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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 - 완역 결정본 ㅣ 홍루몽 1
조설근 지음, 홍상훈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12월
평점 :
흠. 해설까지 포함해 총 7권 3천쪽을 훌쩍 넘기는 장편소설이며 아시다시피 중국의 5대 기서 중의 하나로 꼽혀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다가 정작 사려고 하면 어쩐지 선택하게 되지 않았던 작품. <금병매>도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읽어보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금병매>는 이 책 <홍루몽>을 읽음으로 해서 앞으로도 읽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 이 정도면 됐다.
<홍루몽>을 해설한 것 가운데 이 책을 읽기 위해 작가 조설근의 행적을 좀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글은 보질 못했는데, 조설근 자체가 남경(의 강녕)에서 상당히 권세도 있는 부르주아로 살다가 조의 청소년기에 문중 한 할배가 황제한테 오지게 찍혀 집구석이 거덜이 나고, 어디 가서 먹고 살 데가 있나 궁리한 끝에 북경으로 터를 옮겨 여기저기서 빌붙어 평생 그렇게 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책 가운데 조설근과 비슷한 환경을 지닌 인물들이 숱하게 나오고 이런 작자들이 작품의 주무대 가賈씨 문중에 기생하며 조금씩 가씨 댁의 재산을 갉아먹는 빈대로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실감난다, 실감 나.
소싯적에 집에 사서오경과 <장자> 번역본이 있어서 꼴에 그걸 읽어보려 몇번이나 아웅다웅 박박 깍은 대가리에 힘줄 돋게 책을 넘겨봤지만, 딴엔 중고딩 시절 다른 과목은 몰라도 한문 하나는 똑부러지게 해서 까짓 <장자>가 뭐 대수야 싶어 만만하게 본 것이 처음부터 잘못이었으나 그것도 모른 채 그냥 눈알이 벌게지도록 종이만 꼬나봤지만 아예 첫 페이지부터 오리무중이었던 것을 먼저 고백함에도 불구하고, <홍루몽>을 읽으며 이건 다분히 장자의 생각에 입각하여 쓴 장편소설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불교 용어로 우리가 흔히 쓰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딴 거하고도 비슷한 주제.
근데 아주 솔직히 얘기하면 작년에 읽은 다이 허우잉의 장편소설 <시인의 죽음>과 올해 읽은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이 <홍루몽>을 자주 인용하며 책 속에서 중국인민의 아버지 마오 역시 <홍루몽>의 등장인물과 상황을 자주 섞어 연설을 했다고 하여, 현대 또는 근대 중국인에게 중요한 텍스트일 것이라 짐작해 올해가 밝자마자 서둘러 책을 구입하게 됐다. 내가 책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책 속에 등장인물, 주로 주인공과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주는 조연이 언급하는 책을 고르는 거라서.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로 불교와 도교 사상에 입각해,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등,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는 등, 음지가 양지요 양지가 음지라는 등의 사상을 북경에 사는 중국 최고위층은 아니더라도 청나라 그냥 고위층, 어느 정도냐 하면 요즘 우리나라 계급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장관의 비서 정도, 그러나 개국공신 집안을 배경으로 하는 뻑적지근한 자산계급의 호화찬란한 사치가 거의 전부인 책을 어찌하여 중국 공산주의의 아버지 마오가 그리도 좋게 언급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참 아리송했다. 다이허우잉이야 책에 나오는 인물들과 자기 책의 인물 가운데 특정인이 비슷한 성격을 지닐 수 있으니까 뭐 그러려니 하지만.
책의 내용은 별거 없다. 처음과 끝에 잠깐 나오는 진씨('진'은 '견'으로 읽기도 하고, 우리 말로 '질그릇 장인'이란 뜻인데 네이버 한문번역에 나오지도 않는 희귀 한자어다)와 가賈씨의 대비로 시작한다. 진은 참되다는 진眞과 발음이 같고 가賈는 거짓되다는 가假와 발음이 갔다고 해서, 진짜와 가짜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위에서 말했듯 진짜가 가짜고, 가짜가 진짜라는 희한한 논리로 이승의 삶을 초탈해 도사의 삶은 시작하는 주인공 가보옥賈寶玉, 이 새끼야말로 은수저가 아니라 옥을 입에 물고 엄마 배속에서 튀어나온 여려빠진 귀공자로, 얘가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도를 닦기 위한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쓴 책이다.
어디서 읽었더라, 삼국지연의가 다 끝나고 드디어 천하를 통일한 사마염이 위나라 무제로 등극했더니 알랑방귀를 뀌려고 신하 하나가 꿩의 대가리 가죽으로만 만든 외투 치두구를 선물하니까, '이제 천하를 통일했으니 짐이 할 일은 사치가 아니라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니 어찌 이런 사치품을 받을 수 있냔 말이냐' 염병을 하고 불에 태웠으나 황위에 오른지 몇 년 만에 그거 말고는 입지 않았다는 바로 그 치두구, 꿩 대가리 가죽으로 만든 코트, 이딴 거 숱하게 나온다. 그것만? 아니지. 백여우의 겨드랑이와 가랑이 털로만 만든 외투. 일찌기 진나라로 벼슬하러 간 맹상군이 뇌물로 써서 진나라에서 도망을 칠 수 있었던 바로 그 백여우 코트. 공작의 깃털을 촘촘하게 댄 겨울 코튼데 공작깃 가운데서도 보라색 나는 부분만 골라 화려하게 만든 남자용 코트. 이딴 거 숱하게 나오니 중국 사람들의 스케일,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사치 그득한 가씨 가문에 옥구슬 입에 물고 엄마 다리 밑에서 주워온 가보옥. 얘는 그러나 학문에도 뜻이 없고, 신체단련에도 뜻이 없고, 입신양명에도 뜻이 없고, 아빠한테 재산 물려받아 그걸 더 크게 만들려는 생각도 없고, 관심사라면 오직 한 가지, 숱한 친척 자매들과 몸종들 사이에 처박혀 여인들의 부드러운 살결과 고운 심성과 더불어 시를 읊으며 오직 꽃 속에서 즐겁고 우아하게 사는 거다.
이게 다다. 20여 평생 여인들의 그늘에서만 살던 소년이 어느 날 입에 물고 나온 옥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에 깨달음을 얻어, 세상에 나온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급제하고 아들 하나 임신시키고, 임신한 아내는 두번 다시 보지도 않은 채 집 나가서 도사 되는 거.
그래도 이 책 사서 읽어보실래?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전적으로 당신 마음이다. 말리지 않겠다.