. 퉁퉁한 몸집에 손목에는 의자 모양과 영어로 “New Generation”이라는 문신을 한 연락선 선장한테 특별히 부탁을 해서.
팔곡마을로 가는 길에 선장은 우체부 김씨와 박경위에게 가는 동안 재미는 없지만 비디오라도 보라고 하나 틀어주는데 제목이 “죽음을 이기는 법”에다가 월다잉 협회에서 그냥 틀어달라 부탁한 거란다. 비디오에는 쉬운 얘기로 자살을 선택한 중환자나 노인들이 자유 의사로 죽을 수 있는 암스테르담이 나오고, 이어서 우리나라 종로3가 탑골공원쯤 되는 노인 밀집 지역을 대비시킨다. 이걸 보면서 독자들도 쉽게 알 정도로 박경위는 일종의 최면에 걸려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우체부 김씨가 막아서고, 드디어 이들은 팔곡마을에 발을 딛는데, 때를 맞춰 먹구름이 밀려와 시간이 아직 이르건만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범죄와 국가 수준의 음모론으로 확장한다. 구성은 다분히 김희선 답지만 문제는 문장이다. 어째 읽는데 문장이 입 속에서 버벅거린다. 여태 일곱 권의 김희선을 읽었고 이번이 여덟 번째. 이 책의 문장이 제일 아쉽다. 2019년에 잡지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서 책으로 엮은 건데도. “무엇보다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램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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